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요의 멋
『장자』 내편內篇의 제일 첫 장이 『소요유逍遙遊』인 이유도 있겠지만, 첫 도입부의 이야기가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는데다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덕에 『장자』가 주는 첫인상은 ‘소요逍遙’라는 두 글자로 함축할 수 있다. 장자는 일생 동안 줄곧 소요逍遙에 이르는 길, 즉 인간 내면의 초탈과 해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자를 음미하려면 소요에 대한 그의 생각과 환상에서 풍기는 독특한 멋과 분위기를 먼저 음미해야 한다. ‘소요’를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만족스러울 만큼 한가롭고 느긋하다’는 뜻이다. 한가롭고 느긋하기 위해서는 아무 일도 없어야 하고, 감당하거나 책임져야 할 것이 없어야 하며 걱정도, 번뇌도, 권리와 의무가 따르는 계약이나 구속도 모두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귀하거나 천하고, 높거나 낮고, 가깝거나 먼 복잡한 인간관계에 속해 있지 않아야 한다. 만족스럽다는 건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으로 스스로 즐길 수 있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거나, 스스로 즐겁다고 느끼기만 하면 된다.
『장자』에는 이 점이 여러 번에 걸쳐 누누이 표현되어 있다. 이건 중국인, 특히 중국의 지식인들, 그중에서도 사회적인 입신출세에서 좌절을 겪은 이들이 추구해온 사고이자 그들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하다.
중국에는 ‘개인주의’라는 전통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아주 부족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소요’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신 상태이자, 개인이 사회와 집단(장자에서는 보통 ‘물物’ 또는 ‘외물外物’이라고 불렀다)의 관념적 구속에서 벗어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내면 정신세계의 자유와 독립을 의미한다. 이것은 근현대에 서양에서 들어온 개인주의 관념과는 차이가 있다. 후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중국의 ‘소요’는 사회와 집단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가치판단에 대한 주관적인 해방 또는 일시적인 망각을 의미한다. 서양인들은 자유와 개인주의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법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서양에서는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최소한 입으로나 관념상으로나 개인의 자유와 개인주의의 가치관을 보호할 수 있는 게임의 법칙과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정해지길 희망해왔다. 그들은 개인이 존중받고 개인의 자유가 보호된다는 전제하에 정치, 사회, 회사, 가정, 개인의 생활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야 한다고 요란스럽게 외쳐왔다.
반면 장자는 여럿이 더불어 하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군주든 군권君權이든 유가나 묵가의 도덕규범이든 상관없이 함께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함께했다. 뒤로 가보면 인간 세상에도 들어갔고, 제왕에게 응하기도 했다. 도망치지 못하고 여전히 몸은 인간 세상에 있는데, 마음만 아득히 먼 곳에 가 있었다. 몸은 제왕의 곁에 있는데 마음은 북쪽 바다로, 남쪽 바다로, 구만 리 밖으로 가 있었다. 휘휘 회오리바람을 타고 올라가 범속한 세상에서 탈피해 그 어떤 외물外物이나 가치관, 권력, 여론의 간섭과 구속도 받지 않았다.
北溟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烏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크기(길이과 폭)가 몇 천 리나 되고, 이름은 곤이라고 한다. 그 물고기가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새의 이름은 붕이라 한다. 붕의 등도 넓이가 몇 천 리나 된다. 붕이 힘차게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구름처럼 하늘에 걸려 드리워진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한 번 날아오르면 남쪽 바다까지 날아간다. 남쪽 바다는 천지天池다. 여기서 천지란 신장新疆이나 지린吉林에 있는 천지가 아니라 하늘 위의 연못을 뜻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젊은 시절 『장자』를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이 도입부다. 뒤로 갈수록 어려운 고문 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아 더 이상 읽지 못했다. 『장자』는 도입부의 이미지와 이야기가 상당히 파격적이다. 읽다 보면 보잘것없는 작은 미물의 몸으로도 웅대한 기상을 느끼게 되고,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용속한 육신으로도 북쪽 바다와 남쪽 바다의 용솟음치는 파도와 끝 모를 깊이를 구경하게 되고, 두 발로 하루를 꼬박 걸어도 백 리도 갈 수 없는 인간의 처지로 구만 리 드높은 하늘의 용감함과 요원함을 경험하게 되고, 또 오 척(가끔은 오 척도 안 되기도 한다) 키에 백이십 근 남짓한 체구로 수천 리만큼 길고 넓은 몸집을 누리게 된다.
