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한결같이 우울했다. 나는 그곳에 다시 가고 싶었다. 우리가 신문에서 흔히 읽는 분쟁과 참사, 대학살과 지진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아프리카에서 숨을 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나는 넓디넓은 아프리카 땅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 중에 희망과 인간적인 즐거움과 향기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요컨대 아프리카에는 빈곤과 공포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생의 땅을 뜻하는 ‘분두’에 다시 들어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오지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싶었다. 나는 이미 40여 년 전에 그곳, 세상에서 가장 푸른 대륙의 한복판에서 행복하게 살며 일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긴 사파리를 끝내고 돌아와 1년 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시간 지체, 총격과 고함, 절도 등 너무 많은 것에 대해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학살이나 지진은 없었다. 지독한 열기와 끔찍한 길은 있었다. 버려진 기차도 눈에 띄었고 전화는 잊고 지내야 했다. 백인 농부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모든 게 개판이야!”라고 소리쳤다. 아프리카는 내가 이곳에 살던 30여 년 전보다 물질적으로 피폐하다. 더 굶주리고 더 가난하며 교육의 혜택마저 누리지 못한다. 더 비관적이고 더 부패한 듯하다. 정치인은 주술사와 다를 바가 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여느 때보다 무시받는 처지로 전락해, 내 눈에는 지상에서 가장 지독한 거짓말에 짓눌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정부의 속임수에 농락당하고, 외국 전문가들에게 사취당하며, 자선단체들에게 우롱당한다. 사방팔방에서 속임수가 판쳤다. 아프리카에서 지도자가 된다는 건 도둑이 된다는 것이나 똑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순진함을 훔쳤고, 자기 이익부터 챙기는 원조기관들은 그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었다. 그 여파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기 땅에서 발을 질질 끌며 힘겹게 살거나, 다른 나라로 떠나려고 애썼다. 그들은 구걸하고 애원했으며, 막돼먹은 사람처럼 당연한 권리인 양 뻔뻔하게 돈과 선물을 요구했다. 아프리카는 하나의 공간이 아니다. 아프리카는 잡다한 공화국과 너저분한 부족국가가 뒤섞인 곳이다. 나는 병에 걸려 궁지에 빠지기도 했지만 조금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겁고 뜻밖의 깨달음을 얻는 여행이었다. 이 짤막한 말에는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적어도 한 권의 책이. 어쩌면 이 책이 바로 그것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내가 분두에서 학교 선생 노릇을 하며 평범하게 지내던 시절에 아프리카 사람들은 포장이 되지 않아 붉은 진흙이 깔린 길의 끝에 풀로 지붕을 덮은 오두막 마을에서 살았다. 영국 국기가 내려지고 새로운 국기가 펄럭이고, 투표권을 갓 얻은 때였다. 자전거를 가진 사람도 있었고, 새 신발을 살 생각에 많은 사람이 들뜬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그들은 희망에 부풀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는 먼지를 뒤집어쓴 나무들과 바싹 말라붙은 들판 부근에 세워진 진흙집들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놀았고, 여자들은 허리를 굽힌 채 옥수수밭과 콩밭을 가꾸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여자가 등에 아기를 업고 있었다. 반면 남자들은 그늘에 앉아 ‘치부쿠’(지역 맥주)나 ‘카차수’(지역 증류주)를 마셨다. 그런 모습은 아프리카에서 자연의 질서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은 까불고 여자들은 힘겹게 일하며 남자들은 빈둥거리며 소일했다.
