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냉방과 에너지와 환경의 삼각관계
전 세계의 냉방 사랑
냉방 사랑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2008 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연구자 욜랜드 스트렌저스Yolande Strengers는 이렇게 언급했다. “쾌적함을 추구하는 문화의 확산 속도는 기후 변화 속도보다 빠르다.” 전 세계의 에어컨 관련 풍경을 간단히 짚어보자.
· 1997년에서 2000년 사이 에어컨을 설치한 중국 가정이 세 배 늘어났다. 중국에서는 매년 2000만 대에 가까운 에어컨이 팔려나간다. 38 그 사이 인도에 진출한 세계 최대 에어컨 제조사 LG전자는 앞으로 인도의 중산층 가족 구성원들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게 되리라는 전망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중이다. “기온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높아지면 에어컨도 텔레비전만큼 많이 팔릴 것이다. 게다가 인도는 점점 더 오염이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
· 에너지를 펑펑 쓰기로 소문이 자자한 두바이에 팔라초베르사체 호텔Palazzo Versace hotel을 신축하는 건설회사는 팔라초베르사체 호텔이 세계 최초로 해변에 에어컨을 설치한 호텔이 될 것이라고 2008년 밝혔다. 건설회사 관계자는 모래 아래 냉각수가 흐르는 관을 매설하고 “대형 송풍기를 설치해 해변에 미풍이 불게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영장에 채워지는 물 역시 차갑게 만들어 사용할 예정이다. 1인당 탄소발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두바이에 지어질 이 체인형 호텔의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팔라초베르사체 호텔은 전 세계 최상류층 사람들이 꿈꾸는 바로 그런 호화로운 호텔이 될 것입니다.”
· 체리언 조지Cherian George가 2000년 발간한 수필집 《에어컨 제국Air-Conditioned Nation》은 싱가포르를 빗댄 말이다. 적도 부근에 위치한 도시국가 싱가포르에 그런 별칭이 붙게 된 것은 2005년 새로운 야간 관광명소가 생기면서부터다. 서큘러로드Circular Road에 있는 에스키 바Eski Bar의 실내 공기는 음료보다 더 차갑다. 실내온도를 영하 1도에서 0도로 유지하는 에스키 바는 손님으로 북적인다고 한다.
·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 위치한 덴파사르에는 강아지 전용 ‘호텔’이 있다. 에어컨이 설치된 길이 1.5 미터, 높이 1.5 미터의 정육면체 공간에 대해 《자카르타 포스트Jakarta Post》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개 호텔에는 임대용 공간이 35개 마련되어 있다. 하루 사용료는 7만 5000 루피아(미국 돈으로 8달러 30 센트)인데 사용료에는 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각 공간마다 개 전용 침대가 구비되어 있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
· 에어컨조차 가동하지 못할 만큼 더운 날이 있을까? 런던의 여름철 날씨가 계속 더워져서 그 유명한 쌀쌀하고 축축한 날씨를 밀어내고 있다. 2005 년 7월 영국 최대 철도회사인 사우스웨스트 트레인스South West Trains는 열차의 에어컨 가동을 멈춰야 했다. 이유인즉슨 그 에어컨이 ‘1985년 영국의 정상적인 여름철 날씨’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지나치게 치솟은 기온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열차로 출퇴근하는 승객들은 밀폐된 ‘금속 상자’에 들어앉아 꼼짝없이 더위를 견뎌야 했다. 런던의 《타임스Times》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동식 사우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식당칸 담당자에 따르면 그날 음료 매출이 세 배 늘었다. 더위가 매출 증대에 기여한 것이다.”
