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다
몇 년 전 뉴욕에서 어떤 택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그 운전기사는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이탈리아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이탈리아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고, 그 수가얼마 되지 않다는 것과 이탈리아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내 대답에 놀라워했다.
그러더니 그는 우리의 적은 누구냐고 물었다. 내가 <실례지만, 뭐라고 하셨나요?>라고 되묻자, 그는 이탈리아가 수세기를 거치며 어느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영토 분쟁, 민족적인 대립, 끊임없는 국경 침략 등으로 싸웠는지 궁금하다며 참을성 있게 설명하였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를 죽이고 또 우리가 죽이는 역사적인 적들이 있을 것 아니냐며 끈덕지게 물어 왔다. 나는 되풀이해서 우리에겐 그런 적들이 없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마지막 전쟁은 반세기 훨씬 이전에 일어났으며, 더욱이 하나의 적과 전쟁을 시작해서 다른 적과 전쟁을 마쳤다고 말했다.
그는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어떻게 적이 없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나는 우리 이탈리아인의 느긋한 평화주의에 대한 보상으로 그에게 2달러의 팁을 남기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대답했어야 할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적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에게 외부의 적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 적들이 누구인지 의견의 합일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 싸워왔기 때문이다. 피사는 루카와 맞서고, 궬피당은 기벨리니당과 맞서고, 북부는 남부와 맞서고, 파시스트들은 파르티잔들과 맞서고, 마피아는 국가와 맞서 싸운다. 그리고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사법부와 싸운다. 그러는 동안 로마노 프로디가 이끌었던 두 차례의 정권이 여전히 몰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리어 애석한 일이다. 만약 그러했다면, 나는 그 택시 기사에게 아군의 포격 때문에 전쟁에서 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의 대화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나는 지난 60년간 진정한 적들을 두지 않았던 것이야 말로 이탈리아가 지닌 불행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의 통일은 오스트리아가, 다시 말해 시인 조반니 베르케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락부락하고 불쾌한 알레마니족>인 오스트리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솔리니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불완전한 승리가, 도갈리 전투와 아두와 전투에서 에티오피아에게 당한 굴욕이, 그리고 유대인 금권 정치가 이탈리아에 부당한 제재를 가했다고 주장했고 이들에 대한 복수를 부추기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악의 제국>이 사라지고 거대한 소비에트 적이 해체되었을 때, 미국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미국은 빈 라덴이 나타나기 전까지 자국의 정체성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했다. 급기야 빈 라덴은 소비에트 연방에 대항하며 얻은 혜택에 감사해하며 그의 자비로운 손을 미국에 내밀었고, 이로써 부시가 국가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자신의 힘까지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적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였다.
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치 체계를 측정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그것에 맞서는 장애물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적이 없다면 만들어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는 폭넓은 유연성을 지니는데, 베로나의 스킨헤드족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자신들을 식별하기 위해 그룹에 속하지 않는 자라면 누구든지 적으로 겨냥한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를 위협하는 적을 거의 자연적인 현상의 측면에서 규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 적을 만들어 내서 악마로 만드는 과정이다.
고대 로마의 키케로가『카틸리나 탄핵In Catilinam』에서 적의 이미지를 기술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 연설문은 루키우스 카틸리나의 음모를 밝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연설에서는 적의 이미지를 그렸는데, 원로원 의원들 앞에서 카틸리나의 친구들을 묘사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그들 무리에 비난의 손가락질을 보냈다.
그들은 축제로 밤을 보내고, 음란한 여자들과 뒤엉켜 있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배가 잔뜩 부르게 먹고, 머리에 화관을 쓰고, 온몸에 기름을 바르고, 성교로 몸이 쇠약해졌습니다. 그리고 순진한 백성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불태워야 한다는 말을 내뱉습니다. (…) 그들은 여러분의 눈앞에 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데가 없고 매끈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수염을 잘 다듬어 길렀으며 긴 소매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튜닉을 입고 토가가 아닌 베일을 휘감은…. 이처럼 우아하고 세련된 이 <젊은이들>은 춤과 노래,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단도를 휘두르고 독극물을 투입하는 요령 또한 배웠습니다. (연설문 Ⅱ, 1~10)
키케로의 도덕관은 이후에 등장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도들이 기독교인들과는 달리 서커스와 극장, 원형 경기장을 드나들고 시끌벅적한 축제를 벌인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난했다. 언제나 적들은 우리와 <다르고>, 우리와는 다른 관습에 따라 행동하는 법이다.
