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전통에 따라서, 캄반은 이야기의 무대가 된 지역을 묘사하는 것으로 자신의 서사시를 시작한다. 첫 연은 코살라 왕국을 가로질러 흐르는 사라유 강을 묘사한다. 두 번째 연은 하얀 양털구름을 관찰하도록 독자들의 시선을 하늘 쪽으로 끌어올린다. 양털구름은 하늘을 가로질러 바다 쪽으로 떠가다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되어 산꼭대기로 돌아와 응축한 뒤,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며 거기에 감추어진 귀한 광물과 에센스를 찾아 헤맨다(“손님을 끌어안고 애무하면서, 손님의 귀중품을 슬쩍 빼내는 매춘부처럼”). 강은 보석과 백단향, 공작 깃털, 무지갯빛 꽃잎과 꽃가루 알갱이 같은 상품을 싣고, 코살라 왕국의 산과 숲, 골짜기와 평원을 지나 내려가면서 그 선물을 골고루 나누어준 다음바다에서 생을 마친다.
이어서 시인은 정원과 숲이 있는 시골을 묘사한다. 시골의 남자와 여자들은 온종일 바쁘다. 그들의 활동은 밭을 갈고 농작물을 거두고 타작하는 일에서부터 오후에 닭싸움을 구경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배경에서는 사탕수수나 옥수수를 빻는 물레방아가 끊임없이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 소 떼의 울음소리, 농산물을 싣고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떠나는 소달구지들이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엌 굴뚝, 가마, 희생제물을 태우는 불, 향내를 얻기 위해 태우는 향나무 따위에서 나는 온갖 종류의 연기가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즙액―사탕수수와 야자나무의 즙, 국화나 연꽃 한가운데에 맺힌 이슬, 또는 향기로운 나무 아래 매달린 벌집에 가득 들어 있는 꿀―은 꿀벌만이 아니라 오로지 그런 영양분만 먹고 사는 작은 새들에게도 좋은 먹이가 되었다. 물고기들까지도 나무에서 떨어져 강물로 흘러내리는 그 달콤한 즙액을 즐겼다. 사원에서는 언제나 축제나 결혼식이 열려, 북을 치고 피리를 불고 행진을 한다. 캄반은 코살라 왕국의 온갖 소리와 풍경과 냄새를 묘사하고, 발로 부지런히 쓰레기 더미를 헤집으며 먹이를 찾는 까마귀와 암탉들까지 언급한다.
코살라는 넓은 나라여서, 이 나라를 끝에서 끝까지 가로질렀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요디아는 코살라 왕국의 수도였고, 궁전과 저택, 분수와 광장과 성벽으로 이루어진 도시지만, 풍경을 지배하는 것은 왕궁이었다. 아요디아는 인드라*의 전설적인 도시였던 암라바티나 쿠베라의 알카푸리에 견줄 만큼 커다란 도시였다. 이 수도와 나라를 관장하는 것은 다사라타 왕이었는데, 그는 자비롭고 용감하게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많은 점에서 축복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삶에서 느끼는 슬픔 하나는 뒤를이을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 인도 신화에 나오는 영웅으로, 비와 천둥의 신.
하루는 스승인 현자 바시슈타를 궁전으로 불러서 말했다. “나는 슬픈 곤경에 빠져 있소. 이 왕조가 나를 끝으로 대가 끊길 것 같소. 세상을 떠날 때 후계자를 남기지 못할 거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부디 말해주시오.”
이 말에 바시슈타는 마음의 눈으로 본 사건을 생각해냈다. 한번은 최고신 비슈누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모든 신이 한 몸이 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머리가 열 개인 라바나와 그의 형제들이 고행과 기도로 우리한테서 특별한 능력을 얻었는데, 이제 우리 세계를 파괴하고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덕과 선행이 발견되는 족족 억압하면서 무모하게 폭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바는 도울 수 없습니다. 창조신 브라흐마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라바나와 그의 형제들이 지금 남용하고 있는 힘은 원래 시바와 브라흐마가 준 것이어서, 일단 주었던 것을 회수할 수는 없으니까요. 당신만이 수호신이니, 우리를 구해주셔야 합니다.” 그러자 비슈누는 약속했다. “라바나는 오직 인간만이 죽일 수 있다. 라바나는 인간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으니까. 나는 다사라타의 아들로 태어나겠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 조가비와 바퀴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있겠다. 내가 잠잘 때 똬리를 틀어 내 침상이 되어주는 큰뱀 아디세샤는 내 동생들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신들도 아래 세상에서 원숭이 일족으로 태어날 것이다. 라바나는 일찍이 원숭이한테만 목숨을 잃을 거라는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바시슈타는 이 일을 기억해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사라타 왕에게 충고했다. “대왕님께서는 지금 당장 ‘야그나(희생제)’ 의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의식을 집전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자인 리슈야 스링가뿐입니다.”
다사라타 왕이 물었다. “그 사람은 어디 있소?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여기로 데려올 수 있겠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리슈야 스링가는 지금 이웃 나라인 앙가에 있습니다.”
