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간
우리가 지금부터 공부하려는 역사는 문학, 철학과 함께 일반적으로 인문학에 속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역사의 고전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는 앞으로 차차 구체적인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먼저 인문학의 각 영역이 어떠한 것이고 그것을 공부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정서와 관련된 영역입니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제대로 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문학은 인간이 그런 감정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그런 감정을 갖추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부모나 가까운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 즉 사랑일테지만 말입니다. 문학 작품은 그것이 쓰인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읽고 즐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일본 제국 시대의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소설들, 그러니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 《도련님》(1906), 《행인》(1912)과 같은 작품들을 그가 살았던 시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 일본 제국 시대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야심을 펼쳤던 곳인 남만주철도 주식회사, 이른바 ‘만철滿鐵’이 생각납니다. 동경제국 대학교를 졸업한 소세키는 남만주철도 주식회사에 근무하던 친구 나카무라 요시코토(1867~1927)의 초청으로 만주와 조선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한滿韓 기행>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것입니다.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작가의 인생이나 역사적 배경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물론이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그것 자체로는 잘 즐기지 못합니다. 그 작품들에 스며들어 있는 이러 저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는 인간의 기억과 관련된 영역입니다. 인간은 어제 했던 일을 오늘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습니다. 이를 ‘반성적 통찰력’이라고 합니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반성적 통찰력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잘 정리해 두었다가 그걸 바탕으로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잘 정리한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흔히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서 출발한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똑같은 일을 겪었다 해도 각각의 개인이 가진 기억은 저마다 다르고 더러는 불확실하기까지 합니다. 똑같은 사태를 겪어도 기억이 다른 건 사람들마다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관점이나 틀이 다르면 사태를 경험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때 생겨나는 불확실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가능한 한 다양한 측면을 살펴봐야 하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른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태도와 행위, 즉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나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통해서 내 판단의 근거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찾는 것을 역사적 태도와 통찰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구약 성서》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한 처음”은 시간을, “하늘과 땅”은 합해서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 문장을 앞에 놓고 다시 써 보면 “하느님은 시간과 세계를 함께 만드셨다”가 됩니다. 시간은 태초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세계가 만들어지면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빅뱅’과 같은 우주 대폭발 이후 우주가 생성되면서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하느님이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시간 밖에 있고 인간은 시간 안에 있습니다. 시간의 반대말은 영원입니다. 영원은 시간을 무한대로 늘린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영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은 시간 바깥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에게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바와 현실에서 일어나는 바가 똑같습니다. 하느님은 시간 바깥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미리 아는 것도 나중에 아는 것도 없습니다. 항상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뱃속의 아기는 세계가 창조되기 전과 마찬가지 상태에 있습니다. 태아에게는 열 달의 시간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간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시간은 곧 역사이므로,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역사적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영원한 진리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과거를 어렴풋하게 알아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과거를 보는 우리도 시간 속에서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제 본 과거와 오늘 본 과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본다는 것은 사실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과거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시간 바깥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시간 속의 존재인 인간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인간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아주 조금 더 현명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나약한 인간의 활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역사이며, 그런 까닭에 역사적 지식은 확실한 지식이 아니라 개연적 지식임을 인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까닭에 엄격한 의미의 학문 개념을 가진 사람들은 역사가 법칙을 찾아내는 학문이 아니라 과거의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으로는 근대 초기의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방법 서설》에서 역사는 확실한 지식을 주지 않기 때문에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데카르트가 훌륭한 철학자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이 아주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에는 확실한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즉 인생에서 어느 정도 확실성을 포기한 사람들이 역사 공부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생을 제멋대로 살겠다는 것은 아닐 겁니다.
