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는 경세가經世家를 대망待望한다
《정경연구》(정경연구소), 1호, 1965. 6 게재
전에 없는 난국을 맞고 있는 오늘의 한국
오늘의 한국은 과연 말 그대로 전에 없는 난국에 처해 있다. 이것은 결코 새삼스레 하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오늘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자세히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말을 하게 된다. 이 말을 하면서 그들은 뼈에 사무치는 심정으로 개탄을 한다.
그러나 울분과 개탄이 능사는 아니다. 모름지기 이 난국의 유래를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다음에는 그것을 타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확신 있는 원칙을 세워 그 바탕 위에서 실천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순서대로 먼저 당면한 난국의 유래부터 탐구해보기로 하자. 이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우리는 실로 경직된 선입견을 버리고 초조해하지 말고 속단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우선 급한 대로 큰 테두리만이라도 그려보기로 하자.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한국이란 나라는 신생국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다른 여러 신생국가와 마찬가지로 한때 국권을 상실하고 타민족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다가 근래 해방을 맞이한 경우로서 말하자면 해체된 국가와 해체된 국민의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제 그제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완전한 국가가 되고 완전한 국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엄연한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성의 국가에서 보이는 원숙한 정치현실과 우리의 그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짧은 소견일 뿐이다. 기성의 국가에서 보이는 제도와 경향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이렇게만 하면 반드시 선진 국가를 이루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고함을 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작태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대주의이며 굳어버린 사고의 포로가 된 꼴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겨우 일개 신생국에 지나지 않는다. 건국의 길에 들어서 있는 우리는 국가로서 기본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식민지시대의 습속이 아직 남아 있는 형편이다. 습속이란 생리화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처지에서 기성 국가를 모방하는 데 열중하는 것은 길을 잘못 들어도 한참 잘못 든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우리가 선택한 원칙이다. 건국의 목표도 결국 건실한 민주주의 국가의 실현에 있다. 이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외래의 민주주의를 그냥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 땅에서 더욱 우수한 민주주의를 실현해내어 그것을 세계에 천명하는 기백과 노력도 필요하다.
이제 다시금 우리 현실을 들여다본다.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겨우 이식移植의 초기 단계에 있음을 확인한다. 그것은 얼마 동안의 ‘육성기育成期’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육성기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이 땅에서 원만한 민주주의의 실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육성기를 통과하는 데는 반드시 혼란이 따른다. 이것은 어느 사회에나 적용되는 정치적 원칙일 것이다.
민주주의 육성기에 생기는 혼란이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이것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눈이 멀고 융통성 없는 의식과 경망스러운 발언으로 혼란에 부채질이나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망나니들의 무식은 차라리 용서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사악한 호기심은 마침내 도의적 심판을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지금 국토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 상태이다. 거기서 오는 참상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공산세력이 국토의 북쪽을 점거하고 있는 현실은 자나 깨나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대공책對共策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한편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대비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건국의 과제를 수행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으로 남북통일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공산주의자들의 행태를 알아야 한다. 세계사의 흐름도 정확히 읽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술책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과 전략의 준비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과 관련하여 외세의존의 문제가 따른다. 상대가 제의하는 호의적인 조건에 힘을 얻어 받아들인 것이지만 외세의존이란 말하자면 사실 그 자체가 불행인 것은 틀림이 없다. 받는 쪽에서 고민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주는 쪽에서도 고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상호간의 이해란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이다.
받는 쪽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보다 자중하는 자세이다. 받은 것을 정당하게 사용한다고 하는 확신을 상대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어떤 술수를 사용해서도 안 된다. 거래에 부정이 있어서는 안 되며 공정하고 유효하게 집행한다고 하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한국은 이 점에서 원조대상국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낼 필요가 있다.
이상은 신생국가로서 건국기에 직면하게 되는 몇 가지 어려운 국면을 짚어본 것이다. 비슷한 예를 더 들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경세적 식견이 요구된다
지금 한국은 어느 면에서나 기본이 확립되어 있는 것이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모든 것이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제 우리는 한편 백년대계를 세우면서 다른 한편 당면한 현실의 과제를 해결해가야 한다. 어느 것 하나 고민거리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형편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기보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폐단이 쌓인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늘 한국이 당면한 과제는 사사건건 쉬운 것이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창의적인 해결책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특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사용된 적이 있는 일반적인 방안을 그대로 옮겨와 적용하면 통하는 그런 성질이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어려운 과제 앞에서 자유자재로 능력을 발휘하는 다름 아닌 경세적經世的 식견이라고 할 것이다.