다사라타 왕이 외쳤다. “그거 참 다행한 일이군! 나는 그가 여기서 멀리 떨어진 산속 암자에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자 바시슈타가 설명했다. “앙가의 로마파다 왕은 오랜 가뭄을 끝내려면 리슈야 스링가를 앙가로 초빙하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리슈야 스링가가 가까이에 있으면 항상 비가 내렸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리슈야 스링가가 산속 암자에서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이 이 문제의 해결책을 궁리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미인들이 왕을 돕겠다고 제의한 뒤 그 젊은 현자를 찾으러 갔습니다. 현자의 외딴 집에 도착한 그들은 혼자 있는 현자를 유혹하여 앙가로 데려왔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어떤 인간도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앙가에서 온 처녀들이 그를 에워쌌을 때 그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본능이 작용할 시간이 주어지자 그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처녀들에게 자신을 내맡겼습니다. 처녀들은 자신들이 고행자라고 말하면서, 자기네 암자에 가달라고 그를 초대한 것입니다. 그가 앙가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렸습니다. 왕은 무척 기뻐하며 처녀들에게 상을 주고, 젊은이에게는 자기 딸과 결혼하여 궁정에 자리를 잡으라고 설득했습니다.”
다사라타 왕은 앙가 왕국으로 가서 리슈야 스링가에게 아요디아를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리슈야 스링가는 이를 흔쾌히 응낙했다. 코살라 왕국에서는 리슈야 스링가의 지시에 따라 희생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치러졌다. 의식은 꼬박 일 년 동안 계속되었고, 의식이 끝나자 거대한 천신이 신성한 밥 덩어리가 놓인 은쟁반을 들고 제물을 태우는 모닥불에서 나타났다. 이 천신은 은쟁반을 다사라타 왕 앞에 내려놓고 다시불속으로 사라졌다.
리슈야 스링가가 왕에게 말했다. “그 밥을 왕비들에게 나누어주면 왕비들이 아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때가 되자, 다사라타의 왕비인 카우살야와 카이케이가 제각기 라마와 바라타를 낳았고, 수미트라는 쌍둥이인 락슈마나와 사트루그나를 낳았다.
다사라타 왕의 삶은 더욱 완전한 의미를 얻었고, 그는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엄청난 기쁨을 느꼈다. 각 단계마다 그는 아이들의 교육과 개발을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했다. 아이들이 젊은이로 성장하자, 아침마다 교외의 작은 숲에 가서 그곳에 사는 현자 에게 요가와 철학을 배웠다. 저녁 늦게 수업을 끝낸 왕자들이 궁전으로 돌아오면, 그들을 보려고 백성들이 도로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라마는 항상 백성들에게 말을 걸고 이렇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행복한가요? 내 도움이 필요하세요?”
그러면 백성들은 항상 대답했다. “왕자님은 우리의 왕자님이고, 왕자님의 위대한 아버지가 우리의 보호자니까,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1
라마의 탄생과 성장
새로 마련한 회관은 다사라타 왕의 최근 자랑거리였는데, 이곳은 방문하는 고관들, 외국 사절들, 진정서나 탄원서를 들고 찾아오는 백성들로 온종일 붐볐다. 왕은 누구든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존재였으며, 코살라 왕국의 통치자로서 공무에 쏟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임무를 수행했다.
어느날 오후, 전령들이 회관안으로 뛰어들어오면서 외쳤다.
“현자 비스와미트라님이 오셨습니다.”
이 전갈을 받은 왕은 일어나서 손님을 맞으려고 서둘러 앞으로 나왔다. 비스와미트라는 한때 임금이자 정복자였으나 스스로 임금의 역할을 포기하고 현자의 길을 택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그는 혹독한 고행을 통해 결국 현자가 되었다). 그렇게 현자의 고귀함과 군왕의 권위를 겸비한 그는 성미가 급하고 적극적 이었다. 다사라타는 비스와미트라를 그의 신분에 걸맞은 자리로 안내한 뒤 말했다.
“오늘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은혜롭게도 이렇게 친히 왕림해주시니 반갑고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멀리서 오셨을 텐데, 우선 좀 쉬시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소이다.” 현자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는 정신 수양과 고행을 통해 육체적 요구를 억제할 수 있게 되었고, 더위와 추위, 허기와 피로, 심지어는 노쇠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뭐든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왕이 공손히 물었다.
비스와미트라는 왕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렇소. 실은 부탁할 게 있어서 왔소. 다음 보름달이 뜨기 전에 시다스라마에서 야그나를 올리고 싶은데…… 거기가 어딘지는 물론 알고 있겠지요?”
“강가(갠지스) 강 너머에 있는 그 신성한 곳은 지금까지 수없이 지나갔지요.”
“하지만 그 주변에는 항상 짐승들이 어슬렁거리면서, 그곳에서 진행되는 모든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소.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다섯 가지 악*을 정복해야만 신성함을 실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짐승들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 사악한 짐승들은 헤아릴 수 없는 파괴력을 타고났소. 하지만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우리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내가 올리려는 야그나는 이 세상의 유익한 세력을 강화하고 천상의 신들을 기쁘게 해줄 것이오.”
