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타자를 혐오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가
트럼프의 미국, 마크롱의 프랑스를 낳은 정치적 욕망의 근본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1장
과거 ― 동질 사회라는 환상
우리는 다원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새로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비非다원화 사회, 즉 동질 사회로 돌아갈 방법은 이제 없다. 이렇게 단언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다원화 사회란 무엇인가? 다원화 사회는 우리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질문을 다르게 던져 보자. 이런 사회에 산다는 건 도대체 무엇을 뜻할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혹은 대답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선을 뒤로 돌려야 한다. 새로움의 범위와 전체 규모를 측정하기 위해 우리에게 비교 모델을 제공하는 다원화 이전의 서유럽 사회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이 사회가 인종, 종교, 문화적 통일성을 비교적 이룬 동질 사회는 말하자면 네거티브 필름과 같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다원화 사회와 대조를 이루는 배경이 된다.
동질 사회는 그냥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저절로,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먼저 만들어져야 했다. 동질 사회의 형성을 위해 폭넓은 정치 개입이 필요했으며, 종종 폭력과 억압이 동반되었다. 그러므로 동질 사회는 의도된 정치 행위의 결과다. 이러한 사건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민족 형성’이다.
19세기 이래 민족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어떠한 상징적, 물리적 폭력이 필요했는지를 보여 주는 다수의 탁월한 역사 연구가 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민족 형성은 이미 존재하는 다양성을 거슬러 성취해야 했던 동질화였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 다양한 수준의 방대한 개입이 필요했다. 물질적, 정서적, 문화적 동질화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언어를 예로 들어 보자. 국어로서의 단일한 표준어를 관철하는 데, 모든 지역의 언어를 사투리로 묶어 두고 배제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 또는 눈에 보이는 간단한 예로 기차 운행 시간표가 있다. 기차 시간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동질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까? 분 단위까지 고려하는 정확한 시간관념이 생겨야 하고, 도착과 출발 정보가 잘 전달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그 정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열차 운행 시간표라는 간단한 영역에서도 전체 사회를 하나의 초침에 맞추는 거대한 물질적, 신체적 노력이 선행된다.
그러나 이런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동질 사회는 물질적 동질화뿐 아니라 정서적 일치도 필요로 한다. 사회의 단일성 역시 감정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문학과 음악, 교육과 학교 분야를 망라한 전체 행위자들일 민족의 핵심 개념을 강화하며 이 정서적 동질화 과정에 참여했다. 여기에서 핵심 개념이란 바로 영토다. 영토라는 개념으로 인해 국경, 풍경, 도시, 강 같은 공간에 감정이 자리 잡았다. 이렇게 민족이라는 감정적 상상은 민족 감정의 영토화를 통해, 공간과 감정의 재결합을 통해 성취되었다. 민족이라는 상상은 아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 물론 학교에서, 또한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이러한 실천을 볼 수 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지적했듯이, 일기 예보는 영토의 윤곽과 경계를 각인시키며 긴밀하고 고유한 (날씨) 공간으로 전달한다. 다양한 연습과 실천들이 공간의 감정적 점유를 위해 실행되고 있다. 감정과 지리를 연결하는 데 성공하면, 공간은 더 이상 그냥 단순한 어떤 곳이 아니다. 이제 공간은 상징이 된다.
민족 형성은 이렇게 국토를 두 배로 만든다. 모든 영토에 감정을 결합시키기 위해 물리적 영토에 상징적 영토를 추가하는 것이다.
동질성에 대한 이와 같은 주장은 당연히 아주 쉽게 논박될 수 있다. 많은 비평가들은 민족의 동질화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동질 사회는 언제나 어느 정도는 허구다. 민족이 가장 성공적으로 형성된 곳에서조차 동질 사회는 막대한 정치적 개입을 통해 늘 재생산되어야 한다. 비판적 역사학의 진영에서는 민족이 결코 완성된 적이 없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민족은 충족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동질 사회가 완전히 동질적인 적은 없다. 그러나 비판적 역사 연구가 전하는 이 모든 통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판적 역사학자들은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본질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민족이 잘 기능하는 허구라는 사실이다.
동질 사회라는 상상은 언제나 허구였다. 그러나 잘 기능하는 허구였다. 민족은 게다가 기능이 대단히 뛰어난 허구였다.