철학은 보편적인 원리를 찾으려는 학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는 원리를 찾아서 내 삶에 적용하려는 노력입니다. 철학은 아주 추상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문학과 역사보다 먼저 공부하면 안 됩니다. 어린 나이에 추상적인 원리를 다루는 철학부터 공부하면 되바라진 사람이 되기 십상입니다. 인류가 당대의 역사 속에서 축적한 모든 경험이 추상화된 원리로 드러난 것이 철학입니다. 역사에서 철학이 나온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닙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철학자 플라톤은 영원 불변한 존재 자체가 있다고 주장한바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이 존재 자체는 사실 있지도 않은 것, 눈에 보이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대화편들을 읽어 나가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삶을 잘 살펴보면 그 이론은 가장 직접적으로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가장 큰 사건이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서 공부할 것입니다―의 경험, 스승 소크라테스의 활동과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또한 간접적으로는 과거 호메로스 시대부터 서기전 5세기의 아테나이에 이르기까지의 문화적 전통과 그에 대한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통찰과 반성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데카르트의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철학적 사색 전부를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근대 세계를 만들어 낸 30년전쟁―이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공부할 것입니다―의 한복판에서 살았으며, 그런 만큼 그의 시대는 불확실했던 것임을 고려한다면 확실성에 대한 추구를 철학의 참된 목표로 삼았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철학은, 그것 자체의 이론적인 논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이해의 실마리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인문학의 세 분야 각각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서양사를 중심으로 크게 두 가지를 배우는데, 하나는 ‘특정 시대’이고 다른 하나는 ‘고전 읽기’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서양 고대 세계의 역사를 공부한 다음, 희랍의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 책을 읽습니다. 물론 모든 시대를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시대를 더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역사 고전은 조금 소홀히 다루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할 것입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을 먼저 해보는 것이 좋겠는데, 그건 바로 중·고등학교 때 배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사건과 인물을 익히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역사를 공부할 때 참조할 만한 책으로는 먼저 《세계의 역사》(이산, 2007, 전 2권)가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맥닐은 탁월한 역사가이며, 이 책은 세계사 분야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자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평이한 관점에서 세계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으며, “다른 교재들에 비해 설명이 굉장히 간결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800페이지 내외로 썼으니 실제로 무척 간결한 책이어서 조금은 모자라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두꺼운 역사 책을 읽으면 오히려 전체의 흐름을 놓치기 쉬우니 초보적인 독자는 이 책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보다 조금 더 두꺼운 책으로는 에드워드 맥널 번즈 등이 쓴 《서양 문명의 역사》(소나무, 2007, 전 2권)가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사건과 인물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역사 책들을 읽은 다음에는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전체 역사를 살펴보는 주제 중심의 역사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 분야의 역사 책은 정말로 셀 수 없이 많습니다만 간단하게 윌리엄 맥닐이 쓴 《전쟁의 세계사》(이산, 2005)와 W. 버나드 칼슨이 쓴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푸른숲 주니어, 2009, 전 3권)를 추천합니다. 칼슨의 책은 본래 제목이 “Technology in World History”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술의 측면에서 살펴본 세계사입니다. 이런 책들을 읽어 보면 세계의 역사를 특정한 단면을 잘라서 살펴볼 때 얻을 수 있는 통찰이 무엇인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강의를 해 나가면서 이런 종류의 주제사, 부문사에 관한 여러 책들을 다시 세부적으로 소개할 것입니다.
주제사, 부문사를 읽고 난 다음에는 크리스토퍼 듀건이 쓴 《미완의 통일 이탈리아사》(개마고원, 2001) 같은 각국의 역사를 다룬 책을 읽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 책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A Concise History》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케임브리지 세계사’와 같은 표제가 붙은 책은 대부분 믿을 만한 것들입니다. 이런 책들과 더불어 지도 책과 연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틀라스 한국사》, 《아틀라스 중국사》, 《아틀라스 일본사》, 《아틀라스 세계사》(사계절 출판사, 2004) 등은 지도책입니다. 그리고 연표로는 《곁에 두는 세계사》(석필, 2007)를 추천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에서 출간하는 역사 사진집도 가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주제를 한 권에 집어넣은 책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추천하는 것은 이른바 ‘글로벌 히스토리’에 속하는 책으로 주제사와 부문사를 종합한 것입니다. 캔디스 고처 등이 쓴 《세계사 특강》(삼천리, 2010)을 보면 인류의 이주, 기술과 환경, 도시와 도시 생활, 종교와 공동체 등과 같은 여러 주제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것처럼 우리 시대의 역사가들이 쓴 통사 -> 주제사·부문사 -> 각국사 -> 지도 책·연표 -> 글로벌 히스토리를 순서대로 읽고 나면 역사 공부를 한번 한 셈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각 시대의 역사가들이 쓴 역사 고전을 읽으면 좋습니다.