요컨대 광활한 바다와 하늘을 유유히 맴도는 날갯짓을 향유하고, 자아 초월과 영혼의 육신 탈피를 경험하며, 생명으로 우주를 충만하게 채우고, 사상이 실재實在를 초월하게 한다. 또 무궁함으로 유한함을 돌파하고, 상상과 확장, 존엄과 역량으로 보잘것없이 미천한 신세와 종잇장처럼 박한 운명, 세속에서 만만하게 취급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뛰어넘게 된다.
가련한 사람들, 특히 글 읽는 지식인들은 장자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거대함과 웅대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신승리법의 최고봉이 아닌가. 정신적인 승리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렇게 확실하고 영원한 승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춘추전국시대부터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 쓰이지 못하면 한평생 허송세월하고, 어쩌다 운이 좋아 높은 벼슬에 앉는다 해도 느닷없이 재앙이 닥쳐 하루아침에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곤 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여러 차례 남에게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큰 뜻은 품었으나 재주가 변변찮고 운이 없는 탓에 가난과 실의에 빠져 시름겨운 한세상을 살다 가기도 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온전히 정신적이고, 완벽하게 무조건적인 승리조차 얻을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장자의 상상과 글쓰기는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파격적인 이야기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자기 처지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게 아니라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스스로 몸을 움츠려 조용히 기다리지 않고 자신을 당당히 내세워 자랑했다. 장자와 노자가 늘 함께 거론되며 비슷한 평가를 받아왔지만, 노자가 ‘스스로 낮은 곳으로 임했던(어느 학자는 노자의 사상을 이 한 마디로 표현했다)’ 것과 달리 장자는 자부심과 대범함, 과장과 여유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실은 노자도 그리 만만하고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도 『도덕경道德經』의 제일 첫 머리에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며, 이름을 이름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다(玄而又玄, 衆妙之門)”라고 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워낙 심오하고 현묘하여 평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이해하고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에게는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민생을 위해 명을 세우며, 후대를 위해 끊어진 학문을 다시 창조하고, 만세를 위해 태평성대를 열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었다.
노자는 하늘의 명을 받고 강림한 사자使者나 지혜의 주재자, 성도聖徒 또는 위대한 도를 알리기 위해 온 사절 같았으며, 철학가이자 학파의 창시자이자, 전략가이자, 심지어 교주에 가깝기도 했다.
노자에 비해 장자는 문인이나 재능 있는 인재, 저술가, 사상가, 웅변가에 더 가까웠다. 심지어 궤변가에다 상상의 대가 같기도 하다. 노장사상의 관점에서는 충만한 자신감이 있어야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이 있어야 스스로를 낮출 수 있으며, 높은 지혜를 갖춰야 치욕을 참아가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원대한 시야를 가져야만 자기 처지에 만족할 줄 알며, 곤붕鯤鵬의 몸, 뜻, 쓰임, 그리고 힘과 풍모를 가져야만 우직한 황소도, 나사못도, 작은 개미도, 풀 한 포기도 될 수 있고, 생김은 마른 고목과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을 수 있다.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제해』는 괴이한 일들이 기록된 책이다. 『제해』에 이르기를 “붕이 남쪽 바다로 옮겨 갈 때 물을 쳐서 삼천 리나 솟구치게 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상공으로 구만 리까지 올라가는 데 여섯 달을 날아간 뒤에야 쉰다”고 했다.
장자의 글은 언제나 이렇게 거리낌 없이 자유롭다. 훗날 사람들은 ‘힘차게 날아오른다’는 표현이 붕새의 행동을 묘사한 말이지만, 장자의 글에서 풍기는 문풍文風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의 글은 열정적이고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며, 활력이 왕성하고 위풍당당하고 구름을 뚫을 듯 힘차게 솟구쳐 올라간다.
