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함께 읽기의 교육적 효과
가정이 아이의 읽기·쓰기에 영향을 끼치는 세 가지 방식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양육자와의 상호작용이 아이의 읽기·쓰기 능력 발달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이의 가정에서 부모나 조부모, 형제, 양육 도우미, 친지 등 자신보다 읽기·쓰기 능력이 나은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읽기·쓰기를 배웁니다. 이 상호작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특정한 형식없이 이루어지는 ‘비공식적인 읽기·쓰기 활동informal literal activities’이고,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읽기·쓰기를 가르치는 ‘공식적인 읽기·쓰기 학습 활동teaching literacy’입니다. 예를 들어, 그림책을 함께 보며 부모가 글을 읽어 주고 아이가 듣고 중간중간 대화하는 활동은 비공식적인 읽기·쓰기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부모가 그림책에 있는 글자를 가리키며 소리 내어 읽는 걸 가르치거나, 이름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공식적인 읽기·쓰기 학습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비공식적인 읽기·쓰기 활동은 어휘력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공식적인 읽기·쓰기 학습 활동은 글자 떼기를 도와준다고 합니다.
가정에서의 비공식적인 읽기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이며 효과적인 활동이 ‘함께 읽기shared reading’입니다. 양육자가 소리 내어 읽어 주고 아이가 듣는 활동입니다. 함께 읽기는 구어口語의 세계에 살던 아이를 문어文語의 세계로 입문하도록 도와주는 징검다리입니다. 문어로 된 책은 구어가 가진 강세나 운율, 어조를 거의 보여 주지 않습니다. 또한 구어가 상호적인 데 비해 문어는 일방적입니다. 대화할 때는 묻고 답하기가 가능하지만 글은 묻는 말에 답하지 않지요.
책 읽어 주기는 읽어 주는 이가 구어의 특징을 동원하여 문어로 된 책의 의미를 파악하도록 돕지요. 강세나 운율을 동원하여 읽어 주면서 글의 내용과 언어적 표현이 가진 의미를 듣는 이에게 전달합니다. 서로 묻고 답하기도 하고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나누기도 하지요. 책을 읽으면서 나누는 구어적인 상호작용은 이후에 아이가 혼자 책을 읽을 때도 도움이 됩니다. 혼자 문어를 읽더라도 스스로 묻고 답하고 대화하며 읽을 수 있지요.
함께 읽기가 교육적으로 효과적인 이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책을 읽으면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언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유아들이 읽는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이호백 지음, 재미마주)를 보면 짧고 쉬운 문장임에도 ‘슬그머니’, ‘망설이다가’, ‘꾀’ 등의 단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책 속의 표현은 말 속의 표현과는 다릅니다. 『들꽃 아이』(임길택 지음, 김동성 그림, 길벗어린이)의 한 부분을 읽어 보지요.
고갯마루에 다다라 사방을 둘러보던 선생님은 마치 신선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발 아래 어슴푸레한 안개에 덮인 숲과 밤하늘이 그 때만큼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진 적도 없었고, 빙 둘러서 있는 산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선생님을 반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문단은 도시에서 산촌 마을로 부임돼 온 선생님이 매일 먼 길을 걸어 학교에 오는 보선이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문장을 살펴보면, 일상의 대화에서는 잘 쓰지 않는 어휘와 문어적인 표현, 복잡한 문장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경험하는 언어뿐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나누는 대화 속 언어도 일상의 대화보다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때, 함께 놀 때, 기억을 회상할 때의 대화를 비교한 연구가 있는데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때 나누는 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고요.
둘째, 책에서는 새로운 단어나 개념, 사건의 빈도가 높기 때문에 아이가 새로 접하는 글의 의미를 부모가 설명해 줄 기회가 많습니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아이의 의미 파악을 돕기 위해 그림을 짚어 주거나 다른 말로 정의하거나 예시를 들어 줍니다. 질문을 하거나 직접 설명해 주기도 하지요. 이때 사용하는 언어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한 양육자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어휘와 문장 구조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책을 읽어 주는 방법을 ‘대화 읽기dialogic reading’라고 합니다. 대화 읽기에 대한 연구를 종합하여 분석한 루이스몰Luis Moll 등은 부모와 아이 사이에 대화 읽기가 책 읽기 효과를 더 높인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만 2~3세) 부모와의 대화가 어휘 획득과 내용 이해에 도움이 된답니다. 아이가 커 가면서(만 4~5세) 언어 능력이 향상되면 아이는 부모의 자극 없이도 책 내용이나 사건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책을 읽다가 중간에 끼어드는 질문이나 설명이 책 읽기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이가 커 갈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 주는 것이 좋습니다. 자극하기보다 반응하는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부모는 먼저 질문을 하기보다 아이가 책을 읽다가 던진 말에 민감하게 반응해 줍니다. 아이의 질문에 답하고 아이가 설명을 요구하면 설명도 해 줍니다. 아이가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이야기하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느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물어봅니다.
가정의 양육자는 1대 다수로 책을 읽어 주는 교사와는 달리 1대1로 책을 읽어 주기 때문에, 아이가 상상하고 말하고 묻고 싶은 것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읽어 주되 대화하지 않는 오디오북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로봇은 양육자와 함께 볼 수는 있겠지만 양육자의 읽어 주기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그림책에는 본문 마지막에 내용 확인이나 의미 확장을 위한 질문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학습을 강조한 책에서 그런 질문지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부모가 대화 읽기를 할 때 참고할 사항일 뿐이니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에 답하느라 아이가 읽기를 귀찮아하거나 싫어하게 된다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화는 퀴즈나 강의 혹은 훈계와 구분되어야 하지요.
셋째, 어린아이들은 가정에서 양육자가 반복적으로 책을 함께 읽으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어휘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청소년과 어른은 보통 한 권의 책을 한 번 읽고 특별한 경우에 반복해 읽는 반면, 어린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는 걸 좋아하지요. 게다가 어린이책에는 어휘나 구절이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어휘나 지식을 반복적으로 접할 때 더 잘 기억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어휘를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까막눈인데도 좋아하는 책은 빽빽한 책장에서도 귀신처럼 찾아내고 본문을 달달 외우기도 하지요.
또한, 어휘나 지식은 단어를 각각 만날 때보다 그 단어가 쓰인 문장이나 이야기로 만날 때, 즉 맥락 속에서 만날 때 의미를 잘 이해하고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1970~1980년대에는 영어 단어를 연습장에 한가득 쓰며 외우는 ‘빽빽이 숙제’가 유행했지요. 손이 아프도록 쓰면서 외웠지만 시험만 끝나면 단어는 기억에서 금방 사라졌지요. 그렇게 외운 단어는 영어 문장으로 활용하기도 어려웠고요. 맥락 없이 단어만 외우는 방식은 다양한 해석을 필요로 하는 언어 학습에 효과저이지 않습니다. 반면, 어린이책은 어휘와 표현이 문장이나 이야기의 맥락에 담겨 있기 때문에 단어 카드나 문제집보다 어휘 습득에 효과적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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