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결혼식 날 나는 마흔여섯이고 그녀는 열여덟이었습니다. 그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남자늘씬하지도 않고, 머리도 약간 벗어지고, 한쪽 다리를 절고, 나무 틀니를 낀가 혼인 특권을 행사하고, 그렇게 해서 가난하고 젊은 여자에게 굴욕감을 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거야말로 내가 하지 않으려던 겁니다. 네.
결혼식 날 밤 술과 춤으로 불콰해진 얼굴로 층계로 쿵쿵거리며 올라갔을 때 그녀는 어느 아주머니가 억지로 입혀놓은 얄팍한 것을 차려입고 있었는데, 몸을 떠는 바람에 비단 옷깃이 살짝 하늘거렸습니다 ― 하지만 나는 그걸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조곤조곤하게 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다. 나는 늙고 추하고 지쳤다. 이 혼인은 이상하다. 사랑이 아니라 정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아프다. 그래서 그녀가 여기에 있는 거다. 나는 이 모든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손을 대는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나는 말했습니다. 그녀에게서 공포와 ‘혐오’ ― 그게 내가 사용한 말입니다 ― 가 빤히 보이는데.
그녀는 ‘혐오’를 느끼지 않는다고 나를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답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거짓말로 일그러지는 것이 다 보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친구가 되자고. 하지만 겉으로는, 모든 면에서, 우리가 우리의 결혼을 완성한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녀는 내 집에서 편안하고 행복해야 하고, 이곳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녀에게 그 이상은 전혀 바라지 않겠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지요. 소중한 친구가. 그게 다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큰 것이었지요. 우리는 함께 웃었고, 집안일에 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녀가 도와준 덕에 나는 하인들을 더 배려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좀더 진심을 담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눈썰미가 있어 예상했던 비용의 몇분의 일로 여러 방을 멋지게 새로 꾸몄습니다. 내가 들어가면 그녀의 얼굴이 환해지고, 집안일을 의논할 때면 그녀가 내게 몸을 기대오는 것만으로도 내 운은 여러 면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아졌습니다. 나는 행복했지만, 무척 행복했지만, 나도 모르게 자주 이런 간단한 말을 기도처럼 읊조리곤 했습니다. 그녀가 여기 있다, 지금도 여기 있다. 마치 빠르게 흐르는 강이 우리집을 통과해 길을 내면서, 집에 민물 냄새가 스며들고 집안 어디를 가나 늘 근처에 뭔가 풍성하고 자연스럽고 기막힌 것이 쉼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는 것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내 친구들 앞에서 내 찬사를 늘어놓았습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요. 사려 깊고, 똑똑하고, 다정하다고.
우리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녀가 속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음날, 그녀는 내 책상에 편지를 남겼습니다. 수줍음 때문에 말이나 행동으로 이런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대하는 나의 다정한 태도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었다고 편지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집에서 행복하고, 정말로 편안하며,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행복의 영역을 저에겐 아직은 낯선 그 친밀한 방식으로 확장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녀는 “어른이 되는 일의 다른 많은 면에서” 그랬듯이 이 면에서도 내가 자신을 안내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편지를 읽고 식사를 하러 갔을 때, 환하게 빛나고 있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가망 없던 재료에서 우리 스스로 이걸 용케 만들어낸 것을 기뻐하며, 그곳에서,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솔직한 눈길을 교환했습니다.
그날 밤, 그녀의 침대에서, 나는 그동안의 나와 달라지지 않으려고 조심했습니다. 부드럽고, 예의바르고, 정중했지요. 별로 한 것은 없지만 ― 키스를 하고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 원한다면, 갑자기 봇물이 터진 듯한 이런 탐닉이 얼마나 풍요로웠을지 상상해보셔도 좋겠네요. 우리 둘 다 욕정(그럼, 당연하지요)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 바탕에는 우리가 구축해온 느리고 견고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신뢰할 만한 유대, 지속적이고 진정한 유대가 있었습니다. 나는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 젊은 시절에는 방종하여, (말하기 창피하지만) 마블 앨리에서, 밴드박스에서, 무시무시한 울프스 덴에서 시간을 보낼 만큼 보냈고, 이전에도 결혼생활을, 건강한 결혼생활을 한 번 하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이런 강렬한 감정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밤 이 ‘새로운 대륙’을 더 탐사해보기로 암묵적으로 서로 합의한 상태에서 나는 아침에 나에게 집에 있으라고 명하는, 중력처럼 끌어당기는 힘과 싸우며 인쇄소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 슬프게도 ― 들보의 날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래, 무슨 운이 이 모양인지!
