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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시 의례가 시작되기 직전에 d는 번개를 보았다. 동급생들은 모두 하교한 교실에서였다. 희고 가느다란 팔뚝 같은 것이 먼지 쌓인 검은 창틀을 넘어 교실 바닥에 닿았다. 탄내가 났다. 가서 보니 조그맣게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d가 웅크리고 앉아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dd가 교실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뭐 해?
d는 dd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봐.
dd가 그리로 왔다.
이거 봐.
d는 바닥을 가리켜 보였다.
번개가 떨어졌어. 조금 전에.
d가 먼저 손가락으로 그 자국을 만져보았고 dd도 만져보았다.
여기만 뜨거워.
굉장하다.
d와 dd는 머리가 닿을 정도로 바짝 앉아 있다가 자국을 한번씩 더 만져보고 일어났다. d는 바람에 날리는 커튼을 잡아서 한쪽으로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dd도 곁에 섰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가방을 멘 학생들이 운동장 곳곳에 서 있었고 선생도 몇 있었다.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바람이 불어 사람들의 옷자락이 몸에 달라붙은 채로 펄럭였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끝나가고 있었다. d와 dd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가 창문을 닫고 교실을 나섰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설 무렵 비가 내렸다. d는 우산을 펼쳤다. dd는 판 초콜릿 절반을 d에게 내밀었다. d와 dd는 초콜릿을 먹으며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d가 먼저 집에 당도했다.
잘 가.
어두컴컴한 목공소 앞에서 d는 말했다.
dd는 d의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갔다.
d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낙뢰를 보았다. 바로 앞에서 떨어졌다. 그런 일은 그 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바닥에 남은 자국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했다. 한쪽 끝이 올라간 작은 입처럼 생겼었지.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지워질 줄 알았는데 지워지지 않았다. 홀린 듯 그걸 들여다보았다. 옆에 누가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게 전부였고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dd와 말하고 dd와 우산을 쓰고 집까지 걸었다는데 그 기억이 d에게는 없었다. d는 후회했다. 자기가 잘못해 그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몇 번이고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왔다.
d는 젖은 얼굴을 닦으려고 수건을 잡았다가 놓았다. 놓쳐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요일 오후 아홉시 직전이었다. 욕실 벽에 걸린 시계가 째깍거렸다. 거품 섞인 물이 세면대에 고여 있었고 d는 맨발로 타일을 밟고 있었다. d가 조금 전에 잡았다가 흠칫 놀라 놓아버린 것, 그건 평범한 수건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집에 있던 물건. d는 매일 아무 때나 그걸로 얼굴이며 목을 닦은 뒤 수건걸이에 도로 걸거나 빨래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여러번 빨아 말리길 반복한 탓에 좀 뻣뻣해지고 납작해진 아이보리색 면직물이었다. 무늬도 이니셜도 없어 d로서는 다른 수건과 구별하기도 어려웠다. 그것의 온도가 매우 낯설었다. 체온을 가진 것처럼 온기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불을 켜지 않은 부엌을 향해 욕실 문이 열려 있었다. d는 컴컴한 부엌을 가로지르다가 식탁에 놓인 탁상달력을 떨어뜨렸다. 바닥을 더듬어 그것을 주웠을 때 d는 표지까지 열세장인 두꺼운 마분지와 좁은 간격으로 말린 스프링에서 온도를 느꼈다. 달력을 올려두고 식탁을 짚어보니 그것 역시 미지근했다.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가구와 식기, 유리, 각종 손잡이들. d는 그날부터 서서히 그것을 눈치챘다. 공기보다는 싸늘해야 마땅한 사물들이 미묘한 생물처럼 미열을 품고 있었다. 그 미적지근한 온기를 참을 수 없어 d는 사물과의 접촉을 줄였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될 수는 없으니 변한 것은 내 쪽이라고 d는 생각했다.