그의 글도 붕새처럼 힘차게 날아오른 뒤에 “남쪽 바다는 천지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맺어 글의 기세를 다시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이야기의 출처를 떠올리며 “『제해』는 괴이한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라고 차분하게 글을 다시 이어간다. 『제해』라는 책이 실제로 있는 건지 아니면 장자가 지어낸 말인지, 또 사실을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에 떠도는 소문이나 구전되는 이야기를 적은 것인지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장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말에 근거가 있다는(뒤에서도 툭하면 공자나 자공子貢이나 안회顔回를 거론한다) 걸 알리는 동시에 글의 분위기를 전환함으로써 계속해서 사람을 놀라게만 하는 게 아니라 풀었다 죄고, 밀었다 당기는 효과를 냈다.
그런 뒤에 다시 글의 기세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 붕새가 물을 쳐서 삼천 리나 솟구치게 하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상공으로 구만 리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게다가 회오리바람이 붕새를 높은 상공으로 올려준다고 함으로써 글에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효과까지 거두었다.
野馬也, 塵埃也, 生物之以息相吹也. 天之蒼蒼, 其正色邪? 其遠而無所至極邪? 其視下也, 亦若是則已矣.
그다음엔 유월의 분위기와 여섯 달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는 비행을 상상해보라. 아지랑이와 먼지가 뒤섞이고 봄 햇빛이 가득한데 구만 리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인간들이 하늘을 올려다볼 때처럼 파랗다. 하늘에서 한가로이 날아다니며 구경할 때 생길 수 있는 감정과 눈에 보일 수 있는 광경을 이토록 훌륭하게 상상할 수 있을까. 장자는 자연을 탐구하는 걸 좋아했다. 자연에서 대상을 찾아 그 속에서 대도大道에 가까이 다가간 것은 수사학적 시도일 뿐 아니라 공상과학적 시도이기도 했다. 후대 사람들이 이 공상과학을 더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장자는 붕새가 구만 리 상공에서 날아간다고 했다. 오늘날의 과학상식으로는 지면에서 백 킬로미터 이상 올라가면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붕새가 우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는 것이다. 장자는 심지어 하늘의 색깔이 언제나 똑같을 것이라고 상상하기까지 했다. 장자가 살던 당시에는 우주공간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것에서 비롯된 한계일 것이다.
且夫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
조금 더 보충해서 바람이 두텁게 쌓이는 것을 배를 띄울 만큼 물이 고이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바람이 충분히 많고 두터워야 물이 배를 띄우듯 붕새의 날개를 받쳐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는 물 한 잔을 웅덩이에 부으면 작은 풀밖에 띄울 수 없고, 잔을 놓으면 바닥에 닿아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이건 그의 상상에서 나온 추론으로 합리적이고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물이 얕으면 배가 좌초되는 건 맞다. 그런데 물이 적어서 배를 띄울 힘이 없다고 한 건 엄밀히 말하면 틀린 논리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르면 부력은 배수량과 동일하며 물의 전체 양과는 무관하다. 장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이 너무 적으면 뜰 수 없는 것은 부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배수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자는 자연계의 현상들에 대해 대부분 당연히 그럴 거라 넘겨짚어 판단했고, 상식으로만 따지면 그의 생각들은 거의 이치에 맞았다. 대담하게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면서도 진지하고 세심하게 고민하는 것은 바로 소설이라는 예술의 특징이다. 그런데 갈릴레이가 발견한 자유낙하 물체의 중력가속도 원리 역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당연히 그럴 거라고 넘겨짚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대부분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속도가 빠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물체의 무게와 관계없이 중력가속도는 일정하다. 장자가 사물의 운동에 대해 추론하면서 실험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검증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장자는 바람이 아주 강해야만 붕새를 날아 올려 앞으로 날아가게 할 수 있고, 붕새가 날개를 펼치면 큰 바람이 아래에서 받쳐줄 거라 생각했다. 붕새가 바람에 의지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다니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이 얼마나 장관인가.
장자는 자연계의 법칙이나 과학을 논하려는 게 아니라 모든 자연현상이 대도大道와 서로 통한다는 걸 말하고자 했다. 웅대하든 광활하든 원대하든, 아니면 허풍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바람과 물이 얼마나 두텁게, 얼마나 충분하게 쌓였느냐 하는 것이다. 풀 한 포기밖에 띄울 수 없는 깜냥으로 진리의 화신인양 오만하게 군다면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미고 고상한 척 연기한다 해도 남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곤과 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면 비록 기백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과장하는 데만 치우쳐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깊이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대 의견과 논쟁함으로써 서로 비교하고 헤아려야만 상호 보완을 통해 더 깊은 인식이 탄생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의 논리다.
