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늙으면 몸도 쇠약해진다 老則色衰
병들어 광택이 없고 病無光澤
피부는 늘어지고 살갗은 쭈그러드니 皮緩肌縮
목숨이 다할 날 더욱 가까워지네 死命近促
『법구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부처님 말씀치고는 너무나 평범합니다. 늙으면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은 선지자의 가르침으로 알게 되는 진리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옛사람들이 이 평범한 사실을 게송偈頌으로까지 다듬어 사람들로 하여 끝없이 되풀이하면서 암송까지 하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고 살거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이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며 사는 탓일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늙음과 죽음이란 것이 내 삶과는 무관한, 남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한 인간으로서, 나아가 한 생명체로서 나이가 들어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상대에게 “늙어 보인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상당한 결례가 되는 요즘 세태에, 늙어간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되새겨보려고 합니다. 한발 더 나가서 늙은 다음에 찾아오는 죽음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인간은 누군가의 손으로 죽음을 마무리함으로써 삶을 완성하는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죽음이 어떤 예우를 받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한 사회의 수준과 품격을 가늠할 수도 있습니다.
다들 오래 살려고 합니다. 실제로 오래 살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늙기는 싫어합니다. 늙기는 싫어하면서 오래는 살고 싶어하는 모순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젊게 산다”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늙음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참 무겁고 어렵기도 하고, 또 조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들어서 즐겁지도 않고 재미도 없을 뿐더러 어쩌면 우울해지기도 하고 귀를 닫아버리거나 눈을 감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제 자신이 이미 늙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고, 남들 또한 그렇게 인정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충분히 그럴 나이가 되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늙어가고 있는 제 자신의 이야기와 심정을 늘어놓은 것과도 같습니다.
어느 사회에서건 늙음과 늙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늙음에는 존경보다는 항상 욕심, 추함, 고집, 병약함, 쓸모없음, 무지와 무능과 같은 부정적인 수식들이 따라 붙고, 가족과 사회에 짐만 지우는 불편한 존재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의 마녀는 항상 늙은 여자들이고, 구두쇠는 늘 늙은 남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나이 들었음을 부정하려 하고 늙음을 감추려 애씁니다. 그러나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늙은 티는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여기저기서 삐죽삐죽 닳고 낡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늙은 몸이 가진 속성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늙음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정서를 넘어서 있는 것 같습니다. 늙음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늙음이 지금처럼 조롱당하고 무시당하던 시절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몸에 대한 집착이 지나칩니다. 젊은 사람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늙은 사람들은 더 늙지 않기 위해 몸에 집착합니다.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투자를 한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몸짱, 얼짱, 동안童顔의 시대입니다. ‘에스라인’과 ‘브이라인’에 열광하고, 날씬한 몸매를 갖기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늙음을 감추고 젊음을 이식하는 처방과 시술들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늙음에 대한 이런 극단적인 부정은 우리 사회가 단기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경험하지도, 충분히 예상하지도 못했던 고령화 사회라는 세상이 급작스럽게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고령화 사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오로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만 맞추어져 있습니다. 물론 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라 국가의 장래를 설계하는 장단기 계획도 분명히 달라져야 하겠지만, 그 계획이란 것이 하나같이 경제에만 맞추어져 있다면, 그리고 또 사람을 능력과 생산성만으로 평가한다면 과연 우리 사회에서 누구를 노인이라 부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가 경제와 생산성이라는 잣대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범위는 대단히 확장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노인을 위한 대책은 젊은 사람들의 경제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시설이나 병원에 수용하거나 격리하는 것만을 능사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그에 따른 책임과 경제적 부담은 가족의 몫이고, 정부의 역할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늙고 병약한 가족을 둔 가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는 현상을 개인의 패륜이나 도덕심 파탄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우리 사회의 노인문제가 심각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짐으로써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노인들의 삶 자체가 점점 황폐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나이가 들긴 하였지만 엄연한 한 인격체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고, 자신들의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의지도, 영향력도 없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바로 노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의사의 눈으로, 또 늙어가는 길에 들어선 제 자신의 마음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병원이란 닫힌 공간에서 살아가는 늙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병든 노인들은 자신의 병이 낫는다는 기약이 없으므로 갇혀 있는 병실에서 벗어난다는 희망이 없습니다. 죽어야만 비로소 그 닫힌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상큼한 바람, 따뜻한 햇살 한 줌 맛보기 위해 애원을 하고 통곡을 하기도 합니다. 죽어가는 노인들은 한목소리로 “집에서 죽고 싶다”며 아우성을 치고 병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런 부모들을 모시고 나갈 엄두를 못 냅니다. 제 한 몸 추스르기 위해 감당해야 할 책임만으로도 현실은 너무 혹독하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늙고 병들어도 살던 집에서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윤, 효율, 경쟁력, 생산성을 제일 큰 가치로 섬기는 세상에서 쓸모없어 폐기된 몸들이 만들어내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새로운 풍경입니다.
이 책이 지금 이 시대의 노인들이 부딪치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늙지 않을 수 있는 처방이나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시술들을 늘어놓은 책도 아닙니다. 의사이긴 하지만 그런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대신,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병원에서 그저 죽기만을 바라고 있는 노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보려고 쓴 글들입니다. 그분들이 삶을 마무리하면서 남기고 간 흔적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낡고 쇠락한 몸을 의탁 받은 의사가 그들의 몸과 마음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노인 세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제일 큰 문제는, 세월이 흐르고 시절이 달라지면서 전통의 가치와 윤리는 물론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까지도 달라졌지만, 그분들은 그 변화를 수용할 능력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족의 관계나 가정의 문화까지도 자신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바뀌었지만, 그분들의 정서는 아직 전통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는 그분들에게 세상과 또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을 만큼, 너무나 빠르고 혁명에 가까운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단절된 관계를 이어줄 새로운 대안이나 대책은 아직 보이질 않습니다. 대책이라고 나오는 것은 하나같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대책뿐입니다. 치매 환자가 늘어남으로써 환자나 그 가족들이 고통을 겪는 데 따른 우려가 아니라, 폭증하는 의료비와 과도한 복지비 지출에 대한 우려들만 가득합니다.
노인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한 인간의 삶에서 젊음과 늙음을 분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늙음 뒤에 죽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태어나서 고단한 삶을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은 변함없는 생명의 법칙이요, 자연의 순리입니다. 의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이 법칙을 바꿀 수는 없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기술이 개발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은 이 지상에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법칙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노인문제는 바로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내일의 문제이고, 죽음 또한 내일 이후 곧 닥쳐올 문제입니다. 누구라도 비껴갈 수 없는 정해진 수순이요, 당연히 거쳐야 할 삶의 과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의 조급하고 바쁜 삶에서 저만치 밀쳐놓은 늙음과 죽음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상의 삶에서 젊음과 늙음은 공존해야 하고, 삶과 죽음 역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입니다.
노인문제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들의 인권문제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노인의 삶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전통적인 효의 실천을 더 이상 기대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되는 세상에서 효를 대체할 수 있는 사회제도와 법, 그리고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불편하기도 하고, 또 잘못되었거나 틀린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저의 편견이 짙게 드리운 글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지금 금기의 주제로, 외면하거나 잊은 채 살고 있는 늙음과 죽음의 이야기들이 세상의 관심을 좀 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머물고 있는 이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가혹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세상임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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