천장에서 들보가 떨어져, 책상에 앉아 있던 나의 바로 여기를 친 거지요. 그래서 우리의 계획은 내가 회복될 때까지 연기해야 했습니다.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나는 들어가기로……
그의 판단에 따르면 일종의 병자-상자sick-box가…… 그가 판단하기를……
한스 볼먼
효험이 있다고.
로저 베빈스 3세
효험이 있다고, 그래요. 고맙습니다, 친구.
한스 볼먼
언제든지 말만 하세요.
로저 베빈스 3세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내 병자-상자에, 바보가 된 기분으로. 응접실이었지요. 바로 얼마 전에 우리가 (환희에 차, 죄책감을 느끼며, 손을 잡고) 그녀의 침실로 갈 때 거쳐간 바로 그 응접실. 이윽고 주치의가 돌아왔고, 그의 조수들이 내가 누워 있는 병자-상자를 병자-달구지에 옮겼습니다. 그때 나는 알았지요. 우리의 계획이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다는 걸. 어찌나 실망스럽던지! 언제나 부부 침대의 완전한 기쁨을 알게 될는지. 언제나 그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볼는지. 언제 그녀가 이전의 그런 모습, 입은 굶주리고 뺨은 발그레해진 모습으로 나를 돌아볼는지, 언제 들뜬 손짓으로 풀어헤친 그녀의 머리카락이 마침내 우리 주위로 쏟아져내릴는지.
뭐, 내가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참으로 당혹스러운 사태 전개였지요.
한스 볼먼
하지만 견딜 수 없는 일은 없죠.
그렇고말고요.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지만. 당시에 거기 병자-달구지에 누워 있을 때, 아직 묶이지는 않았을 때인데, 나는 잠깐 병자-상자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얼른 밖으로 나가, 작은 모래 폭풍을 일으키고, 심지어 꽃병, 포치에 있던 꽃병도 깰 수 있었지요. 하지만 아내와 그 주치의는 내 부상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느라 알아채지도 못하더군요. 그걸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좀 발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개들 사이를 지나가며 각각 곰 꿈을 꾸게 유도해서, 개들이 낑낑대며 멀리 달아나게 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걸 할 수 있었지요! 그때가 좋았습니다! 이제는 여기 이 말없는 젊은 친구가 저녁 먹으러 나오게 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개가 곰 꿈을 꾸도록 유도하지도 못합니다!
(젊어 보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베빈스 씨? 윤곽이? 자세가?)
어쨌든 나는 내 병자-상자로 돌아갔습니다, 전에 우리가 울던 것처럼 울면서 ― 벌써 이걸 알게 되었나요, 젊은 친구? 이 병원 마당에 처음 도착해서, 젊은 선생, 울고 싶어지면, 무슨 일이 생기느냐 하면, 우리는 아주 조금 긴장을 하게 되고, 그러면 관절에서 약간 독성이 느껴지고, 우리 내부에서 작은 것들이 터집니다. 가끔 우리가 아직 생생할 경우에는 똥을 좀 쌀 수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내가 했던 겁니다. 그날 그 바깥에서 달구지에 실려서. 생생한 상태에서 똥을 좀 싼 거지요, 병자-상자 안에서, 분통이 터져서 말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뭐였느냐? 내가 지금까지 그 똥과 내내 함께 있다는 겁니다. 사실 ― 이걸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젊은 친구, 또는 혐오스럽다고도, 그것 때문에 우리의 갓 피어난 우정이 망가지는 건 싫거든 ― 그 똥은 지금도 저 아래에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병자-상자에, 물론 처음보다는 많이 말랐지만!
이런, 너 애냐?
그러네요, 안 그런가요?
한스 볼먼
그런 것 같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오네요.
이제 형태를 거의 완전히 갖추었네요.
로저 베빈스 3세
사과할게, 맙소사. 아직 아이인데도 병자-상자에 갇히다니…… 그리고 어른이 자기 병자-상자에 마른 똥이 있다는 얘기를 시시콜콜히 하는 걸 들어야 하다니…… 이건, 어, 입장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없지, 그러니까 새로운, 아……
소년이로군. 아직 애야. 오 이런.
정말로 사과할게.
한스 볼먼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