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
도경은 까무룩 하다 소스라치고 까무룩 하다 소스라치기를 반복했다. 수의 손이 조심스럽게 빠져나갈 때도 깼고 작은 동물의 가벼운 발소리에도 깼다. 깨기가 무섭게 잠이 쏟아졌다.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짧은 꿈들을 끝없이 꾸었다. 꿈인지, 잠에서 깬 것인지, 이미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정신을 놓으려 애쓰다 다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밤이 깊어 갔다. 깊어지고 깊어져 이제 밤도 얼마 남지 않은 때, 도경의 식도를 타고 무언가가 왈칵 올라왔다. 순간 입안에 쓴 물이 가득 차더니 코로 올라가 콧구멍으로 뚝뚝 떨어졌다.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 손을 더듬거려 차 문을 열어젖힌 후 두 볼이 미어지도록 머금고 있던 액체를 뱉어 냈다. 쓰디쓴 토사물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바닥이 흥건해지도록 토해 내고도 구역질은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 가슴을 두드려 겨우 구토는 멈췄는데 이번에는 명치부터 식도를 타고 목구멍까지 불길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입과 코, 눈에서 끈적이고 냄새나는 분비물들이 흘러내리는 채로 도경은 목을 감싸 쥐고 수를 돌아봤다. 수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반듯하게 누워 있다. 하얗다 못해 푸른빛을 띠는 피부, 다소곳하게 맞잡은 손, 어색한 미소. 도경은 밀랍 인형 같은 수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보았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코 아래에 손가락을 대 보았지만 숨도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서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낮고 길에 비쳤다. 흰색 불빛이 울렁이며 주황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흰색으로 변했다. 넓고 흐리게 퍼지는 불빛이 나무의 그림자를 커다랗게 만들었다. 마르고 긴 손가락 같기도 하고 외로운 동물의 오래된 뿔 같기도 한 그림자는 영혼이 스며들고 있는 것처럼 서서히 작아지며 짙어졌다. 테두리가 또렷해지는 그림자를 넋 놓고 보던 도경은 순간 무섭게 깨달았다. 그림자가 선명해지고 있다. 불빛이 가까워지고 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공원의 간이 주차장, 홀로 비뚤게 세워진 고급 승용차, 그 안에 죽었는지 잠들었는지 알 수 없는 여자. 누가 봐도 미심쩍은 풍경이다. 도경의 머리는 도망쳐야 한다고, 얇은 종이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판단했지만 몸은 차에서 떠나지 못했다. 도경은 수를 향해 손을 뻗다가 움찔 그 손을 거두었다. 데리고 갈 수도 두고 갈 수도 없다. 도경은 잠금 버튼을 눌러 놓고 차에서 내린 후 손잡이를 당겨 차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 수는 유리관 안의 인형처럼, 환상처럼,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 그대로 누워 있고 이제 도경도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
위는 더 이상 찻길이 없는 가파른 오르막이고, 아래는 가파른 내리막이고, 어느 쪽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오르막에는 크고 작은 바위와 나뭇가지들, 드러난 뿌리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와 있고 내리막은 비가 오지 않는 날도 푹푹 파이고 쭉쭉 미끄러지는 흙길이다. 도경은 내리막을 선택했다. 금세 두 발에 속도가 붙었다.
고장 난 가로등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며 깜빡였다. 다리가 움직이는 대로, 발이 닿는 대로 정신없이 달리던 도경은 승용차 한 대가 빠아앙 하고 길게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나서야 자신이 4차로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크게 돌려 시선이 닿는 끝까지 확인한 후 빠르게 대로를 가로질렀다. 차도에서 벗어나 인도에 올라서자 다리가 풀렸다. 풀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오른쪽 무릎이 거친 보도블록에 긁히면서 얇은 면바지가 뚫리고 살갗이 벗겨졌다. 아이보리색 바지에 새빨간 핏물이 번졌다. 도경은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쥐고 그 손등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잠시 그렇게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들고 손을 뗐는데, 그새 찢어진 바지의 실오라기가 상처에 들러붙었다. 손끝으로 실밥을 조심조심 문질러 떼어 보았다. 말라붙은 핏덩어리가 같이 떨어지며 다시 선홍색 핏방울이 몽글몽글 맺혔다. 어금니를 꽉 물었는데도 신음이 새어 나왔다.
도경은 그제야 수를 떠올렸다. 목덜미에 닿던 수의 뜨겁고. 자잘한 소름이 돋아난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쓸며 길 건너 공원 방향을 보았다. 아직 거기 있겠지. 올라가는 길은 좁고 가파르고 거친 데다 힘들게 올라가 봐야 별로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고 사람도 없다. 오히려 그게 좋아서 자주 찾아갔던 공원. 도경은 그곳에 수를 버려두고 도망쳤다.
