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문학사상사│2008
근대 일본에서는 ‘일본인론’, ‘일본문화론’이 언제나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이 유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단 두 번뿐이었다. 처음은 다이쇼大正(1911~1925)시대인데, 그것은 일본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긴장을 풀면서 ‘일등국’이 되었다고 생각한 시기였다. 문학에서는 하이쿠俳句(5ㆍ7ㆍ5의 17음音 형식으로 이루어진 일본 고유의 단시형短詩形), 정원에서는 차경借景(먼 산 따위의 경치를 정원의 일부로 이용하는 일)이나 축경縮景(자연경관을 본떠 정원 안에 꾸미는 것), 고산수枯山水(물을 쓰지 않고 지형地形으로만 산수를 표현한 정원으로 주로 돌을 사용하지만 모래로 물을 표현하기도 한다), 나아가 다실, 꽃꽂이 같은 것이 일본의 ‘전통문화’로 자리 매김한 것도 이 시기였다. 메이지시대에는 이런 것들을 부정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음으로 일본문화론이 유행한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이다. 전자제품이나 소형차 제조 분야에서 미국을 앞질러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o.1』이라는 책이 화제에 오른 무렵이다. 그때까지는 구미와 비교하며 일본의 전근대성을 비판하는 것이 지배적인 담론이었지만,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일본의 성공을 전근대의 전통과 결부시키려는 논의가 급속하게 등장했다. ‘일본적 경영’을 비롯하여 그때까지 부정해 왔던 제도와 관습이 칭송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한 일본문화론 가운데 좀 괴이쩍어 보이는 책이 있었다. 그런 만큼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한국의 문예비평가 이어령이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그것이다. 일본문화의 특징은 ‘축소’ 지향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우선 일본인이 ‘난쟁이’, 즉 ‘작은 거인’을 좋아한다는 점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이어령은 축소 지향이라는 특징을 문학 분야의 와카나 하이쿠, 정원의 차경이나 축경, 고산수, 나아가 다실, 꽃꽂이, 인형 같은 ‘전통문화’에서 찾아낼 뿐만 아니라 현대 일본의 하이테크가 이루어 내는 소형화에서도 발견한다.
이것은 일본의 문화를 비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일본인론과 일본문화론의 틀을 넘어서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일본의 기업이 소형차나 컴퓨터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축소’ 지향 때문이 아니라 대형으로는 도저히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형화’에 관해 한국의 기업이 일본을 추월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축소 지향을 일본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에게 충격을 준 까닭은 일본의 특성을 서양이나 중국과의 차이점을 통해 이끌어 내는 담론이 지배적이었던 시기에 그것을 한국과의 차이를 통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나는 일본인론과 일본문화론 같은 글을 쓴 적은 없었지만, 사실 한국과 비교하여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이 책은 나의 사고방식을 바꾸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1980년대 말에 집필한 『일본정신분석』을 일본과 한국의 비교로 시작했다. 또한 1996년에 프랑스의 한 잡지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일본의 정원에 대한 글을 쓸 때, 이어령이 언급한 일본 정원에 관한 논의를 바탕으로 삼았다. 그는 일본 정원에서 특징적인 차경이나 축경, 고산수 등을 지극히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축소’지향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일본의 축소 지향이 옛날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16세기 이후 일본이 대항해시대, 즉 근대의 세계시장으로 편입하는 것을 계기로 촉발되어 생겨난 것이다.
다도를 중심으로 다실, 정원, 꽃꽂이, 회화 등을 통합한 센리큐千利休( *1522~1591. 일본 전국시대의 다도茶道 대성자)가 그 전형일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중세의 세계가 아니라 16세기에 널리 퍼진 해외무역에 의해 융성해진 자치도시(사카이堺)의 상인계급을 대표했다. 그의 다실은 좁고 간소한 방과 출입구로 종전의 신분이나 전제권력에 의한 고유한 사치스러움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또한 다실은 신흥시민의 정치적 협의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센리큐는 ‘축소’에 의해 현실의 정치적 권력을 뛰어넘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편 이 시대에 시작된 확장주의를 대표하는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그것이 명나라를 정복한다는 말도 안 되는 팽창주의로 나타났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모모야마성桃山城의 호화찬란한 양식에서도 확장주의를 찾아볼 수 있다. 센리큐의 극단적인 축소 지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문화적 대항이었고, 그 결과 그는 자살을 강요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문화에 ‘축소’ 지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역사적인 것이다. 그 점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비역사적으로 존재하는 태도로 여겨질 것이다. 이어령의 고찰도 그러한 한계를 안고 있다. 나는 그 점을 비판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어 볼 기회가 있어 다시 펼쳐 보니, 새삼스레 그의 고찰이 매우 예견에 넘치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일본인은 ‘축소할’ 때에는 독창적이고 훌륭하지만 ‘확장’하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아 파탄을 맞이하고 만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메이지 이후의 일본 국가가 그 예다. 패전 후 일본인은 ‘축소’로 독창성을 실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확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의 짐작은 들어맞았다.
1990년 이후 정체기에 들어섰는데도 일본인은 ‘확장’의 태도를 바꿀 수 없는 상태 그대로다. 한편 ‘축소’의 독창성도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허술한 팽창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쓰루미 슌스케가 “일본은 일류의 삼류국이 되기를 추구하면 된다.”고 한 말이 인상에 남는다. 이 말을 들으니 일본문화의 본질은 ‘난쟁이’ 또는 ‘작은 거인’인 데 있다는 이어령의 말이 떠오른다. 말하건대 옛날 일본의 거품경제시대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지금도 읽어 볼 만한 책이다.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사상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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