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소녀의 고민
길은 마을과 자연, 사람들 속에 있다.
해발 967미터. 학교 뒤뜰에서 벌을 치기 시작한 아주 특별한 아이들의 이야기.
고등학교 양봉 동아리 ‘핫치비에잇’은 나가노 현 중동부, 스와 지방의 후지미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후지미라는 이름으로 알 수 있듯, 후지미초는 남쪽으로 멀리 후지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야쓰가타케, 남쪽으로는 남 알프스, 서쪽으로는 중앙 알프스, 북 알프스에 이르기까지,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이지요. 그 풍요로운 자연은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든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와 〈모노노케 히메〉 속에 잘 묘사되었습니다. 작품 속에 나온 ‘에보시’, ‘오츠고토’, ‘고로쿠’ 같은 오래된 지명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이 지역에는 호리 다쓰오의 소설 《바람이 분다》의 무대가 됐던 후지미 고원 병원과 조몬 시대기원전 1300년~기원전 300년의 이도지리 유적, 아름다운 야생화가 만발한 파노라마 리조트 같은 곳이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인 ‘온바시라 마츠리’로 유명한 스와 신사와 휴양지로 늘 북적대는 기리가미네 화산 지대도 있습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싸인 후지미초. 후지미 고등학교는 이곳에서 9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쳐 온 학교입니다. 해발 967미터, 그러니까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고등학교이기도 합니다. 한 학년마다 보통과 두 반, 원예과 한 반이 있습니다. 전교생이 300명쯤 되는, 나가노 현에서는 작은 축에 드는 고등학교이지요.
다케마에 치하루가 후지미 고등학교 원예과에 입학한 것은 2008년 4월이었습니다. 치하루네는 학교 근처 시모스와마치에 있는 평범한 회사원 집안입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가 밭농사를 지으셔서 어릴 때부터 땅과 친숙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젠가부터 치하루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농사를 지으면 어떨까? 농가의 안주인이 되면 좋겠다.’
후지미 고등학교 원예과에 들어온 것도 그런 바람 때문이었지요.
치하루는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는 3년이라는 시간. 모처럼 그런 시간이 주어졌으니 무언가에 마음껏 몰두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언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운동부에 들어가기도 하고, 악단을 꾸리기도 하고, 취미 삼아 뭔가를 배우기도 하며 자기 나름의 것을 찾아 가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고민하는 동안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금세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진로 상담이 있던 날. 하지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한 치하루가 3년 후의 미래 같은 걸 마음에 그렸을 리가 없습니다.
“졸업 후에 뭘 하고 싶은지, 장래에 뭐가 되고 싶은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미래는커녕 고등학교에서 내가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못 찾고 있어서요.”
치하루가 고민을 내비치자 담임인 스기야마 선생님은 이렇게 조언해 주었습니다.
“입학한 지 이제 한 달째니까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계속 고민된다면 기타하라 선생님을 만나 보면 어떻겠니?”
실습 담당인 기타하라 도시후미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가르치는 방식이 좀 독특하다고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 스기야마 선생님은 기타하라 선생님이 아이들의 자질을 능숙하게 끌어내 잘 이끄는 사람이라 치하루에게 힘이 되어 주리라 여겼지요. 하지만 치하루는 기타하라라는 이름을 듣고는 고등학교 면접 때가 떠올랐습니다. 기타하라 선생님이 면접관이었거든요.
“우리 학교에 왜 왔죠?”
“지금까지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있어요?”
“앞으로 농업에 관련된 일을 할 생각인가요?”
치하루는 숨 쉴 틈 없이 질문을 해 대던 기타하라 선생님 때문에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솔직히, 만나면 좀 거북할 것 같은데…….’
하지만 스기야마 선생님은 “반드시 만나 볼 것!”이라며 치하루의 등을 가볍게 떠밀었습니다.
치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조금 주눅이 든 채 교무실로 갔습니다.
“아, 네가 다케마에구나. 스기야마 선생님한테 들었어. 진로 때문에 고민이라며?”
기타하라 선생님은 면접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다정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했거든요. 치하루는 순식간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저기, 선생님……. 고등학교에서 뭘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농가의 안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지?”
“네? 아, 네. 그렇긴 한데요.”
면접 때 대수롭지 않게 했던 말을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다니, 치하루는 좀 놀랐습니다.
“뭐, 안주인이 되는 수업은 스스로 하는 걸로 하고, 일단은 밖에 나가 볼까?”
“네? 나가서 뭐 하시려구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단 거잖아? 책상 앞에 붙어 있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니까.”
기타하라 선생님은 치하루를 학교 밖 현장학습에 초대했습니다.
