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너머의 것들을 이해하기
앞에 소개된 성범죄자들의 자기 서사를 모두 읽었다면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라리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하는 상황에서, 아동 성추행범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에서 분명히 짚어 보아야 할 것은 이들이 잔악무도한 괴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끔찍하고 추악하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그들의 성격이나 살아온 환경을 고려할 때 매우 실제적이면서도 강력한, 어쩌면 이해될 법한 측면들이 있다. 내가 그랬듯, 이 책을 읽는 당신도 몇몇 가해자들에게 친근감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어렸을 때 입은 성 학대 피해를 생각하면, 내가 아동 성추행범들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입은 성 학대의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든지 간에, 지금의 나는 어른의 시각으로 당시를 회상해 보고, 가해자의 시각에서도 다시 상황을 돌이켜 볼 수 있다. 가해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나를 성추행한 그 남자에게도 어떤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들은 그가 어렸을 때 자리 잡은 것일 수도, 성인이 되고 나서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그가 죽은 지 이미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그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이번 연구에서 만난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성추행한 가해자의 동기가 무엇이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가해자들의 목소리를 기꺼이 ‘듣고자’ 하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성범죄에 맞서 나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작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죄판결을 받은 아동 성추행범들의 자기 서사를 살펴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 문화 안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과 권력의 문제가 가해자들의 인식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아동 성범죄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몸서리치도록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대부분의 아동 성추행범 관련 통계들을 보건데 성범죄자들에게도 교정 가능성이 있고 최소한 충동 조절 방법을 교육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 법무부 통계국에 따르면, 1994년 어느 하루를 기준으로 교정 시설의 보호 및 관찰, 통제하에 있는 강간 및 성폭행 기결수는 23만 4천 명에 달했으며, 이 중 약 60퍼센트는 보호관찰 대상으로 지역사회에서 조건부 감독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1994년 15개 주의 교도소에서 석방된 아동 성추행범은 총 4,300명에 이르며, 이 중 60퍼센트는 13세 이하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로 복역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전체 4,300명 중 약 3.3퍼센트가 출소 후 3년 이내 또 다른 아동 성범죄 혐의로 체포되었다. 물론 3퍼센트도 적지 않은 숫자다. 하지만 다른 범죄의 재범률과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도 있다. 1994년 15개 주에서 석방된 전체 27만 2,111명의 출소자 중 67.5퍼센트는 3년 이내에 다시 체포되었다. 동종 범죄 재범률로 보면 성범죄자들이 재입건된 경우가 타 범죄자들보다 4배 더 많았지만, 전체 범죄로 보면 다른 범죄자들에 비해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이 69대 43으로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아동 성추행범들이 다른 범죄자들보다 재범률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는 통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러한 통념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은 아동 성추행범에게 어떤 처벌이나 교화 과정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뚜렷한 연구와 보고가 없어서기도 하다. 교도소 내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한 장기 연구는 최근까지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무엇보다도 교도소 내 치료 프로그램 자체가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캐나다에서는 1980년대부터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연방 교도소에 복역한 724명의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조사 대상 중 403명의 가해자들은 치료 프로그램을 받았고, 나머지 321명은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았다. 12년 후 추적 조사한 결과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한 가해자 그룹이 좀 더 낮은 재범률을 보이긴 했으나, 유의미하다고 보기에는 집단 간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은 가해자들 중 21.8퍼센트가, 프로그램을 이수한 그룹에서는 21.1퍼센트가 추가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었다. 연구자들은 『캐나다 행동과학 저널Canadian Journal of Behavioural 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체적으로 치료 프로그램이 재범률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히면서도 “성범죄자에 대한 최선의 중재 방법을 찾기 위한,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된 장기 연구가 부족한 주요 이유는 연구 대상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 중 성범죄자의 비중이 크지 않을 뿐더러, 교도소 내 치료 프로그램이 시행된 역사 자체가 10년 정도로 짧고, 이 역시도 대다수 성범죄 기결수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약물과 인지 치료를 통한 아동 성추행범의 재활 개념은 아직까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교도소에서도 재정적 문제나 상담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다수의 성범죄자들이 프로그램 참여를 거부해 왔기 때문에 출소 후 재범을 할 경우 치료 프로그램을 받지 않아서인지, 애초에 변화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원인을 판단하기 어렵다.
