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부지런하게 꾸물거리기
다윈의 비밀 노트
아버지는 나보고 성직자가 되라고 하셨다.
내가 점점 밖으로 나도는 게으른 인간이 되는 걸 끔찍이
싫어하셨는데, 당시에는 그것이야말로
내게 꼭 맞는 길인 것 같았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 찰스 다윈,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찰스 다윈 자서전》
할 일을 미루는 사람도 어딘가에서는 시작을 해야 한다(시작을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러니 찰스 다윈Charles Darwin에서부터 한번 시작해보자.
찰스 다윈은 1837년 내내 가죽 장정 노트에 드로잉과 메모, 스케치 낙서를 하며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가 런던에서 늘 들고 다니던 이 노트들은 모두 일기장처럼 자그마한 금속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당시 다윈은 그레이트 말버러가街에 있는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는 아테네움 클럽이 있었다. 이 클럽은 떠오르는 작가와 과학자가 모여들어 신고전주의 양식 조각상에 둘러싸인 채 조곤조곤 위대한 사상을 나누는 곳이었다. 다윈은 막 클럽의 멤버로 선정된 참이었다. 다윈과 함께 들어온 새 멤버 중에는 찰스Charles Dickens도 있었다. 두 사람이 분명 만난 적이 있을 것 같긴 한데(디킨스와 다윈 둘 다 이름이 찰스이기도 하고) 여태껏 알아본 바로 둘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다 해도 두 사람이 정부의 행태나 클럽의 음식을 두고 탄식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20년간 봉인된 세기의 발견
그때 다윈은 고작 스물여덟 살이었고 거의 5년에 걸쳐 이어진 세계일주에서 방금 돌아온 참이었다. 비글호를 타고 떠난 이 항해로 다윈은 떠오르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집필 계약을 했고 박물학자로서 유명세를 키워갔다. 게다가 똑똑하고 조건 좋은 신랑감이기도 했던지라 일일이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만찬에 초대를 받았다. 그 와중에도 다윈은 이 긴 여정에서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느라 바빴다. 그가 오랜 시간 답을 알아내려 했던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에콰도르 서쪽 해안에서 1,0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다윈은 다양한 종의 흉내지빠귀를 발견했는데, 각 섬에 각각 한 가지 종만 서식하고 있었다. 군도 전체에는 여러 종이 서식하는데 왜 한 섬에는 부리가 날카로운 새만, 또 한 섬에는 부리가 뭉뚝한 새만 서식하는 걸까? 여러 박물학자가 각 섬마다 조금씩 생김새가 다른 이구아나와 거북을 발견한 이유는 뭘까?
이게 바로 다윈이 드로잉과 짧은 메모, 다른 박물학자와 나눈 대화 내용과 함께 가죽 장정 노트에 적어놓은 질문이었다. 다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강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종은 변화한다.” 1838년 여름, 다윈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세 어절로 된, 단순하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놀라운 문장이다. 점차 다윈은 우리가 아는 생물의 범주가 신성한 계획의 만고불변한 표현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이의 결과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9월경 다윈은 이러한 변화 뒤에 있는 메커니즘, 즉 유기체가 서식하는 환경이 우연히 발생한 특정 돌연변이는 선호하는 반면 다른 돌연변이는 절멸시키는 방식을 노트에 설명해놓았다. 그리고 이 도태 과정에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상을 바꾸고 종교적 믿음을 산산조각 낼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 발견이 세상에 알려진 건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뒤였다. 다윈이 지성사상 가장 위대한 진전 중 하나를 이뤄놓고 이상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 문제에서 손을 뗐다. 자신의 발상을 출간할 방법을 전혀 알아보지 않았다. 과학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지도, 대중매체에 글을 싣지도, 책 집필에 착수하지도, 심지어 출판사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어쨌든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몇몇 친구에게 이 생각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새 이론을 간략하게 적어둔 다음 “과학상의 상당한 진전”이라고 칭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금속 걸쇠가 달린 노트 안에 가둬두었다. 이 연구는 반드시 자신이 세상을 뜬 다음에 발표하라는 지시를 남긴 채.
