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모
터럭 하나라도 똑같지 않으면 사람의 본모습과 다르다. 그림도 그러한데 글로 사람을 온전히 묘사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림으로 그려내지 못하는 것을 글이 그려내기도 한다. ‘우윳빛 얼굴에 시원한 눈썹, 아름다운 눈매에 멋진 수염’이라는 말에서 박륙후博陸候, 藿光*를 상상해보면 천 년 전의 사람일지라도 하루 전에 본 듯하다. 시원찮은 그림으로 이런 것이 가능할까?
* 한漢나라 곽광藿光(?~BC 68)의 봉호이다. 선제宣帝가 기린각麒麟閣에 공신 11명의 화상을 그릴 때 곽광을 맨 앞에 그렸다. 곽광의 용모를 자세히 묘사한 글 가운데 이 구절이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한서漢書》<곽광전藿光傳>에 보인다.
나는 어려서부터 초상화를 좋아해 화공만 만나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졸라댔다. 몇 명의 화가를 거쳐 수십 본本을 바꾸어 그렸으나 하나도 닮은 것이 없어서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말았다. 그림으로 그려낼 수 없다면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글이라면 굳이 남의 손을 빌릴 필요 없이 차라리 내가 직접 써서 후세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낫다. 소자첨蘇子瞻, 蘇軾*은 초상화를 두고 “인물의 특징을 포착했다면 그 나머지는 덜어내거나 보태도 좋다”고 주장하였다. 그림이 나을 수도 있고 글이 나을 수도 있으나 사실대로 드러내는 점에서는 글이 그림보다 분명히 낫다. 기축년(1829) 2월 12일에 태등泰登이 쓴다.
* 자첨子瞻은 소식蘇軾의 자이다. 소식의 <전신기傳神記>에서 외형을 비슷하게 그리는 차원을 넘어 내면의 특징까지 포착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말이다.
나의 생김새
내 두상은 둥글면서 넓적한데 정수리는 평평하고 넓으며 이마는 튀어나왔다. 눈썹은 어지럽게 나서 눈썹이 눈꼬리 밖으로 삐져나왔다. 눈은 크고 눈동자 밖으로 흰자위가 많이 보인다. 콧마루는 볼우물보다 높고 그 끝은 아래로 처졌으며, 콧구멍 주변의 모양은 매부리코에 콧방울이 넓고 두툼하다. 귀는 구레나룻 위로 솟았고, 귓바퀴는 두툼하며 귓불이 늘어져 구슬이 매달린 듯하다. 광대뼈는 서로 에워싸 돌출하지도 펑퍼짐하지도 않다. 턱은 위로 치켜 올라가고 위턱은 하관이 빨다.
입은 작고, 입술은 도톰하며 색이 붉다. 콧수염은 입을 덮지 않는다. 구레나룻이 귀밑까지 뻗어 있는데, 듬성듬성 난 털 사이로 살진 것이 보이고 길이는 겨우 목에 닿는다. 콧대와 광대뼈에는 마마자국이 몇 개인지 세어볼 수 있다. 낯빛은 몹시 하얘서 살작 누렇고, 목소리는 카랑카랑한 듯하면서 잠겨 있다.
‘금토金土의 형국에 금수金水의 소리’라는 관상쟁이의 주장이 근거가 없지 않다. 눈썹과 눈 사이에는 모이기는 어렵고 흩어지기 쉬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어 묘사하려고 해도 잘 안 되고 품평하기도 어렵다. 평생의 행적을 따져보니 뜻에 어긋나는 것이 많고 뜻에 맞는 것이 적으며, 기쁜 일이 생겨도 괴로움이 앗아간다는 것이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나의 몸
몸은 깡마르고 허약하며, 키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작다. 등은 구부정하게 불룩 솟았고, 배는 펑퍼짐하게 아래로 처졌다. 어려서는 옷을 가누지 못할 만큼 허약해서 혼담을 하러 온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혼사를 물렸다. 요절할 관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성격과 기질
생김새를 가지고 성격과 기질性氣을 살펴보면 십중팔구는 들어맞는다. 눈동자를 보면 속일 수 없다*는 것보다 더하니 이것은 이치가 맞다. 빈틈없어 보여도 엉성하고 방종한 구석이 있고, 거칠고 방탕한 속에도 칼 같은 강직함이 숨어 있다. 나를 아는 이는 몸과 마음이 딴판이라 하고, 모르는 이는 생김새와 성품이 일치한다고 한다. 그런 지적에 내가 무슨 말을 보태랴? 자식과 아우가 자기 아버지와 형을 형용할 때도 참모습을 잃지 않으리라 보장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남에게 맡겨 자신의 참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죽기 전에 스스로 밝히되 그 말이 과장에 이르지 않도록 겸손하고, 사실과 부합하도록 간략하게 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 “그의 말을 들어보고 그의 눈동자를 관찰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숨기겠는가!聽其言也, 觀其眸子, 人焉瘦哉”(《맹자孟子》〈이루 상離婁上)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다. 눈동자를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다는 취지이다. 여기서는 생김새가 눈동자보다 사람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히 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결벽증