다름의 완벽한 전형은 외국인이다. 이미 로마 시대의 부조에도 이방인들은 수염이 텁수룩한 들창코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이미 알려진 대로, 이방인barbarian 이라는 말은 언어 능력의 결여, 즉 사고의 결함을 암시한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우리의 적이 되는 대상은 (미개인들의 경우처럼) 우리를 직접 위협하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협하지 않을지라도 누군가에 의해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자들이다. 따라서 우리와 다르다는 것은 그들의 위협적인 태도에서 강조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다름 그 자체가 우리가 찾는 위협의 신호인 것이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유대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에게 신성한 모든 것은 그들에게 불경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불결한 것은 그들에게 허용된 것이다.> 이 말은 개구리를 먹는 프랑스인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멸시와, 마늘을 듬뿍 사용하는 이탈리아인들을 향한 독일인들의 비난을 떠올리게 한다. 여하튼 유대인들은 <이상한> 자들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빵 반죽에 효모를 섞지 않고, 일곱 번째 날에는 쉬고, 그들끼리만 결혼하고, 위생이나 신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다름을 보여 주기> 위해 할례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매장하고,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 그들이 실제로 따르는 일부 풍습(할례, 안식일)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면, 사실적인 요소에 전설적인 이야기들(그들은 당나귀의 형상을 신성시하고 자신의 부모와 자식, 형제, 조국, 그리고 신들을 경시한다)을 덧붙이면서 다른 면이 더욱 강조될 수 있다.
소小플리니우스는 기독교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보다는 선행을 실천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들을 고발할 만한 특정한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황제에게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명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거부하는 완고함은 그들의 이질성을 확고히 한다.
이후 민족 간의 접촉이 확대되자 적은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다. 적은 외부에 존재하고 멀리서 그의 이상함을 드러내는 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외국인 이주자라고 부르는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와 다르게 행동하고 우리말을 어설프게 사용한다. 그 적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에서 교활한 사기꾼이자 자기 친구의 할머니도 유혹할 정도로 뻔뻔하고 음탕한 그리스인으로 나온다.
흑인은 피부색 때문에 어디서든 다르게 보인다. 1798년에 발간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미국 초판의 <흑인> 항목에서 다음을 읽을 수 있다.
흑인의 피부색은 다양한 명암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얼굴의 이목구비에서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둥근 뺨,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 약간 높은 이마, 짧고 펑퍼짐한 코, 두툼한 입술, 작은 귀, 추하고 가지런하지 못한 윤곽이 그들 외모의 특징이다. 흑인 여자들은 축 처진 허릿살과,뒤에서 보면 마치 말안장처럼 보이는 아주 큼지막한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 가장 악명 높은 습성들은 이 불행한 인종의 운명인 듯하다. 나태, 배반, 복수, 잔학, 후안무치, 절도, 거짓, 외설, 방탕, 불결과 방종 등의 악습으로 인해 자연법의 원리가 소멸되었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동정심도 느끼지 못하며 멋대로 내버려 두면 인간 타락의 끔찍한 전형이 된다.
흑인은 추하다. 아름다움은 선함과 같은 것이기에(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아름답고 선한 것) 적은 추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가진 본질적인 특성들 중 하나는 중세 시대에 <인테그리타스integritas>라고 부른 <온전함>이었다. 다시 말해, 어떤 생물 종의 평균적인 대표가 되는 데에 요구되는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서, 팔다리나 눈을 잃었거나 평균 키보다 작은 신장이거나<비인간적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와 난쟁이 미메를 적과 동일한 모델로 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5세기 비잔틴 제국의 역사가 파니움의 프리스쿠스는 훈족의 왕 아틸라가 넓은 흉부, 큰 머리, 작은 눈, 회색빛의 가는 수염, 납작코, 그리고 거무스레한 피부색(결정적인 특징)에 키가 작은 남자라고 묘사하였다. 그런데 아틸라의 얼굴이 그로부터 5세기 이후의 연대기 작가 라울 글라베르가 표현한 악마의 생김새와 어쩌면 이리도 닮을 수 있는지 참으로 의문이다. <핼쑥한 얼굴, 시커먼 눈, 주름진 이마, 납작코, 튀어나온 입, 부푼 입술, 뾰족하고 야윈 턱, 염소수염, 털이 많고 날카로운 귀, 부스스한 직모의 머리칼, 송곳니, 길쭉한 두개골, 그리고 가느다란 목과 돌출된 흉부, 곱사등에 키는 그리 크지 않다(『연대기』, Ⅴ, 2).>
신성 로마 제국 오토 1세 황제의 사절로 968년 비잔틴 제국으로 파견된 리우트프란드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문명을 맞닥뜨렸고, 그가 보기에 비잔틴 제국의 황제에겐<인테그리타스>가 없었다.
