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
읽기, 정신의 카나리아
아직은 당신이 책을 덮지 못하도록
몇 단락 읽어 내려갈 때마다 필딩은 당신을 부릅니다.
이제 내가 다시 당신을 소환하자,
어두운 침묵 속의 형상인 시중드는 유령이
이 말들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 빌리 콜린스강조는 저자
친애하는 독자께,
여러분은 지금 제가 들려드리려는 이야기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다음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날 우주적 변화의 문턱이지요. 이 편지는 여러분에게 읽기와 읽는 뇌에 관한, 있을 법하지 않은 일련의 사실들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청하는 저의 초대장입니다. 그 사실들이 초래할 결과는 우리와 다음 세대, 심지어 인류 전체의 인지 능력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답니다. 저의 편지는 그보다 더 미묘한 다른 변화들도 살펴보자는 권유인 동시에, 한때는 여러분에게 고향집이었던 읽기로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초대장이기도 합니다. 우리 중 대다수는 이미 그런 변화를 겪기 시작했지요.
먼저, 지난 10년간 읽는 뇌를 연구하도록 제게 영감을 준 사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읽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해력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껏 알려진 바로는 다른 종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읽기는 우리 인류의 두뇌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더했지요. 읽기를 습득하기까지 기나긴 발달 과정은 그 회로의 연결 구조를 깊고 탁월하게 바꿔놓았습니다. 또한 뇌의 배선을 바꾸었으며, 그와 더불어 인간 사고의 본질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읽는지에 따라 생각하는 방법도 변합니다. 그 변화는 지금도 속도를 더해가며 계속되고 있지요. 불과 6000년 만에 읽기는 개인의 내면은 물론, 문자 문화의 발달에도 혁신적 촉매가 되었습니다. 읽기의 질은 사고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뇌 진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경로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길이기도 합니다. 읽는 뇌의 발달과 지금도 진화 중인 반복회로iterations,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기능이나 절차의 개선된 반복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뇌의 읽기 회로를 가리킨다의 가속화된 변화에는 인류의 많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스크린과 디지털 기기로 읽으려 할 때마다 집중의 질이 얼마나 변하는지를 깨닫습니다. 한때 좋아했던 책에 몰입해보려고 해도 미묘한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든 적이 있을 겁니다. 마치 환각지幻覺肢를 겪는 것처럼, 과거에 책을 읽던 시절의 자신은 기억하면서도,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을 바깥세계 어딘가로 데려가는 듯한 즐거움을 주던 ‘시종 유령’을 불러오지는 못하지요. 아이들은 더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주의가 분산되는 데다 외부에서 자극이 밀려들지만 그것이 지식의 저장고에 통합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이 말은 읽기에서 비유와 추론을 끌어내는 아이들의 능력이 점점 더디게 발달할 거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의 읽는 뇌가 이런 식으로 진화하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조차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tl;dr’‘too long, didn’t read’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다’의 약자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필독서만 읽거나 심지어 그마저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거의 모든 문화가 디지털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마저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창의성과 발명 그리고 발견의 폭발에 따른 뜻밖의 부수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진화 중인 읽는 뇌에서 지금, 그리고 향후 몇 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날 구체적인 변화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기대 못지않게 걱정해야 할 이유가 많습니다. 그것은 문해文解 기반 문화에서 디지털 기반 문화로 바뀌는 전환은 그전에 일어난 소통 형식의 전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지요. 과학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우리는 과거와는 달리 읽는 방법, 나아가 생각하는 방법의 변화가 사람들 사이에 완전히 자리 잡기도 전에 그에 따른 결과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지식이 쌓이면 디지털 읽기 기술 자체의 약점을 바로잡을 이론적 기초를 얻을 수 있지요. 또한 보다 정제된 디지털 읽기로의 개선을 가져올 수도 있고, 아동 발달을 위한 대안적, 혼성적인 접근법을 새로 정립할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상이한 방식의 읽기가 인지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면, 우리는 아이들과 이후 세대의 읽기회로가 보다 현명한 방식 혹은 보다 정보에 밝은 방식으로 형성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제가 해온 읽기와 읽는 뇌에 대한 연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마치 저의 방으로 친구를 초대하듯이 말이지요. 읽기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주고받을 것을 생각하니 제 마음이 설렙니다. 먼저 어쩌다 저에게 읽기가 그토록 중요해졌는지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물론 저도 읽기를 처음 배우는 아이였을 때는 읽기에 대해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앨리스처럼, 그저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읽기의 구멍으로 뛰어들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지요.
