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서문
오랜 세월 무시된 정의로운 사유
─거듭 파고들 가치가 있는 지식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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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에 걸친 도서관 순례 경험으로 나는 도서관 구경이 서점 구경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이완의 청핀誠品서점은 아주 훌륭한 서점이라 구경하다 보면 아주 좋은 수확과 경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청핀서점이라도 누구도 사지 않을 것이 분명한 책을 계속 서가에 두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은 그것이 가능하다. 크고 훌륭한 도서관의 서가에는 누가 흥미를 가질지 모르는 책이 가득 꽂힌 채 우리와 우연히 만날 날을 기다린다. 누가 흥미를 가질지 모를 책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기이한 광경이다.
1987년, 나는 처음으로 출국하여 미국의 하버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바로 그해에 하버드대학교의 장서량은 총 1천만 권을 돌파했다. 입학 등록을 할 때 받은 신입생 안내서에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1천만 권이라. 정말 대단한 숫자였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1천만 권의 책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버드대학교의 장서 1천만 권은 아흔아홉 곳의 도서관에 나뉘어 소장되어 있습니다.” 신입생 안내서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었다. 내가 이 아흔아홉 곳의 도서관을 다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연히 나는 가장 큰 도서관부터 순례를 시작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장서도 가장 많은 도서관은 와이드너 도서관으로 3백만 권에 가까운 장서가 소장되어 있었다. 이 도서관은 찾기도 쉬웠다. 언제든지 캠퍼스에 들어오면 존 하버드 동상 외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사진을 찍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이 도서관은 아주 웅장한 정사각형 건물로 앞에는 폭이 넓은 흰 돌로 된 계단이 있었다. 내가 하버드에 다닐 때만 해도 누구든지 이 계단을 걸어 육중한 문을 밀고 도서관에 들어가 우아하고 책의 향기로 가득한 열람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입구에서 신분증을 검사하기 때문에 하버드대학교의 학생이나 교수, 교직원만 출입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영화 『타이타닉』이 흥행에 크게 성공한 뒤에 일어났다. 『타이타닉』은 거의 모든 장면을 배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하버드대학교의 도서관이 나올 리 없다. 이 영화와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어떤 역사 사실로 연결되었다. 와이드너 도서관은 타이태닉 호가 바다에 침몰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와이드너 도서관의 공식 명칭은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 기념 도서관’이다. 와이드너는 1907년에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뉴욕 부호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30세가 채 안 된 나이에 타이태닉 호에 올랐다가 바다에 수장되는 변을 당하고 말았다. 전해지는 바로 그는 런던에 가서 고서를 구하기 위해 타이태닉 호에 승선했고, 사망한 그의 손에는 그 여행의 목표였던 데카르트의 『성찰』 초판본이 들려 있었다.
애서가이자 장서가였던 와이드너는 자신의 장서 일부를 모교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이었다. 아들이 뜻밖의 재난을 당하자 극도로 상심한 그의 부모는 절망 속에서도 아들이 원했던 방식으로 그를 기념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에 아들의 장서를 기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거액의 기금을 기부하여 하버드대학교에 가장 웅장하고 눈에 잘 띄는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이 도서관 서가의 길이는 총 50마일(약 8만 미터)이 넘었고 소장할 수 있는 책은 3백만 권이 넘었다.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되고 이런 이야기가 수많은 매체에 보도되자 이 도서관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와이드너 도서관은 1925년에 준공되었다. 이때는 마침 하버드대학교가 빠르게 확장하고 성장할 때였다. 그래서인지 놀랍게도 길이 50마일에 3백만 권의 장서를 소장할 수 있는 이 도서관의 서가는 건립된 지 12년 만에 다 채워졌다. 내가 1987년에 처음 와이드너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 이곳의 서가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3백만 권의 장서는 어떤 모습일까? 와이드너 도서관에 들어서기 전에 나는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하지만 3백만 권이라는 장서의 의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내게 엄청난 놀라움을 주었다. 와이드너 도서관의 주요 서고는 총 8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층마다 위아래로 A, B 두 줄로 서가가 있었다. 처음으로 서고 안에 들어갔을 때, 나는 3층 A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서고에는 기본적으로 자연광이 없었고 주요 통로에는 전등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각 서가의 맨 앞에 아주 오래된 스위치가 있어서 이 스위치를 위로 올려 몇 개의 전구로 서가의 불을 밝혔다.
나는 단숨에 5층 A까지 구경했다. 서가 한 열에 들어서면 맨 아래 칸에서 맨 위 칸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 많은 책 가운데 내가 아는 책이 단 한 권도 없었다.
내가 ‘안다’라고 한 것은 최소한의 기준으로, 심지어 그 책의 내용조차 모르고 그저 ‘그 책이 어떤 문자로 쓰인 것인지를 안다.’는 의미였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알아볼 수 있는 언어는 적지 않다. 예컨대 나는 한국어를 알지 못하지만 자모의 형태를 보고 한국어로 된 책임은 알아볼 수 있다. 이런 기준으로 내가 알아볼 수 있었던 문자는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 한국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당시 막 배우기 시작한 산스크리트어 등이었다.
