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은 모든 생명체의 꽃이다
윤구병
시골에 와서 살아 보면 불필요한 통제를 하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들은 시간 단위로, 어떤 사람은 분 단위로 부모나 선생님들한테 통제를 당해요. 교육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을 통제하죠. 실제로 취학하기 전부터 그렇게 통제를 받아 왔어요.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한번 여쭤 보세요. 엄마 아빠 어렸을 때 시골에서, 또 도시 골목에서 할머니가 '밥 먹어라! 밥 먹어라!' 하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데도 못 듣고 잘 놀아 본 기억 있어요?"라고 말이에요. 아마 대부분 그런 기억 있다고 하시면서 그 행복한 추억 때문에 입이 귀에 걸릴 거예요. 그러면 또 묻는 거죠. "왜 우리한테는 그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애쓰지 않으세요?" 속으로 찔끔하시면서 대답하시는 말씀이 있을 거예요. "세상이 그렇잖니. 놀다 보면 경쟁에서 뒤떨어지잖니."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하실 겁니다.
그런데 자율성이라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꽃이고 생명의 원천입니다. 더구나 인간처럼 만물의 영장이라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생명체한테서는 이 자율성이 무엇보다도 소중해요. 프랑스혁명 때 삼색기를 만들었죠. 그 삼색기가 무엇을 나타내죠? 자유, 평등, 박애라고 합니다. 여기서 자유가 맨 먼저 옵니다. 조그마한 강아지풀이나 사람 발에 밟히는 질경이 하나도 누가 "너 지금 싹 터야 할 때야. 싹 터야 돼! 너 꽃 피워야 할 때야. 꽃 피워야 해! 열매 맺어야 할 때야. 열매 맺어야 해!" 이렇게 일일이 간섭을 해서 싹 트고 꽃 피고 열매 맺나요? 안 그렇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연이라 그러죠. '스스로 자自', '그럴 연然', 스스로 그렇게 한다는 의미예요. 사람은 다른 생명체보다도 훨씬 더 큰 자유 영역이 필요해요. 그런데도 계속해서 통제 속에 가둬요. 도시 사회가 굴러가려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합니다.
반면 자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통제를 하는데 그것은 더 무서운 통제예요. 씨 뿌릴 때 안 뿌리면 곡식을 거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씨 뿌릴 때가 되면 자연이 물어요. '너 씨 뿌릴래, 굶어 죽을래?'라고요. 굶어 죽지 않으려면 씨를 제때 뿌려야 해요. 그다음에 풀이 한창 올라올 때 풀을 그대로 놔두면 곡식과 채소의 영양분을 다 빨아먹어 버리고 그늘져서 못 자라게 만들어 버리죠. 그래서 또 자연이 묻죠. '너 땡볕에서 콩밭 맬래, 굶어 죽을래?' 하죠.
왜 땡볕에서 콩밭을 매는 줄 알아요? 〈칠갑산〉 노래 혹시 아는 사람 있어요?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이 노래 들어 본 기억 있어요? 그럼 베적삼이 흠뻑 젖도록 왜 땡볕에서 김을 맬까요? 시원할 때나 저녁 무렵에 김을 매도 되고 비가 부슬부슬 뿌리는 때 김을 매도 될 텐데요. 김매기는 한창 풀이 자랄 때, 어릴 때 호미로 긁어 줘야 해요. 그리고 뿌리를 땡볕에 말리지 않으면 저녁 이슬 맞아서 다시 뿌리를 내려요. 비오고 난 후에는 뿌리를 뽑더라도 흙이 잔뜩 달라붙어서 되살아나기 쉬워요. 그렇기 때문에 '땡볕에서 김 맬래, 굶어 죽을래?' 하고 묻는 겁니다.
보리를 거두는 철에는 모도 심어야 하고 장마도 겹치고 그래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강아지 손이라도 빌리고 싶어 하는 때라고 그래요. 이때 자연은 '보리를 제때 거둘래, 아니면 굶어 죽을래?'하고 묻는단 말이죠. 벼도 오래 논에다 세워 놓으면 귀가 다 떨어져서 거둘 것이 없어져 버려요. 그래서 '제때 거둘래, 굶어 죽을래?' 그러는 거예요. 자연의 통제는 그걸 안 따르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어요. 자연스러운 통제이기에 받아들여야 해요.