·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도시에서 온도 조절의 역할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피닉스 남부의 교도소에서는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재소자들에게 벌을 준다. 기록적인 폭염이 피닉스 남부에서 맹위를 떨친 2003 년 7월, 연합통신Associated Press 기자 아난다 쇼레이Ananda Shorey는 강경파 보안관인 조 아파이오Joe Arpaio가 재소자 2000명을 분홍색 속옷만 걸치게 한 채 에어컨이 없는 야외 천막에 머물게 해 논란이 된 사건을 취재하러 마리코파 카운티 교도소를 찾았다. 천막 안에는 “재소자 수백 명이 속옷만 걸친 채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있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주일 전 천막 내부 온도는 58 도까지 올랐다. 분홍색 속옷은 땀에 젖은 지 오래였고 흘러내린 땀은 가슴 부근에 고였다가 이내 분홍색 양말 쪽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 가혹한 조건에 내몰린 것은 인간 재소자뿐이었다. 학대당하고 방치된 동물을 보호하는 교도소 부속건물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 맨해튼 섬 위에 우뚝 서서 창문으로 열을 빨아들이는 대형 건물인 유엔 사무국 건물의 실내온도가 2도 높아졌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1960년대 유엔 사무국 건물이 찍었던 탄소발자국 수준으로 돌아가기 위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실내온도를 25도에 맞추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극지의 얼음이 녹고 있어 어느 시점에는 국토의 일부가 물에 잠길 처지에 놓여 있는 방글라데시 전 前유엔대사는 이 조치가 “생색내기”라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어도 열대지방 출신 직원들에게는 전통의상이 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반기문 사무총장은 각국 대표들과 사무국 직원들에게 ‘전통의상’ 착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에너지 집약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온도 조절은 모든 대륙의 부유한 도시나 교외 주택가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서구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기후 변화 논의의 정점에는 불길한 예언이 자리 잡고 있다. 인도와 중국에서 팔려나가는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을 무색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인도 푸네 Pune 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프라야스 에너지 그룹Prayas Energy Group의 분석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도나 특히 중국에게, 탄소 배출을 제시된 수준 이하로 신속하게 감축해야 하고 탄소를 덜 배출하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그럼에도 서구 국가들은 인도와 중국이 앞으로 배출할 탄소 배출 수준을 예로 들면서, 자기들이 과거와 현재에 걸쳐 배출해온 탄소에 대한 변명거리로 삼고 있다. 그런 변명을 통해 서구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과거 수준으로 돌이키겠다는 최소한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자기들에게 쏟아지는 이목을 분산시키려는 것이다. 심지어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가 제시한 계획 중 가장 규제가 심한 계획에 따르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힘 있는 (미국을 비롯한) 회원국들은 2024년까지 실질적인 감축을 달성할 필요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른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에 동의했다. 2005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 배출 수준을 1990년 이전으로 돌이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은 교토의정서가 정한 대로 1990년부터 2024년까지의 35년 동안 1990년의 배출 수준보다 초과 배출한 온실가스만 벌충하면 그만이다. 미국은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만일 교토의정서의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기준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2024년까지는 과거 지나치게 많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바로잡지 않아도 된다.
그 때문에 기후문제를 둘러싼 국가 간의 거리는 하나도 좁혀지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싱크탱크인 에코이쿼티EcoEquity는 “온실개발권에 관한 기본 틀Greenhouse Development Rights Framework”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기후 위기를 인식하고 인류가 그 문제에 얼마나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사람들조차 개발 위기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한다. 개발과 기후라는 두 존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어서 국제적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후 보호를 위한 기본 틀을 수립한다 해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실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이다.
그러는 사이 서구 나라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했다며 서로에게 손가락을 겨누는 동시에 에너지 소비를 크게 늘릴 대규모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아시아의 경제대국에게 손가락을 겨누고 있다. 서구의 중심을 이루는 국가들에게 인도보다 인구도 많고 더 부유한 중국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세계적인 소비자들처럼 많이 소비하지 않는 자국 국민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12월, 중국 가정이 다른 국가 시민에 비해 소득에서 더 많은 비중을 은행에 예치한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실망한 중국 정부는 200종류의 가전제품을 정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농촌 정책을 확대했다. 2009년 2월에는 보조금 지급대상 가전제품이 에어컨, 오토바이, 컴퓨터, 온수기로 확대되었다. 에어컨을 소유해본 적 없던 사람들이 에어컨 구입을 망설이자, 중국 정부는 도시 아홉 곳을 선정해 기존 에어컨 보유자가 새 에어컨을 구입하면 헌 에어컨을 정부가 무상으로 수거해 ‘재활용’하고 새 에어컨을 구입한 사람에게는 구입 금액의 10퍼센트를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에어컨 세 대 중 한 대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대부분은 수출용이지만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만큼 내수용 생산도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7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인도 중산층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적극적으로 구입한다. 그 덕분에 에어컨 시장은 호황이다.