*
마트 청소라고 했다. 왜 손님이 가장 많은 토요일에 청소를 하나 싶었는데 폐점한 마트였다. 재계약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갑자기 문을 닫았다고 한다. 원래부터 깨끗하게 쓰지 않은 데다가 내용물을 정리하지도 않고 냉장고와 냉동고를 꺼 버렸다. 채소와 과일은 모두 문드러졌고, 우유는 부패하다 못해 종이 팩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고기 썩은 냄새는 뭐라 형용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곰팡이, 온갖 벌레들, 오수로 흥건한 바닥. 작업에 추가 투입된 직원 하나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토했다.
일은 밤늦게 끝났다. 팀장과 진경이 마지막까지 남아 마무리했고, 팀장은 초과 수당이라며 봉투를 하나 더 건넸다. 그리고 창고를 정리하며 빼 두었던 페트 음료들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았다. 깨끗한 거라고, 유통 기한도 넉넉하고 마개도 꼭 막혀 있던 거라고, 자기도 챙겨갈 거라고, 한사코 진경에게 봉지를 쥐어주었다.
“나도 진경 씨 나이 때는 이런 짓 못했어. 근데, 이거 부끄러운 일 아니야. 돈 버는 일이지. 돈 많이 벌어. 죽기 살기로 돈 벌어. 그래서 L2라도 되면 되잖아. 일단 이거 가져가 마시고.”
타운에는 L과 L2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주민권인 L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L, 또는 주민으로 불린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타운이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 혹은 기술을 가진 이들이다. 미성년자는 주민의 자녀이거나 주민인 법정후견인이 보증하는 경우 주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주민 자격은 갖추지 못했지만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자격 심사와 건강 검사를 통과하면 L2 체류권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체류권과 같은 이름인 L2로 불리며 2년 동안 타운에서 살 수 있다. 그것뿐이다. 일단 2년은 쫓겨날 걱정 없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L2를 원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건설 현장, 물류 창고, 청소업체같이 힘들고 보수가 적은 곳들이다. 2년의 체류 기한이 끝난 후에도 계속 타운에 남고 싶다면 다시 심사를 받아 체류권을 연장해야 한다.
L2 대부분은 주민 자격이 되지 않으나 고향을 떠날 수 없어 2년마다 모욕적인 자격 심사와 건강 검사를 받고 L2 체류권을 연장해 가며 타운에 남은 원주민과 그런 L2들이 양육의 의지 없이 낳은 아이들이다. 진경은 L2도 못 되었다. ‘사하’라고 불리었다. L도 L2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마땅한 이름도 없는 이들. 사하맨션 주민이라서 ‘사하’인 줄 알았는데 사하맨션에 살지 않아도 ‘사하’라고 했다. 너희는 딱 거기까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먹을 사람이 없는데…….”
진경은 이미 없어서 없어졌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도경이 이틀째 보이지 않았다.
맨션 입구에 들어서며 진경은 A동 7층 복도부터 도경의 집, 현관문, 주방의 창으로 시선을 좁혀 나갔다. 일부러 두고 떠나기라도 한 듯 모든 창이 완벽하게 깜깜했다. 하루의 피로가, 팔다리의 통증이, 두 손의 무게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음료의 무게를 못 이긴 비닐의 손잡이 부분이 가늘게 늘어지고 돌돌 말리면서 손가락 살을 파고들었다.
그때 오른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툭 터지면서 페트병들이 와르르 쏟아져 앞마당 쪽으로 굴러갔다. 몸을 굽혀 허겁지겁 줍느라 이번에는 왼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놓쳤다. 왼손의 주스병들도 모조리 비닐에서 튀어나와 마당을 굴렀고, 구르는 페트병을 붙잡으려다 이미 주운 것들을 다시 놓쳤다. 진경은 두 손을 놓고 망연히 서서 빠르게 달아나는 페트병들을 보고만 있었다. 바닥을 구르던 찢어진 비닐이 밤바람을 타고 가볍게 날아올랐다.
관리실 문이 삐걱거리며 서서히 열렸다.
“이깟 거에 정신 놨나?”
영감은 터지지 않은 비닐봉지를 집어 들고 어슬렁 걸으며 페트병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 봉지를 꽉 채우고 나서는 옷의 모든 주머니에 병을 꽂고 양쪽 겨드랑이에 끼우고 두 손에도 하나씩 들었다. 그리고 관리실 쪽으로 돌아 걸으며 진경에게 말했다.
“수돗가에도 하나 굴러가 있더라.”
진경은 수돗가 물통 옆에 덩그러니 누워 있는 페트병 하나를 주워 들고 영감을 따라갔다. 영감은 주스를 관리실 냉장고에 넣었다. 여러 개의 반찬통과 생수통, 소주병 들로 채워진 냉장고 안에는 빈 공간이 별로 없다. 영감은 반찬통을 이리저리 옮겨 가며 공간을 만들고 꾸역꾸역 페트병들을 집어넣었는데 아무리 해도 두 개가 들어가지 않았다. 냉동실을 열고 한참 안을 들여다보던 영감이 그냥 냉동실 문을 닫으며 진경에게 물었다.
“줄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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