?與學鳩笑之曰, “我決起而飛, ?楡枋而止, 時則不至而控於地而已矣, 奚以之九萬里而南爲?”
여기에서 장자의 절묘함이 또 한 번 드러난다. 곤붕에 대해 말하고 난 뒤에 곧바로 매미와 비둘기를 등장시켜 곤붕을 조롱하게 한 것이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하면서도 사변적인가. 그렇게 멀리 날아서 뭘 하는가? 그렇게 힘써 노력해서 뭘 하는가? 날아올라서 느릅나무 가지나 박달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쉴 수 있으면 그만이 아닌가? 더 날 수 없으면 땅에서 뛰어다니면 되지 않는가?
適莽蒼者, 三餐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 宿?糧, 適千里者, 三月聚糧.
장자는 유머러스했지만 남을 곧잘 조롱했던 걸 보면 인색하고 냉정한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작은 매미와 비둘기를 받아들이긴 쉽지만 곤과 붕을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좁은 식견을 받아들이기는 쉽지만 원대한 안목을 받아들이는 건 어렵다. 또 백 미터 길이를 받아들이는 건 쉬워도 구만 리를 받아들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거리는 세 끼 밥을 먹고 갔다 돌아와도 여전히 배가 부른 가까운 교외 정도다. 아무리 멀어도 하룻밤 곡식을 찧어서 다녀올 수 있는 백 리 길밖엔 감당할 수 없는데, 석 달이 걸려 천 리 길에 필요한 양식을 모으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之二蟲又何知!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惠?不知春秋, 此小年也.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而彭祖乃今以久特聞, 衆人匹之, 不亦悲乎!
이 두 벌레(여기에서 벌레란 작은 짐승을 의미하는 것 같다. 지금의 상식으론 매미는 곤충에 속하지만, 조균朝菌(아침에 자라났다가 저녁에 사라지는 버섯)은 단세포생물이다)는 또 무엇을 알겠는가? 작은 지혜는 당연히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단명하는 사람은 장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조균은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여름에만 사는 것들로 소년小年(단명)이다. 초나라 남쪽에 큰 거북과 큰 나무가 있었는데 오백 년을 봄으로 살고 그다음 오백 년은 가을로 살았으며, 태곳적에 있었던 대춘大椿이라는 나무는 팔천 년을 봄으로 살고, 또 다시 팔천 년은 가을로 살았다. 팽조彭祖는 장수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모든 생물이 그들과 똑같이 살기를 바란다면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장자가 말한 지인至人, 성인聖人, 진인眞人, 대지大知(큰 지혜), 대년大年(장수) 같은 것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압박감을 준다. 그들은 속인俗人이나 소지小知(작은 지혜), 소년小年(단명)과는 소통하거나 가까워지기 어렵다. 지나치게 도덕을 따지면 위선적이라거나 쓸모없다는 평가를 듣고, 지나치게 지혜로우면 교활하고 간사한 것으로 여겨지며, 지나치게 자유분방하고 얽매이지 않으면 나서길 좋아하고 정의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치게 고상하고 청렴하면 명예를 탐낸다는 말을 듣고, 지나치게 고집스럽게 집착하면 앞뒤가 꽉 막히고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지며, 지나치게 후하고 대범하면 세상 물정에 어둡고 속은 텅 빈 사람으로 보인다. 붕새가 힘껏 날아오르면 사람들은 “도대체 뭣하러 그러는가? 도대체 어딜 가려는 건가?”라고 물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큰 지혜를 지녔거나 장수하는 사람, 즉 곤이나 붕과 같은 사람들 역시 미미하고 형이하학적이며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 것, 남들에게 하찮게 취급받아 늘 모욕을 당하거나 피해를 보는 사람들, 작은 지혜를 지녔거나 단명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근심과 고통, 씁쓸함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이 비록 진혜제晉惠帝 사마충司馬衷은 아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굶주린 사람들에게 “배가 고프면 고기죽을 먹으면 될 게 아니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구만 리를 날아오르는 붕새나 심해에서 헤엄치는 곤이 뜨거웠다 차가웠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땅 위에 서거나 쭈그려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손발이 닳도록 일해야 하는 작디작은 노동자들을 존경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또 만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제물齊物의 관점에서 보자면 매미도 큰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곤도 작디작은 올챙이로 생각할 수 있으며 비둘기도 커다란 폭격기로 생각하고 붕새도 모기로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장자의 역설이 드러난다. 그는 제물을 통해 크고 작음과 길고 짧음,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고 했으면서도, 굳이 큰 지혜와 작은 지혜, 길게 사는 것과 짧게 사는 것을 구분하여 곤붕의 우월감으로 매미와 비둘기를 내려다보고, 무정하게도 수명이 하루도 안 되는 조균과 일 년도 채 못 사는 매미를 끌어다가 장수하는 명령冥靈과 대춘, 팽조와 비교했다. 제물의 이치, 즉 만물은 본래 다 똑같은 것이라는 제물의 이치를 밝혔던 장자가 왜 이렇게 시시콜콜 구분하고 비교했던 걸까?