그런데 사람이 하는 통제, 이를테면 교실이나 집에서 하는 통제는 꼭 그 통제를 받아들여야 내가 살아 남을 수 있나요? 그건 아니죠.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은 실제로는 교육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한창 자유롭게 생각을 하고 자유롭게 손발 놀려야 할 때 그것을 시간 단위, 분 단위로 통제해 들어가는 측면이 있어요.
이제 혼잣말을 여기서 그치고 여러분들이 질문 있으면 질문을 받아서 대답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질문할 것이 있나요? (웃음) 질문할 것이 없으면 여러분들 자유롭게 어디 가서 손발 놀리고 몸 놀릴까요?
스스로 삶과 시간을 통제하라
청소년
제가 책에서 읽었는데요. 변산공동체 학교에서는 오전에는 보통 학교들처럼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교과 공부를 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윤구병
공동체 학교 초기에는 다 가르쳤는데, 조금씩 달라져 왔어요. 오전 세 시간 동안 역사도 가르치고 자연학, 인문학, 사회학을 가르치고, 그다음에 영어 가르치고 수학도 가르치고 국어, 철학, 한문 등 온갖 것을 다 가르쳤어요. 그리고 역사는 초기에 이렇게 가르쳤어요. 곡식의 역사라고 하면 콩의 원산지가 어디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 맨 먼저 유럽에 있는 독일로 들어갔으며, 거기서 어떤 경로를 거쳐서 다시 미국으로 가게 되었는지 가르쳤어요. 지금은 세계 전체 콩 농사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서 짓는데, 몬산토라는 농약 회사가 유전자 조작한 콩 씨를 만들어 낸다는 것까지 모두 가르쳤어요. 콩은 우리나라하고 만주가 원산지예요. 그리고 벼를 어떻게 우리가 길렀나, 보리는 어떻게 기르게 되었나 하는 것들을 가르쳤고, 곡식의 역사와 의복의 역사를 가르쳤지요. 우리가 원시시대부터 어떻게 옷을 지어 입게 됐는지, 바늘은 언제 나타났고 그 바늘 가운데서 원시적인 바늘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런 것들까지 가르쳤습니다. 또 집짓기의 역사도 가르쳤습니다. 애들도 재미있어 하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재미있어 하고 그랬었는데, 나중에 극성스런 부모님들이 계셔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을 못하게 됐어요.
여기 변산공동체에 학생을 보내는 어머니 한 분이 역사 선생님이셨는데, 건강이 나빠져서 학교를 잠시 쉬고 있었어요. 그분이 역사는 자기가 가르치겠다고 해서 보니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 하고, 도서관에 있지도 않은 책인 『산림경제』 같은 책을 누가 썼는지 이런 걸 가르치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생전 읽어 볼 일도 없고 읽어 보지도 않을 책들과 왕 이름들을 외우고 있어요. 애들한테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하나도 재미 없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한테 "왜 그렇게 가르치세요?" 했더니, 의복의 역사라든지 주곡의 역사라든지 지구 역사 같은 것은 나중에 대학원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세요. 그런데 왕조 이름을 외우는 거나 어떤 책을 누가 썼는가 하는 것은 지금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했더니 시험에 나오니까 그렇다는 거죠. 답이 아주 단순해요. 시험에 나오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세 시간만 공부하던 애들을 부모님들이 극성을 부려서 한 시간만 더 늘리자고 해서 한 시간 더 늘려 놨더니 신체 리듬이 흐트러지는 거예요. 여러분들, 학교에서 점심시간 되기 전에 도시락 까먹어 봤던 사람들 있어요? 지금은 급식이니까, 안 되나요? (웃음) 여러분들은 바위라도 소화시킬 만한 나이예요. 우리는 세 시간 공부 할 때는 열두 시에 점심을 먹었어요. 그런데 네 시간 하니까 한 시에 먹게 되잖아요. 배가 요동을 치는 거예요. 머리에 음식 생각만 가득 있는데 들어갈 게 뭐가 있어요. 집중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 년 하다가 나중에 때려치웠어요. 다시 세 시간으로 돌렸지요. 세 시간 이상 머리 굴리는 일을 하게 되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요.
