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종점과 시점의 연속이다
종시
종점終點이 시점始點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아침, 저녁으로 이 자국을 밟게 되는데 이 자국을 밟게 된 연유緣由가 있다. 일찍이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살았을 듯한 우거진 송림 속, 게다가 덩그러니 살림집은 외따로 한 채뿐이었으나 식구로는 굉장한 것이어서 한 지붕 밑에서 팔도 사투리를 죄다 들을 만큼 모아놓은 미끈한 장정들만이 욱실욱실하였다. 이곳에 법령法令은 없었으나 여인금납구女人禁納區였다. 만일 강심장의 여인이 있어 불의의 침입이 있다면 우리들의 호기심을 적이 자아내었고, 방마다 새로운 화제가 생기곤 하였다. 이렇듯 수도생활修道生活에 나는 소라 속처럼 안도하였던 것이다.
사건이란 언제나 큰 데서 동기가 되는 것보다 오히려 적은 데서 더 많이 발작發作하는 것이다.
눈 온 날이었다. 동숙同宿하는 친구의 친구가 한 시간 남짓한 문門, 경성의 사대문안 들어가는 차 시간까지를 낭비하기 위하여 나의 친구를 찾아 들어와서 하는 대화였다.
“자네 여보게 이 집 귀신이 되려나?”
“조용한 게 공부하기 작히나 좋잖은가.”
“그래 책장이나 뒤적뒤적하면 공분 줄 아나? 전차간에서 내다볼 수 있는 광경, 정거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광경, 다시 기차 속에서 대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생활 아닌 것이 없거든. 생활 때문에 싸우는 이 분위기에 잠겨서, 보고, 생각하고, 분석하고 이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아니겠는가. 여보게! 자네 책장만 뒤지고 인생이 어떠하니 사회가 어떠하니 하는 것은 16세기에서나 찾아볼 일일세, 단연 문안으로 나오도록 마음을 돌리게.”
나한테 하는 권고勸告는 아니었으나 이 말에 귀 틈 뚫려 상푸둥 그러리라고 생각하였다. 비단 여기만이 아니라 인간을 떠나서 도를 닦는다는 것이 한낱 오락이요, 오락이매 생활이 될 수 없고 생활이 없으매 이 또한 죽은 공부가 아니랴. 하여 공부도 생활화하여야 되리라 생각하고 불일내에 문안으로 들어가기를 내심으로 단정해버렸다. 그 뒤 매일같이 이 자국을 밟게 된 것이다.
나만 일찍이 아침거리의 새로운 감촉을 맛볼 줄만 알았더니 벌써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 포도鋪道는 어수선할 대로 어수선했고 정류장에 머물 때마다 이 많은 무리를 죄다 어디 갖다 터트릴 심산心算인지 꾸역꾸역 자꾸 박아 싣는데 늙은이 젊은이 아이 할 것 없이 손에 꾸러미를 안 든 사람은 없었다. 이것이 그들 생활의 꾸러미요, 동시에 권태의 꾸러민지도 모르겠다.
이 꾸러미들을 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뜯어보기로 한다. 늙은이 얼굴이란 너무 오래 세파世波에 짜들어서 문제도 안 되겠거니와 그 젊은이들 낯짝이란 도무지 말씀이 아니다. 열이면 열이 다 우수憂愁 그것이요, 백이면 백이 다 비참 그것이다. 이들에게 웃음이란 가물에 콩싹이다. 필경必境 귀여우리라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의 얼굴이란 너무나 창백하다. 혹시 숙제를 못 해서 선생한테 꾸지람 들을 것이 걱정인지 풀이 죽어 쭈그러뜨린 것이 활기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내 상도 필연必然코 그 꼴일 텐데 내 눈으로 그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다. 만일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듯 그렇게 자주 내 얼굴을 대한다고 할 것 같으면 벌써 요사夭死하였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기로 하고 단념하자!
차라리 성벽 위에 펼친 하늘을 쳐다보는 편이 더 통쾌하다. 눈은 하늘과 성벽 경계선을 따라 자꾸 달리는 것인데 이 성벽이란 현대로서 카무플라주한 옛 금성禁城이다. 이 안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졌으며 어떤 일이 행하여지고 있는지 성 밖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알 바가 없다. 이제 다만 한 가닥 희망은 성벽이 끊어지는 곳이다.
