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어머니와 함께 평원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태고에는 바다 밑바닥이었던 거대한 평지가 펼쳐졌다. 우리는 예전에 어머니가 파크 레인저로 근무했던 국립공원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내기 위해 텍사스 서부로 온 참이었다. 어머니가 레인저로 근무하던 시절에 내 유년기의 첫 추억들이 어려 있다. 숲이 우거진 계곡, 대지에 우뚝 솟은 화강암 산, 황무지 언덕을 휘달리던 바람 소리, 끝없이 펼쳐진 관목지대 위로 쏟아지던 따스한 햇살.
과달루페 산에 가까워지자 광대한 소금 평지가 펼쳐졌다. 나는 어머니께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갓길에 차를 세웠고, 우리는 소금으로 뒤덮인 땅 위를 함께 걸었다. 북쪽에는 과달루페 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아래쪽엔 판게아 대륙 시절 물속에 잠겨 있었던 페름기 암초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서늘한 11월의 바람이 잔잔한 물결처럼 온몸을 어루만졌다. 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서 하얀 소금 조각을 떼어내어 손가락으로 비볐다. 그리고 살며시 혀를 갖다 대어보았다.
“소금 맛이네요.”
나는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공원에 도착하여 안내 센터로 들어갔다. 안내 데스크에서는 제복을 입은 여인이 방문객들에게 친절하게 캠핑비와 하이킹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방문객들이 모두 떠난 후, 여인은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보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급히 우리 쪽으로 다가와 어머니를 껴안았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잠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맙소사, 너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겨우 요만했는데.”
그녀는 손으로 무릎 언저리를 가리켰다.
“아직도 애리조나에 사니?”
그녀가 물었다.
“어머니는 아직 거기서 사세요. 하지만 저는 워싱턴에서 대학을 다녀요.”
내가 대답했다. 그녀가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수도 워싱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 대단하네. 무슨 공부를 하는데?”
“국제정치학이요.”
내가 대답했다.
“국경을 공부하고 있지요.”
어머니가 거들었다.
“돌아가는 길에 엘파소에 들렀다가 국경 너머 시우다드 후아레스에 가볼 생각이에요.”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심하세요. 후아레스는 위험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가 꼬마였을 때 너를 돌보아주던 때가 생각나는구나.”
어머니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받았다.
“그랬지, 자기 집에서 돌아오면 내게도 손으로 만든 토르티야를 만들어내라고 떼를 쓰곤 했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정말 멋진 꼬마였지.”
그녀가 말했다. 내 신발을 쳐다본 그녀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너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카우보이가 되고 싶어 했지.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종일 뒤뜰을 뛰어다녔지. 장난감 총을 쏘면서 말이야.”
어머니도 활짝 웃으셨다.
“저도 기억이 나네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어머니와 나는 과달루페 산 뒤쪽 숲으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어머니는 다시 예전의 레인저로 되돌아간 듯했다. 바람결에 떨리는 커다란 노란 단풍잎들을 가리키셨고, 붉은빛 감도는 부드러운 마드론나무 둥지를 어루만지기도 하셨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풀잎에서 말라버린 잠자리 유충의 껍질을 찾아내서는 살며시 흙 묻은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셨다. 개울물이 흐르는 길 쪽을 잠시 바라보던 어머니는 반짝거리는 잠자리 유충 껍질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잠자리 유충이 계곡의 바람결에 날아오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서 껍질을 벗는지에 대해 설명하셨다. 어머니는 마치 성스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듯 껍질을 조심스레 받쳐 들었다.
“잠자리는 새들처럼 계절을 따라 이동한단다. 종이 같은 날개를 열심히 치면서 며칠이고 쉬지 않고, 평원과 산맥과 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가지.”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는 잠시 길을 멈추고 개울가 바위에 걸터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으셨다. 무릎까지 바지를 걷고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는데 차가운 물 탓에 어깨를 움찔하셨다. 어머니는 내게도 들어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햇살이 아롱거리는 개울가에 앉았다. 어머니는 물속의 바위와 나무 둥치 위를 걸어 다니면서, 나무 둥치 위로 흐르는 물길과 풀숲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가리키셨다. 허리를 굽혀 물에 손을 담갔다가는 얼굴에 갖다 대셨다. 나는 떨어진 단풍잎을 줍고 있었고, 어머니는 물속에서 석회암 조약돌을 주우셨다.
“이리 와, 이 물을 한번 만져봐.”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그날 밤, 오지과학기지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인스턴트 칠면조 요리를 먹었다. 나는 어머니께 왜 파크 레인저가 되셨는지에 대해 물었다. 어머니는 칠면조 고기를 드시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야생의 삶이 좋았어. 황무지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지. 파크 레인저로서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을 일깨울 수 있기를 바랐어. 환경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었지.”
어머니는 고개를 들고 말씀을 이어갔다.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었어. 내가 사랑하는 땅을 지키고 싶었지.”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창밖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까 어때요?”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포크를 내려놓고, 탁자 가장자리를 어루만지셨다.