* 정욕, 분노, 탐욕, 이기심, 시샘.
“성자님의 숭고한 노력을 지켜드리는 것이 내 의무입니다. 제사를 언제 올릴 것인지만 말씀해주시면 내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존귀한 분께서 몸소 왕림하실 필요는 없소이다. 당신의 아들 라마를 나에게 딸려 보내주면, 그가 나를 도울 겁니다. 라마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라마라고요?” 왕이 놀라서 외쳤다. “내가 성자님을 도우려고 여기 있는데!”
성마른 비스와미트라는 벌써 흥분을 참지 못하고 왕의 말을 잘라버렸다.
“당신이 훌륭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내가 동행하고 싶은 사람은 라마요. 라마를 나에게 딸려 보낼 마음이 내키지 않거든, 솔직히 그렇다고 말해도 좋소.”
공기가 갑자기 팽팽하게 긴장되었다. 그 자리에 모인 대신들과 고관들은 엄숙한 침묵 속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왕은 난감해보였다.
“라마는 아직도 기술을 배우고 무기 쓰는 법을 익히고 있는 어린애입니다.” 왕은 사정을 설명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그의 말은 두서없이 질질 끌며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라마는 아직 어립니다. 어린애지요. 마귀들과 싸우기에는 너무 어리고 미숙합니다.”
“하지만 나는 라마를 알고 있소.” 비스와미트라의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성자님께 군대를 보내드릴 수도 있고, 내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제사를 지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라마 같은 풋내기가 그런 무서운 힘과 맞서서 도대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인드라가 공격을 당하여 왕국을 빼앗겼을 때 그를 도왔듯이, 내가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비스와미트라는 왕의 말을 무시한 채 떠나려고 일어섰다.
“라마를 보낼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은 필요 없소.”
그러고는 통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사라타는 너무 놀라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비스와미트라가 통로를 절반쯤 올라간 뒤에야 왕은 손님이 떠나는데 문까지 배웅하는 예의조차 차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궁정사제인 바시슈타가 왕에게 속삭였다.
“빨리 따라가서 붙잡으십시오.”
그러고는 왕이 말뜻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비스와미트라가 통로 끝에 다다랐을 때, 사제는 뛰다시피 하여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말했다.
“폐하께서 오고 계십니다. 제발 가지 마세요. 폐하께서는 절대 그런 뜻으로…….”
비스와미트라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빈정거리는 기색은 전혀 없이 말했다.
“당신이든 누구든, 무엇 때문에 동요하는 거요? 나는 한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기 왔는데, 거기에 실패했으니 오래 머물러 있을 이유가 전혀 없소.”
“오, 현자님, 당신도 한때는 임금이었지요.”
“그게 지금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비스와미트라는 좀 질색을 하며 물었다. 그는 과거의 속세 생활에 대해 남이 언급하는 것을 싫어했고, 항상 ‘현자’로 알려지기를 원했다.
바시슈타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보통사람의 감정을 상기시켜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특히 자식이 없어서 후사를 얻으려고 열심히 기도를 드려야 했던 사람의 심정을…….”
“글쎄,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한 가지 사명을 띠고 왔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떠나고 싶다고 말할 수밖에 없소.”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바시슈타가 말했다.
바로 그때 왕이 통로에 서 있는 그들에게 다가왔다.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사라타 왕은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고 말했다.
“자리로 돌아가시지요.”
“무엇 때문에?” 비스와미트라가 물었다.
“앉아서 얘기하는 게 더 편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어떤 이야기도 믿지 않소.” 비스와미트라가 말했다.
하지만 바시슈타는 현자가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간청했다.
이윽고 그들이 모두다시 자리에 앉자 바시슈타가 왕에게 말했다.
“어떤 신성한 의지가 이 예지자를 통해 작용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물론 이분은 그 의지가 뭔지는 알지만 설명하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마 왕자의 도움을 청한 것은, 왕자에게 특별한 명예입니다. 왕자의 길을 막지 마십시오. 왕자를 현자와 함께 보내도록 하십시오.”
“언제? 오오, 언제?” 왕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당장.” 비스와미트라가 말했다. 왕은 슬픔과 절망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현자는 마음이 누그러져서 그에게 한 마디 위로의 말을 던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늘 가까이 있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오. 부모 나무의 발치에서 싹을 틔운 씨앗을 다른 데로 옮겨 심지 않고 그 자리에 남겨두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법이오. 라마는 내가 잘 돌볼 테고, 아주 잘 지낼 거요. 하지만 결국에는 내게서도 떠날 거요. 인간은 누구나 때가 되면 보호자 곁을 떠나 자기 나름대로 성취를 추구해야 하니까 말이오.”
“시다스라마는 먼 곳인데…….” 왕이 입을 열었다.
“라마가 편히 갈 수 있게 해주겠소. 전차가 우리를 거기까지 태워다줄 필요는 없소.” 비스와미트라는 왕의 마음을 읽고 말했다.
“라마는 동생인 락슈마나와 떨어져본 적이 없습니다. 락슈마나가 같이 가도 될까요?” 왕이말했다. 그러자 비스와미트라가 말했다.