아동 성추행범의 숫자가 엄청나며 그들이 강박적으로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등, 사람들이 가해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우리는 범죄자 신상 정보 공개 제도나 “메건법”에 의지하고 있다. “메건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범죄 예방을 위한 합리적 요구가 있었으나, 몇몇 주에서는 법안 시행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1998년 연방 법원 판결에 의하면 법원 심리를 통해 가해자의 재범 위험도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재범률이 가장 높은 경우는 위험도 3, 가장 낮은 경우는 위험도 1로 정한다. 그러나 일례로 뉴욕 주에서는 1998년부터 2004년 사이 법원 심리를 통해 위험도를 결정해야 하는 가해자의 수가 수천 명에 달했고, 결국 행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죄질과 상관없이 가해자를 모두 1단계로 위험도를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이러한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2004년 3월 조지 파타키George E. Pataki 뉴욕 주지사는 재범 위험도와 상관없이 모든 성범죄자들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성범죄자들이 해마다 자신의 주소지를 관할 경찰서에 등록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찬성론자들은 이 법안이 부모나 지역사회, 사법 당국에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메건법”의 취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이 법안이 가해자에 대한 이중 처벌을 야기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조치로 아동 성추행범들이 교도소를 출소한 후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출소 후 거주지 확보의 문제는 범죄자 본인뿐 아니라 교정 당국에도 딜레마로 작용한다. 실제로 주민들의 항의로 가해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한 성범죄자의 경우, 재범인 그는 구치소를 거쳐 정신 보건 시설에 수감된 뒤 결국 화학적 거세와 전자 감시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풀려났지만 그럼에도 당국이 거주지를 찾는 내내 캘리포니아 주의 이곳저곳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 주 당국이 그가 머물 만한 4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나 경찰들에 그의 전입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그의 전과를 알게 되자 항의하기 시작했고 결국 당국은 거주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캘리포니아 주 당국이 이렇게 성 범죄자 프로그램을 이수한 가해자를 정착시키는 문제로 곤란을 겪은 것이 벌써 두 번째였다. 결국 최초에 그런 문제를 겪은 가해자는 주 교도소 소유의 땅에 트레일러를 두고 사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물론 지역사회에서는 난폭한 성범죄자를 이웃으로 두지 않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2004년, 일명 “메건법”을 채택한 많은 주에서 성범죄자의 유형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를 테면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소아 성애자의 경우와 19세와 15세 이하의 고등학생끼리 성관계를 한 경우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상 정보 공개 제도는 유죄판결을 받은 성범죄자들을 모두 한 부류로 묶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곤 한다. 그리고 죄질에 상관없이 모든 성범죄자들은 직장을 구하는 문제에서부터 성난 이웃의 경계심과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과들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은 감옥에서 성범죄자들이 스스로 갱생을 위한 노력을 하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성범죄자들이 감옥에서 자신의 죗값을 치르고 나왔다 할지라도 속죄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로부터 여전히 외면당한다. 그들은 얼마나 형을 오래 살았든, 자신의 범죄에 대해 얼마나 진심으로 대가를 치렀든 간에 죽을 때까지 벌을 받는 셈이다. 운 좋게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설에 구금돼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내내 끊임없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형기를 마친 후, 화학적 거세 조치를 받거나 정신 보건 시설에서 치료를 이행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성범죄 전과자들이 다시 범행을 저지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사람들은 왜 그토록 불안해하는 걸까?
이 책에 소개된 성범죄자들의 자기 서사를 통해 갱생이 가능한 아동 성추행범들도 있다는 의견을 존중하고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만약 모든 아동 성추행범들이 우리와는 다른 ‘타자’라는 범주에 안전하게 속한다면 우리는 아동 성추행범들을 계속 외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아동 성추행범들은 ‘그들’보다 ‘우리’에 더 가깝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떼어 놓고 보면 아주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거나, 심지어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경우도 있다. 단순히 실용적 관점에서만 보면, 잠재적으로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일 것이다. 아동 성추행범들을 평생 동안 구금시키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으며 비용 면에서도 쉽지 않다. 또한 아동 성추행 범죄에 대한 양형에는 사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사형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경솔하게 들릴 수 있으나, 아동 성추행범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보는 의견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동 성범죄 및 아동 성범죄자들의 실재가 이렇다고 한다면, 아동 성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동기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 수 있다.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면 성범죄자들이 비정상적 충동을 통제할 수 있도록 우리가 충분히 최선을 다해 도와 왔는지 먼저 자문해야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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