나는 기괴한 남자 니케포루스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커다란 머리는 피그미족처럼 보였고 작은 눈은 두더지 같은 인상을 주었다. 희끗희끗한 짧은 수염이 촘촘하고 넓게 퍼진 얼굴은 추했고 목은 아주 길었다. (…) <당신이 한밤중에 길을 가다가 마주치고 싶지 않을> 에티오피아인의 피부색, 두툼한 뱃살, 마른 엉덩이, 작은 키에 비해 너무 긴 허벅지, 짧은 다리, 평발, 그리고 농부나 입을 만한 너덜거리는 옷은 너무 오래되어서 냄새가 나고 색이 바랬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주재 대사 보고서」)
악취. 적은 언제나 악취를 풍긴다. 제1차 세계 대전 초(1915년)에 프랑스 심리학자 에드가 베리용이 『독일 민족의 과도한 대변량La Polychésie de la race allemande』에서 일반적으로 독일인은 프랑스인보다 더 많은 양과 더 지독한 냄새의 대변을 배출한다고 썼듯이 말이다. 15세기 도미니코회 수도사 펠릭스 파브리의 『예루살렘 성지 순례와 아라비아, 이집트 여행Evagatorium in Terrae sanctae, Arabiae et Egypti peregrinationem』에 의하면 비잔틴인과 마찬가지로 사라센 사람들도 악취를 풍겼다.
사라센 사람들은 어떤 지독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끊임없이 갖가지 세정식을 치른다. 우리는 냄새가 나지 않기에 그들은 우리가 그들처럼 씻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더 냄새가 심한 유대인들에게는 관대하지 않다. (…) 그러므로 악취를 풍기는 사라센인들은 우리처럼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과 같이 있기를 좋아한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일어났던 19세기에 이탈리아 풍자시인 주세페 주스티는 오스트리아인들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고 했다. 그는 밀라노의 산탐브로조 성당을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을 시로 옮겼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은 군인들로 가득했습니다.
보헤미아와 크로아티아 사람들처럼,
북쪽에서 온 군인들은
포도밭 서리를 망보러 이곳에 모였지요.
(…)
그 무리 가운데 있던 나는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숨 막힐 듯 더운 공기와 더러운 입김,
역겨움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소명을 가진 당신은 느끼지 못하실 테지요.
날 용서하세요, 각하,
하느님의 아름다운 그 집에서
중앙 제단을 밝히는 양초까지도
동물성 기름의 악취가 나는 듯합니다.
(「산탐브로조Sant’Ambrogio」, 1845)
(중략)
이따금 적은 하위 계급에 속하기 때문에 색다르고 추악한 인물로 보인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테르시테스(<휘어진 다리에 한쪽 발은 절름발이고, 굽은 어깨는 가슴 쪽으로 휘었으며, 뾰족한 머리에는 솜털 같은 머리털이 듬성듬성 나 있다.>, 『일리아스』, Ⅱ, 212)는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보다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이다. 따라서 테르시테스는 그들을 시기하였다.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소설 『사랑의 학교Cuore』에 나오는 말썽꾸러기 프란티는 테르시테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테르시테스가 오디세우스에게 피가 나도록 맞았다면, 프란티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된다.