“좋소. 내가 두 아이를 잘 돌봐주겠소. 나를 돌보는 것이 두 아이의 임무가 되겠지만 말이오. 두 아이에게 나를 따라갈 준비를 시키시오. 좋아하는 무기를 고르고 떠날준비를 하라고 이르시오.”
이 말에 다사라타는 안심했지만, 그래도 적의 손에 볼모를 넘겨주는 듯한 표정으로 대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아들들을 데려오시오.”
라마와 락슈마나는 그림자처럼 스승의 뒤를 따라 사라유 강에 이르렀다. 밤이 되자 그들은 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쉬고 새벽에 강을 건넜다. 해가 산꼭대기 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아름다운 숲에 이르렀다. 숲 위에는 제물을 태우기 위해 피운 수많은 불에서 올라오는 향기로운 연기가 닫집처럼 자욱하게 덮여 있었다. 비스와미트라는 라마에게 설명해주었다.
“여기는 시바 신이 옛날 명상을 한 곳이고, 사랑의 신이 그의 명상을 방해하려고 하자 그 신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버린 곳이기도 하단다. 아득한 옛날부터 시바 신에게 기도하는 성자들은 제물을 바치기 위해 여기 오고, 네가 보는 연기 장막은 그들이 제물을 태우는 불에서 나오는 거란다.”
은자들이 암자에서 나타나 비스와미트라를 맞이하고, 자신들과 함께 밤을 보내자고 말했다. 비스와미트라는 새벽에 다시 길을 떠나 정오에는 사막 지역에 도착했다. ‘사막’이라는 단순한 표현은 그 지역의 지독하게 건조한 풍경을 전달해주지 못한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모든 식물은 바싹 말라 먼지처럼 바스라지고, 돌과 바위는 가루처럼 고운 모래로 부스러져 지평선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모래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는 한 치의 땅도 남김없이 모두 햇볕에 검게 그을리고 바싹 마르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땅은 갈라지고 금이 가서 도처에 거대한 틈이 드러나 있었다.
이곳에는 아침과 낮과 저녁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해는 항상 머리 위에 머무른 채 움직이지 않고 계속 땅을 태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죽은 자리에는 하얗게 변한 뼈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 심한 갈증으로 입을 벌린 채 죽어간 거대한 뱀들의 뼈다귀도 보였다. 필사적으로 그늘을 찾던 코끼리들은 이 거대한 뱀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었고, 뱀도 코끼리도 모두 죽어서 화석이 되었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하늘까지 태워 그슬렸다. 이 메마른 땅을 건너는 동안, 비스와미트라는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른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알아차리고, 마음속으로 만트라*)를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아이들이 이 만트라에 대해 명상하고 주문을 외자, 그들이 사막을 다 지날 때까지 메마른 풍경은 사라지고, 그들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얼굴에 받으며 시원한 시냇물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 짧은 음절로 이루어진 주문
어딜 가든 호기심이 많은 라마가 물었다.
“이 땅은 왜 이렇게 지독합니까? 왜 저주받은 것처럼 보입니까?”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대답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살아 있는 생물을 모조리 잡아먹어서 소화시켰다는, 미친 코끼리 천 마리와 맞먹는 힘을 가진, 사납고 무자비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란다.”
타타카 이야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타타카는 야크샤(야차) 왕 수키타의 딸이었고, 대단한 용기와 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순수함까지 갖춘 마녀였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야성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자라서 순다라는 이름의 족장과 결혼했는데, 둘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마리차와 수바후―은 강한 체력만이 아니라 엄청난 초자연적 능력까지 타고났다. 자부심이 강한 그들은 지나치게 왕성한 활동으로 주위를 황폐하게 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의 못된 장난을 즐거워했고, 그들의 기분에 감염되어 못된 장난에 가담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오래된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서 내던졌고, 동물도 눈에 띄는 족족 죽여버렸다. 이런 행위는 위대한 현자인 아가스티아의 주의를 끌었다(하급 성자인 그는, 언젠가 악귀들이 바다 밑바닥에 숨었을 때 인드라가 그들을 추적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자 바닷물을 다 마셔버린 적도 있었다). 이 숲 속 암자에 은둔해 있던 아가스티아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파괴 행위를 알아차리자 그런 짓을 저지른 자를 저주했고, 그러자 순다는 당장 쓰러져 죽고 말았다. 순다의 아내는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화가 나서 펄펄 뛰었다. 두 아들도 격분하여, 어머니와 함께 현자에게 복수하고야 말겠다고 으르렁거렸다. 현자는 그들의 도전에 맞서서 그들에게 저주를 내렸다.
“너희는 생명의 파괴자이니, 아수라가 되어 저승에서 살아라.”(지금까지 그들은 반신이었지만, 이제는 마귀로 격하되었다.)