“아직 잘 모르겠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산타페 다리 근처에 차를 세우고 남쪽 국경 쪽으로 걸어갔다. 엘파소와 시우다드 후아레스 사이에서 국경을 이루는 리오그란데 강의 콘크리트 수로에는 거의 물이 없었다. 수로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에는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도 그 행렬에 동참했다. 다리 끝 쪽에 다다랐을 때, 피곤에 지친 듯한 눈빛의 한 남자가 아내와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회전문 옆에서 울고 있었고, 남편과 아내는 한참을 서로 부둥켜안았다. 회전문 저편에선 검은 제복을 차려입은 멕시코 세관 직원이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권 검사도 안 하나 봐?”
어깨를 으쓱이며 내가 대답했다.
“그런가 보네요.”
통관절차를 마친 우리는 장사진을 치고 있는 택시 운전기사들과 간이음식 판매원들을 지나 베니토 후아레스 대로로 발길을 옮겼다. 거리에는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음에 화려한 상점 간판, 주류 판매점, 전당포, 치과의원, 편의점, 타코 식당, 환전소, 보험 판매소, 의류가게, 신발가게들이 즐비했다. 몇 블록을 걸어간 후, 어머니는 근처에 잠시 쉴 만한 곳이 없는지 물으셨다. 우리는 과달루페 미션 플라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어머니는 곧 벤치에 주저앉으셨다.
“잠시 숨 좀 고르자. 심장이 막 뛰네.”
어머니가 말했다.
“괜찮으세요?”
내가 물었다. 어머니는 심호흡을 하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신 후, 가슴에 손을 얹고 말씀하셨다.
“괜찮아, 조금 무리했나 봐.”
나는 태양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머니 어깨에 손을 얹고 길 건너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 좀 사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계산대 앞쪽에서는 두 여인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데론이 대통령이 될 거 같아 다행이야.”
한 여인이 다른 여인에게 말했다.
“거리에서 범법자들을 청소하고, 범죄에 대해 엄격한 대통령이 필요해.”
그러자 빵과 담뱃값을 계산하던 다른 여인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진짜 문제는 거리의 무뢰배들이 아니야.”
어머니는 내가 사 온 물을 급하게 들이켜신 후,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호텔에서 가져온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메르카도 후아레스가 그리 멀지 않아요. 거기서 잠시 쉬면서 뭘 좀 먹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에 잠시 거리 쪽을 쳐다보셨다. 우리는 아두아나 프론테리조를 지나 9월 16일멕시코 독립기념일-역주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메르카도 앞 건널목에 다다른 우리는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거리는 출근 인파로 북적였다. 신호가 바뀌고 건널목을 반쯤 건너가고 있을 때, 어머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주저앉으셨다. 몹시 당황한 나는 황급히 어머니 곁에 주저앉아 어머니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괜찮으세요?”
어머니는 나지막이 신음 소리를 내시며 발목을 가리키셨다. 움푹 팬 땅바닥에 발목을 접질리신 것 같았다.
“어머니, 일단 일어나셔야 해요. 일단 찻길을 벗어나야지요.”
내가 말했다. 나는 신호등을 쳐다보았다. 불이 곧 빨간색으로 바뀌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어머니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고통스러워하셨다.
“발목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어.”
어머니가 말했다.
곧 신호등이 바뀌었고, 나는 일어서서 손을 들어 차들이 오는 것을 막았다. 상점 쪽에서 한 남자가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것이 언뜻 보였다. 우리 앞쪽에 있던 차에서는 한 여인이 내리더니 어머니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트럭에서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운전기사가 내리더니 뒤쪽의 차들에 정차 신호를 보냈다. 상점에서 뛰어온 사내가 내게 물었다.
“도와드릴게요, 무슨 일이죠?”
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어머니를 가리켰다.
“발을 다쳐서 걸을 수가 없어요.”
그 사내는 어머니 반대쪽에서 어머니를 부축하는 시늉을 했다. 나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 어머니를 부축했다. 차에서 내렸던 여인은 어머니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괜찮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
말을 마친 여인은 차로 돌아갔다. 사내와 나의 부축을 받은 어머니는 한 발로 일어섰고, 우리는 서서히 인도 쪽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어머니를 길가 벽에 기대앉게 했다. 나는 다시 차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손을 살펴보니 아스팔트 먼지로 손이 시커멨다.
“구급차를 부를까요?”
내가 어머니께 물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잠시 앉아 있으면 괜찮을 거야.”
어머니가 대답했다. 나는 사내에게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붙들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뭘요, 후아레스에선 다들 서로 돕고 살지요.”
그는 내 등을 토닥이며 어머니 곁에 앉으라고 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메르카도에 있는 내가게로 찾아오세요. 어머니와 함께 일하거든요. 케사디야를 만들어 드릴게요.”
그는 떠나면서 내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여기선 누구나 가족이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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