그 옆에는 건방지고 심술궂은 얼굴을 가진 프란티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프란티는 이미 다른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 데로시가 국왕의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프란티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증오합니다. 프란티는 못돼먹은 녀석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혼내려고 학교에 오면 프란티는 즐거워합니다. 누군가가 울 때는 웃습니다. 가로네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덩치가 작은 꼬마 벽돌공은 때립니다. 한쪽 팔을 못 쓰는 크로시를 괴롭히고, 모두가 존경하는 프레코시도 놀려 댑니다. 심지어 로베티까지 조롱합니다. 어린이를 구하느라 목발을 짚게 된 3학년 아이 말입니다. 자기보다 약한 아이들에게는 모두 시비를 걸고, 싸울 때는 무지막지하게 덤벼들어 상처를 입히려고 합니다. 방수포 모자의 챙 아래에 감추어진 좁은 이마와 음울한 눈에는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녀석은 무서울 것이 없고, 선생님 앞에서도 웃어 댑니다. 틈만 나면 도둑질을 하고 뻔뻔스러운 얼굴로 시치미를 떼며, 늘 누군가와 싸움을 벌입니다. 옆 친구들을 찌르기 위해 학교에 핀을 가지고 다니며, 자기 옷의 단추를 뜯고 다른 아이의 단추도 뜯어 그것을 가지고 놉니다. 그리고 책가방과 공책, 책들은 모두 구겨지고 너덜너덜하고 더럽습니다. 톱니처럼 들쑥날쑥한 자, 질겅질겅 씹어 놓은 연필, 물어뜯은 손톱, 그리고 옷은 싸우면서 생긴 얼룩과 찢긴 자국투성이입니다. (…) 가끔 선생님은 녀석의 나쁜 짓을 못 본 척하시는데, 그러면 그 애는 더 못된 짓을 저지릅니다. 선생님이 좋은 말로 타이르면 시시덕거렸고 심한 말로 꾸중하면 우는 척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웃었습니다. (E. 데 아미치스, 『사랑의 학교』, 10월 25일 / 1월 21일)
선천적 범죄자와 매춘부는 그들의 사회적 위치로 인해 분명히 추함의 본보기가 된다. 그런데 매춘부는 성적인 적대감, 또는 성차별이라는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통치하고 글을 쓰는, 혹은 글을 쓰는 것으로 통치하는 남자는 아주 일찍부터 여자를 적으로 묘사했으며, 사람들이 천사 같은 여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오히려 위대한 문학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창조물에 의해 지배되었지만, 대중의 상상으로 이뤄진 풍자의 세계는 고대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여자를 악마로 만들었다. 여기에서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의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노파여, 당신은 300명의 집정관을 거치며 살아왔구나! 이제 그대에게 남은 건 세 가닥의 머리털과 네 개의 치아뿐이고 매미의 가슴, 개미의 다리와 혈색을 가지고 있소. 당신의 드레스보다 더 주름이 많은 이마와 거미줄 같은 젖가슴으로 돌아다니는구려. (…) 당신의 시력은 아침 부엉이의 것과 같고, 몸에선 숫염소의 악취를 풍기고 있소. 그대의 엉덩이는 야윈 오리의 궁둥이와 같으며, (…) 장례식의 횃불만이 그 음부를 뚫고 들어갈 수 있소.
그렇다면 다음의 글은 과연 누가 썼을까?
여자는 불완전한 동물이고, 수많은 불쾌한 격정에 흔들리며, 논리적인 사고는 고사하고 생각하는 것도 끔찍하게 싫어한다. (…) 그녀보다 깨끗하지 않은 동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뒹굴고 있는 돼지조차도 더 깨끗하다. 만약 누구든지 이를 부인하려 한다면, 여자들을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비밀 장소들을 찾아보시라. 수치심을 느낀 여자들은 불필요한 익살을 부려 끔찍한 도구들을 감춘다.
비성직자이고 향락 생활을 경험한 조반니 보카치오가 소설집 『까마귀Corbaccio』에서 위와 같은 구절을 썼다. 그렇다면 중세의 도덕주의자는 바오로 사도의 신념(만약 그러한 유혹을 피할 수 없다면, 육체의 즐거움을 아예 모르는 게 나을 것입니다)을 강조하기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써야 했을지 상상해 보자. 10세기에 살았던 클뤼니 수도원의 오도 수도원장은 다음을 상기시켰다.