이 땅에는 문필인이 있다고 한다. 학자도 있다고 한다. 정치인도 있고 경제인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경세적 식견이 보이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혹시 정치가라면 경세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물론 진정한 정치가라면 반드시 경세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원칙이나 방법도 없으면서 정치적 호기심과 분에 넘치는 야망에 들떠 기회나 노리는 것이 경세가의 모습일 수는 없다. 국민을 우롱하고 말살의 능력을 발휘하고 가벼운 말솜씨나 자랑한다면 오직 건국의 도정에서 장애는 될지언정 이미 정치가도 아니며 더욱이 경세가는 아닌 것이다.
모름지기 경세가라면 시국을 깊이 들여다보고 대세의 흐름을 전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미래를 기획하고 현실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능력이 증명되고 기회가 허락되는 때는 맡은 바 소임을 오래 수행하여 더 많은 성과를 내게 되는 것이며 능력이 모자라고 기회가 닿지 않을 때는 언론이나 학술에 종사하거나 후진 양성에 매달리는 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올바른 길인 것이다. 경세가의 사례를 역사에서 찾아본다면 『육경六經』을 저술하고 후진을 지도하던 공자가 그런 인물이며 중정지도中正之道를 천명한 맹자 역시 그런 인물이다. 시대가 다르고 기량도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율곡이나 다산 같은 이들도 보기 드문 경세가이다.
우리 역사에서 경세적인 식견을 보여준 인물을 몇 사람 더 꼽아볼 수 있다. 광대한 영토를 개척한 광개토왕, 화랑정신을 체계화 하여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진흥왕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우리나라에 목화씨를 들여와 백성들이 무명베옷을 입고 살 수 있게 한 문익점, 울릉도에 왜구의 침입과 노략질이 잦을 때 한 사람의 수병水兵으로서 갖가지 난관을 무릅쓰고 당시 일본 정부로부터 재침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 문서를 받아낸 안용복 역시 그런 인물이다. 경세가의 반열에서 이의립을 빼놓을 수 없다. 이의립은 당시 국내에서 철이 생산되지 않고 그 때문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무기가 달려 전쟁에서 패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철이 없으니 농기구를 제대로 만들어 쓸 수가 없고 부엌에 솥을 만들어 걸 수도 없는 형편 역시 딱하기만 했다. 이에 이의립은 책을 접고 분연히 일어났다. 그래서 오랜 세월 철을 찾아 팔도강산을 헤매면서 지성으로 천신天神과 산령山靈에 기원을 올린 끝에 울산 달천에서 철광을 발견하고 제철기술도 터득했다. 그 결과 이의립은 나라의 군사와 농사 정책에 일대 신기원을 이루었다. 이런 인물들을 우리는 경세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 한국은 참다운 경세가를 기다리는 형편이다. 무엇보다 건국의 이상理想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건국홍보, 건국국방, 건국농정, 건국상공, 건국문교, 건국외교, 건국내무, 건국법무, 건국재무, 건국교통, 건국체신, 건국사회, 건국보건, 건국의회, 건국정당, 건국통일, 건국방공 등이 두루 건국의 이상에 기초를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 그것을 떠나 미봉책을 강구하는 정도로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우선 급한 대로 눈가림식 처방으로 일관한다면 건국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건국기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건국기의 경세가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런 한 사람을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시국을 걱정하는 동지들이 모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널려 있는 여러 과제를 함께 검토하고 연구하여 그 결과를 위정자가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위정자로 하여금 국민일반을 바르게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정치의 본령은 원래 민본民本, 민주民主, 민권民權이다. 군주정치에서도 정당한 왕도는 백성을 받드는 일에서 확보되는 것이었다. 천하는 천하의 천하일 뿐 한 사람의 그것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정치에서 민복民福과 민의民意가 무시된다면 그야말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로 백성을 위해서라면 먼저 국가의 확립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는 그 어떤 보장책도 사라지고 만다.
실로 국가와 백성을 걱정하는 한 가닥 마음이 있다면 국가를 떠나 국민이 존재할 수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칠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오늘날 한국의 경우에서 ‘건국정치’의 과제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모든 정책이 그와 같은 방향에서 안출될 것이다.
민주정치의 본령은 언제나 민본이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전문적인 성격을 가진 일체의 정책을 중의衆議에 붙인다는 것은 무리이다. 이것은 백성들 스스로가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창의적인 건국방책은 그냥 전문적인 성격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비상한 대 지혜를 요구하는 난제 중의 난제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경세가를 구하기 힘든 지금의 처지에서 모든 정책을 중의에 붙여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갓된 의견이며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이런 언동이 악의는 없다고 하더라도 경세적 식견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다. 이런 언동을 일삼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의 불안을 조장하게 되고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영합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실로 한 조각의 애국심과 허심탄회한 양심을 가졌다면 이 점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건국정치를 전제로 삼으면서 경세적 식견과 한갓된 의견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이 경세적인 것인가 아니면 시대적인 흐름이나 경향에 영합하는 호기심인가를 냉정하게 성찰해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이 아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말이 자신의 마음이 가지는 존엄성까지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도의정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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