“내 사랑 따개비”
이 시기에 다윈이 게을렀다고는 할 수 없다. 이때 다윈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시골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고, 허리가 아플 정도로 바쁘게 글을 썼다. 그렇게 산호초 및 화산섬에 관한 책과 《H.M.S. 비글호 항해의 동물학The Zoology of the Voyage of H.M.S Beagle》이라고 불리는 다섯 권짜리 전집을 냈다. 그리고 절대로 세상을 바꾸지 못할 주제로 잡지 《가드너스 크로니클The Gardeners’ Chronicle》에 글을 기고했다. 예를 들면 과일나무 묘목을 키우는 방법이나 우물 두레박에 쇠줄을 달면 좋은 이유 같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1846년부터 1854년까지 그가 강박적일 정도로 매달린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따개비를 해부하고 기술하는 일이었다.
다윈은 꼬박 몇 년을 따개비에 바쳤다. 그리고 따개비 광신도가 되었다. 누군가는 다윈이 위험할 정도의 따개비 강박에 빠지기 직전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다윈은 하루 종일 알코올에 담가둔 따개비 표본에 둘러싸여 주문 제작한 따개비용 현미경 위로 등을 굽힌 채 따개비 왕국의 방대한 종류와 미스터리를 이해하고자 애썼다. 따개비들을 “내 사랑 따개비”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한 친구는 다윈이 “온통 따개비 생각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윈이 따개비 연구에 시간을 얼마나 쏟았는지, 다윈의 자녀들은 원래 아빠들이라면 다 이러고 산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 아이는 어렸을 때 친구 집에 놀러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너희 아빠 따개비는 어디 있어?”
다윈은 따개비를 비롯한 이런저런 다른 일로 너무 바쁘게 지낸 탓에 1859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20년 전 노트에 처음 그려두었던 이론을 상세히 풀어놓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책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이름을 널리 알린 뒤, 다윈은 처음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을 책의 형태로 발표할 때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꾸물거린 것이 스스로도 당혹스럽다고 고백했다. 어떤 이들은 그 기간을 긴 기다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기나긴 기다림
대체 왜 다윈은 자신이 알아낸 것을 세상에 알리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린 걸까? 왜 이 발견이 엄청나게 중대한 과학적 진보가 되리란 걸 알면서도 다른 이들과 나누기를 미뤘던 걸까?
이게 바로 전기 작가와 과학사가를, 더하여 지극히 이성적인 (심지어 다윈처럼 끝내주게 능력 있고 생산적인) 사람의 기이한 행동에 관심을 가진 뭇사람들을 사로잡은 질문이다. 진화론 발표를 미룬 다윈의 행동을 놓고 엄청나게 많은 설명이 쏟아졌다. 우선, 다윈의 연구에는 상당히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다윈은 자신의 책이 과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리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 여파로 시골에 꾸려놓은 조용한 삶이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예상에 다윈이 양가감정을 느꼈던 것도 쉽게 이해할 만하다.
또한 다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다. 자신은 신앙에서 멀어졌지만 여전히 신자의 남편이었으며(다윈의 아내는 남편의 영혼을 염려했다) 독실한 아버지의 충실한 아들이었다. 다윈은 아버지의 마음이 상할까봐 걱정스러웠다. 종의 발생 과정에서 신의 손길을 제거하는 건(이게 바로 다윈의 책이 이룬 업적이다) 가벼운 일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다윈은 완벽주의자였다. 다른 훌륭한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윈도 꼼꼼하고 철저했다(자신이 관찰할 따개비로 가득 채워 일렬종대로 늘어놓은 저 캐비닛들을 보라). 체계를 중시하는 다윈으로서는, 수십 년 동안 일을 미룬 행동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명료하게 이해하고자 했던 과학자의 합당한 책임감으로 정당화했을 수 있다. 그에게는 언제나 진행해야 할 실험과 확인해야 할 내용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책을 출간했을 때도 다윈은 자신의 획기적인 저서를 “초본”이라 부르길 고집했다. 마치 책의 내용이 미흡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에게 미리 사과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면, 혹시 다윈은 애초에 책을 출간하기가 귀찮았던 게 아닐까? 런던에서 2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다윈의 집 다운 하우스Down House의 응접실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긴 복도에는 테니스 라켓과 하이킹 부츠, 노트, 그 밖에 영국 시골에서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용품을 전부 넣어둔 벽장이 있었다. 집에는 당구장도, 정원도 있었다. “내 삶은 시계처럼 순조롭게 흘러가고, 나는 이 멋진 삶의 끝을 맺을 곳에 자리를 잡았다네.” 다윈이 친구에게 쓴 편지다. 지성사고 자시고, 자신의 일상에 일대 변혁을 일으킬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 같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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