냉매의 딜레마
에어컨은 대기 중으로 냉매를 방출해 대기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생산, 운송, 설치, 가동, 폐기하는 과정에서 냉매 중 일부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온다. 1990 년대 이전 에어컨 냉매로 사용되었던 염화불화탄소chlorofluorocarbons, CFCs는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을 파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물질이다. (획기적인 염화불화탄소 냉매인 프레온Freon은 1930년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프리지데어 냉장고Frigidaire 부문에서 근무하던 화학자 토머스 미즐리Thomas Midgley가 개발했다. 프레온을 개발하기 이전에는 납을 추가하면 자동차 엔진의 노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납은 심각한 대기오염과 건강 문제를 야기했다. 역사가 맥닐J. R. McNeill은 두 가지 중대한 발견을 한 미즐리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지구 역사상 단일 생명체로서는 대기에 가장 큰 충격을 미쳤다.”) 염화불화탄소가 극지방의 ‘오존 구멍’을 급속도로 확대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87 년 오존층 파괴물질에 관한 몬트리올의정서Montreal Protocol on Substances that Deplete the Ozone Layer가 체결되었다. 몬트리올의정서는 모든 나라, 모든 산업 부문에서 염화불화탄소 사용을 금지하고 해가 더 적은 새 냉매를 사용하기로 약속했다. 그 결과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더 주의하고 약간의 운이 따른다면 2070년 무렵에는 오존층이 원래 두께를 회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임시로 사용할 냉매로 수소염화불화탄소hydrochlorofluorocarbons, HCFCs가 도입되었다. 건물에 설치되는 에어컨에 널리 사용되는 HCFC-22는 염화불화탄소가 지닌 오존층 파괴력의 5퍼센트 수준으로 오존층을 파괴한다. 그러나 국제 규제기구는 오존에 미치는 그 정도의 영향도 과하다고 판단했다. 더 큰 문제는 HCFC-22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이산화탄소의 5000배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201 년부터 미국에서 새로 제조되는 장비에는 HCFC-22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부유한 여러 나라에서도 2020년부터는 HCFC-22 사용이 금지될 예정이다. 값이 저렴하고 사용이 편리하기 때문에 중국, 인도, 그 밖의 새로 부상하는 신흥경제대국들에게는 2040년까지 사용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경제대국에서 에어컨과 냉장고 생산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HCFC-22를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탄화수소hydrocarbons 같이 유해성이 덜한 새로운 냉매로 대체하려는 노력이 탄력을 받게 되었다.
오존층을 파괴할 잠재력을 가진 자동차 에어컨 냉매 CFC-12를 대체하기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제조사들은 수소불화탄소hydrofluorocarbons, HFCs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존층을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HFC-134a 1 킬로그램은 이산화탄소 1430 킬로그램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것과 맞먹는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미국의 자동차 에어컨에서 빠져나온 냉매는 매년 대기에 이산화탄소 4800만 톤과 같은 수준의 지구온난화 효과를 야기하게 되었다. 에어컨 가동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태워지는 연료가 유발하는 4500만 톤은 계산에서 제외되었다. 미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HFC-134a 를 대체할 HFC-152a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은 HFC-134a의 10분의 1 수준인 데다, 에너지 효율이 고도로 높은 실험적인 장비에 사용할 경우 에어컨으로 인해 자동차가 추가로 소모하는 연료량도 줄여줄 수 있다.
2000년에 세상을 떠돌던 냉매는 230만 톤으로, 대부분 기존에 생산된 제품에 든 채로 존재했다. 그중 63퍼센트는 에어컨 안에 남아있는 냉매였다. 그리고 지금도 매년 45만 톤의 냉매가 새로 생산되고 있다. 더 이상 오존을 파괴하는 염화불화탄소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진 않고 있지만 과거에 생산되어 아직 사용 중인 제품 안에 있는 염화불화탄소는 전체 냉매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염화불화탄소 배출량이 약간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2000년으로 접어들고 나서 첫 10년 동안에도 과거 생산된 제품에서 염화불화탄소가 여전히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2000 년 배출된 전체 냉매 중 37퍼센트는 건물 냉방에 사용되는 에어컨에서 흘러나왔고 26퍼센트는 자동차와 트럭에 장착된 에어컨에서 나왔다.