기대는 언제나 크게 가질 것이 못 되어서 성벽이 끊어지는 곳에 총독부總督府, 도청道廳, 무슨 참고관參考館, 체신국遞信局, 신문사新聞社, 소방조消防組, 소방서, 무슨 주식회사株式會社, 부청府廳, 양복점洋服店, 고물상古物商 등 나란히 하고 연달아 오다가 아이스케이크 간판에 눈이 잠깐 머무는데, 이놈을 눈 내린 겨울에 빈 집을 지키는 꼴이라든가 제 신분에 맞지 않는 가게를 지키는 꼴을 살짝 필름에 올리어본달 것 같으면 한 폭의 고등 풍자만화諷刺漫畫가 될 터인데 하고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하기로 한다. 사실 요즘 아이스케이크 간판 신세를 면치 아니치 못할 자 얼마나 되랴. 아이스케이크 간판은 정열에 불타는 염서炎暑가 진정코 아수롭다.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노라면 한 가지 거리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도덕률道德律이란 거추장스러운 의무감이다. 젊은 녀석이 눈을 딱 감고 버티고 앉아 있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서 번쩍 눈을 떠본다. 하나 가까이 자선할 대상이 없음에 자리를 잃지 않겠다는 심정보다 오히려 아니꼽게 본 사람이 없으리란 데 안심이 된다.
이것은 과단성 있는 동무의 주장이지만 전차에서 만난 사람은 원수요, 기차에서 만난 사람은 지기知己라는 것이다. 딴은 그러리라고 얼마큼 수긍하였댔다. 한자리에서 몸을 비비적거리면서도 “오늘은 좋은 날씨올시다”, “어디서 내리시나요” 쯤의 인사는 주고받을 법한데 일언반구 없이 뚱한 꼴들이 작히나 큰 원수를 맺고 지내는 사이들 같다. 만일 상냥한 사람이 있어 요만쯤의 예의를 밟는다고 할 것 같으면 전차 속의 사람들은 이를 정신이상자로 대접할 게다. 그러나 기차에서는 그렇지 않다. 명함을 서로 바꾸고 고향 이야기, 행방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주고받고 심지어 남의 여로旅路를 자기의 여로인 것처럼 걱정하고, 이 얼마나 다정한 인생행로냐.
이러는 사이에 남대문南大門을 지나쳤다. 누가 있어 “자네 매일같이 남대문을 두 번씩 지날 터인데 그래 늘 보곤 하는가”라는 어리석은 듯한 멘탈 테스트를 낸다면은 나는 아연俄然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본달 것 같으면 늘이 아니라 이 자국을 밟은 이래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쳐다본 적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하기는 그것이 나의 생활에 긴한 일이 아니매 당연한 일일 게다. 하나 여기에 하나의 교훈이 있다. 횟수가 너무 잦으면 모든 것이 피상적인 것이 되어버리느니라.
이것과는 관련이 먼 이야기 같으나 무료無聊한 시간을 까기 위하여 한마디 하면서 지나가자.
시골서는 내로라고 하는 양반이었던 모양인데 처음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가서 며칠 동안 배운 서울 말씨를 섣불리 써가며 서울 거리를 손으로 형용하고 말로써 떠벌려 옮겨놓더라는데, 정거장에 턱 내리니 앞에 고색古色이 창연蒼然한 남대문이 반기는 듯 가로막혀 있고, 총독부 집이 크고, 창경원昌慶苑에 백 가지 금수가 봄 직했고, 덕수궁德壽宮의 옛 궁전이 회포懷抱를 자아냈고, 화신승강기和信昇降機는 머리가 힝-했고, 본정本町, 혼마치엔 전등이 낮처럼 밝은데 사람이 물 밀리듯 밀리고 전차란 놈이 윙윙 소리를 지으며 연달아 달리고- 서울이 자기 하나를 위하야 이루어진 것처럼 우쭐했는데 이것쯤은 있을 듯한 일이다. 한데 게도 방정꾸러기가 있어
“남대문이란 현판懸板이 참 명필이지요” 하고 물으니 대답이 걸작이다.
“암 명필이구말구, 남南 자 대大 자 문門 자 하나하나 살아서 막 꿈틀거리는 것 같데”
어느 모로나 서울 자랑하려는 이 양반으로서는 가당可當한 대답對答일 게다. 이분에게 아현阿峴고개 막바지에, -아니 치벽한 데 말고, -가까이 종로鐘路 뒷골목에 무엇이 있던가를 물었다면 얼마나 당황해했으랴.
나는 종점을 시점으로 바꾼다.
내가 내린 곳이 나의 종점이요, 내가 타는 곳이 나의 시점이 되는 까닭이다. 이 짧은 순간 많은 사람들 사이에 나를 묻는 것인데 나는 이네들에게 너무나 피상적이 된다. 나의 휴머니티를 이네들에게 발휘해낸다는 재주가 없다. 이네들의 기쁨과 슬픔과 아픈 데를 나로서는 측량한다는 수가 없는 까닭이다. 너무 막연하다. 사람이란 횟수가 잦은 데와 양이 많은 데는 너무나 쉽게 피상적이 되나 보다. 그럴수록 자기 하나 간수하기에 분망奔忙하나 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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