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적어도 먼저 그걸 진실이라 믿자
이 책 전에 쓴 『끝盡頭』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2년 반의 세월을 소비했다. 그 과정이 아주 피로했을 뿐 아니라 밑천을 다 쏟아 붓는 느낌도 있었다. 가슴에 품고 있던 것을 다 말해버리는 그런 느낌 말이다나는 책 한 권을 끝낼 때마다 늘 그런 느낌에 젖지만 그때는 특히 강렬하고 절실했다. 그래서 당시 나는 다음에는 좀 가벼운 필치로 ‘작은 책小書’을 써서 나 자신이 다른 어떤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을지 두고 보리라 생각했다. 마치 먼 곳으로 가벼운 여행을 떠나듯이 말이다. 목적지는 『좌전左傳』이었다. 그곳에서 꼬박 1년 동안 다른 사람, 다른 언어, 다른 환경 및 일상 경험, 다른 번뇌와 희망으로 살아보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모두 여덟 개 장章과 여덟 개 주제를 정하고 모든 주제마다 1만 자 내외의 분량을 채울 계획이었다.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역사, 눈앞의 현실』이다. 나의 『좌전』 읽기 결과물인 이 책의 유일한 착오는 바로 글자 수인데 모든 장章이 계획보다 두 배 넘게 팽창하여 결국 다소 두꺼운 ‘작은 책’이 되어버렸다. 나는 또 내 친구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 나의 작업에 대해 그들은 전혀 의외가 아니라며 하나같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집필 과정에서 참고한 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신곡』을 다룬 책, 『단테에 관한 아홉 편의 에세이Nueve ensayos dantescos』다. 이것은 보르헤스가 50세를 전후해서 쓴 작품이다. 내가 모방한 것은 그의 글쓰기 스타일에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그의 글쓰기와 『신곡』이라는 텍스트가 맺고 있는 ‘관계’, 특히 그 내부의 신뢰 관계다. 그것은 또 보르헤스가 여러 번 인용한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명언 “시의 신념은 가볍게 믿을 수 없는 마음을 자진해서 높이 내거는 것이다”라는 말에도 잘 드러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더욱 분명하게 “네가 결심을 했다면 다시 의심하지 마라. 너는 좋은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신곡』에는 오늘날 우리가 어쩌면 더욱 믿지 않으려는 지옥, 연옥, 천당이 묘사되어 있다. 물론 이 지점에서 크게 논쟁을 벌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아마도 밑도 끝도 없는 화두 속에 묶어놓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곡』의 설정이거나 배경일 뿐이어서 (토론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근본에서 출발도 하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시작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바로 시 자체를 향해서 말이다. 게다가 우리의 심사가 이와 같은 진실과 허위의 분별에 집중될 때 우리는 단테가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 듣기 어렵게 된다. 틀림없이 그렇다. 따라서 보르헤스는 차라리 먼저 단테가 말한 모든 것이 진실임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믿고 (읽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천진한 생각, 즉 우리가 진실한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는 생각이 그래도 적절한 것이며, 그것이 독서할 때 우리를 (책 속에) 붙잡아둘 수 있다고 여긴다. … 적어도 독서를 시작할 때는 이와 같아야 하고, (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길은 이야기의 실마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나는 누구도 이렇게 하는 걸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좌전』이 진실임을 믿어보려 했다. 먼저 글쓴이의 생각 및 그가 본 것과 보고 있었던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미 55세를 넘었으므로 당시의 보르헤스보다 좀 늙은 편이다. 내가 처음 『좌전』을 읽은 건 35년 전인데, 그때 이미 적지 않은 일들을 알고 있었고, 또 이른바 ‘사실’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근거가 희박하기 이를 데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임의로 구성된 이야기도 더 많을 게 자명했다.
『좌전』을 당시의 현실 자체라고 믿는 건 아마도 『신곡』을 믿는 것보다 더 곤란하고 더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좌전』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실제 인물과 실제 장소는 더욱 큰 힘으로 갖가지 긴장된 마음과 다양한 요청을 해온다.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쉽게 의심하고, 이에 따라 더욱 그것을 멀리하고, 그 대부분의 내용을 놓쳐버리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것들을 좀 더 진지하게 대하면서 좀 더 오래 보아야만 우리가 더 세심하게 주의할 수 있고 또 지속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다.