주말, 치하루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기타하라 선생님 차에 탔습니다. 목적지는 현 남동쪽 나기소. 이 지역 전통 공예품인 아라라기 편백 삿갓 만드는 걸 보러 갑니다. 아라라기 편백 삿갓은 원뿔 모양 모자입니다. 편백나무를 가늘고 길게 쪼개서 ‘히데’라는 나무오리를 만들고, 이것을 엮어 모자를 짭니다. ‘삿갓 지장보살’이라는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모자로, 지금도 순례자나 뱃사공들이 즐겨 씁니다. 임업이 발달한 기소 지역에 모자를 만드는 기술이 전해진 때는 300년쯤 전입니다. 재료가 편백나무이고, 주로 아라라기가와 둘레에서 만들어진 탓에 아라라기 편백 삿갓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기타하라 선생님은 경쾌하게 차를 몰았지요. 조수석에 앉은 치하루는 선생님이 왜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밖으로 나간다는 게 좋았고 모자 만드는 것도 한번 보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따라가기로 한 것입니다.
차는 기소 강을 따라 에도시대에 도쿄와 교토를 연결하던 나카센도 옛길을 달려 산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츠마고주쿠를 지나 국도를 달린 지 수십 분. 드디어 도로 끝에 ‘편백 삿갓 전수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죠. 편백 삿갓과 민예품을 늘어놓은 판매대 옆에 옆에 작은 방이 있고, 백발에 피부가 고운 한 할머니가 시연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라라기 편백 삿갓을 만든 지 70년째라고 하는 이시이 도미코 명인이었습니다.
다다미 여섯 장 정도 되는다다미 한 장은 90cm×180cm. 다다미 두 장이 한 평쯤 된다. 방 한쪽에 납작한 국수처럼 쪼개 놓은 편백 오리가 쌓여 있었습니다. 도미코 할머니는 나무오리 두 쪽을 꺼내 솜씨 좋게 엮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히데는 금세 넓적한 원이 됐고, 그 중심을 밀어 올리자 점차 원뿔 모양이 나왔습니다. 치하루는 빨려 들어가듯 그 작업을 바라보았습니다. 쪼갠 대나무로 모자에 힘을 주고, 악귀를 쫓는다는 ‘세미’라는 끈을 달면 아라라기 편백 삿갓이 완성됩니다.
“한번 써 보렴.”
치하루는 도미코 할머니가 건넨 모자를 조심스레 써 봤습니다.
보기보다 훨씬 가벼웠고 그럼에도 튼튼했습니다. 아라라기 편백 삿갓은 햇살이 뜨거우면 히데가 오그라들어 살 사이에 틈이 생기면서 바람이 잘 통하게 되고, 비가 올 때는 히데가 물기를 머금어 부풀기 때문에 살 사이가 막혀 비를 막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이 부는 날에도 쓸 수 있지. 이렇게 좋은 모자 딴 데는 없을걸?”
도미코 할머니는 자랑스럽게 웃으셨습니다.
“선생님, 기소에는 대단한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군요!”
돌아오는 길, 치하루는 처음으로 명인의 기술을 보고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기소뿐만이 아냐. 어느 마을이나 대단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엄청 많으시지.”
선생님도 보물을 발견한 소년 같은 얼굴이었지요.
기타하라 선생님은 이나 지방에 있는 나가타니무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연 속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봄이면 집에 가는 길에 가재를 잡고, 여름에는 장수풍뎅이를 잡았습니다. 가을에는 산에 들어가 버섯을 따고는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자연은 학교에서 배운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 준 또 하나의 교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온 마을 사람들은 위대한 인생 선배였지요. 선생님이 치하루를 현장학습에 데려간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지역 사람들과 자연을 접하며 시야가 넓어지면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나기소에 다녀온 뒤부터 치하루는 지역의 자연과 문화에 흥미를 품게 되었고, 스스로 시간을 내 현장학습에 참가했습니다. 이나 지역 숲을 지키는 임업 관계자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요즘 키위의 원조 격이라는 다래를 키우는 농가를 찾아 일을 거들기도 했습니다. 현장학습을 나갈 때마다 치하루는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나 치하루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사람들의 따뜻함이었습니다. 찾아가는 집마다 “잘 왔어, 어서 와.” 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고, 직접 만든 저장 음식이나 조림 같은 것들을 차와 함께 내 주시고는 했습니다. 한입 먹으면 그게 또 어찌나 맛있던지,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말씀드리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맛난 것들을 내어놓으시고 말이지요.
치하루는 현장학습 성과물로 다래에 관한 연구를 논문으로 정리해 ‘일본 학교 농업 클럽’ 지역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치하루와 기타하라 선생님은 상 받은 소식도 전할 겸 도움을 받은 농가에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할머니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지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합장하며 우승컵을 신단에 올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상님. 딸내미가 상을 타 가지고 왔어요.”
치하루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고, 훌륭한 문화가 있구나.’
‘우리 고장을 좀 더 알고 싶어.’
‘이곳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며 살고 싶다.’
치하루의 마음속에서 어렴풋이 하고 싶은 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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