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웹진 <나비>가 창간된 2009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격주로 연재되었던 최재봉 문학전문기자의 ‘거울 나라의 작가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단행본 『거울 나라의 작가들』은 저자가 연재 원고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펴낸 책입니다. 연재 원고 일부는 “나비 아카이브” 꼭지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최재봉 기자가 전하는 작품들 간의 대화가 작품의 의미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는지 ‘거울 나라’에 들어서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들어가는 말
문학 작품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것은 물론 창작자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상상력이 순전한 허구에 기반하는 것은 아니다. 제아무리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의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그가 발 딛고 있는 사회라는 거푸집에서 빚어지게 마련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사회적 맥락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 작품이란 작가의 상상력이 사회적 맥락과 맞부딪쳐 피워 올린 불꽃이라 하겠다. 사회적 맥락을 다른 말로 콘텍스트 또는 매트릭스라 할 수 있으리라.
여기에다가 동서고금의 문학 작품들이라는 또 하나의 범주를 추가해 보면 어떨까. 문학 작품은 작가의 상상력과 사회적 맥락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선행 작품들의 모방과 극복을 통해서도 태어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시인?소설가 들이 선행 작가와 작품의 독서로써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잘 쓰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히 읽어야 하는 것이다. 독서 과정에서 문인들은 자신이 대결하거나 넘어서야 할 대상을 숙지하게 되며, 그것은 나중에 그들이 자신의 작품을 쓰게 될 때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요컨대 하나의 문학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대화적 관계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성의 작품들은 새롭게 태어나는 문학 작품에 대해 또 하나의 환경, 즉 매트릭스로서 구실하게 되는 것이다(그런 매트릭스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유명한 것이 성서와 불경 같은 종교 텍스트, 그리고 그리스?로마 신화와 『사기』 『삼국지』 같은 동양의 고전들일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문학이라는 공화국의 주민으로서 하나의 문학 작품은 나머지 작품 모두를 반영한다 하겠다. 그것은 흡사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의 그물코와도 같은 형상이다. 하나의 구슬에 다른 모든 구슬이 비치는 구슬들의 망 말이다.
하나의 작품이 선행 작품을 크게 의식하고서 쓰여지는 가장 흔한 사례는 패러디일 것이다. 패러디는 기존 작품을 의도적으로 흉내 내거나 비틀어서 새로운 효과를 내는 방법을 가리킨다. 그러나 꼭 패러디가 아니더라도 둘 또는 셋 이상의 작품 사이에 모방 내지는 습합의 관계가 성립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문학사에 대한 의식이 민감한 작가일수록 선행 작품을 대화 상대로 삼아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을 빚어내는 일이 잦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어떤 작품이 다른 작품(들)을 드러내거나 암시하는 경우를 ‘거울 관계’라 하고, 그런 작품의 창작자들을 ‘거울 나라의 작가들’이라 부르기로 한다. 거울 나라의 작가들 사이에서는 어떤 대화적 관계가 맺어지는지, 그 결과 탄생한 작품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어떤 작품들은 거울 관계에 있는 다른 작품(들)과 함께 검토할 때 한결 다층적이고 심층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가족관계와 교우관계 등을 두루 파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 당신은 지금 거울 나라의 입구에 서 있다.
(들어가는 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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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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