때로는 귀찮은 사건이 터졌다. 창에 찔린 사람이 있었고, 술에 취해 다투는 일도 있었으며, 폭력배들이 집권당의 티셔츠를 입고 소동을 피우는 정치적 폭력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았던 아프리카는 전반적으로 햇볕이 내리쬐는 유쾌한 곳이었다. 나지막한 나무들과 빽빽한 덤불들이 어우러진 푸르른 공터,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새들과 킬킬대는 아이들, 붉은 흙길, 금방 구워낸 듯한 빵 껍질처럼 갈색을 띤 절벽,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푸른 언덕, 줄무늬 짐승들과 점박이 짐승들, 노란 털을 지닌 짐승들과 누런 송곳니를 번뜩이는 짐승들, 그리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고 반바지를 입은 분홍빛 얼굴의 농장 주인들부터 갈색의 인도인과 반들거리는 새까만 얼굴의 아프리카인, 얼굴이 너무 검어 자줏빛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온갖 피부색의 인간이 뒤섞인 곳이 아프리카였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수풀을 지배하는 소리는 코끼리의 우렁찬 울음소리도 아니었고 사자의 포효도 아니었다. 쇠멧비둘기가 구구대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가 아프리카를 떠난 후로 아프리카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소식이 연이어 들려왔다. 천재지변과 독재자들의 만행, 부족전쟁과 전염병, 홍수와 기아, 악랄한 정치꾼들에 대한 암울한 소식들이었다. 어린 십대 병사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난도질하며, “긴소매로 해줄까?”라고 빈정대며 손목을 잘라냈다. “반소매”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면 팔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1994년에는 르완다 대학살로 무려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의 희생자가 투치족이었다. 아프리카의 붉은 흙길은 여전했지만, 너덜너덜한 꾸러미를 짊어진 피난민들로 채워졌다.
기자들이 그들을 뒤쫓았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야만의 증거를 원하는 대중의 갈망을 채워주라는 보도국장의 등쌀에 기자들은 굶주리고 혼란에 싸인 아프리카 사람들 옆에 서서, 소파에 앉아 과자를 씹으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텔레비전을 지켜볼 사람들을 위해 격앙된 목소리로 뉴스를 보도했다. 그리고 죽음의 행렬이 클로즈업되며 “이 사람들, 이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설마 그렇겠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내가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이로에서 케이프타운까지, 즉 아프리카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니며 그 사이의 모든 것을 직접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소문만큼이나 끔찍했다. 소문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절망에 빠진 땅이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폭력이 난무하고, 전염병이 창궐하며, 굶주리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땅이었다. ‘이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시간도 많고 바쁜 일도 없었던 까닭에, 나라면 말주변 좋은 관광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가며 도시들을 주마간산 식으로 둘러보지 않고, 국경을 넘어 오지까지 둘러보며 아프리카의 진정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시 나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구경할 욕심까지는 전혀 없었지만, 어딘가에서는 그런 구역을 보게 될 거라는 생각도 내심 있었다. 스와힐리어로 사파리는 여행을 뜻한다. 동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사파리에 나선 사람’은 멀리 떨어져서 연락이 닿지 않고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고 싶었다. 많은 여행자가 사라지고 싶은 열망에 길을 떠난다. 집이나 일터에서 마냥 기다리는 게 지루한 사람에게는 여행이 안성맞춤이다.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건 여행자의 몫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행은 꼼짝없이 틀어박혀 있던 시간, 또는 자동응답기에 메시지를 남겨야 했던 상황, 내선번호를 몰라 상대가 일을 끝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집에 틀어박혀 일하는 작가에게는 여간 짜증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에 대한 복수다. 그러나 기다림은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나는 상상해보았다. 사람들은 내가 어딨는지 궁금해하며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폴은 언제 돌아올까?”
“모르겠는데.”
“지금은 어딨어?”
“글쎄.”
“연락은 닿나?”
“전혀.”
아프리카 오지 여행은 휴대폰과 팩스, 전화와 일간지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음흉한 손길을 상대에게 뻗칠 수 있는 세계화의 오싹한 면에 대한 응징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도 연락할 수 없는 곳에 가고 싶었다.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의 『암흑의 핵심 Heart of Darkness』에서, 주인공 커츠는 온몸이 아프지만 동물처럼 네 발로 기어서라도 말로의 강배에서 도망쳐 정글로 달아나려 한다. 나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았다.
나는 뭔가를 찾아내겠다는 그럴듯한 이유에서, 한편으로는 내가 도망치고 사라질 테니 ‘너희가 나를 찾을 테면 찾아내봐라’는 좀스럽기 그지없는 이유에서 아프리카에 가려 했다.
