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자연과 벗하니 발아래 세상이로고
술을 마시며(飮酒)
마을에 초막을 엮고 살아도
수레 소리 떠들썩하지 않네.
그대는 아는가, 그 까닭을
마음이 멀어지니 절로 그렇다네.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들고
물끄러미 남산을 보네.
날이 저물어 산그늘 길게 눕고
날던 새도 짝지어 돌아온다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건만
말을 하려 하나 이미 말을 잊었네.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도연명陶淵明의 ‘술을 마시며(飮酒)’이다. 도연명은 이 제목으로 스무 수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다섯째 수이다. 「문선文選」에는 ‘잡시雜詩’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 시 한 편만으로도 영원히 그 이름이 남을 것이다. 그만큼 ‘귀거래사’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늘 관직에서 물러나려고 하여 평생을 두고 벼슬에 임명되고 사직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는 퇴계 이황도 도연명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이황은 도연명의 시가 ‘담담하고 깨끗하며 한적하고 아취가 있어서 구절과 운율에는 어떤 의도가 없는 듯하고, 말을 꾸민 것은 자연스러우며, 시의 뜻은 순박하고 고풍스러워서 그의 시를 읽고 맛을 보면 속세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만물 가운데 홀로 초탈하게 서 있는’ 느낌을 준다고 하였다.
옛날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지식인들이 과거를 보아 관직에 나아갔다가 뜻이 맞지 않거나 불우한 일을 당하여 은퇴하는 것을 으레 귀거래사를 읊조린다는 말로 나타냈다. 때로는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을 벗하는 것을 고귀한 일로 여기기도 했다.
명예와 이익의 부침浮沈을 겪고 권력과 부귀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면 누구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사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경쟁이 없던 어린 시절, 배만 부르면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던 시절, 오로지 앞날의 희망만 있던 시절, 때로 실수를 저지르고 잘못을 해도 너그러운 웃음으로 넘어가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어쨌든 벼슬에서 물러난 사람 가운데 벼슬이 정말 죽도록 싫어서 떠난 사람은 아마 몇 안 될 것이다. 왕조시대에는 벼슬을 해야만 사람 행세를 할 수 있었고, 자기 포부를 실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만큼, 여러 가지 이유로 아예 벼슬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벼슬하는 것을 지상 목표로 생각했고 당연한 일로 여겼다.
그러니 공신의 후예이며 명문 귀족이었지만, 가난했던 도연명으로서는 벼슬하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권력자에게 아첨하려던 지난날이 잘못되었고 전원으로 돌아가려는 선택이 옳았다고(覺今是而昨非) 마음먹기란 쉽지 않았겠다. 그런데도 도연명은 과감하고도 단호하게, 세상 사람 누구나 바라는 부귀영화를 학질 떼듯이 떼어 버리고 초막을 얽어 숨어 살았다.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많이 사는 번화한 곳에 집을 짓고 사는데도 오히려 수레와 말이 오가는 소리가 시끄럽지 않다고 한다. ‘수레 소리로 시끄럽지 않다’는 말은, 지은이가 세속의 출세나 부귀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드나드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겠다. ‘멀다’는 말은, 부귀공명과 같은 속세의 출세와 도연명의 마음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이라 하겠다. 마음이 속세와 멀어지니 아무리 번화한 곳이라도 한적한 곳이 되었다.
후한 말, 환관의 횡포와 황건적의 봉기, 호걸들의 분쟁을 겪은 뒤 위, 촉, 오 세 나라로 나뉘어 다투던 혼란의 시대를 종식한 것은, 이들 세 나라가 아니라 위의 신하였던 사마 씨가 세운 진晉이었다.
그러나 기껏 천하를 통일한 진은 오래가지 못하고, 북쪽에서 내려온 다섯 이민족에 밀려 장강을 건너 남쪽으로 피난하여 망명정권을 세웠다. 남쪽의 한족과 북쪽의 이민족이 서로 대치하여 581년에 수隋가 다시 통일하기까지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여러 나라가 끊일 새 없이 일어나고 사라졌다.
약 360년간의 이 시기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라고 하는데, 전란의 세월이 오래 이어지면서 지식인들은 저절로 현세의 부귀영화와 출세에 뜻을 잃고 안심입명을 추구하거나 정감을 미친 듯이 토해 내기도 하였다. 도연명도 변화무상한 세태에 염증을 느끼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 삶의 성찰과 품위를 추구하여 은거하려고 했을 터이다.
