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복판에 신이 강림했다. 사건은 놀라웠지만 신의 형상은 익숙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손가락 장난을 치고 있는 그 남자의 얼굴로, 신은 남자·백인·이성애자·비장애인의 형상으로 내려왔다. 신이 강림한 날, 퇴근 후 서울의 좁은 아파트 부엌에서 허겁지겁 밥을 차리는 영희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방에 드러누워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신의 얼굴을 보며, 신의 형상이 저러하니 나를 경애해달라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역시, 신은 남자로구나….”('책 소개' 중에서)
첫 번째 이야기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습니다
그 신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노을이 유달리도 붉게 타던 어느 날이었다.
신이 세상을 만든 지 그리 오래지 않은 무렵이었다. 신은 문득 구름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는 법을 아는 듯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을 돌보았고, 아이들은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았다. 너무 어려 누구를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은 작은 짐승을 돌보았다. 사람들은 아침이면 사냥을 하고 열매를 따고 작물을 키웠다. 집에 돌아오면 한자리에 모여 앉아 큰 솥에 작물이며 사냥해온 고기를 찌고 구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 함께 집 안팎을 쓸고 닦은 뒤, 등잔불 아래서 자수와 바느질을 했다.
세상은 그럭저럭 돌아가는 듯싶었지만 신이 보기에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세상에는 아직 남녀의 구별이 없었다.
그들은 모든 일을 같이 했다. 들에서는 다 함께 무장을 하고 짐승을 잡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같이 아이를 돌보며 요리를 했다.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모두 함께였으며 평등하게 공사를 정했다.
신이 보기에 세상에는 좀 더 질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신은 지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자는 우수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신은 그 말을 남기고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
*
신의 말씀을 들은 남자들은 일제히 자신의 고추를 내려다보았고 두 손으로 그것을 소중하게 감싸 안았다.
그날 이후로 남자들은 매일 회당에 모여 자신의 물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훌륭하고 대단한지 토론했다. 왜냐하면 신은 남자에게 세상을 주셨지만,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기준은 고추뿐이기 때문이었다.
밤이면 남자들은 제 물건을 사랑스레 쓰다듬으며 애지중지 속삭였다. 내 분신이여, 생명이여, 내 존엄성의 원천이여. 네 빛깔과 크기는 내 자부심이며 긍지라. 아침마다 힘 있게 벌떡벌떡 서는 네 모습은 내 자랑거리이니.
그들은 고추를 사랑스러워하다 못해 슬쩍슬쩍 서로 크기와 두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물건이 작은 남자를 얕잡아 보았고 강건하고 우람한 물건을 가진 남자는 찬양했다. 왜냐하면 신은 남자에게 세상을 주셨지만, 실상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것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고추가 사랑스러운 나머지 여자들도 고추를 동경하고 갖고 싶어 애태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추에 대한 여자들의 생각은 물론 변했다. 이전에 그것은 팔다리와 마찬가지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체 중 일부였고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흉물스럽고 지긋지긋한 것이 되었다. 남자들이 온종일 고추만 생각하는 것에 여자들은 삽시간에 신물이 났다.
삶에는 고추 말고도 많은 것이 필요했다. 아이들을 돌보고 밥을 짓고 옷과 이불을 깨끗이 해야 한다. 그런 일들을 하루라도 게을리 하면 삶은 곧 망가져버리고 아이들은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어째서인지 그 모든 일들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고추만 갖고 있으면 삶에 아무 문제도 없으리라고 믿는 듯했다.
별수 없이 여자들은 남자들이 회당에서 고추를 논하는 동안 집을 치우고 먹을 것을 장만하며 아이를 돌보았다. 그러지 않으면 삶은 곧 망가져버리고 말 테니까.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남자가 세상을 다 잃은 양 울며 회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안타깝게도 고환에 병이 들어 고추를 잘라내야 했던 것이다.
남자는 처참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내 분신이여, 네가 없으면 내 전체가 의미가 없으니. 너를 뺀 내 나머지 몸은 아무 가치도 없으니.
여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당신은 살아 있지 않는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니 여전히 한 인간으로서 가치를 갖지 않는가? 하지만 남자들은 울부짖는 그에게 공감하며 애도를 쏟아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삽시간에 돌아서서 비웃음과 조롱을 날렸다.
“그는 신에게 버림받았다. 이제 자신을 남자로 증명할 것이 없다.”
남자들은 그를 여자로 분류하거나, 죄인으로 다루거나, 추방시켜 그 존재를 지워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반박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
“이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제야 그들은 남자와 여자 사이 단 하나의 차이점이 너무나 작고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추는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려 잃어버릴 수도 있다. 만약 남자가 여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남자가 될 수도 있다면 세상의 질서는 다 무너지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받은 신의 은총은 풍랑에 휘말린 조각배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우리가 받은 신의 은총은 풍랑에 휘말린 조각배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남자로 태어난 우리는 모두 죽을 때까지 남자여야 합니다. 우리에겐 고추보다도 더 많은 남자의 증명이 필요합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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