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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지구의 거대한 공기 바다, 중력이 꼭 붙들고 있는 기체들로 출렁이는 하늘은 광대한 우주 안의 이 특별한 점을 점화하는 생명의 숨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보라. 대기는 지구 생명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기는 ‘살아 있는 생물권’ ― 즉 공기를 순환시키고 온도와 기후를 조절하고 위험한 운석과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거대한 맥동하는 ‘몸’ ― 을 이루는 내장기관이다.
대기는 100km에 걸쳐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뻗어 있고 수증기 구름, 낙하하는 눈, 번쩍이는 번개, 붉은 노을을 드러내는 기상 조건을 통해서가 아니면 볼 수 없다.
지구의 공기 바다와, 지상의 바다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해류는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우리 행성의 날씨와 기후를 창조하고 생명의 조건을 결정한다. 이런 전 지구적 날씨 형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해들리 세포일 것이다. 울창한 적도 무풍대에 많은 비를 뿌려 생물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열대 우림과 습지를 만드는 한편 그 북쪽과 남쪽에는 메마른 사막을 남기는, 덥고 축축한 공기의 순환 형태를 말한다. 이 순환 체계의 영향은 우주에서도 초록과 갈색의 선명한 경계선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구 생명체 역시 대기 상태와 날씨를 결정한다. 최초의 대기는 수소와 수증기였다. 초기 광합성 생물들 덕분에 생명의 기체 산소가 공기에 충만해지는 데는 약 20억 년이 걸렸다. 오늘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스트로마톨라이트로 살아남아 있는 고대 광합성 생물인 남조류는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에서 당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산소를 방출했다.
작은 개미부터 거대한 나무까지 지구 생명체들이 끊임없이 하는 호흡은 대기의 산소를 고갈시키고 그 자리를 이산화탄소와 물로 대체한다. 호흡에서 이루어지는 가스 교환은, 낮 동안특히 여름에 전 세계 육지와 바다의 나무와 조류들이 하는 광합성 활동에 의해 상쇄된다. 생물과 공기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피드백은 대략 78%의 질소와 21%의 산소, 비활성 기체들, 이산화탄소, 극소량의 다른 기체들로 이루어진 대기를 만들었다.
이 복잡한 관계 속으로 인류가 밀고 들어와 대기에 대량의 온실가스를 추가함으로써, 과거 수천 년 동안 유지되던 섬세한 균형을 깨고 이후 몇 백 년에 걸쳐 지구 기후를 바꾸었다.
대기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차가운 우주 공간의 온도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 담요 역할을 한다. 이런 포근한 조건을 책임지는 기체는 이산화탄소이다. 이산화탄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햇빛이 이산화탄소 분자를 곧장 통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외선은 이산화탄소 분자를 통과하지 못해서 열이 그 내부에서 돌아다니며 온실 유리처럼 공기를 데우게 된다. 햇빛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대기를 통과해 지구 표면에 닿는다. 그때 닿은 표면이 반짝이는 하얀 빙하처럼 빛을 반사시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면, 광선의 대부분이 빛으로 되튀어 나온다. 하지만 그 표면이 검은 바위나 흙, 바다처럼 어두우면 에너지가 열로 흡수되고, 그 열은 이산화탄소를 통과하지 못하는 적외선의 형태로 대기에 방출된다. 이런 식으로 열이 대기와 지표면 사이에 갇혀 왔다 갔다 하면서 그 둘을 데우고 생명을 지탱한다.
우리는 지구의 기후가 길이가 1m나 되는 곤충들이 살던 풍성한 열대와 생명 형태의 대다수가 죽은 빙하기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는 사실을 화석 기록을 통해 알고 있다. 재앙적 한파는 유성 충돌이나 초신성 폭발 같은 거대한 사건의 결과로, 대기를 흙먼지로 뒤덮어 햇빛이 지표면에 닿을 수 없게 함으로써 생명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이산화탄소를 생산하는 동물을 죽게 했다. 그 시기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160ppm 정도로 낮게 떨어졌다.
