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환상의 총량
『푸른 개』나자 글·그림, 최윤정 옮김, 『푸른 개』, 파랑새어린이, 1998.는 1989년 프랑스 그리고 1998년 한국 그림책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비교적 평범한 『푸른 개』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일반적인 어린이 그림책과는 다른 회화성이 짙은 그림 때문이었다. 이 글은 『푸른 개』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감정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작품은 주인공인 여자아이 샤를로뜨와 푸른 개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샤를로뜨는 몸의 비례로 보아 대여섯 살 정도로 추정된다. 푸른색 개는 아이보다 몸이 크다. 초록빛을 띤 눈동자, 눈이 부실 것만 같은 푸른색 털을 가진 개는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 샤를로뜨가 앉아있는 곳은 자기 집 문 앞이고, 그 문은 닫혀있다. 그 문 안에는 아마도 ‘엄마’가 있을 것이다. 샤를로뜨는 그러나 엄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영국의 정신 분석가 도날드 위니컷Donald Winnicutt에 따르면 이 나이 아이들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은 엄마를 자기 안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를 자기 안에 넣어둔 아이는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없는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혼자 놀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이런 장면에는 엄마의 존재가 암시된다. 문이 열려 있다거나, 배경 속에 엄마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이나 신체의 일부분이 그려져 있다. 그 덕분에 그림 속의 아이도, 그림 밖의 독자도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샤를로뜨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아이의 모습을 자세히 보자.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두 눈. 얼굴만 따로 떼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눈이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푸른 개에게 빵을 나누어 주면서 말을 건네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다물고 있는 입과 살짝 기울인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아이답지 않다. 한 손으로는 인형을 안고 있는데 그 자세는 아기를 안아서 재우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인형은 안정과 평화의 느낌을 주는 초록색 옷을 입고 있다. 먹이고 재우는 것은 모성적 돌봄의 기본이자 아기에게는 그대로 낙원의 느낌을 주는 엄마의 행위이다. 푸른 개를 ‘불쌍해’하는 샤를로뜨의 태도는 여자아이들의 흔한 인형 놀이와는 좀 달라 보인다. 어딘가 아이답지 않은 느낌은 이 다름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인간이 걱정 없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성적 보살핌에 대한 결핍이 없는 상태에서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문 닫힌 집 앞에서 혼자 노는 샤를로뜨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불쌍하다는 말은 샤를로뜨가 푸른 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작가가 혹은 독자가 깊은 무의식 속에 억압해두었던 그 나이 때의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푸른 개는 그걸 아는 것이다. 푸른 개가 밤마다 찾아와서 샤를로뜨와 놀아주는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엄마’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샤를로뜨에게 푸른 개랑 놀지 말라고 말하는 욕실 장면이다. 욕실에 엄마와 어린 딸이 함께 있는 이 그림에는, 하루를 끝내고 자러 갈 준비를 하는 모녀의 다정함이나 느슨함이 하나도 없다. 옷을 벗고 욕조에 앉아있는 맨몸의 샤를로뜨와는 달리, 검은 옷과 검은 구두까지 신은 채 욕조에 걸터앉은 엄마의 이미지는 검은 의자와 어울리면서 더욱 힘 있게 부각된다. 딸의 마음을 살펴주지 않는 이 엄마가 입고 있는 옷은 뒤에 나오는 다른 옷처럼 평범하지 않다. 여성성을 물씬 드러내는 맵시며, 온갖 색을 다 품은 듯한 매력적인 검정, 그리고 흐트러짐 없이 틀어 올린 머리의 엄마는 크고 강하고 완전해 보인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세상에 나와 모든 것을 엄마에게 의존해야하는 아기처럼 맨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있는 샤를로뜨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여기서 샤를로뜨를 창조한 나자Nadja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출판사가 제공하는 작가 소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레바논 의사인 아버지와 러시아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집트에서 나고, 레바논과 파리에서 자란 나자에게는 평범한 게 하나도 없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며 13살까지 통신 수업을 받고 어머니올가 르카이으Olga Lecaye, 화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야기와 그림으로 자랐다.” 평범한 게 하나도 없는 건 그 후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형제자매들은 화가, 작가, 음악가 등 모두 예술가이다.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의 생성 과정을 짐작해볼 때,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그녀가 ‘엄마’에게 압도되었던 것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어린 샤를로뜨 혹은 어린 나자에게 엄마는 모든 것이었을 수 있다. 닮고 싶고 되고 싶은, 훌륭하고 완벽한, ‘커다란 존재’였을 수 있다. 반대로 엄마는 딸에게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투사했을 수도 있다. 욕조 속 샤를로뜨의 머리 모양이 그런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어린 딸의 머리가 성숙한 여인인 엄마의 머리와 똑같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다른 장면들과는 다르고, 목욕하기에 어울리는 분위기도 아니다. 엄마의 뜻을 거스를 힘이 없는 아이의 얼굴에는 눈물이 비친다. 이 울음 역시 아이답지 않다. 보통 아이들은 많이 운다. 슬프게, 서럽게, 고집스럽게 또는 분노를 터뜨리거나 떼를 쓰면서, 그런 아이들의 울음에는 많은 말이 들어있다.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 없는 자기 감정, 자기 주장을 울음으로 폭발시켜 버리며 엄마 혹은 아빠가 자기를 다 담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샤를로뜨의 울음은 다르다. 다소곳하게 숙인 고개는 체념을 내비친다. 내리깔고 있는 눈에 맺힌 딱 한 방울의 눈물은 아마도 이 아이에게 익숙했을 수많은 좌절과 양보와 희생과 포기를 짐작하게 한다.