육체의 아름다움은 온전히 피부에 있다. 만약 남자들이 투시해서 안을 들여다보는 보이오티아 스라소니의 능력을 갖추고서 피부 아래를 본다면, 여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일 것이다. 여성의 매력은 가래, 피, 체액, 담즙에 불과할 뿐이다. 콧구멍과 목구멍, 배에다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어디에나 오물투성이다. (…) 우리는 토사물이나 대변이 손가락 끝에라도 닿을까 호들갑을 떠는데, 어떻게 똥 한 자루나 다름없는 여자를 안으려 하겠는가!
근대 문명의 걸작인 마녀 만들기로 접어들면, 지금까지의 여성 혐오는 그저 <평범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녀의 존재는 분명히 고대 시대에도 알려졌다. 마녀는 호라티우스의 『풍자시Sermones』와 아풀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Asinus aureus』에서도 언급되었는데, 호라티우스는 <나는 내 눈으로 직접 카니디아를 보았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맨발에다 산발한 머리카락의 그 마녀는 사가나와 함께 울부짖었다. 둘 다 창백한 얼굴빛은 무시무시한 인상을 풍겼다(『풍자시』, 1권, no. 8)>고 썼다. 하지만 중세 시대와 마찬가지로, 고대에서 마녀나 마법사들은 대부분 민간 신앙과 관련된 것이었고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일화로 여겼다. 따라서 호라티우스가 살던 시대의 로마는 마녀들을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중세 시대에도 마법은 여전히 자기 암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마녀는 자신 스스로 마녀라고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9세기에 쓰인 『카논 에피스코피Canon Episcopi』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환영과 유혹에 이끌려 사탄에 귀의한 몇몇 타락한 여자들은 디아나 여신을 따르는 수많은 여자 무리와 어울려 어떤 짐승들을 타고 다닌다고 믿으며 주장한다. (…) 사제들은 신의 백성에게 이것은 모두 거짓이고, 신자들의 정신에 깃든 그러한 망상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악마의 짓임을 거듭 설교해야 한다. 실제로 사탄은 빛의 천사로 둔갑해서 이 불쌍한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부족한 신앙심과 불신을 악용해 그녀들을 지배한다.
그런데 근대 초기로 와서는 급기야 마녀들이 모임을 가지고 악마의 잔치를 벌이고 날아다니고 동물로 변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녀는 이단 재판과 화형대로 내몰리는 사회의 적이 되었다. 여기에서 <마녀 신드롬>의 복잡한 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그 연구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빠졌을 때의 희생양이나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영향, 전형典型의 영속적인 현상을 탐구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단자나 유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적을 만드는 과정에서 반복되는 모델이다. 그리고 이는 16세기 제롤라모 카르다노와 같은 학자들의 이성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계곡에서 밤과 풀로 끼니를 연명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처지의 여자들이 있다. (…) 이 여자들은 몸이 바싹 마른데다 기형이고 창백한 안색과 퉁방울눈을 가지고 있으며, 음울하고 칙칙한 기운이 시선에서 느껴진다. 그녀들은 말이 없고 산만하며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과 거의 구별하기 어렵다. 그리고 제 생각을 좀처럼 굽히지 않는데, 절대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사실이라고 믿고, 그러한 확신을 완고하게 고집하기만 한다. (제롤라모 카르다노, 『다양한 실상에 관해De rerum varietate』, 제15권)
(중략)
호의적인 대우를 갈망하는 사람들 또한 적으로 만들어진다. 극장과 문학은 동족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를 받는 <미운 오리 새끼>의 예시들을 보여 준다. 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Richard III』를 인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호색과는 거리가 먼데다
거울을 들여다볼 마음도 없게 생겨 먹었다.
(…)
나는 협잡꾼 같은 자연에 속아
신체의 아름다운 균형을 빼앗겨 버렸다.
기형에다가, 미완성이고, 절반도 만들어지기 전에
이 생동하는 세상에 나오고 말았다.
절뚝거리는 모양새가 얼마나 꼴사나웠으면
그 옆을 지나는 개들도 짖어 댄다.
(…)
나는 살아갈 아무런 낙이 없다.
