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로슬링이 말하는 세상의 변화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은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교수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통계학자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UN 데이터를 활용해 세상 사람들이 가진 편견을 일깨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려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데이터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입니다. 한스 로슬링은 데이터 없이 한 사회나 국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가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된 데는 개인적인 경험이 큰 몫을 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15년 전,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국제보건학 강의를 맡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프리카에서 20년 동안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를 연구하고 돌아온 직후였습니다. 하지만 한스로 슬링은 조금 불안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오는 학생들은 스웨덴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었고 자신이 가르칠 과목에 대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시작하는 날 학생들을 상대로 시험을 쳤습니다. 학생들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5쌍의 나라 이름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어린이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어디인지를 써내도록 했습니다. 각 쌍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어린이 사망률의 2배가 되게 하였습니다. 한스 로슬링이 학생들에게 나눠 준 문제지에는 폴란드, 러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파키스탄,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고민 끝에 자신이 생각하는 나라의 이름들을 적어 냈습니다.
며칠 후 한스 로슬링은 학생들이 제출한 답안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스 로슬링이 보기로 든 나라들 가운데 어린이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터키였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폴란드와 러시아,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고 적어 제출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적잖이 당혹스러웠습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통계적으로 볼 때 침팬지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침팬지에게 스리랑카와 터키 두 나라를 보기로 주고 정답을 맞히라고 한다면 반은 맞출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이 틀린 답을 내놓았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카롤린스카 의대 의학연구소 교수들에게도 똑같은 시험 문제를 내 봤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노벨의학상을 수여하는 교수들이었는데 학생들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이것이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편견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그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버블 차트를 개발해 냅니다. 한스 로슬링은 학생들에게 이 버블 차트를 보여 주며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세계가‘우리’와‘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서방세계’였고 그들은‘제3세계’국가들을 의미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다시 서방 세계란 무슨 뜻인지 물었고 학생들은 수명이 길고 가족 수는 적은 나라라고 답했습니다. 제3세계는 그 반대였습니다. 수명이 짧고 가족 수가 많은 나라를 의미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다음의 통계자료에서처럼 자신이 개발한 버블 차트의 가로축에는 세계 국가들의 출산율을, 세로축에는 출생 시 기대 수명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차트 안에는 버블로 표시된 각 나라가 군데군데 모여 있습니다. 산업화된 나라들은 가족 수는 적고 기대 수명은 높은 쪽에, 개발도상국들은 가족 수가 많고 기대 수명은 적은 쪽에 모여 있었습니다.
한스 로슬링의 차트에는 세계 인구와 보건에 관한 200년 치의 데이터가 들어 있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학생들의 편견을 바로 잡아 주고 싶었습니다. 차트의 연도가 바뀔 때마다 각 나라를 상징하는 버블이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 수가 많고 기대 수명이 적었던 제3세계 국가들이 학생들이 이야기했던 서방 세계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스 로슬링의 버블 차트는 수십 년 동안 제3세계 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생생하게 보여 줬습니다. 기대 수명은 낮고 출산율이 높았던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이 서서히 서방 세계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대 수명과 출산율 면에서 제3세계와 서방 세계는 더 이상 따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세계는 하나였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변화된 세상의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학생들의 편견도 그 순간 사라졌습니다. 방대한 데이터로 본 세상의 모습은 학생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전 세계의 수많은 정책 연구자들과 기업들이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하면서도 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지 의아해 합니다. 유엔과 연구소, 대학들, 각 나라의 정부 기관들, 비정부 조직들이 수없이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도 활용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이 갭마인더Gapminder라는 비영리 벤처를 설립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갭마인더라는 이름은 런던 지하철 문구 ‘Mind the Gap’에서 영감을 얻 었습니다. 간격이 떨어져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갭마인더Gapminder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빈부 격차와 건강 격차를 잊지 말라는 한스 로슬링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빈부와 차별을 없애고 저소득 국가들의 건강을 증진해 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한스 로슬링의 의지 또한 담겨 있습니다. 갭마인더 사무실은 스웨덴 스톡홀롬에 있습니다. 2011년 겨울 이곳에서 한스 로슬링을 만났습니다. 