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길거리
―――――――――――――――――― 원더풀! 스위스 철도역
스위스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스위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디자인이 뭐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스위스 철도역을 얘기한다. 사실 그 대답을 들을 때마다 정교하고 심플한 스위스 칼, 스와치 시계 등 아름다운 제품을 두고 왜 하필 철도역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독일을 떠나 스위스 철도역에 도착한 순간 나 역시 스위스 철도역을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 난 타고난 방향치라 유럽의 낯선 기차역에 내렸을 때 어디로 나가야할지 몰라 늘 쩔쩔매곤 했다. 그런데 스위스 철도역은 신기하게도 처음 도착한 순간부터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한 눈에 훤히 보이는 것이다! 오랜 여행 끝에 드디어 방향치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잠시 우쭐해졌지만, 사실 그 탁월한 방향감각의 정체는 스위스 철도역 디자인의 힘이었다.
일단 스위스 역 안의 사인 시스템은 전체적으로 명도가 낮은 남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되어 있어 눈에 잘 띈다. 그리고 글자 역시 가독성이 좋은 굵은 산세리프체로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어 읽기 쉬우며 사인 시스템이 철도역 곳곳에 일괄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원하는 목적지를 찾기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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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요제프 뮐러 브로크만, SBB 사인 시스템 디자인, 1978 |
편리한 스위스의 철도역에 감탄한 것도 잠시, 다음 여정을 위해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러 갔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어느 도시에 도착하면 기차 시간표를 파악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혼잡한 역사에서 낯선 글자들을 읽으며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위스의 기차 시간표는 신기하게도 정보가 한눈에 쏙쏙 들어왔다. 다음 기차의 종류와 플랫폼까지 손쉽게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왜 그런지 의문을 갖고 곰곰이 기차시간표 디자인을 살펴보니 발차 시간, 기차 종류, 플랫폼 번호 등 정보의 위계가 정확하고 반듯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다른 서유럽 국가들의 사인 시스템은 대부분 똑같은 간격의 선으로만 되어 있어 읽기 불편하고 중요한 내용을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스위스의 철도역 인포 디자인은 선의 굵기와 글씨 크기, 글씨 색깔로 정보를 정확히 구분해 놓았으며,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를 써서 가시성을 높였다. 글씨 크기 역시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아 읽기 편했다. 누구라도 원하는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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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기차 출발 시간표 |
알고 보니 스위스 철도역 사인 시스템과 로고는 철도청에서 일괄적으로 만든 게 아닌, 뮐러 브로크만이라는 디자이너의 디자인 프로젝트였다. 뮐러 브로크만은 스위스 디자인을 세계에 널리 알린 스위스의 국보급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다. 스위스 철도역은 중요한 공공시설일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위대한 디자인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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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요제프 뮐러 브로크만, SBB 사인 시스템 디자인 가이드, 1978 |
철도역을 빠져나와 시내 구경을 하다 보면 철도역에서 보았던 가지런한 질서가 도시 디자인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로 표지판, 버스 안내판, 노선표 등의 공공디자인에도 명시성 높은 산세리프체를 사용하고 글씨 크기 역시 적절해 도시 미관과 잘 어울렸다. 공사장 안내판이나 시내 표지판 등 공적인 메시지를 알리는 사인 시스템도 정갈하고 가지런해 낯선 곳인데도 정서적 안정감이 느껴졌다.
―――――――――――――――――― 경쾌한 스위스의 공공디자인
하지만 스위스 길거리는 이렇게 기능적이고 단정한 디자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위스의 길거리 풍경은 산뜻하고 경쾌하다. 발랄한 주황색, 노란색 쓰레기통과 우체통이 관광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도시의 공해물이 될 수도 있는 쓰레기통을 경쾌한 색감과 귀여운 디자인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런가 하면 빨간 파이프가 길거리에 뚝 떨어져 있기도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공공디자인프로젝트 작품이었다. 자칫 단정하게만 흐를 수 있는 풍경 속에 발랄한 디자인 요소가 들어가 도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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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바젤의 쓰레기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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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바젤의 우체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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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바젤의 공공디자인 |
이런 경쾌함은 스위스의 여권과 지폐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을 때 여러 나라의 여권 디자인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권이 바로 스위스 여권이었다. 새빨간 커버에 흰색 글씨와 국기가 박혀 있는 스위스 여권은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올 뿐 아니라 내지 역시 매우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그런가 하면 스위스 지폐는 어떤가. 스위스 프랑은 화사한 디자인으로 여행자들에게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는 화폐로 유명하다. 보통 화폐는 단색으로 되어 있는데 스위스 지폐는 여러 가지 색과 다양한 형태의 조합으로 되어 있어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곧 새로운 지폐 디자인으로 교체될 예정이지만 스위스의 여권과 지폐는 스위스 공공디자인의 경쾌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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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로저 푼드, 스위스 여권 디자인,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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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조르그 진트메이어, 스위스 화폐 디자인, 1997 |
결국 다 달랐다
―――――――――――――――――― 디자인은 다 다르다
처음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나라마다 디자인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독일은 엄격한 군인 같았고, 스위스는 깔끔한 수학자 같았으며, 네덜란드는 사치스러운 무역상 같았다. 프랑스는 주근깨 가득한 발랄한 화가 지망생이었고, 영국은 지킬과 하이드였다.
