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강한 미국의 커튼을 열어젖히면 거기, 화이트 트래시백인 쓰레기라 불리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제1장
쓰레기 치우기: 신세계의 폐기물 인간
식민지들은 여러 나라의 배출기관,
즉 하수구가 되어야 한다. 오물을 흘려보내는.
- 존 화이트John White, 『대농장주의 탄원』The Planters Plea, 1630
식민지 건설이 시작되던 1500년대에 세련된 영국 남녀의 머릿속에 북아메리카는 괴물들이 사는 불확실한 세계, 금이 있는 산들로 둘러싸인 텅 빈 땅이었다.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는 낯선 땅이었기 때문에 극적이고 화려한 이야기들이 현실적인 주장보다 호소력이 있었다. 영국에서 아메리카 탐험을 홍보하고 촉진한 인물로 유명한 두 사람은 알고 보면 신대륙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손위 리처드 해클루트Richard Hakluyt, 1530~1591는 미들템플법학원 출신 변호사였는데, 런던 중심지에 있는 미들템플법학원은 지적 교류의 장이자 활발한 법정 정치가 이뤄지는 곳으로 유명했지 신대륙 탐험과는 거리가 멀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그보다 훨씬 어린 사촌1552~1616은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공부했고, 프랑스 연안을 넘어가는 항해가 필요한 모험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
‘손위’ 해클루트는 우연히 해외 투자를 통한 이익을 꿈꾸는 사람들과 친분을 갖게 된 책벌레 변호사였다. 해클루트의 인맥에는 상인, 왕실 관료, 롤리Walter Raleigh 경, 길버트Humphrey Gilbert 경, 프로비셔Martin Frobisher 같은, 어떻게든 한몫 잡아보려는 다양한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신대륙 탐험을 통해 명성과 영광을 얻으려 했다. 허풍에 호들갑 떨며 자기를 과대 포장하는 성격을 타고난 행동파들이었고, 대담한 영웅적 자질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공공연히 드러내는 고약한 성미로도 악명 높은, 말하자면 선배들과는 다른 신종 모험가들이었다.
‘손아래’ 리처드 해클루트는 탐험가들의 여행담을 편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옥스퍼드 연구원이자 성직자였다. 1589년 출간한 『주요 항해Principall Navigations』는 그런 부류의 여행기 가운데에서도 가장 야심 찬 저서였다. 아메리카는 물론이고 동쪽, 북쪽 가릴 것 없이 세계를 탐험한 영국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자신이 파악 가능한 선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한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클루트의 글을 읽었다. 못 말리는 성격의 존 스미스는 해클루트의 작품을 마음대로 인용하면서, 자신이 야만적인 용병 이상의 존재였다고 과시하곤 했다.
『주요 항해』 발간 전에도 손아래 해클루트는 여왕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엘리자베스 1세와 최고위 보좌관들을 대상으로 영국의 식민지 개척 이론을 펼치는 논문을 준비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부 식민에 대한 담론」Discourse of Western Planting, 1584이 바로 그것인데,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의 이점을 부각해 여왕을 설득하려는 목적에서 준비된, 순수한 선전물이었다. 롤리 경이 의뢰한 작업으로 신대륙 원정에 앞서 그동안 받아보지 못한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의뢰한 것이었다. 이때 원정 결과로 롤리 경은 캘리포니아 연안에 단기간 존재했던 로어노크 식민지를 건설하게 된다.
해클루트가 말하는 영국의 식민지 비전에서 머나먼 아메리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황무지였다. 1580년 프랑스의 지성 몽테뉴Michel de Montaigne에게 아메리카는 그가 반어적으로 ‘식인종cannibal’이라고 불렀던 타락하지 않고 순수한 사람들의 땅이었다. 식인종이라는 표현은 인육을 게걸스럽게 먹는 야만인이라는 널리 퍼진 이미지에 몽테뉴 특유의 기발한 표현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물론 몽테뉴도 해클루트처럼 한 번도 원주민들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해클루트는 적어도 원주민에 대한 견해에서는 몽테뉴보다 현실적이었다.어쩌면 보다 영국 성교회교도다운 견해였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해클루트는 원주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 (그리고 마찬가지로 상업적) 진리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 그릇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디언들이 영국의 염원실현에 도움이 되는 동맹자, 잠재적 무역 상대국, 부하는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더 큰 이익을 위해 활용될 천연자원이라고 생각했다.