그러자 세 모자는 당장 아수라로 변했다. 얼굴과 몸뚱이는 흉측해졌고, 성질도 그에 걸맞게 흉악해졌다. 두 아들은 상급 마귀들과 합류하러 떠났고, 혼자 남은 어머니는 불을 내뿜고 모든 것이 병들기를 바라면서 계속 이곳에 살고 있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번성하지 않는다. 더위와 모래만 남아 있다. 어머니는 불을 내뿜어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그녀는 삼지창을 들고 다닌다. 팔에는 코브라 팔찌가 감겨 있다. 이 무시무시한 괴물의 이름은 타타카다. 하찮은 존재가 인간성 전체를 고갈시키고 가치를 손상시키듯, 이 괴물의 존재는 한때 비옥했던 지역을 사막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기도하는 은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움직이는 거라면 무엇이든 꿀꺽 삼켜서 창자로 내려 보낸다.
***
라마는 어깨에 멘활을 만지면서 물었다.
“어디가면타타카를 찾을수있습니까?”
비스와미트라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타타카가 나타났다. 그녀의 발밑에서 땅이 흔들리고, 폭풍이 그녀보다 먼저 닥쳐왔다. 이윽고 그녀가 눈에서 불을 내뿜고 엄니를 드러내고 동굴 같은 목구멍이 다 보이도록 입을 벌린 채 불쑥 나타났다. 격분한 나머지 눈썹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녀는삼지창을 치켜들면서 으르렁거렸다.
“나는 이 왕국에서 아무리 작은 생명의 자궁도 모조리 짓밟아버렸다. 그래서 내가 굶주리지 않도록 네놈들을 내려 보낸 모양이구나.”
라마는 망설였다. 아무리 사악하다 해도 상대는 여자였다. 어떻게 여자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속마음을 읽고 비스와미트라가 말했다.
“저 괴물을 여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저런 괴물은 절대로 동정하면 안 돼. 엄청난 힘과 무자비함, 그리고 흉측한 외모 때문에 저 괴물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 있단다. 일찍이 비슈누 신은 브리구의 아내인 키아티가 비슈누 신의 분노를 피해 달아난 아수라들을 숨겨주고 내주기를 거부하자, 키아티를 서슴없이 죽여버렸지. 세상을 파괴하는 데 열중하는 만도라이라는 여자는 인드라에게 정복당했고, 사람들은 모두 인드라에게 감사했다. 이 두 가지 예는 극히 일부일 뿐이야. 악마적 성향을 가진 여자는 여자로 취급할 가치가 전혀 없어. 저 타타카는 죽음의 신 야마보다 더 무서워. 야마는 죽을 때가 되었을 때만 목숨을 가져가는데, 저 괴물은 살아 있는 동물의 냄새만 맡아도 잡아먹고 싶어 환장하지. 타타카를 여자로 생각하지 마라. 너는 타타카를 이 세상에서 없애야 한다. 그게 너의 의무야.”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라마가 말했다.
그때 타타카가 라마에게 삼지창을 던졌다. 삼지창이 불꽃을 내며 날아오자, 라마는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려 보냈다. 화살은 삼지창을 산산이 조각냈다. 그러자 타타카는 돌멩이가 우박처럼 쏟아지게 했다. 일찍이 그녀의 적들은 이 돌우박에 맞아 짜부라졌지만, 라마가 쏘아 보낸 화살들은 마치 방패처럼 돌우박의 공격을 막아냈다. 마지막으로 쏜 화살은 타타카의 목을 꿰뚫어 목숨을 끊었다. 이리하여 라마는 이 세상의 악과 마귀를 파괴하는 필생의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신들은 천상에 모여 기쁨과 안도감을 표현하고 비스와미트라에게 요구했다.
“무기의 명수이자 달인이여, 그대의 모든 지식과 능력을 이 젊은이에게 무조건 나누어주라. 이 젊은이는 구원자이니라.”
비스와미트라는 이 권고에 따라 무기 다루는 비법을 라마에게 모두 가르쳐주었다. 그 후 다양한 무기를 관장하는 아스트라들이 공손하게 라마 앞에 나타나 선언했다.
“위대한 라마여, 이제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밤이든 낮이든 언제라도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산속의 안개 낀 숲에 이르자, 비스와미트라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하발리 이야기
이곳은 언젠가 비슈누가 앉아서 명상한 적이 있는 신성한 땅이다. (라마는 비슈누였지만, 인간으로 환생했기 때문에 그때는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비슈누가 그렇게 명상에 잠겨있는 동안, 아수라 왕 마하발리가 땅과 하늘을 점령하여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는 대규모 야그나를 올려 승리를 자축하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학자들을 모두 초대하고 경의를 표했다. 마하발리와의 싸움에서 패한 신들은 비슈누가 명상에 잠겨 있는 곳으로 몰려와 왕국을 되찾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그들의 호소를 듣고 비슈누는 브라만* 집안에 몸집이 작은 난쟁이로 태어났다. 그 작은 몸 속에는 큰 힘과 많은 학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난쟁이가 궁전 문간에 나타났을 때, 마하발리는 그의 위대한 본성을 당장 알아차렸다. 그래서 마하발리는 친절하고 공손하게 손님을 맞아들였다.
*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승려 계급.
