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에게
용감했던 시절을 기억하며
1
칠레 여자아이들
그해 여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졌다. 페레스 프라도(쿠바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작곡가)가 이끄는 열두 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미라플로레스의 테라사스 클럽과 리마의 론 테니스 클럽에서 열린 카니발 무도회의 흥을 돋우었고, 아초 광장에서는 페루 맘보(룸바를 기본으로 한 리듬에 재즈 요소를 가미한 음악 혹은 그 음악에 맞춰 추는 춤)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리마의 대주교 후안 괄베르토 게바라 추기경은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커플을 파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대회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미라플로레스의 디에고 페레와 후안 페닝, 콜론 거리에 걸쳐 있는 우리 동네 알레그레는 산마르틴 동네와 체육대회를 벌였다. 종목은 미니축구와 사이클, 육상과 수영이었고,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이겼다.
1950년, 그해 여름에는 아주 특별한 일이 많았다. 코히노바 라냐스는 처음으로 세미나우엘이라는 빨간 머리 여자에게 반했고, 그녀 역시 그를 좋아한다고 말해 미라플로레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때부터 코히노바는 자기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잊고 찰스 아틀라스(세계적인 보디빌딩 선수이자 보디빌딩 연습 프로그램을 개발한 인물)처럼 가슴을 쭉 펴고 거리를 활보했다. 티코 티라반테는 일세와의 관계를 끊고 라우리타와 사랑에 빠졌고, 빅토르 오헤다는 일세와 사랑에 빠져 잉헤와 헤어졌으며, 후안 바레토는 잉헤와 사랑에 빠지면서 일세와 절교했다. 너무 많은 감정의 재구성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우리 동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실연하고 다시 사랑에 빠졌고, 토요일 밤 파티가 끝날 때면 처음에 함께 들어간 파트너가 아닌 다른 파트너와 함께 나왔다. “이런 상스러운 놈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나를 돌봐주셨던 알베르타 고모는 이렇게 소리치며 분개했다.
미라플로레스 해변의 파도는 두 번 부서졌다. 처음엔 해안에서 이백 미터쯤 떨어진 먼 곳에서 부서졌는데, 우리 가운데 용감한 사람들은 그곳까지 헤엄쳐 가서 파도를 탔고, 파도는 우리를 해안 쪽으로 백 미터 정도 데려왔다. 그곳에서 파도는 잠시 힘을 잃었다 크고 우아한 파도로 재무장하여 두번째로 부서지면서 서프보드 없이 파도를 타는 우리를 몽돌 해안으로 미끄러지듯 데려다주었다.
그 멋진 여름, 미라플로레스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왈츠나 코리도, 블루스, 볼레로와 과라차를 추지 않았다. 맘보가 모든 사람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맘보는 마치 대지진 같았다. 어린아이건 젊은이건 나이 든 사람이건 할 것 없이 모두 커플을 이루어 엉덩이를 씰룩거리거나 펄쩍펄쩍 뛰거나 온몸을 흔들면서 춤을 추었다. 미라플로레스 주변 동네를 비롯해 우리의 세계도 아니고 우리의 삶도 아니었던 린세, 브레냐, 초리요스, 심지어 라빅토리아, 리마 중심가, 리막과 포르베니르 같은 동네에서도 틀림없이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사실 미라플로레스에 사는 우리는 그런 동네에 가보지도 못했고, 가보겠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우리는 왈츠와 과라차, 삼바와 폴카에서 맘보로 옮겨 갔고 스케이트와 씽씽이를 자전거로 바꾸었다. 타토 몽헤와 토니 에스페호를 비롯한 몇 사람은 스쿠터로 갈아탔고, 또다른 한두 사람은 자동차로 전향했다. 가령 우리 동네의 뚱보 루친은 가끔 아버지의 시보레를 몰래 끌고 나와 우리를 태우고 테라사스 클럽에서 아르멘다리스 계곡까지 해변 도로를 따라 시속 백 킬로미터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해 여름에 가장 주목할 사건은 아주 먼 칠레에서 자매 두 명이 이곳 미라플로레스에 온 것이었다. 그 아이들은 화려한 외모에 말투가 독특했다. 말이 아주 빨랐고 단어의 마지막 음절은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모든 문장을 감탄문처럼 끝맺었고 반바지를 입다 긴 바지를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에게 거친 말을 마구 내뱉었다. 특히 내게 더욱 그랬다.