하지만 나는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그 서가에서 어떤 문자로 쓰였는지 알아볼 수 있는 책을 단 한 권도 찾지 못했다. 몸을 돌리자 등 뒤에도 가득 서가가 펼쳐져 있었다. 이번에는 좀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보았다. 맨 아래 칸에서 맨 위 칸까지, 다시 맨 위 칸에서 맨 아래 칸까지 살펴봤지만 이번에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책은 없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두 개의 벽에만 수천 권의 책이 꽂혀 있고, 그것도 나와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빈곤한 내 일생을 통틀어 흡수할 기회가 전혀 없을 지식이 담겨 있었다. 당시 내 나이가 겨우 스물둘이기는 했으나 설사 내가 백 살을 산다 해도 이 책들의 문자를 배울 가능성은 희박했다. 여기, 바로 여기에, 나와 절연된 인류 문명의 유산이 우뚝 서 있었다.
나는 지식의 세계에서 내가 너무나도 보잘것없이 작은 존재임을 실감했다. 친구 하나가 내게 웃으면서 말했다.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아? 세상은 너무나 크고, 우리가 가질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것은 너무나 많아.” 이런 이치는 나도 물론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아름다운 것에 대해 우리는 기본적인 호기심과 충동을 일으키게 된다는 또 다른 이치도 알고 있었으며 굳게 믿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호기심과 충동이 없다면 인생은 뭔가 이상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이 책 속에 무수히 숨어 우리와의 접촉을 기다리고 있다. 탐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알 기회가 없을 것이다. 책으로 뒤덮인 그 두 개의 벽 앞에서 나는 속으로 그렇게 경탄하고 있었다. 이 모든 책 하나하나를 만지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나는 평생 나 자신이 얼마나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스치고 지나가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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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 가슴 졸이며 남몰래 『자본론』을 읽으면서 나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요원하고 환상에 가까운 꿈을 하나 갖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언젠가는 타이완이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마르크스를 읽을 수 있는 사회가 되리라는 꿈이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더 이상 좌파와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를 독사나 맹수로 보지 않을 것이고, 수많은 젊은이가 공평과 정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열정에 감동할 것이며, 학문과 연구를 좋아하는 젊은이라면 깊고 복잡한 사회와 경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유에 이끌리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타이완의 새로운 세대는 좀 더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것이었다.
20여 년이 지나 타이완은 이미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마르크스를 읽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상상했던 것의 일부는 여전히 요원하고 신기루 같은 상태로 남아 있다. 미국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들어가 ‘Karl Marx’(카를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쳐 봤더니 3,730개 항목이 나왔다. ‘Marx Capital’이라는 단어를 쳤더니 이번에는 8,927개 항목이 나왔다. 가장 놀라운 것은 ‘Das Kapital’이라는 단어를 쳤을 때는 11,765개의 항목이 떴다는 것이다. 다시 일본 아마존에 들어가 ‘資本論’(자본론)이라고 치자 2,144개의 검색 항목이 떴고 마르크스의 이름을 쳤더니 5,568개의 검색 항목이 떴다.
그렇다면 타이완의 인터넷 서점 ‘보커라이’博客來는 어떨까? ‘자본론’ 검색에 겨우 70개 항목이 나타났다. 하지만 앞의 두 페이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가운데 번체자로 된 중국어판 『자본론』은 한 권도 없고 약 20개 정도만이 진정으로 『자본론』과 관련된 항목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도서 소개문 안에 ‘자본’資本과 ‘론’論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경우였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일까? 오늘날의 타이완 사회는 과거에 우리가 누릴 수 없었던 지식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이 지식의 보고를 철저히 무시하고 아무런 흥미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마르크스를 신이나 영웅처럼 떠받들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사실 세계의 수많은 공산 국가에서 오랫동안 마르크스를 진리와 권위의 성전에 모셔 놓는 바람에, 우리가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마르크스의 저작으로부터 지혜를 흡수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장 분명한 장애와 피해가 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그런 방식으로 읽고, 나중에 또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나는 『자본론』이 진실로 반복해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사회 현실과 정의의 이상을 사유하는 데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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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나는 ‘청핀 강좌’에 ‘현대고전 정독’ 과정을 개설했다. ‘현대고전’이란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공간으로든 가치관의 면에서든 현대 세계의 모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저작을 말한다. 심지어 우리는 이 저작들이 오늘날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고, 왜 이렇게 느껴야 하는지를 결정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상과 관념이라는 말은 얼핏 추상적이고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면 가장 거대한 변화는 종종 사상과 관념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은 거의 모두 과거의 사상과 관념이 변화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현대고전’은 사상과 관념을 제시한 책이다. 이런 사상과 관념이 책을 통해,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신념과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행위를 만들어 냈다. ‘현대고전’을 읽는 것은 현대 생활, 즉 오늘날 우리 자신의 삶을 만든 사상과 관념의 근원을 이해하는 것이다. 좋든 싫든 오늘날의 세계, 오늘날의 생활은 상당 부분 19~20세기 서양의 사상과 관념에 기대어 이루어졌다. 이러한 세계와 조류를 비판하고 변화시키려면 먼저 현실의 근원을 깊이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현대고전 정독’은 마르크스와 다윈, 프로이트의 작품부터 시작했다. 이 세 사람의 사상은 유럽인의 세계관을 크게 변화시켰고, 더 나아가 유럽 세력의 확장을 통해 세계 전체를 바꾸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마르크스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변화시켰고, 다윈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켰으며, 프로이트는 인간과 자아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이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의 사상의 핵심이다. 우리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는 다윈에 대한 책 『종의 기원을 읽다』와 프로이트에 대한 책 『꿈의 해석을 읽다』를 이미 출간했다. 그리고 이번에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로써 내 마음속의 핵심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19세기 3부작’을 완성하게 된 셈이다. 이 세 권의 책은 서로 연결되니 관심 있는 독자 여러분은 참조하면서 읽어도 좋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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