그렇다면 옛날 역사가들이 쓴 역사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겠습니까? 이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또는 역사가를 움직인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무엇이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희랍의 역사가―오늘날의 의미에서의 역사가라기보다는 일종의 ‘이야기꾼’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헤로도토스는 《역사》라는 책을 왜 썼을까요? 그냥 심심해서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책을 쓸 수밖에 없던 절실한 시대의 요청이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요청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역사학 고전들을 읽을 때 다시 상세하게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역사학 고전을 읽을 때 그러한 물음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만을 유념해 두기로 하겠습니다.
이제 역사 공부를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과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인생의 질을 바꾸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역사는 물론이고 인문학 공부의 근본적인 목적은 이것입니다. ‘우리 집에서 책 읽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집에서는 역사 책을 읽고 있으면 부모가 뭐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꾸중을 할지도 모릅니다. 한국 사회 전체를 놓고 생각해 보아도 ‘역사 책을 뭣 하러 읽어. 그럴 시간 있으면 쓸모 있는 공부나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 전체의 수준을 높이려면 나머지 소수가 결단해야 합니다. 그 소수라 해서 대단한 엘리트에 속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실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은 나라 전체의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엘리트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늘리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 우리처럼 평범한 소수의 사람들이 힘든 형편을 감내하면서 역사 공부, 더 나아가 인문학 공부에 매진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 물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한국 사회와 역사에 기여하는 게 뭡니까?”라고 말입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당연히 기여합니다. 굉장히 많이 기여합니다. 우리는 역사 공부, 인문학 공부를 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교양, 시대의 교양에 기여하다가 죽습니다. 즉 무명의 독자와 공부인으로 죽는 겁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1세기 한국의 교양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죽는 것, 이게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이름없는 사람으로 죽는다 해도 그것은 고귀한 삶을 산 것입니다. 고대의 희랍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을 ‘필로칼리아philokalia’라 불렀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바로 이것이어야 합니다.
제1강
본격적으로 지중해 세계의 정치체제들을 논하기 전에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고 이것이 역사라는 ‘기록’으로 이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물학적 종의 측면에서 가리킬 때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라고 합니다. ‘사피엔스’는 지혜롭다는 뜻이므로 이 말은 이성적인 인간을 의미합니다. ‘이성’을 기준으로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을 오로지 이성적인 존재로만 인식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에 근거해서 인간을 이성과 감정이 대립하는 존재로 잘못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지 심리학이나 발달 심리학의 성과를 담은 책을 살펴보면 인간은 오로지 이성적인 존재도, 오로지 감정적인 존재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널리 쓰이는 말 중에 ‘좌뇌적 인간/우뇌적 인간’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과장된 말일 뿐, 사고를 당해 다친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한 쪽의 뇌만을 사용하는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은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이 서로 뒤엉킨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공부를 하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만 역사의 주인공인 인간―과연 주인공인지 아닌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인물을 살펴볼 때 그가 오늘날 우리와 비슷할 것으로 지레 짐작하거나, 그가 처한 자연적 문화적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의 인간이라는 행위자는 오늘날의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인물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그가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환경을 고려하기 전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인간에 대한 판단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이성뿐만 아니라 신체를 통해서 세상을 인식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 이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을 동시에 사용합니다.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행위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나 당시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에는 그가 의식으로 알아내지 못한 것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점입니다. 