매미와 비둘기가 붕새를 조롱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두 미물이 가련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반어적인 풍자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면서 지나치게 크고 높게 나는 곤붕에 괴리감이 느껴지면서 적막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는가? 곤붕과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가? 곤붕과 쉽게 교제할 담력과 밑천이 있는가? 만약 거대한 곤붕을 진심으로 친근하게 느낀다면 반대로 벌레처럼 미천한 사람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지막으로 장자가 곤붕을 한껏 치켜세우고 매미 같은 미물은 경멸하듯 논한 것에 대해 반감이 생기지는 않는가?
매미와 비둘기가 곤붕을 보면 오히려 조롱하는 마음과 적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곤붕의 존재가 그들에게 큰 압박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의 미천한 처지를 새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매미와 비둘기, 뒤에 나오는 조균과 쓰르라미, 연못에 사는 작은 참새들이 함께 힘을 합쳐 곤붕을 없애고 명령, 대춘, 팽조를 타도하기로 결의하고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자연의 역사에서도 공룡처럼 너무 큰 동물은 오래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 이미 증명되었다. 거대함은 일종의 오만함이요, 일종의 위험이기도 하다.
뒤로 가면 장자는 작은 벌레와 새도 사실은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작은 벌레와 새라고 해서 곤붕보다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해야 할 것이 많다고 해서 한쪽만 챙기다 보면 다른 쪽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장자도 그렇고, 공자도 그렇고 글로써 이론을 세우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소요에 이르기 위한 노력은 상당한 고충과 난처함을 불러왔다. 소요를 추구할수록 소요를 방해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져 그 속에서 슬픔과 좌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기분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우리에게 거대한 기상과 자유로운 소요를 추구한다면 보잘것없고 용속한 이들에게 조롱당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아야 하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알려주기 위해 이런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한발 더 물러나 절대적인 소요에 다다를 수 없다 해도 ‘소요’라는 두 글자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목표가 생겼으니 조급해할 것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장자가 기여한 바이고, 중국문화의 독특한 진수이며 정신적인 즐거움이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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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왕멍 王蒙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왕멍은 1934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1948년 열네 살의 나이로 중국혁명에 뛰어들어 지하당원이 되었고, 1958년 우파로 낙인찍혀 16년간 신장에 유배되어 살았다. 1979년 복권되어 베이징으로 귀환한 그는 1985년 중국공산당 전회에서 중앙위원으로 당선되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고, 현재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으로 재직하고 있다. 1950년대부터 작품을 발표해 50여 년 동안 1천여 만 자의 작품을 썼고, 그의 작품은 미국 및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21개의 언어로 출간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나는 학생이다』『조직부에 새로 온 젊은이』『나비』『변신인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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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허유영
학부와 통역번대학원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다. 중국어 학습서 『쉽게 쓰는 나의 중국어 일기장』을 출간했으며, 옮긴 책으로 『다 지나간다』『화씨비가』『길 위의 시대』『사마천』『저탄소의 음모』『저우언라이 평전』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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