인류가 진화한 지난 50만 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는 200ppm빙하기과 홀로세의 편안한 280ppm 사이를 맴돌았다. 과거에 인간이 주로 사용한 연료는 목재였는데, 목재를 태우면 그 나무가 성장하는 동안 흡수한 양만큼 이산화탄소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에 우리는 주로 화석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데, 이 때 수백만 년 전에 죽은 식물과 그 밖의 생명체에 저장되어 있던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내가 이 책을 쓰는 현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40%나 더 높은 400ppm으로, 대기는 더 온난하고 더 역동적이고 더 많은 물을 보유함으로써 더 극단적인 날씨를 유발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홀로세 표준을 의미하는 ‘정상적인 기후’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대기를, 물질이 연소할 때 방출되는 다른 기체와 광범한 기타 오염 물질의 저장고로도 이용하고 있다. 그중 냉매는 성층권 상층부에서 우리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는 오존층을 공격한다.
그리고 인류세에 대기는 인류의 목소리가 되었다. 가시광선이 대기를 통과하듯 소리, 라디오파, 마이크로파 역시 대기를 통과할 수 있어서 무선, 전화기,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준다. 대기는 태양의 생명 에너지를 통과시키듯 대기 중에 떠 있는 인공위성에서 발생하는 펄스를 통과시킬 수 있어서, 우리 종은 목소리를 통해 사실상 몇 초 만에 지구를 횡단할 수 있다.
1932년에 조지 5세는 영국 본토에서 제국의 전초 기지에 사는 2,000만 청자들에게 무선 전신으로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전달한 최초의 국왕이 되었다. 러디어드 키플링이 써준 대본에 따라 조지 왕은 “눈, 사막, 바다에 가로막혀 오직 공기 중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신사 숙녀들에게” 연설했다. 인류세의 대기는 이런 “공기 중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라디오, 노트북, 텔레비전, 휴대전화, 기타 기기들에서 나오는 광선을 볼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45억 년 지구 역사 대부분 동안 대기를 채우는 빛은 항성과 유성 같은 지구 밖 천체들의 섬광과 뇌우의 번쩍임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늘은 우리의 통신 기기들이 주고받는 각기 다른 파장의 인공적인 빛으로 충만하다. 더욱이 이것은 비가시광선 스펙트럼만을 친 것이다. 우리는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빛으로 도시와 시가지가 한밤에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로 환하게 세계를 밝혔고, 별은 도시 거주자들에게 잊혔다.
인공위성은 육안으로는 할 수 없었던, 우주에서 우리가 사는 곳을 내려다보는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바로 그 카메라들이 우리가 이 세계를 얼마나 많이 변화시키고 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상세하게 보여준다. 인터넷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지식과 지적 자원을 끌어 모아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으며, 물리적으로 어느 곳에 있든 관계없이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가상의 공간에 거주할 수 있다.
또한 대기는 하늘 모험가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다시 말해, 대기는 지구 내의 모든 곳과 지구 밖의 우주로 신속하고 직접적인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중간 매체이다. 현재 런던에서 시드니까지 가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다. 우리는 남아프리카에서 딴 싱싱한 블루베리를 몇 시간 뒤 런던에서 먹을 수 있는 시간 틀 내에서 서로 무역할 수 있다.
하늘로 침투한 우리의 기술은 다른 어떤 생명 형태도 할 수 없는 우리 종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대기는 어느 한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모든 지구인의 공통 재산이다. 대기는 생명에 첫 숨을 제공하고, 생명은 마지막 숨과 함께 소멸한다. 이 장에서는 우리가 대기에 일으킨 변화들이 향후 몇 십 년 동안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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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도시 포카라의 작은 활주로 밖에서 마하비르 푼을 만났다. 그는 배가 불룩하고 각진 얼굴에 검고 두꺼운 머리카락을 특이한 각도로 넘긴 50대 중반의 작달만한 남성이다.
“가이아, 이쪽이에요. 이쪽!” 그는 황급히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출발했다. 뻗친 머리카락이 더 헝클어져 한쪽이 붕 떴다.