고작해야 햇볕 아래 내 그림자나 보면서
그 추한 몰골을 노래로 읊어 볼 뿐
그러므로 나는 사랑하는 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
(…)
차라리 악당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문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적의 형상을 지워 버리지 못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온순한 사람에게도 적의 필요성은 본능적이다. 이 경우 적의 이미지는 인간이라는 대상에서 자본주의 착취나 환경 오염, 제3세계의 빈곤 문제 등을 비롯한,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위협하고 망가뜨리는 자연적인 힘이나 사회적인 힘으로 단순하게 이동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미덕을 지닌 경우일지라도, 브레히트가 우리에게 귀띔했듯이, <불의에 대한 분노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그렇다면 우리의 도덕관념은 적을 가져야 한다는, 예로부터 전해진 그 필요성 앞에서는 무력한 것일까? 도덕적인 호소는 우리에게 적이 없다고 속이지 않을 때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처지에서 생각할 때 비로소 효력을 가진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페르시아인들을 증오하지 않았다. 그의 비극 『페르시아인들』은 적국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그들의 관점에서 전개되었다. 카이사르는 많은 존경심을 가지고 갈리아 사람들을 대했으며, 기껏해야 매번 투항하는 다소 겁쟁이들로 여겼다. 그리고 타키투스는 독일인들을 예찬하였다. 독일인들의 멋진 체격을 칭찬했으며, 그들이 지저분하고 더위와 갈증을 견디지 못해 힘든 일을 꺼린다고 불평하는 데에 그쳤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름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것이자 우리의 고정 관념을 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자. 적을 이해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시인이나 성인, 또는 변절자들의 특권일 뿐이다. 우리의 가장 내밀한 충동은 이와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 1968년 미국에서는 『평화의 가능성과 타당성에 관한 아이언 마운틴 보고서Report from Iron Mountain on the possibility and desirability of peace』가 작자 미상(누군가는 갤브레이스가 저자라고 제안하기도 했다)으로 출간되었다 . 이 책은 분명히 전쟁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소논문으로 보이겠지만,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비관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는 적이 필요하듯이, 전쟁의 필연성은 적을 규명하고 만들어 내는 필연성과 일치한다는 논리를 편다. 한편 이 책에서 미국 사회 전체의 재전환은 평화 상태에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아주 신중하게 제안되었다. 인간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전쟁뿐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조직적인 소모전은 사회의 원활한 흐름을 조절하는 배출구를 제공한다. 그리고 전쟁은 공급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견인차 구실을 한다. 또한 전쟁은 한 공동체가 자신을 <국가>로 인식하게 한다. 전쟁의 견제 세력이 없다면 정부는 합법적인 자신의 영역을 설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오직 전쟁만이 계급 간의 균형을 보장하고 반사회적인 요소들을 해결하고 이용하게 한다. 평화는 젊은이들의 불안정과 비행을 생산하지만, 전쟁은 그들에게 <지위>를 부여하면서, 통제하기 어려운 모든 힘을 가장 정당하게 사용하는 길로 안내한다. 군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희망이다. 생명과 죽음의 힘을 거머쥔 전쟁 시스템만이 사회 조직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다른 기관들도 피의 대가를 치르게끔 한다. 환경적인 시각에서 볼 때, 전쟁은 잉여 생명체들을 배출하는 배기관 역할을 한다. 19세기까지는전쟁에서 가장 용감한 사회 구성원들은 죽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면, 현대의 기술은 도심지에 폭격을 퍼부어 이 문제 역시 해결하게 되었다. 폭격은 영아 살해 의식이나 종교적인 금욕, 생식기 절단, 사형 제도의 확대보다 더 뛰어나게 인구 증가를 제한한다. 게다가 갈등 상황이 극으로 치닫는 가운데, 진정한 <인본주의> 예술이 발전하게끔 이끄는 것도 결국 전쟁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적 만들기는 치열하고 쉼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1949)에서 이와 관련해 아주 탁월한 예시를 보여 주고 있다.
다음 순간 끔찍한 소음이 마치 기름을 치지 않은 거대한 기계가 굴러가듯, 방 끝에 있는 커다란 텔레스크린에서 터져 나왔다. 그 소음에 이가 떨리고 목덜미의 머리카락이 뻣뻣해졌다. <증오>가 시작된 것이다.