세상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 이면에 데이터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고 주도하는 냉철함이 느껴졌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한국에 와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관한 데이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는 그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국이 어떻게 그렇게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 믿을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급격히 줄고 있는 한국의 인구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이 컸습니다. 놀랍도록 빠른 성공을 거둔 나라에서 왜 해마다 자녀수가 감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그 자리에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한국의 인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지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곧바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인구 데이터를 복잡한 숫자 대신 사람 모습을 한 그래픽으로 단순화했습니다. 그리고 나이별 데이터를 활용해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의 인구가 얼마나 감소하는지를 예측했습니다. 해가 바뀌면 사람 모습을 한 그래픽들은 한 줄씩 위로 올라갔습니다. 10대에서 20대로 20대에서 30대로 나이를 먹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뜻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녀 수는 계속 감소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청소년이 되고 아이들을 낳는 연령대에 도달할 때마다 그들이 가지는 자녀 수는 계속 감소했습니다. 반면 60대 이상 노령 인구는 연도가 바뀔 때마다 계속 늘어 갔습니다. 2030년이 되자 단순히 자녀 수가 감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인구 자체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적으로 돌봐야 하는 고령 인구가 젊은 세대보다 더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계속해서 한국의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을 데이터를 통해 탐구해 나갔습니다. 나라별 인구 데이터와 수명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이 1945년 이후 얼마나 빠르게 수명이 늘었고 가족 규모가 작아졌는지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습니다. 스웨덴 인구보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여성 한 명당 1.2명의 자녀밖에 가지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 그의 그래프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는 이 같은 극적인변화가 가능했던 배경을 한국의 경제 발전과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에서 찾았습니다.
한국의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발전했는지를 스웨덴과 미국, 일본과한국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자동차 경주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볼보와 포드, 도요타와 현대차의 레이스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이 나는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사실 네 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과 기대 수명이 60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47년 형편없을 정도로 낮았던 한국의 국민소득과 기대 수명은 이후 훨씬 앞서 있던 미국과 스웨덴, 일본 등 선진국들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야기할 때마다 미국과 일본을능가하는 여성의 교육 수준과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인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성적 데이터를 국가별로 비교한 그래프를 보여 주며 한국의 빠른 경제 발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해내지 못한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루어 내기 위해 한국 사회가 치러야 했던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연구실 벽면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그래프로 채워졌습니다. 수많은 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과 10만 명 당 자살자 수를 담은 그래프였습니다. 데이터는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들 가운데 한국만큼 자살자 수가 많은 나라는 없음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자살률이 높은 스웨덴, 일본은 물론 미국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현실이 보였습니다.
한국의 자살률은 2010년을 기준으로 33.5명에 이를 만큼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불명예는 8년이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학교와 경제면에서 이룬 유례없는 성과가 비용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높은 교육열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존을 건 치열한 경쟁이 어느 나라도 만들어 내지 못한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 냈지만 그 때문에 개인들이 겪는 심리적 압박이 인간의 가장 큰 비극인 자살로 귀결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이제 스웨덴 등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행복과 자존감을 느끼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일과 가정생활을 동시에 꾸려야 하는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와 인식의 전환 없이는 여성들이 더 많은 아이를 원하는 사회가 되기는 어렵다고 역설했습니다. 한국의 여성들이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지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스 로슬링의 데이터는 한국 사회가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른 측면에서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때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인구와 보건, 교육, 소득과 분배, 물, 위생, 전기, 이산화탄소 배출, 전쟁, 빈곤 등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세계의 변화를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그가 보는 데이터 속에 감추어진 의미들은 세상을 바꾸는 실마리가 됩니다. 그는 “세상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많지만 불가능한 것은 없다The Seemingly Impossible is Possible”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어렵고 불가능해 보였던 세상의 수많은 일이 변화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순간을 수없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그에겐 데이터가 있고 그 변화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스 로슬링에게 데이터는 세상을 보는 창이자 변화를 만들어 내는 도구입니다.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