베네딕트 앤더슨 이후로 우리는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는 것을 알고 있다. 1983년에 나온 앤더슨의 유명한 책 제목은 이제 널리 인용되는 말이다. ‘상상된 공동체’란 민족이 표상으로, 상상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정치적 구성물인 ‘민족’의 기초, 동질 사회의 기초가 정치적 상상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민족을 실재라고 믿어 왔다. 그래서 민족은 언제나 허구였지만 잘 기능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상상은 실제로 하나의 민족 사회를 만들어 냈다. 이 말이 실제로 동질성이 완전히 성취된 적이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동질성과 어긋나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러나 민족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대중을 결합하고 통일하는 유일한 정치 형태였고, 대중을 하나의 사회로 만드는 유일한 정치 서사였다.
문학에 등장하는 민족이라는 상상의 형태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주장을 늘 견고하게 뒷받침한다. 상상된 공동체는 민족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들을 잘 알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살기 때문에 잘 작동한다. 그러한 환상이 지속하는 한 민족은 상상된다. 그러는 한 민족은 공동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믿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속한 민족의 다른 모든 구성원을 알고 있다는 환상이 가능했던 건 민족이 물질적 동질화이기 때문이다. 즉 언어, 시간, 공간을 동질화했기 때문이다. 민족이 잘 기능한 두 번째 이유는 민족이 공간과 상징을 감정적으로 차지하는 정서적 동질화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민족은 세 번째로 문화적 동질화가 필요했다. 문화적 동질화를 애초에 풍부하고 전통적인 고급문화로 이해하면 안 된다. 대중 영역에서 문화적 동질화는 고급문화와 완전히 다르게 실현되었다. 대중 영역에서 민족적인 유형이 발달했는데, 이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정체성과 명확하게 정의되는 특성을 보인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인 유형, 독일인 유형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적 유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여기에서 먼저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역사를 보면 동시에 일어난 두 가지 사회 운동이 있다. 유럽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 형성이다. 역사적으로 나란히 출현한 두 운동은 위르겐 하버마스가 “공화주의와 민족주의의 역사적 공생”이라고 칭한 바 있으며, 민주적 정치 과정과 민족적 다수 문화의 결합을 의미한다. 두 가지 과정은 이처럼 동시에 등장했지만, 정체성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과정이다. 나아가 정체성 정치의 관점에서 민족과 민주주의는 심지어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관련해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서구의 민주화된 민족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중화되어 있다. 우리는 부르주아Bourgeois이자 시투아앵Citoyen이다. 시민Bürger이자 동시에 국민Staatsbürger인 것이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모두 사인私人이다. 서로 구별되는 특징이 있는 개인이며, 이 특징이 우리를 분류한다. 우리는 남성이거나 여성이며, 가난하거나 부유하며, 공무원, 농부, 교사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구별된다. 그러나 시투아앵으로서, 다시 말해 국민으로서 우리는 공인公人인데, 우리는 모두 동등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민주주의적 본질 요소가 들어 있다. 이것이 우리를 추상적 동등으로 이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러한 “보편적 개인”의 생성을 의미한다. 피에르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 프랑스의 정치학자로 민주주의의 역사와 복지 국가에 대해 연구해 왔다.이 명명한 그대로다. 민주주의는 국민이자 유권자인 정치 주체를 생성하고, 법적 주체로서의 법인을 생성한다. 민주주의는 곧 사회의 개인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개인화는 우리 사회와 함께 대두한 것이 아니라, 1800년대에 일어난 훨씬 오래된 움직임이라는 것을 명확해 해야 한다.
1세대 개인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는 개인화 운동을 통해 개인은 기존의 관계망에서 빠져나왔다. 우리 관점에서 보면 ‘오래된’ 이 1세대 개인주의는 개인을 계급 사회의 속박에서 해방시켰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개인주의는 모든 개인이 동등함을 의미했다. 다양한 차이와 신분, 계급, 종교 같은 모든 특수성이 무시되는 곳에서 국민이자 유권자로서, 그리고 법적 주체로서 개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개인이 바로 정당이나 민족 같은 거대한 구조에 속하는 개인이었다. 이러한 개인이 동등한 존재로 공적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므로 오래된 개인주의는 오늘날 우리의 개인주의와는 다르며, 지금 논의에서 이 차이는 중요하다. 이전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다른 유형을 만드는 일이었다. 법 권리 주체, 유권자, 국민은 추상화를 통해 생성되기 때문이다. 개별 사인으로서 개인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구별된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개인은 구별되는 특성들을 추상화함으로써 동등해진다. 다시 말해 특수한 차이들을 무시할 때에만 각각의 개인은 전체의 동등한 부분이자 주권을 구성하는 동등한 일부가 된다. 이 점에서는 개인 사이를 결합하는 요인이 바로 개인의 특수한 직분에 대한 추상화다. 우리를 구별하는 것들을 무시할 때에만 우리는 전체의 동등한 부분이 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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