옛날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저마다 특히 좋아하는 꽃이 있다. 그런데 옛날 선비들은 꽃에 의미를 부여하여서 그 꽃이 지니고 있는 기상을 사랑했다. 북송 시대의 염계 주돈이는 ‘연꽃’을 좋아하여 연꽃을 사랑하는 까닭을 글로 남기기도 하였다. 퇴계 이황은 매화를 몹시 좋아하여 ‘매형梅兄’이라고 부르고, 숨을 거두기 전에,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화’ 하면 바로 도연명이다. 그래서 도연명이 국화를 들고 있는 그림도 있다. 동쪽 울타리 아래에 핀 국화꽃과 아래 구절의 남산은 썩 잘 어울린다. 우선, 국화꽃은 울타리 아래에 피어 있으니 국화꽃을 꺾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남산은 아무리 낮은 봉우리라도 사람보다는 높을 테니 눈길을 들어올려야 한다. 고개를 숙였다가 눈길을 들어올리는 동작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유정有情한 시선의 움직임과 그 모습 그대로 무정無情한 산의 고요함이 어울려 빚은 절묘한 화해詣諧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산은 무엇일까? 김동환의 시 ‘산 너머 남촌에는’에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하는 구절이 있다. 남쪽으로부터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추운 겨울을 몰아내고 생명이 충만한 봄을 가져오기 때문일까?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은 남쪽을 따뜻한 곳,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생각했다.
도연명의 시에서 말하는 남산은 꼭 무어라고 지정하기보다 그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동경憧憬을 공간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까?
산기山氣는 산이 풍기는 느낌과 분위기 같은 것이겠다. 해가 질 무렵, 산에 이내가 끼고 밥 짓는 연기가 감돌고 황혼이 곱게 물들어 온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길게 내려앉으면 날아다니던 새도 짝을 지어 둥지로 돌아온다. 이런 모습 가운데 진의眞意, 곧 삶의 참뜻이 있다고 한다.
사실 참삶의 이치는 그리 거창한 것 같지는 않다. 하늘이 돌아가고 계절이 바뀌는 데 따라 땅은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고 또 시들이고 얼려서 한살이를 마치게 하고, 해는 떴다가 지고 달은 찼다가 이지러지고, 별은 꼭 제철만큼만 자리를 차지하여 빛나고, 새와 짐승은 새끼를 치고 길러서 떠나보내고, 늙어서 죽고...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네 계절이 운행하고 온갖 만물이 자라는데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이런 이치를 하나하나 밝히려고 하니 벌써 말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변辨이란, 변별하고 나누어서 밝힌다는 말이니 아주 강하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싶다는 말일 게다. 그런데 그만 이미 말을 잊었단다.
「장자」에 “내 언제나 말을 잊은 사람과 만나 말을 해 볼까?” 하는 말이 있다. 말은 뜻을 나타내기 위해 꼭 필요한 연장이지만, 때로는 말이 뜻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거나 참뜻을 나타내는 데 도리어 방해가 되기도 하고, 말 때문에 서로 오해하고 싸우기도 한다.
말이 많으면 그만큼 참뜻에서 멀어진다. 세계에 대한 합리적 해명이 불가능함을 말을 잊었다는 한마디로 나타냈다.
가끔 시골집에 내려가 김을 매거나 감자를 캐거나 고추를 따다가 아픈 허리를 펴고 해가 넘어가는 산을 보면서, 이 시를 되새겨보곤 한다. 그럴 때면 도연명이 이 시를 읊은 속내를 조금은 알 듯도 하다.
봄
새 소리에도 놀라고 꽃을 보고서도 눈물을 흘리다
봄에 바라보다(春望)
나라는 무너져도 산천은 옛 그대로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짙어간다.
시절이 느꺼워 꽃을 봐도 눈물이 나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 소리에도 놀란다.
봉화는 삼월에도 피어오르니
집에서 오는 편지 만금같이 귀해라.
흰 머리는 긁을수록 듬성듬성해져서
도무지 비녀도 이기지 못하겠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두보의 시이다. 당시唐詩의 쌍벽인 이백과 두보를 두고, 이백은 시선詩仙이라 하고 두보는 시성詩聖이라고 한다. 신선은 도교에서 이상으로 여기는 인간상이고, 성인은 유교에서 이상으로 그리는 인간상이다. 이 두 사람의 별칭대로, 이백의 시는 개인의 낭만과 자유를 마음껏 노래하며 도가적 기풍이 묻어나고, 두보의 시는 현실에 대한 양심적 지식인의 현실의식, 우환의식, 시대정신에 대한 성찰이 시행과 시어마다 절절히 배어 있다.
그래서 두보의 시는 ‘시로 쓴 역사(詩史)’라고도 한다. 사회의 혼란과 부조리, 현실의 모순, 피폐한 인민의 삶을 얼마나 처절하고 철저하게 그려 냈는지 그의 시만 읽어봐도 당시 인민의 처참한 삶이 그대로 떠오른다. 사회와 시대라는 수레바퀴에 자기도 모르게 깔려 들어간 인민의 삶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은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두보가 이 시를 쓴 때는 그의 나이 마흔여섯일 때라고 한다. 그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난 직후이다. 756년 6월에 안록산과 사사명의 반군이 당의 수도 장안을 함락하였는데, 그해 7월에 두보는 숙종이 영무靈武라는 곳에서 즉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식구를 시골에 데려다 두고 숙종이 있는 곳을 찾아가다가 도중에 반군에게 사로잡혀 장안으로 끌려왔다. 그러나 관직이 낮아서 갇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에 이 시를 쓰게 된다.
이 시는 수만 편이나 되는 당시唐詩에서 절창 가운데서도 절창이다. 내용은 그만두고라도 표현 기법만 보아도 정말 교묘하기 그지없다.