유아에서 아동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이 아이에게는 물론 엄마로부터의 분리가 필요하다. 이어지는 그림들은 그 분리가 아이에게 얼마나 엄청난 드라마인지를 잘 보여준다. 딸을 위로하기 위해 엄마 아빠가 계획한 소풍 장면을 보면 커다란 화면 전체에서 샤를로뜨의 모습은 너무나도 미미한 자리를 차지한다. 부모도 아이도 그렇게 멀리, 떠나보내고, 떠난다. 샤를로뜨가 혼자 산딸기를 따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화면은 노랑에서 초록 그리고 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로 밝게 칠해져 있다. 같은 숲에서 엄마 아빠가 크게 그려진 바로 앞 장에서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 채색된 연두는 엄마 아빠의 눈길을 느끼는 아이의 불안 없는 심리를 나타내준다. 하나의 풍경을 그 앞 장의 그림과 다른 시점에서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 속에서 샤를로뜨는 엄마 아빠로부터 차츰 멀어져감을 인지하지 못한다. 바로 앞 장면에서 아버지의 시선이 멀어지는 딸의 모습에 가 있는 것에 주목하자. 그러나 이 다음 장면에서 딸기 바구니가 가득 차고 샤를로뜨가 길을 잃었음을 인식할 때는 이 연두와 초록의 숲이 무거운 갈색, 군데군데 얹힌 노랑과의 대비 때문에 더 어둡게 보이는 여러 가지 톤의 갈색으로 칠해져 있다. 같은 숲에서 엄마 아빠가 크게 그려진 바로 앞 장에서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 채색된 연두는 엄마 아빠의 눈길을 느끼는 아이의 불안 없는 심리를 나타내준다. 하나의 풍경을 그 앞 장의 그림과 다른 시점에서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 속에서 샤를로뜨는 엄마 아빠로부터 차츰 멀어져감을 인지하지 못한다. 바로 앞 장면에서 아버지의 시선이 멀어지는 딸의 모습에 가 있는 것에 주목하자. 그러나 이 다음 장면에서 딸기 바구니가 가득 차고 샤를로뜨가 길을 잃었음을 인식할 때는 이 연두와 초록의 숲이 무거운 갈색, 군데군데 얹힌 노랑과의 대비 때문에 더 어둡게 보이는 여러 가지 톤의 갈색으로 칠해져 있다. 앞에서 곧게 정돈되어 보이던 나무들이 여기서는 뒤틀리고 헝클어진 것처럼 보인다. 거친 붓 터치에서는 알 수 없는 공격성마저 느껴진다. 엄마도 아빠도 인형도 푸른 개도 없이 완전히 샤를로뜨 혼자인 이 장면은 전체적으로 색의 대비가 강렬한 다른 컷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어두운 갈색 모노톤으로 칠해져 있다. 그만큼 아이의 심리적 현실은 공포로 가득 차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한 후에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동화의 전형적인 줄거리이다. 통과 의례를 거쳐서 성숙해지는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푸른 개』도 그런 줄거리를 따르고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역시 푸른 개에 있다. 푸른 개는 무엇일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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