둘째, 인간은 이기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만족, 나아가 도덕적인 가치도 추구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가끔 아무리 따져 봐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데 그것을 털고 일어나는 사람을 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자존심을 건드리면 어떤 제안도 거절하는 게 인간이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 시대에는 인간에 대한 관점이 하나로 굳어져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경제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그러한 인간 모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부하는 역사 속의 인간들은 그러한 모형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경제적 인간’으로 살아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인간’이라 해도 모든 행위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판단하여 행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역사 속 행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섣부른 판단 모형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를 아주 좁은 의미에서 생물학적으로 정의해 보면 ‘환경에 적응하여 신체를 특수하게 발달시킨 것’입니다. 스티븐 J. 굴드라는 생물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지금으로부터 4~5만 년 전에 진화를 멈췄다고 합니다. 진화가 멈췄다는 것은 이후 인간의 모든 행위가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학습의 산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남성은 성욕을 참을 수 없는 본능을 가졌다거나 인간은 반드시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들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신체 구조는 다른 영장류보다 원시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숭이를 예로 들어 봅시다. 긴팔원숭이, 긴꼬리원숭이 등은 그들이 처한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살아남이기 위해서 팔이나 꼬리와 같은 신체를 특수하게 만드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앞서 정의한 진화 개념에 따르면, 원숭이가 인간보다 더 진화한 동물인 것입니다. 반면 인간은 손을 사용해서 도구를 만들고 뇌의 용량을 키움으로써―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뇌의 용량이 더는 커지지 않았습니다―자신의 행위 방식을 바꾸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육식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주장에 반대되는 사례를 하나 살펴봅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일본 사람들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부터 육식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메이지 유신 이후 군대에서는 고기를 먹기 힘들어 한 병사들에 관한 기록들이 꽤 많습니다. 《일본의 군대》(요시다 유타카, 논형, 2005)라는 책에 나온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군대에 들어가기까지 돼지고기나 쇠고기 등은 거의 먹은 적이 없었다. […] 스튜라는 것도 군대에서 처음으로 먹었다. 처음에는 “왠지 토한 것 같아서 싫다.”고 생각해 먹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카레라이스도 자주 나왔지만, 밥 위에 갓난아이의 똥을 뿌린 것같이 생각되고, 또 카레가루의 향이 익숙하지 않아 아무리 해도 먹지 못했다.
_《일본의 군대》
일본군 병사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육식은 본능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일종의 ‘식습관’이어서 제도적인 제약이나 문화적인 영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진화가 멈춘 이후 인간의 모든 행위는 학습의 결과라는 것을 뚜렷하게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인간은 진화가 멈춘 4~5만 년 전부터 문명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문명과 비문명을 구별하는 핵심적인 기준은 기술입니다. 이때 문명은 ‘발달한 기술을 보유한 복합 사회’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기술은 도구와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기술과 도구를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혼자서 돌도끼를 만들어 썼다고 해 봅시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구일 뿐입니다. 기술은 도구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고 전달하는 방식까지 포함합니다. 이러한 도구 사용법과 제작법, 의사소통 방식 등이 관념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도구는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지역에 따라 달리 쓰일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를 발명한 것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측우기는 발명되었지만 측우기와 관련된 기상학은 발전되지 않았습니다. 이 경우 측우기는 기술이기보다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그 도구를 둘러싼 관념은 농사짓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측우기는 농사짓기의 도구였던 것이지 그것을 중심으로 기상학적 관념들은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봅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칼 중의 하나는 다마스쿠스 검입니다. 이 칼은 단단하고 유연하며 칼의 표면에는 특유의 미세한 소용돌이 무늬나 물결 무늬가 있습니다. 사실 이 칼은 다마스쿠스가 아니라 인도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십자군 전쟁을 벌이던 유럽의 병사들이 다마스쿠스에서 이 칼을 사 갔기 때문에 다마스쿠스 검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칼의 본래 이름은 ‘우츠 강철 검’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뛰어난 칼을 만들 정도로 탁월했던 인도의 제련 기술은 후대로 전수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인도인들이 철이 아니라 구리를 가장 귀한 금속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칼을 만든 사람들은 하층민이었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기술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기술은 그것을 둘러싼 관념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도구보다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관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명 단계에 들어선 이후의 인류 역사를 나누는 데 적용되는 요소는 크게 네 가지가 있는데, 식량, 금속, 거주지, 에너지가 그것들입니다. 첫째, 식량을 얻는 방식과 관련해서 인류 역사는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유목민)과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사람들’(농경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농사 지은 쌀을 먹고 살아가므로 농경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명화된다는 것은 도시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도시는 ‘식량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와 ‘그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는 농촌 배후지’를 함께 묶은 것입니다. 