동생은 언니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언니 이름은 릴리였고 동생은 루시였는데, 루시는 릴리보다 한 살 어렸지만 체구는 조금 더 컸다. 릴리는 기껏해야 열네댓 살쯤 된 것 같았고, 루시는 열서너 살쯤 되어 보였다. ‘화려한’이라는 형용사는 두 자매를 위해 만들어진 말 같았지만, 루시는 언니만큼 화려하진 않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언니보다 옅은 금발에 더 짧았고, 옷도 더 수수하게 입었을 뿐 아니라 말수가 더 적었기 때문이다. 댄스시간이 되면 그녀는 미라플로레스의 여자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과감하게 허리를 흔들어 눈길을 끌었지만, 언니와 비교하면 정숙하고 내성적이고 싱겁기 그지없어 보였다. 자동 레코드 체인저에 걸린 음반에서 맘보 음악이 흘러나오면 우리는 미친 듯이 춤추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릴리는 팽이 같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불꽃 같았으며 도깨비불 같았다.
릴리는 흥겨운 리듬에 맞춰 미소를 띤 채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아주 우아하게 춤을 췄다. 그녀는 팔을 올리고 무릎을 드러내고 허리와 어깨를 흔들었다. 너무나도 사악하게 몸에 착 달라붙어 너무나도 많은 곡선을 그리며 너울대는 치마와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의 조그만 몸은 마구 흔들리고 전율해서 마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녀와 맘보를 추는 파트너는 항상 힘들어했다. 하기야 누가 그 미친 듯 날뛰는 다리와 발에, 악마에 홀린 것 같은 격렬한 몸짓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했다. 그녀의 파트너는 처음부터 스텝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고, 곧 모든 사람들의 눈이 릴리의 맘보 묘기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아이가 어쩜 저럴 수 있담!” 알베르타 고모는 분개했다. “꼭 멕시코 영화에 나오는 룸베라 통골렐레(이국적인 춤으로 유명한 멕시코 영화배우. ‘룸베라’는 춤꾼이라는 뜻으로 통골렐레의 별명이다)처럼 추네. 그래, 저 아이가 칠레 출신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 나라 여자들은 정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거든.”
나는 바보처럼 릴리에게 반하고 말았다. 여자에게 반하는 건 사랑에 빠지는 가장 낭만적인 방식이었고, 몸을 백 도까지 뜨겁게 달구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해 여름에 나는 세 번이나 딱지를 맞았다. 첫번째는 리카르도 팔마, 그러니까 미라플로레스의 중앙공원에 있는 영화관 2층 관람석에서였다. 일요일 낮 상영시간이었고, 그녀는 내게 안 된다고, 남자친구를 사귀기엔 자기가 너무 어리다고 말했다. 두번째는 바로 그해 살라사르 공원 옆에 개장한 아이스링크에서였다. 그녀는 내게 안 된다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내가 조금 마음에 들긴 하지만 부모님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칠 때까지는 남자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했는데 아직 중학교 3학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큰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라르코 대로에 있는 크림 리카에서 바닐라 밀크셰이크를 마실 때였는데, 그녀는 물론 안 돼, 라고 다시 말했다. 우리는 이미 남들 눈에 사귀는 사이처럼 보였는데, 왜 나는 그녀가 그러자고 말하길 바랐던 것일까? 우리는 마르타네 집에서 진실게임을 할 때 항상 짝이지 않았던가? 우리는 미라플로레스 해변에 함께 앉아 있지 않았던가? 파티에서는 함께 가장 많이 춤추지 않았던가? 미라플로레스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 우리가 애인 사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나는 그녀의 공식적인 대답을 원한 것일까? 장난기 어린 눈은 짙고 입술은 작고 도톰해 모델 같아 보이는 릴리는 요염과 교태를 갖춘 여자의 화신이었다.
“난 너의 모든 게 좋아.” 나는 그녀에게 말하곤 했다. “그중에서 네 말투를 제일 좋아해.” 그녀는 매력적이고 특이한 아이였다. 노래하는 것 같은 그녀의 억양은 페루 여자들과 너무나 달랐고 표현도 독특했다. 그런 표현은 동네 남자아이들의 얼을 빼놓았다. 과연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혹시 그런 표현에 비웃음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닌지 머리를 쥐어짜며 추측해야 했기 때문이다. 릴리는 아리송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자주 했고, 동네 여자아이에게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외설스러운 농담을 들려주곤 했다. “저 칠레 여자애들은 무서운 애들이야.” 알베르타 고모는 그렇게 말하고는 외국 여자애 두 명이 미라플로레스의 도덕관념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학교 선생 스타일의 안경을 벗었다 쓰곤 했다.