독일은 무조건 잘 읽혀야 했다. 글씨는 항상 큼직큼직했으며, 누구나 빨리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하학적이고 직선적인 산세리프체를 사용했다. 정확한 그리드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했으며, 위계를 분명히 해 가독성을 높였다. 하지만 가독성 높고 기능적인 독일 디자인은 일러스트와 조형적 요소가 빈약했다.
스위스 바젤은 같은 독일어권답게 길거리 그래픽디자인도 독일과 비슷했다. 타이포그래피만으로 디자인을 하고, 그리드를 엄격히 나눠 질서를 잡았다. 하지만 독일과는 달리 대각선이나 유기적인 곡선 등을 자유롭게 사용해 독일보다 아름답고 발랄하며 정교했다.
네덜란드는 도시의 풍경 곳곳이 모두 아기자기하면서 화려했다. 좁은 공간을 쪽쪽이 나눠 화려한 장식을 하고 선명한 원색을 즐겨 사용했다. 그래픽디자인에서도 면을 자잘하게 쪼개고 잉크를 겹쳐 찍는 등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며 장식적 요소를 덧붙였다. 또한 채도 높은 색과 다양한 기하학적 도형을 사용해 가독성을 높였다. 하지만 화려한 외관에 치우쳐 내용은 정확히 추측하기 힘들었다.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기하학적인 도형을 찾아보기 힘든 대신 곡선과 자유로운 손그림으로 감성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저채도와 중채도를 아우르는 부드러운 색 조합은 화사했고, 문자를 조합한 타이포그래피로 예술성을 높였다. 기능적인 목적의 그리드 역시 프랑스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수직·수평 대신 사용한 구불구불한 그리드의 그래픽디자인은 프랑스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결정적으로 프랑스가 다른 나라들과 달랐던 점은, 포스터에 비유와 아이디어를 넣어 포스터를 개념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포스터는 프랑스어를 읽지 못해도 그 뜻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한편 영국은 극단성이 공존하는 나라였다. 고전적인 소재와 전통 기법을 사용한 우아한 그래픽디자인과 사이키델릭한 네온 컬러에 펑키한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그래픽디자인이 공존하고 있었다. 왕실 문장을 이용한 고풍스러운 디자인 옆에 펑크 문화에서 보이는 반항적이고 자극적인 그라피티가 공존했다.
―――――――――――――――――― 디자인과 예술의 역사가 다르다
이렇게 길거리의 그래픽디자인이 서로 다른 이유는 예술과 디자인의 역사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독일은 독일공작연맹 결성 후 제품을 빠르고 쉽게 생산하기 위해 표준화 작업에 몰두했다. 바우하우스는 표준화에 적합한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러한 바우하우스의 직선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은 독일의 길거리에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독일 바로 옆에 있는 스위스 역시 독일 디자인의 영향권 내에 있었기 때문에 독일과 디자인이 비슷해졌다. 신타이포그래피의 아버지 얀 치홀트가 스위스로 망명 오면서 독일 타이포그래피의 조형 이념은 스위스에서 꽃을 피웠다. 후대 스위스 디자이너들은 여기에 수학적인 질서의 그리드를 더하면서 스위스의 디자인은 어떤 나라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국제 타이포그래피’로 인정받았다.
독일에서 바우하우스가 생기던 시기, 네덜란드에서는 두스뷔르흐와 몬드리안을 주축으로 『데 스테일』이 발간됐다. 영어로는 ‘the style’이 되는 데스테일은 그 이름처럼 유럽의 새로운 모더니즘 스타일을 선도했다. 데 스테일은 형상을 삼원색과 수평?수직 선으로 표현하며 극단적으로 추상적인 디자인을 시도했다. 데 스테일 디자이너들은 독일의 바우하우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네덜란드 특유의 장식성에 기하학적 스타일을 가미했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에서 보았던 미니멀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 경향을 우리는 ‘모더니즘 디자인’이라 부른다. 허나 이 모더니즘의 열풍 속에서 고고하게 자신들의 스타일을 지켜나가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와 영국이었다.