이곳 불가사의한 땅에 대한 비유로 ‘텅 빈’을 첨가하면 영국의 합법적 목적에 도움이 되었다. 해당 지역이 공인된 주인 없이 이용 가능하며, 누군가의 점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사용한 신대륙 정복에 관한 비유를 보면, 책벌레 목사였던 해클루트조차 신대륙 아메리카를 영국인의 구애와 청혼을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여자로 소개하고 있다. 영국인이 그녀의 정당한 소유자이자 자격을 갖춘 관리인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당연히 이는 완전한 허구다. 그 땅은 사실 ‘이나네 아크 바쿠움inane ac vacuum’, 즉 아무도 없이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인이 인식하기로는 그랬다. 영국인의 개념에서는 어떤 땅이든 자연 상태에서 탈피하여 상업적으로 이용될 때 비로소 진정으로 누군가의 소유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인디언 거주자들은 진정한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고 간주되었다.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은 그럴듯한 비유를 뒷받침한 예전 법들을 샅샅이 뒤져서 원주민들을 미개인, 때로는 야만인으로 분류했다. 인디언들은 영국인이 영구적인 주거나 도시라고 인정할 만한 것을 건설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작 가능한 땅에 담장을 치거나 울타리를 두르지도 않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땅은 경계도 없고 경작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버지니아 이야기, 나중에는 뉴질랜드 이야기를 하면서 존 스미스가 ‘매우 무성하고’ 잡초가 우거졌다고 묘사한 그런 상태다. 인디언들은 수동적인 유목민으로서 땅에 의지하여 살고 있었다. 반면에 이윤을 추구하는 대농장주와 부지런한 농부들은 부를 위해 땅을 경작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하면서 확실한 지배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강력한 토지 사용 개념은 새로운 실험이 이루어지는 신대륙에서 미래의 인종과 계급을 분류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저런 새로운 협회들이 자리를 잡기도 전부터 식민지 개척자들은 일부 사람들을 이용 가능한 토지의 기업가 관리인이라고 지칭했다. 또한 (절대다수인) 다른 사람들을 단순한 사용자라고 선언했는데, 생산성이나 상업성 부분에 눈에 띄는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척박하든 비어 있든, 경작되지 않고 버려져 있든, 무성한 잡초투성이든, 땅은 철저하게 영국적인 의미를 획득했다. 영국인은 황폐하다는데 집착했고, 그것이 바로 그들의 눈에 아메리카가 다른 무엇보다도 ‘황무지wasteland’였던 이유다. 황무지란 미개발 토지, 즉 상업적 교환을 통한 유통 구조 밖에 있고, 암묵적인 농업 생산 규칙에서도 동떨어진 토지를 의미했다. 성서의 표현에 따르면 황폐한 상태에 있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이) 동떨어져 방치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말하자면 황무지는 놀고 있는 땅이다. 경작 가능한 지역의 바람직한 부동산은 고랑진 들판, 늘어선 작물과 과실수, 황금빛 곡식의 물결, 소와 양을 먹이기 위한 목초지로 쓰여야만 가치가 있었다. 존 스미스는 똑같은 이념적인 전제를 정확하지만 (다소 저속한) 비유를 통해 받아들였다. 영국인의 토지에 대한 권리는 천연 거름으로 토양을 덮겠다는 의지와 헌신에 의해 보장된다는 것이다. 가축 배설물이라는 영국인의 묘약이 마법처럼 버지니아 황무지를 바꿀 것이다. 경작하지 않는 황무지를 값진 영국의 영토로 만들면서. 말하자면 황무지는 어떤 처치를 하고 활용해야 하는 대상이었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부富였다.
「서부 식민에 대한 담론」에서 해클루트는 대륙 전체를 ‘아메리카라는 단단한 황무지waste firm’라고 자신 있게 설명했다. (물 위·공중과 대조되는 육지를 말하는) 단단한 대지terra firma가 아니라 단단한 황무지waste firm라고. 그는 천연자원을 가치 있는 상품으로 전환 가능한 원료로 보았다. 동시대 다른 영국인과 마찬가지로 해클루트도 황무지를 공유지, 숲, 소택지, 즉 16세기 토지개량론자들이 기대 이익을 생각하며 주목했던 그런 땅과 동일시했다. 황무지가 상업적인 시장에서 개인 소유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었고, 그러자 공유지에 울타리가 쳐지고 양과 소가 거기서 풀을 뜯게 되었다. 또한 숲은 벌목하여 목재를 확보하거나 제거하고 정착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소택지나 습지는 물을 빼내고 비옥한 경작지로 바꿀 수 있었다.
당장 쓸모없는 황무지waste가 될 수 있는 것이 토지만은 아니었다. 사람들도 역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출발점에 도달한다. 해클루트의 아메리카는 그가 ‘폐기물 인간waste people’이라고 분류하는 노동자 부대를 필요로 했다는 점이다. 나무를 자르고, (삼실로 밧줄을 만들기 위해) 마를 두드리고, 꿀을 채집하고, 생선에 소금을 뿌려 건조하고, 동물 가죽을 손질하고, 땅을 파서 광물을 채취하고, 올리브와 누에고치를 기르고, 새털을 분류하는 일을 위해서.
해클루트는 극빈자, 부랑자, 죄수, 채무자, 일자리가 없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그런 모든 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해만 끼치면서 왕국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자라는, 떠돌이 거지들의 치어稚魚, 어린아이들이 나라의 짐을 덜고 지금보다 나은 모습으로 자랄 것이다.” 인디언과의 교역을 위해 상인들을 보내 자질구레한 장신구며 천 제품을 팔고, 대륙의 내륙 지방에 대한 정보도 좀 더 많이 수집해야 할 것이다. 장인도 필요했다. 목재를 다룰 기술자, 목수, 벽돌공, 정착지를 건설한 미장이, 요리사, 세탁업자, 제빵사, 재단사, 구두 수선공 등이 가서, 사람으로 치면 유아 단계에 해당하는 식민지 건설을 도와야 한다.
이들 일꾼이 어디서 올까? 해클루트는 장인들은 영국 경제를 약화하지 않고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력은 급증하는 빈민층과 노숙자에서 나와야 했다. 해클루트는 그들은 이미 영국 경제를 잠식하면서 ‘서로를 잡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쓰임새 없이 빈둥거리는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시켜 (인도적이지는 않을지라도) 한층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해클루트의 생각이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