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엄마들의 탄생
“우리 만납시다”
2017년 4월 22일. 정치하는엄마들이 태동한 날. 당시만 해도 우리는 이날의 만남이 우리의 삶을 이렇게까지 바꿔놓을 줄 몰랐다. 그날 이후, 많은 엄마들의 삶이 변화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엄마들이 바라는 세상, 그리고 엄마들을 바라보는 세상, 그리고 엄마들을 바라보는 세상은 쉬지 않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첫 단추는 장하나 전 국회의원이 끼웠다. 2017년 3월 25일 토요일, 〈한겨레〉칼럼 ‘장하나의 엄마 정치’에서 장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에 여성엄마들이 나서야만 독박육아를 끝장내고
평등하고 행복한 가족 공동체를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울한 여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의 아이들과 제 딸 두리에게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를 전해줄 수 있습니다. 저와 마음이 통하신다면,
이제 우리 만납시다.
“우리 만납시다” 한마디에 ‘꽂힌’ 전국의 엄마들은 장 전 의원이 개설한 페이스북 페이지 ‘엄마 정치http://www.facebook.com/political.mamas’에서 온라인으로 만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에 갇혀 모니터 앞에 앉은 채로는 할 수 있는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상의 공간에서 하나둘 모인 엄마들은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나와 같은 경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장 전 의원의 첫 칼럼 이후 한 달 만에, 각지에서 온 엄마들이 만났다. 엄마들은 마치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는 듯, 벅찬 마음과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렇게 30명 남짓의 엄마들이 첫 모임 장소인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 모였다.
이날 모임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어디든 편히 갈 수 없는 엄마들에게도 걱정이 없었다. 엄마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 당사자들이 만든, 엄마들이 주인공인 자리였기 때문이다. 장소는 지하철역과 가까우면서 유모차 접근이 용이한 곳으로 정했고, 아이들과 함께 자리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도록 모임의 공간을 구성했다. 둘러앉은 엄마들이 만든 원 안에 돗자리를 깔았고, 아이들은 엄마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간식도 먹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참석한 엄마들도 있었지만 백일이 갓 지난 아기, 갓 걸음마를 뗀 아기, 뛰어다니는 아이와 함께 참석한 엄마들도 많았다. 엄마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아이들이 보채기도 했다. 공공장소에서는 아이가 울기만 해도 눈치가 보였지만, 여기에서는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모두가 엄마였기 때문이다. 원래 아이들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으레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들은 마음이 편안했다.
한 엄마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 아이가 칭얼대자 옆에 앉은 다른 엄마가 달래주었다. 어느새 모두가 모두의 아이를 조금씩 돌보는 게 당연해졌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부산하지만 따뜻한 모임. 매월 진행하는 정치하는엄마들의 정기 집단 간담회는 이후로도 계속 같은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첫 모임에서부터 수도권뿐만 아니라 울산, 세종시 등에서 온 열혈 엄마들이 있었다. 울산에서 온 엄마는 생일 선물로 외출권을 획득해서 왔다고 말했다. 다들 환호했다. 혼자만의 외출권이 왜 그토록 환호할 만한 선물인지 엄마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날의 주제는 ‘엄마의 삶 그리고 정치: 독박육아 대 평등육아’였다. 장하나 전 의원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청년 비례대표였던 제가 국회의원이 된 뒤 임신을 했다고 하면
‘여자를 뽑아놓으니 애 낳고 쉰다’는 말을 들을까 봐
당당하지 못했어요. 아르헨티나의 여성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모유 수유하는 사진을 보고 후회했어요. 조금 더
당당하게 행동할걸, 하고요. 2016년 기준으로 20대 국회의원
전수 조사 결과, 평균 재산이 41억 원, 평균 연령은 55세,
83퍼센트가 남성입니다. 애초부터 엄마들을 대변할 수 없어요.
둥글게 모여 앉은 엄마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은 잠깐이었고 나머지는 내내 앉아서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다들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모두 다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다들 비슷할까, 아이를 안고 온 한 엄마는 말했다.
어른하고 얘기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이들 행동은 이해가
안 되잖아요. ‘얘는 도대체 왜 울지?’ 하게 되고요.
엄마들은 “와, 나랑 똑같아” 하며 박수를 치고 웃었다. 그러나 웃는 엄마들보다는 우는 엄마들이 더 많았다. 엄마로서의 삶과 자신의 인생을 소개하는 일은 이 사회에서 엄마이기 때문에 겪는 불합리와 모순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다. 그 울음은 세상을 향한 엄마들의 첫 외침이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의 출발이었다.
엄마들은 왜 만나서 울었을까
저는 72년생이에요. 아이들 둘 낳고 키우다가 야근이 너무
많아 주중에는 시어머니가 키워주시고, 주말부부로 살았어요.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죠. 최근 우리 사회
여성의 삶을 다룬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저보다
10년 후배들이 겪는 상황도 저와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정말 끔찍했어요. 딸이 고1, 고3이라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제가 겪은 걸 똑같이 겪어야 하다니요.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 40대 중반, 조은아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았어요. 어느 날 마음먹고
알리려고 하는데 상사가 그러는 거예요. “일을 잘하던
직원들도 애 낳으면 별 볼 일 없더라고.” 결국 말을 못했어요.
