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서는 안 될 배였다.
일본에서 18년이나 운항된 낡은 배였고 무분별한 규제 완화를 통해 수입된 선박이었다. 수리는 늘 땜빵으로 이뤄졌고 무리한 개조와 증축이 배의 무게중심을 높여놓았다.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배의 균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평형수가 상당량 빠져 있었다. 선장은 비정규직이었고 일등 항해사와 조기장은 출항 전날 채용된 직원이었다. 선사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출항 직전 선박직 선원들이 출항을 거부하며 애걸복걸했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선장의 상태도 평소와 달리 불안해 보였다. 세월호는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배였고 국내 이천 톤급 이상 여객선을 통틀어 유일하게 유사시 국정원에 우선 보고를 해야 하는 배였다. 안개가 많이 낀 밤이었다. 다른 여객선의 출항이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그날 밤 인천항을 출발한 배도 세월호가 유일했다. 다음날 배는 침몰했다. 예견된 사고였다고,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배였다고 모두가 말했지만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해경 123정은 기울어가는 배 주위를 돌기만 하다가 딱 한 번 접안을 하고 그들을 옮겨태웠다. 승객들의 출입구가 있는 선미로는 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어 몰랐다고는 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원천적으로 통제된 선수 쪽 조타실이었다. 아니, 그마저도 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났다. 선원임을 알았고, 그들은 족집게처럼 476명이 타고 있는 배에서 선원들만 빼내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접안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또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선장과 선원들, 또 해경은 탈출하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배를 빠져나온 승객들만이 가까스로 헬기와 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해 구조가 아닌 탈출이었다. 해경은 끝내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의자로 창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의 외침도 외면했다. 그리고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바다는 잔잔했다.
그래서 더, 잔혹했다.
보다 잔혹한 일은 그뒤에 일어났다. 배가 침몰한 상황에서,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그 상황에서도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에 집결한 수백 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애원하고 오열해도 해경은 구조를 하지 않았다. 아니, 하는 척만 했다. 항의하는 유가족들에게는 거짓말을 둘러댔다. 결코 사실이어선 안 될, 괴담이라 치부되던 소문들이 대부분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다. 언론은 종일 가능성과 희망을 떠들었다. 에어포켓이며 골든타임,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속보들이 매체를 장악했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구조대원 726명과 함정 261척, 항공기 35대가 집중 투입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작전을 벌인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거짓말이었다. 구조는 없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장을 통제한 해경은 적극적으로 골든타임의 구조를 가로막았다. 해군과 119구조단, 각지에서 모여든 민간잠수사들…… 어느 누구도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 수 없었다. 심지어 해군참모총장이 두 번이나 명령을 내린 통영함도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이는 감히 해경이 저지할 사안이 아니었다. 구조를 전담한 것은 한 민간업체였다. 선사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런 일은 민간업체가 더 전문적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그렇게 골든타임이 지나갔다. 그리고 더는, 누구도 구조될 가능성이 사라진 어느 날(한 달 후) 논란이 불거지자 그 민간업체의 이사가 TV에 나와 말했다. 우리는 사실 구조업체가 아니라고. 우리는 인양을 하러 온 업체라고. 그가 말했다. 그럼 구조는 누가 맡은 거냐는 질문에
구조는 국가의 업무죠.
라는, 너무나 당연한 답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럼 여태 국가는 무얼 했단 말인가? 가라앉은 배보다 더 무거운 의혹이 우리를 짓눌렀다.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은 게 없었다. AIS 항적이며, 교신기록이며, CCTV며…… 아무튼 침몰한 배에 관련된 기록들은 없거나, 불분명하거나, 조작되거나, 공개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아무도 그 의문에 답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구조는 국가의 의무였으므로 국가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잔혹보다 끔찍한 의혹이었다. 악마를 보았다고 우리는 외쳤고 미안하다고, 잊지 않겠다고 울며 조문했다. 이것이 과연 나라인가? 기울어가는 배의 갑판에 모두가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일찌감치
제일 먼저 배를 빠져나간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였다.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라는 말로 일찍 못을 박았고 이 말은 감사원의 입을 통해 또 국정조사에 임한 대통령 비서실장의 입을 통해 수차례 언급되었다. 아니, 그보다 청와대는 TV 뉴스를 보고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안전행정부 상황실도 국정원도 YTN뉴스를 보고 사고를 알았다고 했다. 같은 시각 나는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으러 갔다가 뉴스를 보았는데, 말인즉슨 나와 세탁소 김씨와 김씨의 부인인 안씨와 정부가 동급이란 얘기였다. 국정원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것은
실은 매우 이상한 거짓말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대통령은 모든 걸 바꾸겠다고 했고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치 결백(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아니었다는)이라도 증명하듯 최종 책임이 아닌 최우선 책임을 져야 할 해경을 해체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독단적이고 강렬한 처벌이었다. 그리고 울었다. 막 울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지만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어쨌거나 대통령이 사과를 한 이상 이 참혹한 사고의 진상이 곧 규명될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선거에 출마한 여당 후보들의 외침도 한결같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울먹이며 절을 했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본문 중 일부)
-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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