나는 그를 잰걸음으로 따라갔다. 불룩한 배낭을 메고 북극 탐험복장을 한 창백한 얼굴의 외국인 여성이 가벼운 면직물 옷을 입고 샌들을 신은 네팔 남자 뒤를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가는 특이한 광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초에 있었던 정치 시위의 여파로 마오쩌둥주의 정부가 군부를 동원해 그 지역에 통금을 내린 탓에 오토바이, 버스, 택시를 포함한 모든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마하비르 푼은 나를 만나기 위해 수 킬로미터를 걸어와야 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나라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곳 사람들도 임기응변에 능했다. 푼은 망을 보더니 내게 오토바이 택시 두 대 중 한 대를 타라고 손짓 하고는 자신은 남은 오토바이 택시를 탔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출발했다.
포카라는 산맥의 후광을 업고 은은하게 빛나는 호수 마을이다. 그곳은 네팔을 ‘아시아의 스위스’로 바꾸겠다는 신임 총리의 약속에서 가장 근접한 곳으로 매력적인 카페와 상점들이 호숫가에 운집해 있다. 화사한 옷차림의 남녀노소가 작은 둑 위에 삼삼오오 모여 백여 미터 떨어진 한 섬의 아름다운 불교 사원을 바라보며 불공을 드린다. 사리를 입은 여성들은 호수에 무릎을 담근 채 색색의 빨랫감을 물에 적시고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를 감는다.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튀어 오르고 새들은 수면 위를 빙글빙글 돌며 먹잇감을 찾는다.
기이하게 생긴 마차푸차레산 봉우리가 이 마을 위로 우뚝 솟아 있다. 깎아지른 듯한 화강암 경사면이 마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듯 파란 하늘로 치솟아 있다. 히말라야산맥은 12월 중순인 이맘때면 호수에 얼음이 얼고 산기슭의 꽤 아래쪽까지 눈이 쌓여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장 높은 봉우리들만 하얬고, 분홍색 꽃들이 햇빛 아래 흔들거리는 초록 줄기 끝에 매달려 고개를 까딱거렸다.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섰고, 그 틈에 나는 옷을 한 겹 더 벗었다.
그림엽서처럼 예쁜 도시에 감추어진 몇 가지 덜 매력적인 세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도시의 카페와 사업장에서 흘러나온 악취가 진동하는 미끈거리는 녹색 지표수각 미처리 하수와 기름진 오염 물질을 호수로 방출하고 있었다. 차림새가 남루하고 지저분한 아이들이 둑에 널린 버려진 플라스틱과 고체 쓰레기들을 찔러보고 있었다. 그때 한 소년이 몇 미터 밖으로 걸어가더니 바지를 내리고 호숫가에서 변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보았다. 예스러운 시골집이 길가에 늘어서 있었다. 사실상 흙바닥에 세워진 다 쓰러져가는 더러운 판잣집인 그 집들은 그곳에 사는 대가족에게 보호나 안락을 거의 제공하지 못했다. 어느 모로 보나 스위스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 해도 이곳은 이 나라에서 가장 잘 사는 축에 들었다.
인류세 벽두에 가난한 세계가 직면한 개발이라는 과제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네팔은 그 시작으로 적격인 장소다. 정치적·문화적·지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두 개발도상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네팔은 중국과 인도 어느 쪽의 성장 모델도 따르지 않고 점점 쇠퇴하기만 했다.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10개국 중 한 곳으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빈곤선 아래인 하루 40센트 이하로 살아가고 5세 이하 어린이의 절반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네팔인의 약 90%가 시골 지역에 살고, 그 가운데 다수가 먹고살기에 턱없이 작은 밭에서 먹을 것을 자급자족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으며 전기, 수도, 위생, 교육,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다. 쌀부터 등유까지 모든 것이 부족하다. 마오쩌둥주의자들의 반란과 시국 불안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국가 경제는 파탄 났고 기반 시설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네팔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기본적인 통치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자선 단체 구호품에 의지해 대량 기아를 겨우 모면할 뿐이다. 네팔에서 활동하는 NGO 단체는 1990년에 220개였던 것이 1만 5,000개 이상으로 치솟아, 현재 GDP의 60%를 기여하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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