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씨름
우정에 대하여
대학 시절 나는 거의 혼자 있었고 많이 외로워하고 있었다. 돈암동의 좁고 우중충한 한옥 하숙방에서 문득 한밤중에 잠을 깨어 보자기만한 창틈으로 한두 낱 별을 보며 몸을 뒤척인 때가 얼마나 잦았던가. 종내 편안할 수 없는 잠을 버리고 일어나면 곧잘 릴케의 시집을 뒤적거렸고, 그의 「가을날」처럼 긴 편지를 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혼자였다. 내 편지를 받아볼 사람도 없었고 내가 보내고 싶은 사람도 없었으며 그래서 내가 써야 할 편지의 사연도 없었다. 전후의 그 암울한 분위기 속을 휘어잡던 실존주의의 저 음습한 바람에 갇혀서 나는 외로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거의 모든 것을 관념과 추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했다. 페스트가 득실거리던, 그리하여 어둡게 폐쇄된 카뮈의 오랑을, 그 안에서 치명적인 질병과 싸우던 용기 있는 사람들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뒤바뀌어 있다.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 할 것인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잘 알게 되었고 그리고 편지를 쓰지 않는다. 물론 나는 외롭지도 않고 한밤중에 잠을 깨지도 않는다. 아니 문득문득 잠을 깨기는 하지만 몸을 뒤척이지도 않으며 오래잖아 달고 편안한 잠에 다시 마음을 맡긴다. 그만큼 나이들기도 했으리라. 그리고 잠시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오랑의 의사 리외와 신문 기자 랑베르를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유감인 것은 내가 이미 랑베르일 수도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리외가 되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그러나 랑베르와 리외에게 은밀한 우정을 느낀다는 것으로 나는 한밤의 불편한 잠깸을 어루만진다. 이렇게 카뮈의 훌륭한 소설 『페스트』의 주인공들에게 감사를 느낄 때면 거의 예외 없이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주는 말선물을 연상한다. “네가 날 길들이면 내 생활은 환해질 거야. 여느 발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다른 발소리는 나를 땅 속으로 들어가게 하지만, 네 발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비슷비슷한 일상, 메마른 정서, 음험한 도시, 꼭 막힌 행동의 반경 ― 내 나이쯤의 찌든 현대인이면 으레 부지불식간에 빠져드는 이 함정 속에서 나는 나와 서로 ‘길들인’ 친구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달리 ‘음악 소리’처럼 들려오는 발소리를 갖고 있음에 어찌 싱싱한 위안을 얻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로 길들인 사람들은 말 없는 눈짓으로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 딴 데를 쳐다보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눈치 챈다. 멀리 떨어져 서로의 손짓과 눈빛을 볼 수 없어도 혹은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바로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해서 서로의 속마음을 더욱 잘 안다. 리외와 랑베르처럼 엇갈린 자리에서 설령 의견이 부딪치더라도 어쩔 수 없는 한마음임을 알듯이, 여우가 밀밭의 황금빛을 보고 영원히 헤어진 ‘어린 왕자’의 금발을 회상하듯이 우정은 그렇게 서로를 잘 안다. 이것이 애정보다 지혜롭고 관대한 우정이 아니겠는가.
문득 잠이 깨어 잠이 안 올라치면 나는 이 우정들을 생각하고 사심 없고 떳떳한, 천진난만하면서도 시대고時代苦의 각인을 이마에 달고 다니는 그 우정의 주인공들을 떠올리며 여우가 말하는 ‘행복’을 느끼고 또 랑베르가 리외에게 느끼는 감동의 부스러기를 줍는다. 좀더 심각해지면 페스트 환자들의 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그 바깥에 있는 미감염자를 다행스럽게 여기고 바깥의 사람들은 환자복을 입은 이 환자를 걱정해주는, 병을 초월한 우정에 감전되는 듯한 또 하나의 우정을 느낀다. 그것은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아마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이 우정의 밀도를 잘 알고 있으리라. 밤이 깊어도 아직 잠을 잘 이룰 수 없고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린 왕자’를 회상하고 리외를 생각해보라. 그들과의 우정을 위해서 나는 심야총서深夜叢書를 만들어볼까.
P.S.
『문화와 반문화』1979에 수록된 이 글은 발표 지면과 일자가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지금 나의 기억으로는 1976년 『한국일보』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1975년 동아언론 사태로 신문사에서 쫓겨나 친구들의 우정 어린 협박으로 1인 출판사를 열고 일을 시작했지만 그때의 처지는 막막하고 암담했다. 유신체제로 정국은 암울하게 냉랭하고 억압적이어서 추위에 떨어야 했고 나 자신도 익숙지 않은 출판사 일을 하고는 있지만 ‘일부 불온한 지식인’으로 찍혀 거동과 글쓰기가 막혀 있었다. 그렇게 도심 속에서도 외딴 섬에 유배당한 기분으로 외롭고 무겁게 지낼 때 한국일보 문화부에서 글 한 편을 청탁해왔다. 그 주제도 ‘우정에 대하여’였다. 마침 언론자유운동을 주도한 동아일보 기자들과 문학과지성 동인들, 그리고 몇몇 잡지 편집자들이 문우로 동료로 친구로 망연한 외로움 속에 있는 나를 격려하며 도와주었다. 그 우정은 감동이었고 힘이었으며 동지애였다. 그 어울림은 공감과 동조, 희망과 기대를 빚어냈다.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나치 점령기에 프랑스 저항 문인들이 간행한 ‘심야총서’ 같은 것이었다. 문학과지성의 그 후 작업은 그 희망대로 되었을까. 미흡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 것은 분명했다. 그 작심을 두터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없이 눈짓으로 통하는 우정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 글을 발표함으로써 응어리진 속마음을 열어갈 수 있었다. 〔2019.1〕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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