여느 때처럼 인민의 적인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사람들의 야유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옅은 갈색 머리카락의 작은 여자는 두려움과 혐오감이 뒤섞인 비명을 질렀다. 골드스타인은 변절자이자 반동분자로, 아주 오래전에는 (…) 당의 지도급 인물이었다. (…) 하지만 반혁명 활동에 가담하여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 그는 최악의 배신자였고 당의 순수성을 가장 먼저 모독한 사람이었다. 그 후에 당을 거역하며 일어난 모든 범죄, 즉 반역, 파업 행위, 이단, 탈선 등은 그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그는 세상 어딘가에 아직도 살아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 (…)
윈스턴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는 골드스타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고통스러운 감정이 일었다. 골드스타인은 유대인의 야윈 얼굴이었으며 커다란 후광같이 곱슬곱슬하고 하얀 머리에다 조그만 염소수염을 달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지혜로워 보였지만, 끝 부분에다 안경을 걸치고 있는 길고 날카로운 콧등에는 노인의 어리석음이 서려 있어 천성적으로 어딘가 야비한 인상을 풍겼다. 그의 얼굴은 염소를 닮았으며 목소리조차 염소의 울음소리 같았다. 골드스타인은 언제나처럼 당의 정책에 대해 악의에 찬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 그는 유라시아와의 즉각적인 평화 협정을 요구하고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옹호했으며 혁명이 배반당했다고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
증오가 시작된 지 30초도 안 되어 방 안에 있던 사람 중 절반이 억제하지 못한 분노를 터뜨렸다. (…)
2분이 되자 증오는 광기로 변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위아래로 펄쩍펄쩍 뛰면서 스크린에서 나오는 미칠 것 같은 염소 소리를 잡아먹을 기세로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갈색 머리의 그 작은 여자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마치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입을 뻐금거렸다. (…) 윈스턴의 뒤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 여자는 <돼지! 돼지! 돼지!>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별안간 묵직한 신어新語사전을 집어 들어 스크린을 향해 내던졌다. 사전은 골드슈타인의 코를 맞고 떨어졌다. 아우성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윈스턴은 제정신이 들자, 자기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함을 지르고 발뒤꿈치로 의자의 가로대를 마구 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2분간의 증오>가 끔찍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가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거기에 휘말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 공포와 복수심의 소름 끼치는 도취, 큼직한 쇠망치로 때려죽이고, 괴롭히고, 얼굴을 짓이기고 싶은 욕망이 전류처럼 모든 사람에게 퍼져서 사람들은 제 뜻과는 상관없이 얼굴을 찡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광적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가 적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기 위해, 『1984년』의 광기를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국내로 유입되는 새로운 이민자들을 향한 두려움을 목격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일부 구성원의 그릇된 행위를 민족 전체의 특징으로 확대하면서 루마니아인들을 적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변화의 과정(인종을 포함하여)에 휩쓸려 자신을 인식할 수 없는 사회를 위한 이상적인 희생양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장 폴 사르트르는 희곡 『닫힌 방Huis clos』 에서 가장 비관적인 시각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현존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 자신을 인식할 수 있으며, 여기에 근거하여 공존과 순응의 규율들이 세워진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서 못마땅한 구석을 더 쉽게 발견한다. 그들은 우리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적으로 만들고 지상에다 산 자들의 지옥을 건설한다. 사르트르의 작품에서 3명의 남녀는 죽은 뒤에 출구가 없는 한 방에 갇히게 된다. 이후 그들 중 한 명은 그곳에서 무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가장 끔찍한 지옥은 그들 서로라는 것, 즉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한지 알게 될 것이다. 순무처럼 무미한 단순함. 육체적인 고통은 없다.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지옥에 있다. 다른 이는 아무도 이곳에 올 수 없다. 그 누구도. 영원히 언제까지나 우리 셋만 이 방에 있을 것이다. (…) 요컨대 지옥의 형벌을 내릴 고문관도 없다. (…) 하지만 여기에 모든 것이 있다. (…) 우리 각각은 다른 두 사람에게 지옥의 고문과 같다.
2008년 5월 15일 볼로냐 대학교에서 열린 <고전의 밤>에서 발표. 이후 이바노 디오니지 교수의 『정치 찬가Elogio della Politica』(밀라노: BUR 출판사, 2009)에 실림.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