아무리 오존 친화도가 높다 하더라도 냉매로 사용되는 화합물은 모두 지구온난화에 기여할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유해성이 덜한 새로운 냉매로의 전환이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냉매를 사용하는 제품 시장도 꾸준히 성장한 탓에 2000 년 흘러나온 냉매가 지구온난화를 악화시킬 잠재력은 1990 년에 비해 약간 더 높아졌다. 인구가 전 세계의 5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북아메리카에 존재하는 각종 제품은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전체 냉매의 43 퍼센트를 담고 있고, 냉매가 유발하는 지구온난화 효과의 38퍼센트를 유발한다. 냉매 사용은 그 밖의 나라들에서도 급증하고 있는데 단연 중국이 선두다. 프로판, 탄화수소, 암모니아, 심지어 이산화탄소까지 염화불화탄소와 수소염화불화탄소를 대체할 대안 냉매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물질들은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을뿐더러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비교적 적거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든 가전제품이든 냉방장치를 제조하는 공장이든 영원한 것은 없다. 따라서 폐기된 제품에 들어 있는 1세대 냉매를 찾아 제거하고 새 냉매로 대체하는 일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새어나오는 냉매가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냉매는 내구성을 가지도록 화학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냉매를 파괴해 무해한 물질로 바꾸는 일에는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낡은 에어컨과 냉장고가 버려지면 냉매가 흘러나오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에 이렇게 기록했다.
만일 인류가 사라진다면 염화불화탄소와 수소염화불화탄소를 냉매로 사용한 수없이 많은 자동차 에어컨, 가정용 및 상업용 냉장고, 냉동트럭, 기차, 가정과 건물의 에어컨 시스템이 결국 망가질 것이고, 20세기가 만들어낸 염화불화탄소 유령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방된 염화불화탄소 유령들은 성층권까지 올라가 회복세에 접어든 오존층을 파괴해 재기불능으로 만들 것이다.
기존의 냉매를 대체할 가능성을 지닌 물질들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암모니아는 독성과 인화성 때문에 1930 년대에 접어들면서 염화불화탄소에 자리를 내주었다. 한편 제임스 캄 James Calm 에 따르면 대형건물 냉방 시스템에 수소염화불화탄소와 수소불화탄소 대신 효율성이 떨어지는 냉매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할 가능성이 있다. 캄에 따르면 탄화수소와 암모니아는 열전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염화불화탄소나 수소염화불화탄소, 수소불화탄소를 냉매로 사용했을 때와 동일한 수준의 쾌적함을 유지하려면 냉방 시스템은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발전소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를 대기 중으로 더 많이 배출할 수밖에 없다. 캄은 이렇게 설명한다. 안타깝지만 “이상적인 냉매는 없다. 이상적인 냉매라면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고 지구온난화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높은 [냉각] 효율성을 자랑해야 한다. 독성도 낮아야 하고 인화성도 없어야 한다. 비용이 저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물질과 함께 사용하기에도 적합해야 한다. 그러면서 화학물질이나 열에도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런 특성을 골고루 갖춘 물질이 세상에 있을 법하진 않다. 따라서 타협이 불가피하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에어컨은 현대기술의 경이였다. 에어컨은 미국 전역에서 마케팅 수단이자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부상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신흥 산업국에서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 에어컨은 당연한 존재로 여겨진다. 미국에서 에어컨이 없는 집은 사실상 매매가 거의 불가능하고 온도 조절을 하지 않는 상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경제에서 에어컨은 소비재만큼이나 중요한 근본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건강이나 번영은 둘째치더라도 대기에 미치는 피해를 가속화시키지 않으면서 쾌적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아주 복잡하고 까다로운 기술이 요구된다.
에어컨의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냉매를 사용하지 않고 냉방할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아껴두기로 하자. 대안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에어컨이 미국의 경제, 사회, 사람들, 심지어 정치에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통합되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냉방을 통한 온도 조절은 에너지 사용이나 탄소 배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에어컨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여러 차원에서 형성해왔다. 에어컨을 영웅처럼 떠받드는 사람도 있지만 에어컨을 악당이라고 경멸하는 사람도 있는데, 에어컨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그 두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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