여기 기독교 믿는 사람 있어요? 교회를 다니더라도 여러분들 아직 벌이가 없으니까 십일조라는 말만 들었지 십일조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죠? 아니면 용돈에서 십일조를 내나요? 그런데 십일조가 왜 생겼는지 아세요? 십일조는 유대교 전통에서 생긴 거예요. 당시에 랍비라고 하는 정신적인 지도자가 필요했고, 손발 놀려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 그래서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고 열 명이 손발을 놀리고 몸 놀려 일하면서 한 사람을 먹여 살리자고 해서 십일조가 나왔어요.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정전법井田法 알지요? 정전법이 뭐예요? 네모난 밭을 세로로 두 줄 긋고 가로로 두 줄 그으면 아홉 등분이 되죠? 그 가운데 밭의 수확물을 공동 경작해서 손발 놀려 일하기 힘들거나 정신적으로 기댈 만한 분들에게 바치는 제도였어요. 우리 선조들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균형을 사회적으로 보면 십 대 일에서 구 대 일 정도 돼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것을 한 개인으로 보면 하루가 24시간으로 나눠진다고 쳤을 때, 이 가운데서 십분의 일이나 구분의 일 정도가 우리 정신활동에 주어진 알맞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 이상 머리를 굴리면 머리에 하나도 남질 않아요.
머리가 맑을 때, 집중력이 있을 때 바짝 공부하게 되죠. 그러나 하나만 계속 들여다보면 안 들어와요. 하루에 세 시간 이상 공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학 가는 사람을 별로 못 봤어요. '사당오락'이라 그러죠. 네 시간 자면 대학 입시 합격하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고 하는데, 죄다 거짓말이에요. 저도 그렇고 우리 공동체 학교 학생들도 실제로 그렇게 공부 안 했어요. 계속해서 놀고 그랬는데 동기가 생기면 공부를 하게 되죠.
제가 공부를 하게 된 동기가 있어요. 저는 중3 때부터 가출을 했어요. 시험을 앞두고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걸핏하면 책가방 내던져 놓고 뒷산에 가서 낮잠을 자거나 20리 떨어진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하루 종일 잡는다거나 무전여행을 하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이 되니까 교장선생님께서 부르시더라고요. "너 지금 이번 학기에도 2주일 늦게 학교로 돌아왔다. 네 아버지 체면을 봐서 졸업장은 줄 테니 어쨌든 학교는 나오지 마라." 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쫓겨났어요. 제가 가출했다 돌아오면, 제가 "학교 다녀왔습니다." 할 때처럼 아버지께서는 "응 그러냐." 하시고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묻지도 않으셔서 그게 그렇게 고마웠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쫓겨나서 집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까 어느 날 사진관에 가자고 그러셔요. 사진관에 가서 아버지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옆에 세로로 네 글자가 한문으로 쓰여 있었어요. 나중에 옥편을 찾아보니까 '마지막 남은 실오라기 한 가닥'이라는 뜻이었어요. 그걸 보고 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구나 생각을 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공부하자고 맘을 먹은 거예요. 이것이 제가 공부하게 된 큰 동기죠. 동기가 생겨나니까 집중해서 공부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내 나이 일흔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가출을 했었던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려운 시절을 버텨낸 것 같아요. 내 삶을, 내 시간을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훈련을 그때 쌓은 거예요. 산과 들과 바닷가를 맘대로 뛰어다니면서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그런 힘을 내가 길러낸 것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런 힘을 기르려고 가출을 한다, 뭐 한다 하게 되면 난리가 나겠죠? (웃음)
서로 돕고 사는 힘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
청소년
동기라는 것이 찾아오는 건가요, 아니면 찾아가는 거예요?
윤구병
찾아오기도 하고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억압된 상황에서는 동기가 안 생긴다고 봐요. 통제 받고 억압된 상황에서는 동기가 생길 수가 없어요. 자유로운 상황에서 자기가 선택할 수 있을 때에라야 생겨납니다.
청소년
전 동기가 너무 많아요. 엄마 아빠가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많이 시켜 주셨거든요. 저는 커서도 제가 찾아서 다니고 그러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은 거예요. 다 조금씩 조금씩 하고 그러니까 뭔가 하나 딱 정해서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가 아니에요. 너무 많아요.
윤구병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건 더 좋은 거죠. 다 하면 되잖아요.
청소년
혹시 대학에서 철학 교수 하신 것에 대해서 후회하신 적이 있나요?