“나는 당신이 위대하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 왔습니다.” 손님이 말했다. “내 평생소원은 용기와 너그러움을 겸비한 것으로 이름난 분을 잠깐이라도 만나보는 것이었지요. 이제 당신을 만났으니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당신이 이룩한 업적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잠깐이나마 당신의 신성을 보면, 그 신성의 일부가 내게도 전달되는 듯합니다.”
“오, 위대한 이여, 나를 찬미하지 마십시오.” 마하발리가 대답했다. “나는 결국 전사이자 정복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학식과 재능에 비하면 지극히 하찮은 자질이지요. 나는 겉모습에 쉽게 유인 당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나를 찾아주신 보답으로 선물을 드리고 싶으니, 기쁘게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의 호의 말고는 어떤 선물도 필요 없습니다.”
“아니, 제발 가지 마십시오. 무엇이든 요구하십시오. 원하시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씀하세요.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땅을 좀 주십시오.”
“좋습니다. 어디든 마음에 드는 땅을 고르시지요.”
“내가 세 걸음 내딛는 만큼만…….”
마하발리는 껄껄 웃으면서 난쟁이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말했다.
“그것뿐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나는…….” 마하발리가 입을 열었지만, 말을 끝맺기 전에 그의 독선생인 수크라차리아가 경고했다.
“폐하, 경솔하게 굴지 마십시오. 폐하의 눈에 보이는 작은 형상은 속임수일 뿐입니다. 보기에는 작지만 이 작은 우주는…….”
“그만하시오! 나도 내 책임은 알고 있소. 줄 수 있을 때 주는 건 옳은 일이고, 선물을 주지 못하게 막는 것은 당신답지 않은 사악한 짓이오. 이기적인 사람보다 더 나쁜 건, 남에게 뭘 주려는 사람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사람이오. 나를 막지 마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 난쟁이가 내민 손바닥에 주전자의 물을 조금 따랐다. (일부 다른 출전에 따르면, 이 순간 수크라차리아는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음으로써 맹세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꿀벌만 한 크기로 작아져서 주전자의 주둥이 속으로 날아들었다고 한다. 난쟁이는 이것을 알아차리고,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날카로운 ‘다르바* 풀잎을 주전자 주둥이 속에 밀어 넣었다. 풀잎은 수크라차리아의 눈을 찔렀고, 그 후 그는 애꾸눈 학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봉납물인 이 물을 따르면서 마하발리는 난쟁이에게 말했다.
* 종교의식에 쓰이는 뻣뻣한 풀.
“자, 이제 세 걸음을 걷고, 그 걸은 만큼의 땅을 가지세요.”
물이 손바닥 위에 떨어진 순간, 그때까지 부모에게도 웃음거리였던 난쟁이가 하늘에 닿을 만큼 어마어마한 거인으로 변했다. 첫 번째 걸음에 그는 땅을 모두 차지했고, 두 번째 걸음으로는 하늘을 몽땅 차지했다. 우주에는 이제 남은공간이 없었다.
“세 번째 걸음은 어디에 놓을까요?" 그가 마하발리에게 물었다.
마하발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말했다.
“다른 공간이 없다면 여기 제 머리를 밟으십시오.”
비슈누는 발을 들어 마하발리의 머리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발을 지그시 눌러 마하발리를 아래저승으로 밀어 내렸다.
“당신은 계속 거기에 있어도 됩니다.”
그는 이렇게 세상의 골칫거리를 제거한 것이다.
***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비스와미트라는 예고했다.
“당분간은 이곳이 우리의 목적지다. 여기서 너희들의 보호를 받으며 야그나를 올리겠다.”
비스와미트라는 성자들을 꽤 많이 모아서 야그나를 준비했고, 라마와 락슈마나는 경계 태세로 그곳을 지켰다. 한편 아수라들은 야그나를 방해할 준비를 갖추고 성소 위의 하늘에 모였다. 마귀들은 다양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거나 그밖의 방법으로 혼란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들은 끓는 물과 썩은 고기를 신성한 땅에 뿌렸고, 협박과 저주와 신성모독적인 말을 내뱉었다. 거대한 바위를 잘라서 그 조각을 아래로 내던졌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마법적 소동을 일으켰다.
성자들은 심란해 보였다. 라마가 현자들에게 말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기도하면서 전진하세요.”
락슈마나가 라마에게 말했다.
“저 녀석들은 내가 처리할게.”
그러고는 그들에게 화살을 쏘았고, 그동안 라마는 화살들을 위로 쏘았다. 그러자 화살들은 우산이 되어, 제물을 태우는 불이 아수라들의 피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타타카의 두 아들―마리차와 수바후―은 이제야말로 어머니의 원수를 갚을 기회라고 생각하여 라마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그러나 마리차는 라마가 쏜 첫 번째 화살을 맞고 바다에 떨어졌고, 수바후는 두 번째 화살을 맞고 죽었다. 열의에 차서 모여들었던 마귀들은 겁을 먹고 허둥지둥 물러났다.
야그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비스와미트라는 선언했다. “라마야, 이 일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너뿐이었다. 이 제사를 올린 목적은 내 개인적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였다.”
“다음은 무엇입니까?” 라마가 물었다.