어려서는 몸을 씻고 머리 빗기를 좋아해 어른이 채근할 필요가 없었다. 옷의 띠를 단단히 묶어서 조금이라도 띠가 느슨해지면 견디지 못하고 반드시 다시 묶어서 단정히 하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에는 옷걸이, 칼, 자, 거문고, 서적, 궤안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리하고 청소해 먼지 한 톨 남기지 않았다. 어른께서 더러 결벽이 심하다고 꾸짖었으나 곤궁해진 뒤에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도 “네가 딸자식으로 안방에 머문다면 제대로 하지 못할 일이 없겠지만, 사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급한 성격
성격이 몹시 급해 눈에 거슬리거나 마음에 불편한 일을 만나면 잠시도 억누르지 못하고 부리는 종이나 동무처럼 가까이 지내는 이라도 이따금 가차없이 주먹질을 하였다. 집안 할아버지 되시는 판서공 심성진沈星鎭 어른께서 “이는 내 소싯적 소행이다. 그래도 기로소耆老所에 이름을 올리는 데 걸림돌이 안 되었으니, 요절할 태도라고 말하지 마라”시며 웃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아내의 보필
발끈하며 성질을 부려 절제하지 못하면 대부분 아내 이씨李氏가 바로잡아주었다. 아내는 막상 성질을 부릴 때는 말 한 마디 없다가 지나고 나면 마지못해서 하듯 신신당부하며 타일러서 마음으로 느끼도록 하였다. 그러면 나도 받아들여 잘못했다고 인정하였다. 언젠가 아내에게 규방의 뻣뻣한 보좌관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허튼소리가 아니라 실제가 그랬다.
부족한 담력
생각을 펼칠 때에는 무모하리만큼 거창하지만 막상 일에 직면해서는 지나치게 서툴고 나약하였다. 공명을 이루거나 욕망을 채우는 일에 마음을 두었으면서도 상대를 밀쳐내고 쟁탈할 때가 되면 기가 저절로 꺾였다. 요컨대, 생각은 차고 넘치지만 담력이 부족하였다. 이것이 끝내 곤궁하게 살다가 일생을 마치는 꼬락서니인 이유이리라!
중년 전후가 딴판인 사람
재앙과 우환을 겪으면서 이치를 따져 근심을 털어내는 것은 남보다 훨씬 뛰어났다. 남들도 그렇다고 하고, 내가 살펴보아도 정말 그렇다. 그러나 이것은 이른바 치욕을 참는 공부를 안으로 다부지게 닦아놓았거나 마음을 다잡는 공력으로 밖에서 밀려오는 어려움을 이겨내서가 아니다. 나약한 생활에 젖어든 나머지 비굴하게 엎드려서 눈앞의 안일만을 구차하게 추구한 결과일 뿐이다. 중년 전과 중년 이후를 살펴보면 전혀 딴판인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말년의 탄식
유교·불교·도교 셋 가운데 도교의 《노자老子》가 일찍부터 마음에 와 닿았다. 집에 있을 때는 석분石奮*처럼 행하고, 관직에 있을 때는 조참曹參**처럼 되기를 일평생 한마음으로 바랐건만, 그 쭉정이도 얻지 못한 채 이대로 늙어 죽게 되었다. 그저 오막살이의 탄식***만 나온다.
* 석분石奮(?~BC 124)은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근신勤愼으로 명성이 높았다. 일찍이 벼슬에서 물러나 집에 있을 때 벼슬한 자손들이 자신을 만나러 오면 항상 조복朝服을 차려입었고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 한漢나라 패군沛郡 사람으로, 소하蕭何와 함께 병사를 일으켜 고조高祖를 도왔다. 천하가 평정된 뒤에는 평양후平陽候에 봉해지고, 소하가 죽은 뒤에 재상이 되었는데 조참은 정무를 처리할 때 황로黃老의 가르침을 따랐고, 후임자에게는 형옥刑獄과 시장에 대해 심하게 간섭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사기史記》 권54,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오막살이’는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집으로, 젊어서 공부하지 않고 노년에 이르러 탄식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이른다. 후한後漢 때 제갈량諸葛亮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이는 시절과 더불어 치달리고 뜻은 세월과 더불어 떠나간다. 마침내 쇠락해져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오두막에서 비탄에 잠겨본들 무슨 수로 되돌릴까?年與時馳, 意與歲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守窮廬, 將復何及”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한위육조백삼가집漢魏六朝百三家集》 권22, <계자서誡子書>).