1950년대 초반 미라플로레스에는 아직 고층 건물이 없었다. 기껏해야 일 층이나 이 층짜리 주택이 모여 있을 뿐이었다. 잔디 깔린 정원에는 제라늄, 포인시아나, 월계수, 부겐빌레아가 심겨 있었고, 테라스로는 인동덩굴이나 담쟁이덩굴이 기어 올라갔다. 사람들은 정원의 흔들의자에 앉아 농담을 하거나 재스민 향내를 맡으며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몇몇 공원에는 빨간색과 분홍색 꽃이 핀 가시 달린 세이보나무가 있었고, 곧게 뻗은 깨끗한 보도에는 플루메리아나무, 자카란다나무, 뽕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가로수는 정원의 꽃들과 잘 어우러졌다. 노란색 도노프리오 아이스크림트럭 운전사들은 흰색 겉옷에 작은 검은색 모자를 쓰고 밤낮 거리를 오가며 경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길게 울리는 그 소리는 마치 원시인의 뿔피리 소리 같아서 선사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라플로레스에서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딸이 결혼 적령기에 이르면 소나무 가지를 베었는데, 그러지 않으면 불쌍하고 가엾게도 알베르타 고모처럼 노처녀가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릴리는 결코 날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형식적인 대답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우리는 어느 모로 보나 애인 사이였다. 우리는 리카르도 팔마, 레우로, 몬테카를로와 콜리나 극장에서 손을 잡고 오후에 상영하는 영화를 보았다. 나는 어두컴컴한 2층 관람석에서 우리보다 오래된 다른 커플들처럼 계획을 추진했다고―여기서 계획을 추진한다는 것은 가벼운 키스부터 서로의 혀를 빠는 딥키스나 매달 첫째 금요일에 신부에게 죽을죄를 지었다고 고해성사를 해야 할 정도의 위험한 접촉까지 모든 것을 포함했다―말할 수는 없지만, 릴리의 뺨과 귓불과 입가에 키스할 수는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살짝 포갰다 떼면서 “안 돼, 안 돼, 그건 절대로 안 돼, 홀쭉아”라고 멜로드라마 같은 대사를 던지기도 했다. 동네 친구들은 “넌 송아지 같아, 홀쭉아. 지금 창백해, 홀쭉아. 홀딱 반해서 몸이 녹을 지경이구나, 홀쭉아”라는 말로 나를 비웃곤 했다. 그들은 나를 결코 내 이름인 리카르도 소모쿠르시오라고 부르지 않았고, 항상 별명으로 불렀다. 하지만 그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릴리에게 몸이 달아 불타오를 지경이었으니까.
그해 여름 나는 그녀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루켄과 주먹싸움을 벌였다. 동네 아이들이 콜론 거리와 디에고 페레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 자리한 차칼타나 가족의 정원에 모였을 때였다. 루켄은 멋있는 척하려 애쓰다 갑자기 칠레 여자애들은 싸구려라고, 그애들의 머리는 진짜 금발이 아니라 표백한 금발이라고 말하고, 미라플로레스 사람들이 그애들은 군인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매춘부 같다고 쑤군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턱에 스트레이트를 날렸지만 그는 용케 내 주먹을 피했고, 우리는 절벽 옆에 있는 레세르바 방파제 구석으로 가서 주먹으로 결론을 내기로 했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다음 모임이 되어서야 아이들의 중재로 겨우 화해할 수 있었다.
