대학의 영미 잡지 읽기 동아리에서 처음 봤을 때 노아 선배는 어딘가 다른 중력에서 사는 듯한 느낌이었다. 외부의 일들에 관심이 없었고 무슨 말을 듣든 반응이 느렸으며 자기 일에만 진지했다. 그러면서도 일상적인 일들에 서툴렀는데, 서툴러서 못한다기보다는 다르게 하는 편이었다.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리고 몇 년 동안 재발급받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그렇게도 살 수 있어요? 그게 가능해요? 하고 물었더니 선배는 여권이 있잖아, 했다. 애들은 아, 여권, 하며 납득했지만 그것이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을 때 대처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어서 뒷맛이 차고 씁쓸했다. 선배는 서울 출신이면서도 서울에서 자취했고 왜 혼자 사느냐고 물으면 다른 설명 없이, 가족에 대해서라면 기대가 늘 배반당했다고만 해두자, 라고 해서 나를 매료시켰다. 그 밖에 검거나 흰 옷만 입는 것, 잠깐 밴드 생활을 한 것, 여자 선배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는 것, 어깨에 문신이 있는 것,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것, 영어를 잘하는 것, 오토바이를 타는 것, 미술에 소질이 있는 것 모두.
그런 선배가 우울증, 정동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선배는 일정한 간격으로 약을 먹었고, 어느 날은 극심한 무기력에, 어느 날은 극도의 흥분에 차 있었다. 실수하면 지나치게 자책했고 자신을 때리고 할퀴는 버릇이 있었다. 언젠가 세미나 시간에 『타임』지 칼럼의 제목을 ‘이것은 강아지가 아니다’라고 잘못 읽은 적이 있는데 ― 당연히 그건 강아지puppy가 아니라 마그리트 작품에 나오는 파이프pipe였다 ― 선배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서 사람들을 웃기고는, 나중에 동아리방에 혼자 남아 책장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가방을 가지러 갔다가 그 모습을 본 나는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는데 선배는 쿵쿵하고 멈추질 않았다. 그때 동기인 국화가 들어왔고 부주의하게 소리를 내며 뭔가를 찾았다. 선배가 돌아보자 국화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철해놓은 것 봤어요?” 하고 물었다. 천연덕스럽게, 놀라거나 걱정하는 기색 없이. 선배는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 부끄럽고 창피한, 하지만 어떤 열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캐비닛에 있어, 라고 대답했다.
그뒤 선배는 자조적인 농담처럼 ‘이것은 ○○이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쓰기 시작했고 곧 동아리 사람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었다. 이건 진정한 순대국밥이 아니다. 아 이건 정말 여름이 아니다. 아 그런 건 얼터너티브 록이 아니고 키아로스타미 영화가 아니고 학생의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고 ‘국민의 정부’에서 일어날 만한 일일 아니다. 그 아니다라는 말은 부정의 뉘앙스를 띠면서도 권위적이지 않았고 1999년의 세기말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블랙홀처럼 모두를 빨아들여 유사 빅뱅의 상태에서 무언가를 탄생시킬 듯한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불안에 알맞은 것이었다.
선배는 동기나 후배들과는 잘 지냈지만 교수나 선배들과는 자주 싸웠다. 마치 우울한 소녀가 정오의 소나기구름을 쫓듯 어디든 그런 일이 따라다녔다. 세미나가 끝나고 콩국수를 먹으러 갔던 어느 여름날처럼. 그날은 같은 동아리 출신이면서 모교에서 강의하는 선배가 참관을 온 날이었다. 콩국수 열한 그릇이 나오고 노아 선배가 아주머니에게 설탕을 달라고 하자 강사가 슈우가? 하고 언성을 높였다.
“무슨 슈가야? 소금이지.”
“소금 아닌데요, 콩국수는 설탕인데요.”
선배는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이미 얼굴은 차갑게 굳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사는 눈치가 없는지,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는지 포기하지 않았다. 소금 그릇을 선배 앞으로 내밀었다.
“소금이지, 인마, 애기 입맛이냐. 소금, 콩국수는 소금.”
선배는 주위를 살폈고 하는 수 없이 숟가락을 내밀어서 소금을 떴다.
“그렇지. 슈가는 무슨 슈가야.”
강사가 좀 풀린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선배가 피식 웃었다. 강사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왜 웃어?”
“아니, 별 건 아니고. 드세요, 그냥.”
강사는 물론이고 다른 애들도 젓가락을 들 수가 없었는데, 그 긴장을 깨고 누군가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식사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국화였다. 국화는 열무김치를 아삭아삭 씹으면서 맛있게 국수를 먹었다. 선배는 아직 숟가락을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소금이 콩국물로 떨어져 염도를 높이고 다른 보통의 사람처럼 국수를, 그놈의 콩국수를 ― 그건 그냥 콩국수일 뿐이니까 ― 먹을 수 있게 완전히 분위기가 잡히지도 않았는데 국화는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 움직임을 통해 국화의 무심함이 맹렬히 전달됐다.
“왜 웃냐고?”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째서 아니야?”
후룩후룩…… 후룩…… 목으로 넘어가는 국숫가락의 리듬. 나는 언성을 높이는 강사보다 국화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저번에 목격한 것도 있고 해서 쟤는 정말 대단히 무심한 애가 아닌가, 저 무심함은 어딘가 공격적인 데가 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설탕은 슈가가 아니고요, 슈거. 슈가는 뉴슈가 할 때나 슈가고요. 알죠, 사카린?”
그 일로 싸움이 나고 강사 편을 들며 사과를 종용하던 선배들과 불편해진 뒤 노아 선배는 세미나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그 세미나를 한심해하던 차였으니까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동아리방에는 꾸준히 나와서 『타임』지뿐 아니라 『롤링 스톤』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잡지를 읽었고 ‘인식의 부정이 인식 자체의 부정으로 되지 못하는 한 모든 예술과 철학은 자본을 위한 꽃이 되리라’라는 길고 복잡한 제목의 영어 에세이를 쓰기도 했다. 선배는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그 칼럼마저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 대해 썼다. 여러 장 프린트해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제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자. 연락 바람. 018327××××”라고 메모지에 써두었다. 나는 줄지 않는 그 페이퍼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나라도 독대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건 선배가 무언가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선배는 좋다 나쁘다 괜찮다 싫다를 넘어 그냥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었고, 누군가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십대 시절의 감각과는 다른 것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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