새로운 조형 운동이 맹위를 떨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낭만적이고 회화적이었다. 독일의 베렌스가 미니멀하고 수학적인 디자인을 선보일 때 프랑스의 툴루즈 로트렉이나 세레는 회화의 전통을 디자인에 접목시켰다. 독일공작연맹이 기능미를 추구하며 제품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만들 때 프랑스의 아르누보는 구불구불한 곡선과 화려한 장식으로 프랑스 특유의 유기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서유럽에 기하학적 모더니즘이 득세할 때도 프랑스 디자인은 여전히 일러스트 중심이었다. 프랑스는 모더니즘 디자인의 유행과 상관없이 언제나 프랑스다운 디자인을 고수했다.
영국 또한 전통적인 디자인에 기반한 절충주의를 선보이며 새로운 디자인 흐름에 맞서 옛것을 지켰다. 유려한 산세리프체에 금기나 다름없던 가운데맞춤을 구사했으며, 고풍스러운 장식 요소를 더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륙의 디자이너들이 ‘부르주아의 디자인’이라고 타도하고자 했던 바로 그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르주아 디자인 타도의 선봉장이었던 얀 치홀트가 영국으로 건너와 고전적인 타이포그래피를 부활시켰다. 얀 치홀트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은 아직도 영국 북디자인에 남아 있다. 이러한 영국식 조형은 당시 대륙에서 유행하던 모더니즘 디자인에서 한발 비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 역사와 사회가 다르다
이처럼 각 나라의 모던 디자인은 같은 시기에 나온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로 달랐다. 같은 유럽인데 왜 이렇게 다른 디자인이 나오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각 나라의 모더니즘 스타일을 만든 모던, 즉 근대화 과정이 나라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일찍 산업혁명에 뛰어든 선발 자본주의 국가였다. 영국은 뿌리 깊은 자본주의 국가이자 의회민주주의 국가였다. 따라서 한번에 사회를 뒤집을 혁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프랑스 역시 영국과 함께 일찍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면서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룩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일찌감치 근대국가의 기틀이 마련됐고,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근대적인 자본주의도 성공적으로 발아했다. 따라서 일찍부터 상업광고가 발달했고, 풍부한 회화 전통 아래 보다 장식적이고 표현적인 디자인이 성행했다.
한편 독일은 사정이 판이하게 달랐다. 거친 자연환경과 계속된 전쟁으로 19세기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했고, 근대국가의 출발도 늦어졌다. 식민지 경쟁에도 늦게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장 전쟁을 앞두고 있는 물자부족 국가 독일에게 필요한 것은 ‘싸고 빨리 많이’였다. 효율성과 기능이 최고의 미덕이 됐다. 여기에 사회주의 정부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반反장식적인 조형이 사회적 합의를 얻었다. 독일은 기능적인 기하학적 모더니즘이 탄생하기에 최적의 토양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공통적으로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중립국이었다. 네덜란드는 나치의 침입을 당하긴 했지만, 두 국가 모두 평등한 시민 의식이 발달한 근대국가였다. 스위스와 네덜란드는 독일의 바우하우스와 함께 새로운 조형 이념을 만들어 내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정작 독일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모더니즘이 퇴조해 버렸지만 스위스와 네덜란드는 그 씨앗을 물려받아 성공적으로 모더니즘 디자인의 열매를 맺었다.
이처럼 그 나라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을 찬찬히 바라보면 그 나라의 역사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굳이 꾸미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미감은 그 나라가 어떤 디자인을 지향하는지, 그리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척도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이 제각기 다른 얼굴과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을 살펴봤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음에도 길거리의 분위기가 달랐고 그래픽디자인이 다르며 그 사회와 역사도 달랐다.
사람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면 그 얼굴이나 분위기가 다르듯이, 길거리 그래픽디자인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 나라의 정체성과 미감은 평범한 길거리의 그래픽디자인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어쩌면 그 나라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것은 그 나라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은 어떨까? 디자인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은 과연 우리를 얼마나 대변해 주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간 글씨만 한국어일 뿐 때로는 스위스풍, 때로는 네덜란드풍, 또 때로는 일본풍으로 보이는 그래픽디자인을 많이 봐왔다. 유럽의 길거리 그래픽디자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에 따라 디자인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서로 ‘다름’에서 매력과 가치가 생긴다면, 이제는 우리의 디자인이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달라야 할지 고민해 볼 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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