“너는 이제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미틸라로 가자꾸나. 거기서 자나카 왕이 대규모 야그나를 거행할 예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올 거야. 너는 기분 전환을 즐기면 된다.” 비스와미트라는 이 단계를 라마의 긴장을 풀어주는 일종의 오락인 것처럼 말했지만, 라마의 미래에 일어날 수많은 사건들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선견지명으로 알고 있었다.
그날 하루의 여정이 끝났을 때, 그들은 강가 강이 흐르는 골짜기에 도착했다.
비스와미트라가 말했다.
“저기 보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강인 강가란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산과 골짜기를 지나고 여러 왕국을 가로질러 흐르지. 오늘은 평화롭게 흐르고 있지만, 처음에는……. 그럼, 강가 이야기를 들어보렴.”
강가 이야기
지금은 너도 알아차렸겠지만, 지상의 땅은 한 치도 남김없이 모두 신과 관련되어 있다. 어머니 대지는 창조가 시작된 이래 줄곧 5대 원소의 하나로 존재해왔다. 대지는 그 목표가 좋든 나쁘든 수많은 목표를 향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고, ‘칼라(시간)’가 모든 것을 삼켜버릴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관계자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대지에는 여전히 전에 그곳을 지나간 모든 발자국이 빈틈없이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 발이 밟는 땅 한 조각 한 조각이 신이나 그밖의 것과 맺고 있는 관계를 알아야만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불이 환하게 켜진 복도와 정원을 장님이 지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너는 지금 그 강을 보고 있다. 그것은 히말라야 산중에서 흘러내리면서 도중에 발견한 희귀한 약초와 원소들의 정수를 품고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강가 강이다. 강은 많은 왕국을 지나고, 강이 닿는 땅은 모두 신성해진다. 강가 강은 정화하고 변형시킨다. 죽어가는 사람이 그 강물을 한 모금 마시거나 고인의 뼈를 태운 재가 강물 속에서 녹으면 그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된다. 지금은 강이 잔잔하고 아름답지만, 이 땅에 닿기 전에 강은 우선 길들이고 통제되어야 했다.
강가의 이야기는 네 조상들의 운명,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먼 조상들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
네 조상들 가운데 하나인 사카라는 한때 뛰어나게 지상을 다스렸다. 그는 수많은 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들이 모두 용감하고 아버지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는 적당한 시기에 아주 중요한 희생제―말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거행할 계획을 세웠다.
이 제사를 준비하려면 장식 마의를 입고 화려하게 꾸민 눈부시게 아름다운 말 한 마리를 자유롭게 풀어준다. 그 말은 많은 왕국의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데, 그 말의 통과를 허용하는 나라는 말 주인을 자기네 영주로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어느 단계에서 누군가가 그 말을 가로막으려 들면, 그것은 도전으로 간주되어 전쟁이 일어난다. 말의 주인은 말이 붙잡혀 있는 나라를 공격하여 말을 다시 자유롭게 풀어준다. 말이 난관을 이겨내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이 과정이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말이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까지 말이 통과한 모든 나라가 왕의 속국이 된다. 왕은 대규모 ‘말 희생제’를 열어 승리를 자축하는 한편, 그 자신이 지상의 최고 통치자임을 과시한다. 이런 계획에 착수하는 사람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결국에는 자신의 제국을 더욱 확대하여 인드라에게 도전하고 싶다는 야망을 품을 수 있다. 따라서 인드라를 비롯한 신들은 희생제가 계획될 때마다 유심히 경계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그 계획을 좌절시키려고 애쓴다.
사카라의 말이 여행을 떠나자, 인드라는 말을 납치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 세계에 은둔해 살고 있는 현자 카필라 뒤에 감추었다. 카필라는 정신 수련을 위해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이 외진 곳에 오래전부터 숨어 있었다. 말이 지하로 사라진 것이 알려지자, 사카라의 아들들은 땅을 넓고 깊게 파기 시작하여 지구의 배꼽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기네 말이 명상에 잠겨 있는 남자 뒤에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말을 빼앗고 현자를 고문했다. 현자가 말을 훔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현자는 성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고, 그들은 재가 되어버렸다. 원정대원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사카라 왕의 손자뿐이었다. 그는 현자에게 사과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늙은 왕이 ‘말 희생제’를 끝내도록 도와주었다. 나중에 사카라 왕은 세상을 손자에게 물려주었고, 이 손자의 아들이 바로 강가 강을 땅으로 내려 보낸 바기라타였다.
자라서 조상들의 운명을 알게 된 바기라타는 조상들의 영혼이 구원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조상들의 영혼이 구원을 얻지 못하고 어중간한 상태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은 그들의 유해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신 브라흐마에게 일만 년 동안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브라흐마는 바기라타에게 권하기를, 강가를 높은 하늘에서 끌어내려 조상들의 뼈를 신성한 물로 씻을 수 있도록 시바 신의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그가 다시 일만 년 동안 시바 신에게 기도를 드리자 시바 신이 나타나서 바기라타에게 약속하기를, 어떻게든 강가를 설득하여 땅으로 내려가게 할 수 있다면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오천 년 동안 강가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강가는 우아한 소녀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서 바기라타에게 말했다.
