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음말
쿠바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미국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카리브 이미지로 볼 때 쿠바는 음악과 술, 섹스로 넘쳐나는 관광지이다. 해변으로 둘러싸인 이 섬은 뜨겁고 다채로우며 쿠바 사람들은 행복하고 근심 걱정이 없다. 한편 소비에트 이미지로 보면 쿠바는 우중충하고 억압적인 경찰국가이다. 이 섬의 시민들은 음울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두 시각 모두 외국인들의 세계관이 창조한 쿠바의 이미지이고 상상력이 꾸며 낸 허구일 뿐이다. 실제의 쿠바는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지난 50여 년에 이르는 혁명의 역사 또한 다양하고 복잡하며, 정태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최근 2008년 여름에 내가 쿠바를 방문했을 때, 특히 세 가지 일이 관심을 끌었다.
개인적인 쿠바 경험은 모두 경제위기가 시작된 1991년 이후였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상황이 좀 어떻습니까” 하고 묻는다. 이번에는 사람들의 첫 대답이 교통에 관한 것이었는데, 훨씬 좋아졌다고 한다. 새로운 중국산 버스는 편안하고 믿을 만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동할 필요가 있는 대도시 아바나의 일상생활에서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냈다.
좀 더 우울한 지적도 있었다. 여태껏 혁명의 가장 큰 성공이라고 알려진 의료와 교육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사람들이 넌지시 알려왔다. 국가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보장하거나 심지어 유지해 주는 능력이 줄어들자 학생과 교사들 모두 교육 목표를 포기하고 도중에 떠나고 있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은 교사들을 속성으로 양성하여 학교에 빠르게 배치하고 있었지만, 교사들의 자질이 떨어져 교육 체계를 더 약화시키고 있었다.
보건의료 역시 악화되고 있었다. 필요한 외환을 벌기 위해 수만 명의 의사들이 필사적으로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외국으로 수출된 탓에 가정의 진료소에는 의사가 없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8년 4월, 라울 카스트로는 의료 개혁안을 발표했다. 의료 체계를 통합하여 의사가 없는 진료소는 문 닫고 나머지 진료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맡게 하며, 가정의 진료소에 더 많은 의대 학생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국제사면위원회는 2009년 8월 보고서에서 쿠바 의료 체계가 직면한 또 다른 장애들을 지적했다. 그 가운데 핵심은 미국의 통상금지령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국제사면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무역과 금융에 가해진 제한들 탓에 쿠바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치료하고 공공의료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의약품과 의료 장비, 최신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능력이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또한 오랜 동반자인 60대 초반 부부가 나누는 말도 듣기가 불편했다. 두 사람은 혁명과 함께 성장하고 혁명에 무척 헌신적이며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전문가이다. 둘 다 사회정의와 경제발전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하고 끊임없이 되묻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 태어난 외동딸 또한 고등교육을 받고 성취동기가 높았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그들을 본 이후에 결혼했다. 그녀는 일 때문에 아바나에 오게 된 에스파냐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은 새로 생긴 아이와 함께 지금 에스파냐에 살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고아 부모 세대라고 부른다네” 하면서 친구가 한 숨을 쉬었다. “우리 친구들은 모두 똑같은 곤경에 처해 있어.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며 교육을 받았지. 하지만 그들에게는 지금 이곳에 기회가 없어. 내 딸이 여기 눌러 산다면 그 아이 인생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죽어 우리 아파트를 물려받기만 기다리면서 아등바등 살아갈까”
나는 쿠바혁명의 경험을 요약하거나 그것에 관한 전반적인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혁명은 거칠고 대담하고 실험적이며 다양했다. 그것은 때때로 불리한 환경 아래에서 전진해 왔다. 그것은 전에 없었던 사회경제적 평등을 창조했으며, 가난한 제3세계 나라가 자기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하고, 보건의료를 제공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다. 그것은 놀라운 예술적·지적 창조성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한편으로 숨 막히는 관료제를 만들어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유’를 제한하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경제적 저발전을 극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보여 주었다.
쿠바혁명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가장 해박한 학자들의 예측도 잘못되었다는 것이 거듭 거듭 드러났다. 나는 2008년 8월에 쿠바를 떠나면서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를 동시에 갖고 있었지만, 대체로는 다가오는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했다.
과거 또는 다른 나라나 문화를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우리 자신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자신들의 역사적 맥락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다른 가능성들을 마주하게 될 때까지, 그러한 가능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만약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고자 한다면, 쿠바혁명을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출발점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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