부귀를 바라거나 곤궁함을 원망하지 않다
남의 부귀를 부러워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었고, 자신의 곤궁함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절절한 심정이 없었다. 이 말이 인정은 아닌 듯하나 평생을 돌아보면 그랬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어설프고 굼뜨다보니 묵혔다가 드러내는 기운이 적고, 느리고 나약하다보니 안일하고 뒤로 빼는 습성이 많다. 그러나 잃어야 얻는 것이 있고,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되니 그것이 또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잔인하지 못하다
잔인하고 가혹한 일과 격분해 남을 다그치는 말을 차마 마음에 품지 못하고,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하였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서글퍼져 그 심정이 얼굴에도 나타났다. 이상하게 여기고 그 연유를 묻는 사람들도 많다.
남을 대하는 태도
잘하는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잘하지 못하는 이를 불쌍히 여겼으며, 윗사람에게 대들기 좋아하고 차마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였다. 과장(科場)의 동학과 조정의 동료 관료에서부터 지방의 아전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이런 태도로 대해 마침내 하나의 버릇으로 굳어졌다. 그 지나친 버릇을 고치려고 했지만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은인과 원수
“원수나 친구 모두 허망하고, 마군魔軍*이나 부처나 다 똑같다”라는 주련柱聯이 아무 이유 없이 기둥에 걸려 있겠는가? “은인과 원수를 분간해 밝히는 것은 덕 있는 자의 말이 아니다”라고 한다. 옛말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밝혀서는 안 되는데 밝히면 제멋대로 하는 잘못을 범하고, 밝혀야 하는데 밝히지 않으면 줏대 없이 다른 사람에게 묻어가는 잘못을 범하게 되니, 다만 의로움만을 가지고 처신할 뿐이다. 평생 나를 반기거나 홀대한 사람들을 많이 겪었는데 그들을 달리 대우하자니 그 또한 고역이다.
* 석가모니의 득도를 방해한 악마의 군사. 불도를 방해하는 온갖 악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환란이 요동치는 사태와 세상 질서가 뒤집어지는 사이에서 온갖 악조건에서도 변치 않는 의리만을 한결같이 요구한다면 천하의 바보 멍청이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야 감사하지만 변하는 사람에게 유감을 품을 수 있으랴? 욕을 보이는 이에게 웃음으로 대하는 것은 인정상 있을 수 없고, 원한의 마음을 숨기고 친구로 사귀는 것은 성인도 경계하셨다. 남들이 성인의 말씀에 근거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노력해서 될 일도 아니고 내 성품도 그렇지 못하다. 옛사람은 “일곱 가지 감정이 표출될 때 오직 노여움을 제어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였다. 어릴 적에는 심하게 그러했는데 중년 이후에는 한결같이 그와는 반대로 하였다. 그렇게 변한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뇌물 공여
물건을 취하거나 줄 때 한결같이 의롭게 하기는 옛사람도 어렵게 여겼다. 취하기를 좋아하고 주기를 싫어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갖는 것을 주는 것보다 싫어하고, 주는 것을 취하는 것보다 좋아한다면 보통 사람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사람이리라.
성질이 까탈스러워 구차하게 차지하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고, 마음이 약해서 차마 매정하게 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이따금 청렴하지도 못하고 은혜를 베풀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평생 가난하게 살아서 재물을 남에게 빌리는 일이 많았지만, 까닭 없이 달라고 하거나 뻔뻔하게 애걸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늘그막에 벼슬살이할 때 더러는 대인관계에 필요한 비용과 의롭지 않은 뇌물,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지 않았다고는 하지 못한다. 이는 학문에 힘쓰지 않은 탓이다.
글짓기 병
평생 동안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없었다. 소싯적에 글짓기를 좋아한 것, 벼슬하려는 계획, 정욕에 사로잡힌 것 세 가지 가운데 정욕이 가장 심하였다. 늙고 난 뒤에는 모든 것에 담박해 욕망이 사라졌다. 그런데 유독 글짓기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못하였다. 다만, 세상 물정을 이해해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드디어 욕구가 사라졌다. 이제 세상 인연을 한번 끊어 도사가 되거나 승려가 되는 것 모두 마땅치 않다. 집에 있으면 화가 나고 번민이 날마다 쌓여 마음에 드는 일이 하나도 없고, 문을 나서면 해마다 외톨이 신세가 더해 마음에 맞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해가 가고 날이 다하도록 할 일 없이 흐리멍덩히 지내자니 되돌아와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에서 낙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무엇을 얻은 것도, 새로 깨달은 것도 아니다. 단지 하루하루 보내려는 심산으로 장기나 바둑, 골패노름처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죽기 전까지 몇 년을 이렇게 지내야 할는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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