집이 감옥처럼 변했다. 판에 박힌 생활을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 나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시간에 따라 움직였다. 예컨대 사람들은 언제 내게 전화하면 되는지 알았고, 내가 언제 책상에 앉아 있는지도 알았다. 나는 일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내가 혐오하던 삶의 방식이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받고 돈 때문에 이런저런 부탁을 받거나 재촉받는 게 넌더리났다. 부탁을 받고 오랫동안 뭉그적거리면 사람들은 마감시한을 강요하게 마련이다. “25일까지는 꼭 필요합니다… 금요일까지는 이 원고를 꼭 읽어주십시오… 주말까지는 끝내도록 애써주세요… 수요일에 전화로 회의를 합시다…” 전화를 해라… 팩스로 보내달라… 이메일을 보내달라… 휴대전화는 언제라도 연락이 된다. 내 휴대전화 번호는 이거다.
누구나 언제라도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은 끔찍하게만 여겨졌다. 누구도 다가올 수 없는 곳을 찾아내고 싶었다. 전화도 없고 팩시밀리도 없으며 이메일도 배달되지 않는 곳, 누구와도 연락되지 않는 아름다운 옛 세상, 한마디로 멀리 떠나고 싶었다.
나는 그저 훌쩍 떠나면 그만이었다. 나는 허락받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집에서 지내자 모든 것이 조금씩 예측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집사람이 직장에서 돌아오는 저녁이면 나는 언제나 집에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나는 베샤멜소스 위에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었는데… 참치를 좀 태웠어… 감자를 닦고 있던 중이야…”라는 식으로 말했다.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리면 전화를 받아야 했으니까.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여행을 떠날 거라고 하면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가져가게… 페덱스를 이용하라고… 핫메일에 가입하면 좋지… 인터넷 카페에 가끔 들르라고… 내 웹사이트를 방문해주게”라고 말했다.
나는 사양하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떠나는 목적은 순전히 이런 아수라장에서 탈출하려는 것이었다.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곳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자기계발이 아니라, 사라지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즉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이 말했듯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지상에서 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마지막으로 남은 곳 중 하나다. 나는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싶었다. 아프리카여, 기다려라. 수없이 망설이며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여행이었다.
나는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음에 방문하는 웹사이트는 중앙아프리카에서 벌레를 잡아먹는 독거미가 거미줄을 친 곳이 되어야 했다.
아프리카로 떠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동정 어린 애도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당신도 친구들에게 위험한 곳으로 떠날 거라고 말하면, 당신이 치명적인 것으로 판명된 질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들을 뜻밖의 격려로 받아들였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미리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많은 조문객이 찾아와 애도의 눈물을 흘리겠지만 근엄한 목소리로 “나는 저 친구에게 아프리카에 가지 말라고 했어. 끝까지 말렸어”라고 떠벌릴 게 확실했다.
나는 마침내 하이집트에 발을 들여놓았고, 평소에 여행하던 기분으로―그림 같은 풍경을 기대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무시무시한 사건을 대비하는 자세로―남쪽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행복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행복하면 좋겠지만, 행복은 여행의 진부한 주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프리카는 긴 여행을 하기에 최적인 곳 같았다.
(프롤로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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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폴 서루 Paul Theroux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1963년부터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말라위의 소체 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민주 인사의 망명을 돕다가 추방당한 후에는 우간다의 마케레레 대학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고, 1970년대 초부터 17년간 영국에 거주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베스트셀러 여행기 『유라시아 횡단기행 The Great Railway Bazzar』과 『중국 기행 Riding the Iron Rooster: By Train Through China』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3년 출간된 역작 『아프리카 방랑 Dark Star Safari』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까지 육로로 종단한 경험을 다룬 여행기로, 많은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 속에 여행기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 밖에 영화화된 소설 『모스키토 코스트 Mosquito Coast』와 『나의 비밀 이야기 My Secret History』 등 다수의 작품을 썼고, V. S. 나이폴의 작품을 분석한 문학비평서 『비디아 경의 그림자 Sir Vidia's Shadow』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는 미국에 돌아와 글쓰기와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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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강주헌
학부와 대학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했다.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는 한편 ‘펍헙 번역 그룹’을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 『키스 해링 저널』『베아트리스와 버질』『문명의 붕괴』『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슬럼독 밀리어네어』『그림만 보고 알 수 없는 액자 밖 화가 이야기』『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등 100여 권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강주헌의 영어번역 테크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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