의심은 유익하고 건강한 것이다. 그렇지만 의심은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무정한 법칙의 제한을 받는다. 시간이 오래 되면예를 들어 100~200년을 지속하면 그 효용은 점차 줄어들다가 마침내 0으로 귀결된다. 심지어 마이너스가 됨과 아울러 노쇠기의 포악함을 드러내기도 한다사상이 처음 발생할 때는 온화하지만 노쇠기에 접어들면 결국 포악하게 변하는 것과 같다. 의심의 또 다른 통상적 특징은 우리가 비교적 쉽게, 심지어 아무 것도 준비할 필요도 없이 “No”라는 말 한 마디만 배우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쉽게 의심하는 태도가 꼭 틀린 것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국 그런 의심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리면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이 일종의 습관으로 고착되더라도 그건 겨우 한 가지 습관에 그칠 뿐이다.
내가 지금 『좌전』이 진실하다고 믿는다고 해서 나중에 역사 연구자들이인류학과 고고하그이 유익한 연구를 포함 본서 내용 및 본서에서 그 시대에 대해 더욱 정확한 발견을 하거나 더욱 필요한 정정을 행할 때, 그것을 거부하려는 건 아니다사실 이것은 이미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인식 기초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수정된 기초 위에 서 있다. 이것만 제외하면 서둘러 의심할 것도 없다. 아직 실증되지 않은 모든 역사의 오류를 마주하면, 또 침착해야 할 필요가 있는 드넓은 회색지대를 마주하면 가장 재미있는 대상이 모두 그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 의미 없는 의심에 마음을 뺏기지 않으려면, 또 의심이 우리 자신의 전진을 방해하지 않게 하려면 한 대상의 완전한 이미지와 한 시대의 완벽한 면모를 부숴버려야 한다.
진실과 허위, 옳고 그름은 그 자체에 더욱 깊은 뜻과 더욱 다양한 지향이 포함되어 있지만, 특히 종횡 교차하는 역사에서 그것들은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그리 타당하지도 않고, 또 제지하기 어려운 상상력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론으로는 종종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심지어 문자로도 그것을 포장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오직 사람의 마음, 강인한 마음만이 가까스로 그것을 용납할 수 있고 또 용납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아마 영원히 발표될 수 없을 테지만 우리는 그것을 완전하게 머물게 할 다른 장소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휘트먼Walt Whitman은 유쾌하게 선언했다. 아마 보다 더 경쾌한 어투였으리라.
“너는 나더러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하는데, 나는 물론 모순에 빠져 있어. 왜냐고? 내 흉금이 드넓기 때문이지.”
그러나 바로 휘트먼의 이와 같은 흥겨움으로 인해 우리는 이 말 속에 일종의 특별한 자유, 의심에 의해 틀어 잡히거나 제한되지 않을 자유, 걸핏하면 버려지거나 세계의 비교적 완전한 면모만을 엿볼 필요가 없는 자유, 멀고도 깊은 모든 곳으로 달려갈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간파할 수 있다.
나는 『좌전』을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이 책을 믿으면서, 그 시대가 아니라 이 책의 선택과 이 책의 모든 한계까지 포함한 이 책 자체로만 향한 채 글을 써내려갔다. 이 때문에 이러한 사고의 전환에도 레비 스트로스Calude Levi-Strauss가 “그것을 실증할 수 있는 영역의 사물일 수도 있고, 몇몇 사람이 사상적으로 경험한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자신의 감성적인 자료를 관찰할 때 다소 편파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들의 소망은 타당한 행위의 규범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데 놓여 있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고귀한 어떤 것이 수반되어 있다.
그건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가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무엇을 믿었는지 혹은 무엇을 해야 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비교적 완벽한 인간이나 인간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행한 그리고 그가 생각한 것“사상적으로 경험한 어떤 것”, 이건 정말 훌륭한 말이다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 여기에는 ‘행위’와 ‘생각’이 반복 교차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차이, 지연, 격차와 괴리도 포함되어 있고, 또 이런 결과를 마주하며 다시 발생한 좀 더 진전된 느낌, 반성, 사유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할까? 또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위해 나는 반복해서 제목을 생각했다나는 줄곧 책 제목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책 제목을 과장하는 건 결국 허장성세의 혐의가 있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다. 마침내 나는 『역사, 눈앞의 현실』이라 부르기로 결정했다.
이건 복수의 ‘눈앞’으로, 다시 말해 ‘눈앞들’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공간 혹은 서로 다른 시기에 위치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앞이 포함된다. 예를 들면, 정자산鄭子産, 조무趙武, 숙향叔向, 하희夏姬와 신공申公 무신巫臣, 송宋 양공襄公, 진秦 목공穆公, 초楚 장왕莊王 및 공자孔子가 바로 그들이다. 또한 『좌전』 저자의 눈앞, 2000년 후 나 자신이 위치한 이 시각, 이곳의 눈앞도 포함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이 있고, 자신이 소망하고 근심하는 것이 있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갖가지 관찰과 추측, 부득이 해야만 하는 추측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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