─ 30대 중반, 김○○
둘째를 낳은 뒤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없을 거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일과 가정을 함께
가져가더라고요. 세상에 구조적으로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들고 내 헌신은 무얼까 싶어 우울했습니다.
─ 30대 초반, 조성실
대학원 졸업하고 연구 조교로 활동하다가 임신을 했어요.
초기에 입덧이 심해서 주위에 알리고 도움도 받았는데, 마침
그때가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던 시기였죠. 배려받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를 배제한 거더라고요. 부끄럽고
민망해서 일을 그만뒀습니다.
─ 30대 중반, 권미경
육아의 즐거움은 모르고 살았어요. 남편은 새벽 여섯 시에
나가서 애들 자면 들어오고, 주말에도 일하고요. 경력단절에
대한 상실감이 커서 제 인생이 없어지는 기분이었어요.
후배들이 아이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면 입주 도우미를
써서라도 일은 그만두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작은 힘이라도
연대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생각만으로는 바뀌지 않잖아요.
─ 40대 초반, 이○○
엄마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서로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모두가 눈물을 훔쳤다. 엄마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도,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울컥했다.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되고 만 현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 조직의 분위기 때문에 임신 사실조차 말하기 힘든 데서 느낀 자괴감, 슈퍼우먼 신화와 그에 따른 콤플렉스, 육아를 오로지 엄마에게만 떠넘기는 사회에 대한 분노까지…. 봇물 터지듯 나오는 엄마들의 비명.
다들 외롭고 힘들었는데, 외롭고 힘들다는 사실조차 말할 곳이 없었다. 엄마로서의 삶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동안 그 이야기를 할 공적인 통로가 없었다. 엄마됨의 어려움, 고통, 우울을 털어놓으면 이 사회의 ‘모성 신화’로부터 이탈한 비정상인이 되기 일쑤였던 탓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사적으로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겠지만, 그러고 나면 허망함만이 남곤 했다. 나아진 게 없고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없으니,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의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무수했으나 잠시 떠돌던 말들로 결국엔 또 잊힌다는 것을 아니까. 이제야 이렇게 마음 놓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마음껏 웃고 울 수도 있는 자리를 찾은 것이다.
엄마들은 몸으로 느낀다. 육아에는 모든 문제가 겹쳐 있다는 사실을. 노동, 보육, 교육, 주거…. 어느 것 하나 관련되지 않은 게 없다. 부모가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까닭에 아이들은 유아동기 때부터 학원을 전전한다. 학원은 교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긴 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보육 대안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사교육은 학령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노동시간이 길고 저녁 없는 삶을 사는 부모들은 자식들이 ‘헬조선’의 울타리를 조금이라도 뛰어넘길 바라며 교육에 헌신한다.
교육 문제는 부동산 문제와 떼놓을 수 없다. 학군에 따라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임금보다 훨씬 가파르게 올라가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부모들은 절절맨다. 맞벌이를 하고 저녁을 반납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 손익을 따지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경력단절과 독박육아가 시작된다. 대부분 임금이 더 적은 엄마가 그 주인공이 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들이라면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일과 육아 어느 쪽도 발을 뗄 수 없어 한쪽 다리씩 걸쳐 있는 기분 말이다. 그런 일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일을 하건 하지 않건, 엄마는 우울하고 그 우울은 아이에게도 전염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죠. 아무도 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회의원들이 바뀌어도 내 문제는
우선순위 밖이라는 것을요. 다들 인구 절별과 저출산 문제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위한 투자는 언제나
후순위라는 것을요. 그렇다면 내가 바꿔야지 싶었어요.
내 문제를 내가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잖아요. 엄마 정치 모임도 그래서 참여했습니다. 나는
엄마이고, 무엇이 문제인지 아니까요.
─ 30대 중반, 임아영
엄마들은 독박육아를 만드는 사회 구조를 평등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심하기로 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지금은 마을은커녕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엄마들은 이 문제를 엄마는 물론 아빠도 함께, 그리고 사회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답은 결국 정치였다. 정부와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헛헛한 공약만이 난무했을 뿐, 부모 당사자들은 정치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했다. 2005년 9월부터 보건복지부 산하 자문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어왔지만 출산율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정치가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말로만 정치를 한 탓이다.
우리는 행동하기로 했다. 결국 행동하는 것만이 답이기 때문이다. 아이 키우는 양육 당사자를 대변할 국회의원이 없다면 당사자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면 된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함께 목소리를 모으면 힘이 생긴다. 어쩌면 ‘엄마’는 정치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일 것이다. 생활의 최전선에 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첫 모임이 끝나고, 모임의 이름을 정했다. 정치하는엄마들 준비위원회. 우리는 직접 정치를 하고자 뜻을 모았다. 당사자가 행동해야만 가장 잘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다. 정치란 늘 욕망의 또 다른 이름으로 여겨지는 게 그간의 현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라는 이름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정치가 아니라면 불합리하고 모순덩어리인 엄마들의 현실이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당당히 ‘정치하다’라는 능동사를 쓰기로 했다.
외롭고 힘들어 혼자 울던 엄마들이 서로를 향해 울음을 토해내고, 그 눈물에서 연대의 싹이 움텄다. 우리는 집 안에서 나와 세상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함께 손잡고 웃으며 걸어가기로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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