둘째, 금속을 기준으로 인류 역사는 철기 시대와 이전 시대(석기, 청동기, 구리 등)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에 근거하면 지금 우리는 철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거주지는 도시거주 인구 비율로 따집니다. 인류 역사는 이 비율이 50퍼센트를 넘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시거주 인구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으면 산업화된 국가라고 부릅니다. 영국은 18세기 중반, 독일은 20세기 초, 미합중국은 1920년대, 일본은 1930년대에 이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를 산업화 시대라 합니다. 넷째,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도 시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목재는 가장 먼저 사용된 에너지원이고 이후 석탄, 석유, 수력, 원자력 등이 등장하였습니다. 어떤 에너지원을 쓰느냐를 기준으로 그 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이것 역시 그 나라가 처한 환경에 따라 편리한 것을 사용할 뿐입니다. 이를테면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는 시계 톱니바퀴를 쇠로 만들었지만 미합중국에서는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 미합중국에서는 그만큼 나무가 싸고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국은 증기기관을 돌리기 위해 석탄이 나오는 곳 근처에 방적 공장을 세웠지만 미합중국은 강의 수력을 이용해서 공장을 돌렸으므로 방적 공장이 강가에 많았습니다. 이러한 입지와 에너지 규모는 미합중국 산업화만이 가진 독특한 성격을 형성했는데, 이렇게 본다면 특정 국가의 문명 정도나 산업화 정도 등을 이해할 때에는 단순히 기술의 측면만을 살펴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술과 문명에 관한 논의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인류의 역사에서 최초로 일어난 혁명적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농업의 시작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인류의 문명은 농업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약 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구석기 시대) 동안 수렵과 채집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 게 신석기 농업혁명부터입니다. 우리는 문명을 좋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고인류학자들의 유골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구석기 시대의 수렵 채집인들은 질병의 흔적이 별로 없고 건강 상태가 굉장히 좋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루 1~2시간 정도 일하고도 충분한 먹을거리를 구했으며 나머지 시간은 휴식을 취했습니다. 또한 대규모로 모여 살 필요가 없었으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적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신석기 시대의 유골을 살펴보면, 비타민 C 결핍증(괴혈병), 비타민 D 결핍증(구루병), 관절염의 흔적 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해 단일 품종을 재배하면서 1년 내내 똑같은 것을 먹고 살았습니다. 노동 집약적인 삶, 곡물 중심의 삶을 살다 보니 음식의 질이 떨어지고 영양 상태도 부실해졌습니다. 게다가 거대하고 복잡한 공동체를 부양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았으므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구석기 시대의 행복한 나날을 버리고 신석기 시대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옮겨간 것일까요? 농경 사회는 한 곳에서 발생해 퍼져 나간 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여러 곳에서 거의 동시에 독립적으로 일어났는데, 아직 그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에 생겨난 것들, 예를 들어 조직된 사회와 곡물 중심의 식사 등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가장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석기 농업혁명을 통해 집단 거주지에 모여 살게 되면서 잉여 농산물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부분적인 교역이 일어나고 도시가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되면서 의사소통에 필요한 문자 체계도 만들어졌습니다. 강수량을 예측하는 천문학과 기상학, 토지를 측정하는 기하학, 달력을 만드는 역법, 종교 등이 발전하였습니다. 흔히 문명의 요소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모두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생겨난 것입니다. 신석기 농업혁명은 문명으로 이행하는 최초의 단계였고, 유목민을 제외한 모든 문명 세계는 신석기 농업혁명이 가진 기본적인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역사 이론가들은 물을 중심으로 신석기 농업혁명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4대 문명의 발상지를 예로 들면서, 강 근처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노동력을 집단으로 동원해서 대규모 관개시설을 갖춰야 했고 그 과정에서 독재적인 전제 왕정이 출현했다는, 이른바 수력 사회 이론을 내놓은 학자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은 대체로 맞는 말이긴 하나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물이 중요하긴 하지만 물로써 모든 게 해명되지는 않습니다. 신석기 농업혁명 시기에는 물 관리가 중요했고, 그 때문에 노동력이 집약되었다는 정도로만 알아둡시다.
지금까지 농경 사회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았습니다. 이와 구별되는 집단인 유목민에 대한 역사 책은 찾기 어려운데 이는 그들이 역사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유목민의 삶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르네 그루세의 《유라시아 유목 제국사》(사계절, 1998)입니다. 이 책은 신석기 시대부터 18세기 중반 최후의 유목 제국이 사라질 때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날 유목민은 아프리카 베두인 족처럼 소수 부족으로만 남아 있을 뿐 더는 국가 단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인 청나라 강희제(재위 1661~1722) 때 몽골 제국이 멸망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에 세워졌던 거대 유목 민족 국가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서문, 1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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