릴리는 매일 오후 야자수와 나팔꽃, 초롱꽃이 마구 섞여 자라는 살라사르 공원 구석으로 가기를 좋아했다. 거기엔 낮은 붉은 벽돌 벽이 있었는데, 그 위에 오르면 선장이 함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듯 리마의 만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해 여름에는 하늘에 구름이 낀 적이 없었고, 태양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미라플로레스를 밝게 비추었다고 굳게 맹세할 수 있다. 그해 여름처럼 하늘이 맑고 화창한 날에는 저 뒤, 그러니까 바다의 수평선에서 활활 타는 듯한 붉은 원반이 빨갛고 활활 타는 듯한 빛을 내뿜으며 세상과 작별하고 태평양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넋을 잃고 일몰을 바라보는 릴리의 자그만 얼굴은 중앙공원 교회의 열두시 미사에서 성체를 받을 때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구체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바다가 마지막 햇빛까지 삼켜버리는 순간, 즉 별이나 하느님께 소원을 빌 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나 역시 소원을 빌었지만 내 소원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물론 나는 항상 똑같은 소원을 빌었다. 마침내 그녀가 날 좋아한다고 말하게 해달라고, 우리가 애인이 되게 해달라고, 우리가 계획을 추진하게 해달라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고, 우리가 약혼하고 결혼해서 파리로 가 행복하고 부유하게 살게 해달라고.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파리에서 사는 걸 꿈꾸었다. 아마 우리 아버지 탓일 것이다. 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는 내게 폴 페발, 쥘 베른, 알렉상드르 뒤마를 비롯한 수많은 프랑스 작가의 책을 읽게 했고, 나는 그런 책들 때문에 파리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 머리는 모험으로 가득 찼다. 난 프랑스에서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즐겁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시 말해 내 머릿속에는 파리가 그 어느 곳보다 좋은 곳이라고 각인되었다. 페루-미국 문화원에서 영어 수업을 듣던 나는 알베르타 고모를 졸라 윌슨 거리에 있는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등록해 매주 세 번 프랑스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동네 친구들과 노는 것도 즐거웠지만,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학교 성적도 괜찮았으며 외국어에 흥미도 느꼈다.
용돈이 충분할 때면 나는 릴리를 블랑카 제과점에서 차 한잔하자며―아직까지 간식 먹자는 말이 유행하지 않을 때였다―불러냈다. 라르코와 아레키파 그리고 엄청나게 키가 큰 무화과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리카르도 팔마 거리에 접해 있던 그 가게는 눈처럼 흰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제과점 바깥에는 차양 밑으로 조그만 테이블들이 보도에 늘어서 있었다. 『천일야화』에 나올 것 같은 과자들은―설탕 입힌 스펀지케이크! 꿀을 넣은 아몬드케이크! 슈크림 과자!―그 가게만의 특별 메뉴였다.
블랑카 제과점에서 릴리와 함께 아이스크림이나 조각 케이크를 먹는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은 그녀의 동생 루시가 끼어드는 바람에 반감되었다. 나는 릴리와 외출할 때마다 루시도 데려가야만 했다. 루시는 자기가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면서 내 계획 추진을 방해했다. 나는 릴리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려 미리 생각해둔 아름다운 말도 할 수 없었으며 특정한 주제를 피해 대화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 그녀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곱슬머리가 어떻게 너울거리는지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진한 꿀색에 장난기가 가득한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너무나 독특한 그녀의 말투를 들었으며, 종종 그녀의 짝 달라붙은 블라우스의 깊이 파인 목선으로 벌써 동그랗게 모습을 드러낸 조그만 가슴, 의심의 여지 없이 싱싱한 과일처럼 탱탱하고 보들보들할 여린 젖꼭지를 몰래 훔쳐보기도 했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어.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훼방만 놓는 것 같아.” 가끔 루시가 사과하듯 말하면 내가 대답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해? 우리는 너랑 함께 있어서 너무 행복한데. 그렇지 않아, 릴리?” 릴리는 비아냥거리는 악마 같은 눈으로 빙긋 웃으며 이렇게 불만의 소리를 터트리곤 했다. “물론이지, 푸우우우우우우.”
새들이 내려앉아 노래하는 무화과나무가 줄지어 선 파르도 거리를 산책하는 건 그해 여름의 의식이었다. 우리는 거리 양쪽에 늘어선 조그만 집들 사이를 걸었다. 어린아이들은 풀 먹인 흰 제복을 입은 유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원과 테라스를 뛰어다녔다. 루시가 함께 있어 릴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지루하고 김빠진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미래의 계획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법대를 졸업하면 외교관이 되어 파리에 가고 싶다고―파리에 사는 것만이 정말로 사는 것이고, 프랑스는 문화국가이기 때문에―아니면 정치에 투신해 가난한 페루를 다시 위대하고 번영한 나라로 만들고 싶은데, 그러려면 유럽 여행은 잠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릴리와 루시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루시는 현명하게도 매우 구체적이고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고등학교를 마칠 거야. 그리고 좋은 직장을 얻을 거야. 음반 가게에서 일하면 너무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릴리는 부모님만 설득할 수 있다면 여행사나 항공사에 취직해 스튜어디스로 일하며 공짜로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또 영화배우도 되고 싶지만 비키니를 입고 영화를 찍을 생각은 죽어도 없다고 했다. 여행하고 또 여행하고, 모든 나라를 가보는 게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너는 이미 두 나라, 칠레와 페루를 봤잖아. 그런데 뭘 더 원해?” 나는 말했다. “나랑 비교해봐. 난 미라플로레스도 벗어나본 적이 없어.”
