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사비 미학
그윽한 집과 초가지붕
와세다대학 오오쿠마 강당 옆에는 넓은 잔디가 펼쳐진 일본식 정원이 있다. 바람 솔솔 한껏 쉬고 싶은 날, 잔디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학생들에게 이 잔디밭은 고즈넉한 추억으로 남는다. 이 정원을 찾는 많은 방문객들은 거대한 로얄 리갈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돌아간다. 정작 중요한 것은 모른 채.
바로 정원 구석 숲속에 있는 허술한 집 한 채. 판자집 같이 엉성하게 엮어진 누추한 집. 강진의 다산 유배지 건물이 더 화려하고 멋지게 느껴질 정도로 소박한 집 한 채. 그늘 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 그 집 옆으로 이끼 낀 냇물이 흉내만 내며 흐르고 있다. 어느 정도의 축축함과 적막감이 근저根底에 흐르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꺼리는 집이다. 정원 쪽에서는 이 집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집 다다미 방에서 정원은 풍경화마냥 정답다.
간지소[完之莊]라는 이 집은 이 정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곳은 가장 중요한 국빈이 올 때 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하는, 오랜 다다미방을 갖춘 집이다. 미 대통령 클린턴이 와세다대학을 방문했을 때도 로얄 리갈 호텔이 아닌 이 허술한 집 다다미방에서 식사했다고 한다.
실은 일본의 저택에는 이러한 허술한 집이 한 채씩 있다. 교토의 화사한 금각사나 은각사에 가면, 흔히들 연못 한가운데 번쩍이는 금과 은이 붙여진 멋진 집만 사진 찍고 돌아온다. 그런데 정작 그 집을 감상하는 언덕 위 작은 집은 누군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그저 함바집으로 생각하고 지나치기 일쑤다. 옛날 사람들은 바로 이 집에서 금각사와 은각사를 내려다보며, 차 한잔을 그윽하게 마시고 정원을 감상했었다.
가마쿠라에 처음 갔을 때도 나는 이 집처럼 허술해 보이는 집을 많이 보았다. 처음 들른 절은 가마쿠라 역에서 서쪽으로 걸으면 보이는, 삼나무길 계단이 인상적인 엔가쿠지[円覺寺]다. 1282년 여몽麗夢 연합군의 침입으로 죽은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다.
이 절에서 한국에는 보기 드믄 초가지붕의 절을 보았다. 이 절 맞은편에 있는 도케이지[東慶寺]에서도 초가지붕 절을 보았다. 특히 이 절에는 초가지붕 아래 종이 달려 있어 특이했다. 그러고 보니 가마쿠라에는 초가지붕이 덮인 절이 많았다. 이 초가지붕 절은 불교적인 무상관無常觀을 머금은 그늘을 드리우는 듯했다.
초가지붕 절집에서 난생 처음 차잎을 절구에 곱게 갈아 물에 섞은 ‘맛차抹茶·가루차’를 마셨다. 일본의 차 문화는 가마쿠라 시대 승려 에이사이[策西]가 송나라에서 차문화를 들여오면서 시작됐다. 그는 1191년에 맛차 제조법과 묘목을 들여와 전했다. 당시 주로 사찰에서 마시던 차는 상류층은 물론 서민의 기호품으로 번져나갔다. 지금의 커피 같은 기호식품이었다. 초가지붕의 절집 곁에서 맛차를 마시는 분위기는 은은하며 독특했다.
딸랑딸랑, 실바람에 실려오는 방울 종소리를 들으며 맛차를 마시는 마음에 끝 모를 평안이 밀려왔다.
“이거 형용할 수 없이 평안하고 그윽하네요.”
아이마냥 좋아하는 내 말에, 동행했던 와세다대 오오무라 마스오 교수님께서 답하셨다.
“이런 분위기를 바로 와비사비라고 하지요.”
내가 ‘와비사비’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바로 이때였다.
손님을 검소한 방에서 조용히 모시는 전통, 절의 건물도 초가지붕으로 씌우는 그늘진 분위기. 조금 풀어 표현하자면, 간소簡素의 정신 혹은 가난함과 외로움을 즐기는 풍류정신이라고나 할까.
다도의 은근한 멋
쉽게 말하면 ‘고독과 빈궁함, 자연의 정취를 있는 그대로 즐긴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스럽고 한적한 정취를 의미하는 와비사비는 일본의 다도茶道에도 중요한 정신적인 미의식으로 기능했다. 와비사비[わびさび]는 중세 전국戰國 시대의 전란을 거쳐, 그후 모모야마[枇山] 시대의 현란하고 화사한 번영을 지나 이윽고 도달한 경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원류는 센노리큐[千利休, 1522~1591]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센노리큐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30년간의 정권을 말하는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1573~1603] 시대 때 다도의 대가다.
날마다 싸움이 전개되는 전국시대였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무장武將들은 다실茶室에 가서 침묵을 즐기곤 했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도 리큐의 차를 아끼고 사랑했다. 조용한 다실에서 차를 우려내는 데 집중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여 정신을 갈고 닦는 구도의 길을 리큐는 전했다. 이 경지가 바로 ‘와비’ 곧 ‘조용하게 맑고 가라앉은 정조’를 즐기는 것이다. 리큐는 엄숙하고 따뜻하며 동시에 속된 데가 없이 깔끔한 차를 ‘와비차[わび茶]’라고 했다.