윤구병
저는 대학교수 일이 나중에 지긋지긋했어요. 15년 하다가 대학교 정교수로 한 5년 있었는데, 국립대학 정교수가 되면 일주일에 세 강좌 아홉 시간만 수업을 하면 돼요. 그리고 논문을 안 내도 만 65세까지 정년이 보장이 돼요. 그래서 그런 말이 있어요. 거지하고 대학 선생하고 닮은 점이 세 가지다. 하나, 입으로 벌어먹는다. 둘, 노는 시간이 많다. 셋, 한번 든 깡통은 절대로 놓지 않는다. (웃음) 제가 대학 선생 가운데서 깡통을 놓은 유일한 사람이에요.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칠 때 저는 불행했어요. 왜냐하면 학생들은 정말 자기에게 절실한 질문이 가득한데도 못 물어봐요. 헛똑똑이들도 있어요. "우리 사담私談 말고 진도 나갑시다." 하는 헛똑똑이들. 여러분들 친구 중에는 없었나요? 그런 똑똑이들이 말문을 막아 버려요.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이 질문을 하고 싶어도 절실한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못해요. 멍청하게 무슨 질문을 하냐 하면요, "플라톤은 몇 년에 태어나서 몇 년에 죽었어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질문이 없고 물어도 묵묵부답이니까, 제 스스로 질문서를 만들어 스스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어요. 모든 교육은 묻고 대답하는 대화로 이루어져야 해요. 그런데 대화가 단절이 되고 그 기간이 15년 이나 이어져 왔어요. 질문 없는 대답과 대답 없는 질문이 15년 동안 평행선을 그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아무리 밥 벌어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재미가 있겠느냐고요. 행복하겠냐고요. 그래서 때려치운 거예요. 제가 지금 여기 변산에 와서 농사지은 세월이 16년인데 제가 풀은 공동체에서 제일 잘 매요. 풀매도사예요. 이렇게 16년 동안 지내면서 한 번도 후회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악몽을 꾸면 내가 꼭 대학에 가 있는 꿈을 꿔요. (웃음)
청소년
농사를 짓고 변산공동체를 시작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윤구병
저는 '교육의 효과라는 것이 40년이나 50년 후에도 나타나는구나.'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를 농사꾼으로 만들려고 단단히 결심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외도를 계속했잖습니까? 대학 선생도 하고 잡지 편집자도 하는 외도를 계속했는데, 그 교육의 효과가 제 경우에는 40년이나 50년 후에 나타난 경우예요. 아버지가 저를 농사꾼을 만들겠다고 해서 어린 시절부터 저는 모도 심고, 김도 매고 그리고 어머니 따라다니면서 쑥도 캤어요. 저는 워낙에 어렸을 때부터 공동체의 품에서 자라났고 그리고 실제로 다시 귀농을 해서 공동체를 일구면서 공동체 품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에게 영향을 준 부모님 생각도 간절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아버지가 일제시대에 전라남도 함평군 밤골이라는 곳에서 공동체를 꾸렸다는데, 지금 큰조카가 간직하고 있는 사진을 보니까 그런 흔적들이 더러 보이더라고요.
시골에서는 서로 함께 돕지 않으면, 품앗이를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품이라는 것이 가정의 품도 있고, 세상의 품도 있고, 사회의 품도 있지만 서로 품을 주고받는 일품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시골에서는 서로 일품을 주고받지 않으면 살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모 심어 본 사람 있어요? (청소년 : 예.) 대단하네요. 모줄 띄워서 모를 심으면 꼭 잘 심는 사람 옆에 못 심는 사람, 못 심는 사람 옆에 잘 심는 사람 붙여서 잘 심는 사람이 한 여남은 개 심으면 못 심는 사람은 한두 개 꽂고 그러거든요. 능력 위주 사회에서는 모를 못 심는 사람은 도태가 돼야지요. 그런데 안 그래요. 함께 살아갑니다. 도리깨질은 모르죠? 도리깨라는 것은 보리를 터는 농기구예요. 보리나 밀을 터는 데에 주로 쓰이는데 도리깨질을 하는데도 한 가운데다가 보리 무더기를 모아놓고 돌아가면서 도리깨질을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잘하느냐로 능력별로 평가하자면 어떤 사람은 삽시간에 수북이 턴 걸 쌓아 놓고,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털어도 사실 조금밖에 못 털어요. 그런데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돌아가면서 하면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잘하는 사람도 드러나지 않거든요. 이렇게 함께 사는 상생 공존의 방법을 마을 공동체에서는 굉장히 다양하게 개발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수시켜 왔습니다.
저는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체로 태어났으니까 품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품을 산다, 품을 판다는 말도 있고, 품앗이라는 말도 있고, 엄마 품 아빠 품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품이라는 것은 실제로 울타리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고, 더 넓은 품으로 품들이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돕고 사는 힘들이 더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좋은 세상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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