소녀 시절에도 읽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엘리자베스 베넷이 됐다가, 도로시아 브룩이 됐다가, 이사벨 아처가 되곤 했지요. 가끔은 알료샤 카라마조프나 한스 카스토르프 혹은 홀든 코필드 같은 남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일리노이주의 엘도라도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주 먼 곳으로 날아올랐고, 그럴 때마다 다른 방법으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에 타올랐습니다.
심지어 문학 전공의 대학원생이었을 때도 읽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라든가 조지 엘리어트와 존 스타인벡의 소설에 나오는 모든 단어와 숨은 의미들을 탐독했지요. 그때는 세상에 대한 예민해진 지각으로 제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고, 세상 속에서 내 책임을 완수해야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열망 끝에 시도했던 첫 번째 도전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답니다. 미처 준비가 덜 된 젊은 교사 특유의 열정만으로 하와이 시골에서 평화봉사단 비슷한 일을 시작했던 거지요. 동료 교생들은 수는 많지 않았지만 훌륭했습니다. 그곳에서 매일 저는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24명의 아이들 앞에 섰지요. 아이들은 전적인 신뢰로 가득 찬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고, 우리는 온전한 사랑이 담긴 눈길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과 제가 한동안 잊고 지낸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문맹이었던 자신의 가족들과는 달리 글을 배운다면 아이들의 인생 궤도가 달라질 거라는 사실이었지요. 그제야 저는 읽기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의 방향이 바뀌었지요.
아이들이 겉보기엔 단순한 이 읽기의 행동을 배워 스스로 문해력 기반 문화에 속하지 않으면 장차 어떻게 될지가 불현 듯 명료해 보였습니다. 그럴 경우 아이들이 저처럼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구멍에 빠져 몰입이 주는 정교한 즐거움을 경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다이노토피아나 호그와트, 중간계 혹은 펨벌리를 발견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아이들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세계에 담아두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생각들로 밤새 씨름하는 일도 없겠지요. 또한 번개 도둑이나 마틸다 같은 인물이 나오는 책을 읽다가 자신도 그런 영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되는 굉장한 전이의 체험도 해보지 못할 테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밖의 낯선 세계들과 새롭게 조우할 때마다 자신의 생각 속에서 홀연히 떠오르는 가공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도 체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현 듯 저는 1년 동안 제가 맡은 그 아이들이 읽기를 배우지 않으면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개인의 인생 경로를 바꾸는 읽기의 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글이 지닌 심오한 생성적인 본성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글이 문자적인 동시에 생리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아이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몰랐지요. 또한 읽기에 관여하는 뇌의 복잡성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읽기가 시각이나 언어같이 우리 뇌에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능력을 넘어 기적에 가까운 능력을 구현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그 모든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생 계획을 모조리 수정했습니다. 글을 사랑하는 대신 그 이면의 과학을 탐구하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어떻게 인간이 글을 습득하는지, 어떻게 글을 통해 자신은 물론 미래 세대의 지적 발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뒤돌아본 적이 없습니다. 와이알루아의 아이들을 가르친 지 수십 년이 지나 이제는 그들이 아이의 어머니로 성장했고, 저는 그들 덕분에 인지신경과학자이자 읽기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우리가 읽는 동안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어떤 아이와 어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읽는 법을 배우기가 힘든지를 연구합니다.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의 가난한 환경 같은 외부 요인에서부터, 뇌에서 일어나는 언어 조직화의 차이지독하게 잘못 이해되어온 난독증에서 쉽게 관찰됩니다 같은 보다 생물학적 원인에 이르기까지 참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은 제 연구의 다른 갈래에 속한 것들로, 이 책에는 카메오로만 잠깐씩 등장할 것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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