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마음동호회
나는 마음이 작다. 그래서 혼자 대답하지 못하고 여러 날 생각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대체 왜 내가 편집장이 됐을까. 왜 서문을 쓰겠다고 했을까. 서문에서는 ‘작은마음동호회’가 무슨 모임인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책을 만들게 된 취지를 간략하게 소개해야 했다. 글쎄, 우리는 누구일까. 무엇일까.
우리가 비장해지면 사람들이 웃는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먼저 웃기로 했다. 웃으면서 최선을 다해 비장하게 생각했다.
아주 사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엄마들이다. 우리 중엔 동화를 쓰는 사람도 있고, 번역을 하는 사람도, 외주 편집자도, 프리랜스 웹 디자이너도, 패션지 자유기고가도 있다. 유명인은 없지만 다들 쓰는 일에선 한가락씩 한다. 우리는 망해가고 있다고 알려진 한국 출판계 최후의 성실한 독자들이며, 팬들이며, 독설 넘치는 비평가들이기도 하다. 물론 나처럼 제도권 문학에 아무런 연이 닿지 않은 채 혼자서 시와 소설을 끄적이는 게 다인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아내들, 며느리들, 딸들이다. 우리의 역사적인 첫 책에 들어갈 원고를 쓰면서도 이것이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반쯤은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찻잔 속의 태풍’ ‘손바닥 안의 발버둥’이라는 말들을 한 번씩은 떠올려본 사람들이며, 지금도 마음속에서는 우리 자신을 비웃고 코웃음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람들이다. 모임을 만들고 몇 주가 지난 뒤에야 ‘세경이 엄마’ ‘준우준영 쌍둥맘’ 같은 호칭 대신 서로의 이름 석 자를 부르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마다 빈집에서 아이와 마주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와 컬러링북을 칠하거나, 와서 김장을 하라는 시어머니의 급한 호출을 받고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유아차라도 끌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러면 ‘맘충’ 취급을 받지 않겠느냐고 볼멘소리로 대답하면서도, 인파 속에서 밀리고 밟히다 아이가 혹시 다칠까 겁내는 마음이, 차가운 초겨울 바람이 아이의 볼을 꽁꽁 얼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실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나약한 핑계이고 열등감이 아닐까, 나는 실은 전혀 정치적 존재가 못 되는 게 아닐까, 자기검열을 하다 마음을 다친 채 새벽 두시에 책상 앞에서 맥주 캔을 따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대통령 변호인의 ‘여자로서의 사생활’ 발언을 비판하고 있을 때, 우리가 핑크색 립스틱과 피부관리와 꽃무늬 원피스를 포기한 지 대체 몇 년이나 되었는지 떠올리다가,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을 다룬 뉴스를 보며, ‘그래도 저 사람들은 하루에 열두 시간만 근무하면 끝이구나’ ‘점심시간이 한 시간이나 있네. 앉아서 밥을 먹을 수는 있겠지’ 같은 생각을 하고 곧바로 부끄러움과 자기혐오에 빠져본 사람들이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악을 쓰고, 아이를 때리지 않으려고 부엌 휴지통을 찌그러뜨리고, 신경정신과 상담 예약을 했다가 취소하고, 증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일기를 쓰고 과일청을 만들다가 시계를 보고 쫓기듯 자러 가는 사람들, 방안에서만 서성거리는 사랑스러운 지식인들이다. ‘현명한 엄마’ ‘효부’라는 말에는 온몸을 긁으며 염증을 내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보면 자궁에 통증을 느끼는, 그 통증을 속으로 삭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공들여 고른 단어들로 허공에 우아하게 저글링을 하다가 관객 없는 무대에서 갑자기 뛰어내리는 피에로다. 나이를 먹듯 꾸준히 가난해지는 자기 언어의 잔고를 매일 지켜보는 회계사이고, 자신의 정직과 허세 양쪽으로부터 소장을 받고 힐난을 당하는 피고소인이다. ‘우리의 적은 반찬이다, 빨래다’라고 하면 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그것들 때문에 우리가 종종 현실의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긴다. 우리의 슬픔은 유머를 덧씌워 우그러뜨리지 않고는 표현되거나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웃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웃거나 반대로 처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싶어진다.
우리는 바이링궐이다. 우리의 말들은 반쯤은 자신의 것이지만 반쯤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는 종종 싸우려다 싸울 대상을 변호하며 주저앉는다. 그러고 나서는 성나고 괴로운 마음이 되어, 자신을 때려 기어이 피를 내곤 한다. 아무리 싫어도 우리 입에선 자꾸만 ‘아줌마’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그 말이.
그런 게 싫었다. 그래서 목표를 정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 우리의 첫 번째 구체적 목표는 아이를 맡기고 나가고 싶은 정치적 집회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각자의 입장과 생각을 써서 모은 책이 필요했다. 그것을 우리의 집회 참여를 막는 사람들에게 주고 읽게 하자. 설득하자. 그들을,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꼭 거기 나가야만 하나’라고 자꾸 중얼거리려 하는 우리 자신을. 쉽게 먹히지는 않겠지만, 안 되면 그때 가서 다른 공동 행동을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여기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문장이 쉽게 써지지는 않았다. 이제 우리가 누군지를 설명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이유 하나가 더 있었다.
서빈도 우리 중 한 사람일까?
이런 식의 서문을 쓴 다음에 마지막에 우리의 일원으로 서빈의 이름을 넣어도 되는 것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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