“시바는 당신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을 테지만, 강가가 전력을 다해서 내려오면 땅은 그걸 견디지 못할 거예요. 강가가 내려오는 힘을 견딜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시바는 당신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그 속셈이 뭔지 알아내세요. 다시 시바한테 기도하세요.”
바기라타가 오랫동안 명상에 잠기자, 시바가 다시 나타나서 말했다.
“강가를 땅으로 내려오게 하면 너를 도와주마. 그 강물이 한 방울도 낭비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강물이 아무도 괴롭히지 못하게 해주마.”
이것은 시바와 강가가 주고받는 일련의 도전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바기라타는 서로 도전하는 신들이 자기를 공처럼 주고받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기가 꺾이지 않고(그의이름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의 본보기다) 통틀어 삼천 년 동안 기도를 드리면서 혹독한 고행을 실천했다. 마른 낙엽만 먹고 살다가 다음에는 공기만 먹고 살았고, 다음에는 햇빛만 먹고 살다가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것조차 포기하고, 순전히 자신의 목표와 대의에 대한 믿음만 의식하면서, 사실상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았다.
바기라타의 고행이 끝난 뒤, 멀리 떨어져 있는 창조신 브라흐마의 세계에서 발원한 강가가 으르렁거리는 홍수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시바는 홍수가 막 지상에 닿아 땅을 가루로 만들려는 순간 그 현장에 나타났다. 시바는 자세를 잡더니, 두 발을 단단히 딛고 두 손을 허리에 대고 팔꿈치는 옆으로 벌린 다음, 하강의 충격을 자신의 머리로 받아냈다. 위협당한 홍수는 엉키고 헝클어진 시바의 머리카락 속으로 사라졌다. 강가는 소란을 피우고 자만심에 빠져 우쭐한 모습을 보였지만, 끝은 이렇게 무기력하고 비굴했다. 사실은 너무 유순하고 조용해서 바기라타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강가는 끝났고, 바기라타의 기도와 고행은 결국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시바는 그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제 머리카락에서 강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바기라타는 마음을 졸이며 그 물방울을 조상들의 유골이 묻혀 있는 땅의 지하로 조심스럽게 유도하여, 조상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바기라타는 자신의 조상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돕게 되었다. 강가 강 기슭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전이 있고, 그 강물은 유역에 있는 수백만 헥타르의 땅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양분을 주기 때문이다. 사카라의 아들들이 말을 찾으려고 파헤친 구덩이들도 물로 채워져서 오늘날의 바다가 되었다.
***
일행은 미틸라 시가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요새 성벽 옆의 낮은 둔덕을 지날 때, 라마는 볼품없는 석판 하나가 땅에 수직으로 반쯤 묻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라마가 그 옆을 스치듯 지날 때, 발에 묻은 흙먼지가 석판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석판은 당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다. 여자가 절을 하고 공손히 옆으로 비켜서자, 비스와미트라는 그녀를라마에게 소개했다.
“현자 가우타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면, 가우타마의 저주로 인드라의 온몸에 눈 천 개가 점점이 박히게 된 이야기도 알고 있겠지. 이 여자는 가우타마의 아내였고 이름은 아할야란다.”
그러면서 라마에게 아할야의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아할야 이야기
언젠가 브라흐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이루는 성분들을 조합하여 여자를 만들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아할야였다(아할야는 산스크리트어로 ‘완전무결’이라는 뜻이다). 인드라는 신의 세계에서는 가장 지위가 높은 최고신이었지만, 아할야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기만이 그녀와 결혼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브라흐마는 인드라의 자만심과 건방짐을 알아차리고는, 그를 무시하고 현자 가우타마를 찾아내어 그에게 아할야를 맡겼다. 그녀는 가우타마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고, 때가 되자 현자는 그녀를 브라흐마에게 다시 데려갔다.
브라흐마는 가우타마의 정신과 마음이 순수한 것을 인정하고(욕정이 가우타마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말했다.
“아할야와 결혼해라. 아할야는 네 아내가 되기에 적합하다. 아니, 오히려 너만이 아할야의 남편이 될 자격이 있다.”
그렇게 해서 아할야는 브라흐마를 비롯한 신들의 축복을 받으며 가우타마와 결혼했다. 아할야는 어린 시절을 가우타마와 함께 보냈기 때문에 가우타마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았고, 그래서 완벽한 아내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아할야에게 사로잡힌 인드라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걸핏하면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가우타마의 암자에 접근하여 아할야의 모습을 엿보며 기회를 노렸다. 인드라는 또한 가우타마의 습관을 유심히 관찰하여, 가우타마가 날마다 새벽에 암자를 떠나 두어 시간 강에서 목욕과 기도를 하며 보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연모의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인드라는 속임수를 써서라도 사랑하는 여자를 차지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인드라는 가우타마가 여느 때와 같은 시각에 집을 나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수탉 울음소리를 내어 현자를 깨웠다. 가우타마는 아침이 온 줄 알고 강으로 떠났다. 그러자 인드라는 현자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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