릴리는 내게 산티아고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는데, 그건 천국 같은 파리를 미리 보여주는 청사진과도 같았다. 내가 얼마나 부러워하며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기와 달리 그곳엔 가난한 사람도 없고 거리에 거지도 없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가 파티에서 새벽까지 이성 친구와 뺨을 맞댄 채 춤추도록 허락해주었고, 결코 이곳처럼 노인이나 엄마 혹은 고모가 따라와 감시하다 너무 진도가 빠른 아이들을 꾸짖지도 않았다. 칠레 아이들은 영화관에서 성인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었고, 열다섯 살이 되면 담배를 숨어서 피울 필요도 없었다. 그곳의 삶은 리마의 삶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유쾌했다. 영화관이나 서커스, 극장이나 쇼, 생음악을 연주하는 파티가 리마보다 더 많았고, 항상 미국에서 아이스쇼와 발레단, 뮤지컬 공연단이 순회 공연을 왔으며, 칠레 사람들은 직업이나 직위에 상관없이 페루 사람들보다 돈을 두세 배는 벌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다 사실이라면, 왜 이 칠레 여자애들의 부모님은 그 멋지고 환상적인 나라를 떠나 페루로 왔을까? 그들은 첫눈에 보아도 가난해 보였다. 그 당시 그들은 우리처럼 살지 못했다. 알레그레 동네의 아이들은 집사와 요리사, 하녀와 정원사가 있는 집에서 살았지만, 그들은 감브리누스 식당 근처 에스페란사 거리에 있는 좁고 작은 삼 층짜리 아파트 건물에 살았다. 그 당시 미라플로레스는 얼마 후면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작은 주택 건물이 사라질 무렵이라, 가난한 사람들만 아파트 건물에 살았다. 너무나 슬프게도 칠레 여자애들은 그 동네에서 얼마 안 되는 그런 부류에 속한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부모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릴리와 루시는 동네의 어떤 아이도 자기 집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생일을 축하하지도, 파티를 열지도 않았고, 차를 마시자고 우리를 초대하거나 같이 놀자고 우리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기네 집이 너무 누추해서 우리가 오는 걸 창피해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가난했고 갖지 못한 것 때문에 창피해했지만, 내 마음은 그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득 찼고, 칠레 여자애에 대한 내 사랑 역시 갈수록 커져갔다. 심지어 나는 ‘릴리와 결혼하면 그녀의 가족을 데려와 함께 살아야지’ 하고 이타적인 생각까지 했다.
(제1장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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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Mario Vargas Llosa
1936년 페루 아레키파에서 태어났다. 리마의 산마르코스 대학에서 문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스페인의 마드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2년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데뷔한 뒤, 1963년 레온시도 프라도 군사학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도시와 개들』을 출간하며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고, 1966년 발표한 『녹색의 집』으로 페루 국가 소설상, 스페인 비평상, 로물로가예고스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85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1994년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다. 2005년 미국과 영국의 유명 시사 잡지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명’에 뽑힌 바르가스 요사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식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소설로 『카테드랄 주점에서의 대화』(1969)『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1973)『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1977)『세계 종말 전쟁』(1981)『새엄마 찬양』(1988)『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1997)『염소의 축제』(2000)『켈트인의 꿈』(2010)이 있고, 『혁명의 문학과 문학의 혁명』(1970)『사르트르와 카뮈』(1981), 대통령 선거전을 회고한 자서전 『물속의 물고기』(1993) 등 수많은 에세이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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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송병선
학부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한 후 콜롬비아의 카로 이 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하베리아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영화 속의 문학 읽기』『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붐 소설’을 넘어서』, 옮긴 책으로 『염소의 축제』『새엄마 찬양』『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9월의 빛』『천사의 게임』『거미여인의 키스』『콜레라 시대의 사랑』『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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