나라가 무너지건 생겨나건 때가 되면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봄이 더욱 비감할밖에. 게다가 초목이 날로 우거져가니 말이다. 자연은 무정한 것 같지만, 꽃도 새도 시인의 서글프고 비감한 마음을 알아주는가 보다.
나라와 산하, 무너짐과 의연함! 이렇게 1행의 선명한 대비가 시 전체의 인상을 아주 강렬하게 만든다. 나라라는 사람이 만든 제도와 기구는 무너지고 생겨나는 것이 무상하지만, 산하는 옛 모습 그대로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수도인 장안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인간사의 부귀영화를 대표하는 화려한 궁궐도 나라가 망하고 나면 폐허로 되는 법이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면 월색만 고요하여 폐허에 서러운 회포를 말하여 주는 것이다. 흥망이 운수가 있어서 왕공귀족들이 노닐던 만월대도 풀만 우거지고 오백 년 이어진 나라의 명맥도 목동의 피리소리에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1행은 그 자체로만 대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2행과 어울려 한층 더 대비를 이룬다. 중층적 대비이다. 파괴된 나라의 처절함에 견주어 성에 다시 돌아온 봄은 그 적막감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봄이 되면 사람들이 들로 나와 김을 매고 밭을 가꾸거나 봄나들이를 해야 할 텐데, 일하는 사람도 봄을 즐기는 상춘객도 없어서 초목만 우거질 대로 우거져 있다.
또한 1행은 시 전체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고, 2행은 읽는 이의 시선을 더 구체적인 공간으로 끌어내리는 효과와 함께 시간적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 가을이 되어 잎이 지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산의 모습이 드러나지만, 봄이 되어 풀이 자라고 나무에 잎이 돋아 녹음이 짙어질수록 푸름은 더 깊어진다. 송의 사마광司馬光은, ‘산천은 옛 그대로’라는 말에서는 사람이 만든 물건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초목이 깊어간다’는 말에서는 사람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읽어 냈다. 두보가 말하지 않았던 것을, 그렇지만 꼭 말하고 싶었던 것을 사마광은 잘 알아차렸던 셈이다.
1, 2행에서 공간과 시간을 제시한 다음 3, 4행에서는 시인의 감상을 말한다. 꽃과 새는 봄의 상징! 화창한 봄이 와서 만물에 생기가 도는 때, 꽃이 화사할수록 더 눈물이 나서 새의 울음마저도 자신의 울음으로 느낀다. 3, 4행을 이렇게도 풀이한다. “시절을 느꺼워 꽃도 눈물 흘리고, 이별을 한하여 새도 놀란다.” 어떻게 풀이하건 꽃이나 새는 시인의 정감을 대변하고 있다.
꽃은 꽃대로 봄이 오니 피고, 새는 새대로 짝을 찾아 우짖는 것일 뿐 인간사에는 아랑곳없지만, 사람은 자기 정감을 자연물에 비추어 느끼는 법이다. 어쩌면 객관적 대상 세계가 나의 주관적 아픔과 관계가 없을수록 그 아픔은 더욱 큰지도 모른다.
군부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된 사람들이 고문을 받을 때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라디오를 틀어 놓고 고문하는 것이었다는 회고담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어도 세상은 그 어느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철저히 버림받고 소외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고통이 더욱 가중된다는 것이다.
춘삼월 봄이면 한창 농사일로 바쁘고 삶의 활기가 곳곳에 넘칠 텐데, 전란을 알리는 봉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니 다시 식구가 만나 정겹게 살 기약을 할 수가 없다. 식구의 생사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니 이런 때 집에서 무사를 알리는 편지가 온다면 그 값을 어디에 견주겠는가?
어수선하고 위태로운 시절에 식구에 대한 걱정, 나라에 대한 걱정, 온갖 걱정으로 근심하는 나날을 보내다 보니 머리는 허옇게 세고 날로 듬성듬성 빠져서 이제는 비녀를 질러 고정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이렇게 산하라는 대자연에서 초목이라는 구체적 자연물로 시선을 좁히고, 꽃과 새로 자신의 정감을 대변하게 하고, 봉화와 집에서 오는 편지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파괴되어 가는 개인의 비극을 말하고, 역사의 흐름과 세월의 오고 감 속에 늙어 가는 자기 인생의 무상함으로 끝을 맺었다. 큰 공간에서 작은 공간으로, 자연에서 자기 자신으로 시상詩想과 시선을 자연스레 좁히고 압축하여 절묘하게 주제를 드러냈다. 제목인 ‘춘망春望’도 봄에 바라본다는 뜻이겠는데, 바라본다는 것은, 멀리 보는 것이지만, 결국은 자기 삶의 성찰로 돌아왔으니 제목조차 역설적이다.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새봄은 생명이 새로 움트는 희망과 활력의 계절이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실감도 나지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하다.
그래도 자연에서는 어김없이 새 생명은 싹트고 또 한 삶을 시작하겠지. 농업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우울한 소식만 자꾸 들려온다. 그러니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이었던 나도 봄이 화사할수록 더 비감해진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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