다도에는 ‘이치고이치에[一期一会]’ 라는 말이 있다. “모든 만남은 일생에 딱 한 번 있으니,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두 번 다시 못 만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차를 대접하는 마음, 보다 좁은 공간에서 차를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리큐는 다실 문을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도록 낮게 만들고, 다다미 한 장 반 정도의 작은 방을 구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리큐의 소박한 정신은 조선 정벌을 나서며 팽창주의로 치달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마찰을 일으켰고, 마침내 리큐는 69세에 죽임을 당했다.
앞서 와세다대학처럼 저택의 한 구석 또는 정원 숲속이나 언덕에 있다는 허술한 찻집은 바로 리큐의 그러한 정조를 느끼기 위한 조용한 공간이다. 비좁은 곳의 쓸쓸함 속에서 깊이 있는 마음의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공간인 것이다.
지금도 일본인은 차를 즐겨 마신다. 서양 음료에 밀려 다도의 위기론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차의 성분과 효능에 대한 과학적 재평가가 이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기가 되살아났다. 캔음료로 널리 팔리고 있으며 맛차를 넣은 아이스크림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하이쿠, 생략의 멋
독특한 정형시 하이쿠[俳句]에서도 와비사비 미학은 중요하다. 원숙하고 은근한 멋을 의미하는 와비사비 미학이 하이쿠의 작풍이 된 것은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 때부터다. 가령,
가는 봄이여 行く春や
새 울며 물고기의 鳥啼き魚の
눈엔 눈물이 目は涙
를 읽어보자. 어찌 보면 무의미를 지향하는 것 같으나, 이 시에는 깊은 맛이 숨겨져 있다. 이 하이쿠는 봄이 지나가는 순간에 정처없이 하늘을 떠도는 새도 울고, 물 속 물고기도 눈물 흘린다고 쓴다. 시가 되기에는 너무도 짧은 17음절 속에 바쇼는 일상과 세월의 무상함을 담아내고 있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물고기 눈의 눈물을 한없는 이별의 눈물로 공감할 수도 있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눈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바쇼는 이상적인 하이쿠[俳句]가 되려면, 한적함을 뜻하는 ‘사비[さび],’, 가벼운 일상을 의미하는 ‘카루미[軽み]’, 심오한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호소미[細み]’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에는 한적함, 가벼운 일상, 심오한 깊이가 모두 담겨 있다. 여기에는 자잘한 이해나 번거로운 인간관계를 초월한 아름다운 순간이 담겨 있다.
하이쿠의 생략기법 역시 와비사비와 관계 있다. 독자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생략된 공간을 채워야 한다. 하이쿠는 미완성의 암시다. 하이쿠는 독자의 상상력에서 완성된다. 이러한 태도가 하이쿠적 커뮤니케이션이다. 메시지에 집착하지 않고, 서로 마음을 열어 정답을 찾기보다는 여러 의견에 귀 기울이는 태도이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때 느끼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와비’란 가난함이나 부족함 가운데에서 마음의 충족을 끌어내는 미의식의 하나이다. 서글프고 한적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탈속脫俗에까지 승화되는 경지, 바로 가난함貧의 미의식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의 본질을 붙잡으려는 정신이다. ‘사비’[寂,さび]란 한적한 곳에서도 더없이 깊고 풍성한 것을 깨닫는 미의식이다. 단순한 호젓함이 아닌, 깊이 파고드는 고요함, 그 속에서 한없는 깊이와 넓이를 깨닫는 미의식이다.
영화, 침묵과 정지의 아름다움
일본의 뛰어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도 이러한 ‘차분하고 깊은 멋’을 만나곤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모모노케 히메원령공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 우리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다른 정지된 화면과 침묵의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있다. 장면이 빠르고 세세하게 지나가는 미국 애니메이션과 달리, 일본 애니메이션은 가끔 화면이 정지되면서 침묵의 공간이 형성되곤 한다. 물론 처음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그림 숫자를 줄이다 보니, 디즈니랜드 영화보다 일본 만화영화의 인물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보였으나, 이러한 경제적인 이유가 나중에는 오히려 일본의 미학을 살리는 요인이 되었다. 오랫동안 영상이 정지되어 있을 때, 마치 정물화를 감상하듯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는 관객은 수동적의 태도가 되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상상하며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디즈니 만화영화는 수동적인 팬을 양성하며 강력한 계몽주의적 담론을 재생산하는 반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능동적인 관객을 훈련시키는 열린 텍스트를 전제하면서, 중독성 있는 메시지를 세뇌시킨다. 바로 정지와 침묵의 공간이 있기에 관객이 그 사이를 상상력으로 매우면서 생기는 능동적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또한 와비사비 미학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인들이 보면 왜 울까 싶을 정도로 일본인들이 눈물 흘리며 보던 「철도원」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평생 눈발이 날리는 호로마이 역을 지키는 주인공 오토는 아이가 아파도, 아내가 병원에서 죽어가도, 기차 하나만 바라보고 산다. 오토는 철도시간에 맞추느라 딸과 아내의 죽음조차 보지 못했다. 철도부 관리에서 스키장으로 직장을 옮긴 동료 스기우라와 달리 오토의 삶은 너무나 적적하기만 하다.
이러한 오토의 삶을 보며 눈물 흐리는 일본인 관객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삶의 중심에서 완전히 비켜나간 여백과 같은 오토의 삶에 무슨 매력이 있기에 이 영화를 보며 그리도 많은 사람이 울었을까. 그것은 바로 와비사비 정조 때문이다. 힘 빠지고 쓸쓸한 아름다움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젊은 청년이었던 오토가 반백의 노인이 되어 쓸쓸히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은 와비사비의 절정을 보여준다. 보잘것없는 한적함과 가난 속에서 가난함에서 제자리를 지켰던 오토를 보며, 그 쓸쓸함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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