내가 차가워졌다, 라고.
d의 아버지 이승근은 한때 목수였다. 목공소에 붙은 다락방에서 이승근과 그의 아내 고경자, 그리고 d가 살았다. 목공소 구석에서 신발을 벗고 시멘트 계단을 세 개 올라가면 그들이 먹고 자는 데 사용하는 방이었다. 옷장과 낮은 책상 하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있었다. 조그만 부엌이 딸려 있었는데 그 공간엔 창이 없어 고경자가 국을 끓이거나 고기를 삶으면 냄새 밴 수증기가 방을 거쳐 목공소로 내려왔다. 목공소에 쌓인 목재들엔 국과 밥과 고춧가루가 섞인 반찬 냄새가 배어 있었고 세 식구가 사용하는 방엔 목공소에서 올라온 목재 냄새가 배어 있었다. d가 어릴 적엔 목공소에서 자란다는 이유로 나무에 관해 질문해 오는 선생이나 동급생이 있었는데 d는 나무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목공소에는 나무가 없었으니까. d가 생각하기에 목공소를 채운 것은 목재였지 나무가 아니었다. 이미 톱이나 날에 썰렸고 이윽고 다시 썰린 뒤 목이나 아교에 붙들려 형태가 바뀔 예정인 널빤지들, 껍질이 벗겨진 토막과 막대들이었고 그것들은 생긴 것부터 나무와 전혀 닮지 않았잖아. 목공소 옆에서 바랜 색종이와 먼지 쌓인 고무풍선을 파는 문구점이 있었고 거무스름하게 마른 고기를 진열장에 내버려두는 정육점이 있었다. 비좁고 후미진 그 가게들과 마찬가지로 목공소는 사계절 밤낮으로 어두컴컴했다. 톱밥은 늘 매운 냄새를 풍겼고 구석에 쌓인 오래된 목재들은 시큼하게 썩어가며 부풀었다.
이승근은 솜씨가 별로 없는 목수였다. 고객들이 목공소로 찾아와 항의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객이 많았으므로 고객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친절과 불안과 비굴함이 섞여 있었다. 예상된 상황이 벌어지면 품삯을 깎으려는 수작이라고 고객을 비난했다. 인간들 참 뻔하고 뻔뻔하다고 이승근은 불평했지만 d가 보기에도 아버지의 목공은 볼품없었다. 아버지가 만들어내는 것들은 정확하지 않았으며 안정적이지도 않았고 실용적이지도 아름답지도 기발하지도 심지어 기괴하지도 않았다. d는 그가 고객에게 왜 사실을 말하지 않는지, 목공소를 찾아온 고객에게 자신은 솜씨가 없다고 왜 고백하지 않는지, 그것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같은 상황을 왜 거듭해 겪는지를 의아하게 여겼다. 이승근은 d를 때리지 않았고 아내가 만든 음식을 불평하지 않고 남김없이 먹었으며 술이나 경마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지만 자기 목공으로 세 사람이 먹고산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 그것이 얼마나 신성한 일인가도. 마끼다, 히타치, 렉슨, 보쉬의 전동 기구들, 끌과 망치와 대패, 접는 톱과 실톱. 이승근이 그것들을 사용해 목재를 절삭하고 구멍을 내고 깎아내고 문지르는 소리는 d에겐 세계의 배음背音이었다. 작업공간과 주거공간이 제대로 분리되어 있지 않아 d는 밥에서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텔레비전을 보고 숙제를 하는 동안 그 소리를 들었다. d가 특별히 끔찍하게 여겼던 것은 톱날의 회전으로 목재를 자르는 절삭기들이 내는 소리였다. 작업이 없는 순간에 목공소는 적막했지만,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시작되면, 어느날에나 틀림없이 시작되고는 했는데, d는 어두운 방에서 연필을 쥐고 숙제를 하거나 낙서를 하면서, 귀가 빨개진 채로 생각했다. 나는 저 회전의 댓가로 먹고산다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목공의 댓가로. 은반처럼 돌아가는 톱날에 자신의 조그만 손가락을 올리는 광경을 상상해보기도 하며 d는 기다렸다. 톱날이 아버지의 피로 흥건해진 채 멈추는 순간을. 아버지가 자신의 신성함을 그만 멈추고 목공소가 마침내 고요해질 순간을. 그런 순간에 관한 상상들은 d를 부끄럽게 만들곤 했고 죄책감을 느끼게 했으며 갑작스럽게 치솟는 분노로 아버지를 노려보거나 비슷한 정도의 환멸로 그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d에게는 신성한 것이 없었다. 자주 귀를 붉혔고 잡음을 들었다. 쪼개진 목재를 잡아 뜯는 듯한 소리, 아주 얇은 철판을 찢는 듯한 소리일 때도 있었고 보푸라기들이 작은 뭉치로 귓속을 구르는 것처럼 부스럭거리는 소리일 때도 있었다. 고요한 장소에 있을 때 d는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정적이나 고요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소리의 흔적, 잡음들. 그것이 세계를 상시적으로 메우고 있었다. d는 별로 말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고 말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d에게는 세계가 이미 너무 시끄러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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