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삐죽빼죽한 테두리
1
자갈 틈새로 작약이 자라고 있어요. 헐거운 회색 자갈을 뚫고 올라온 그들은 뱀의 눈처럼 봉오리로 공기를 탐색하다 부풀어 공단처럼 반짝반짝하고 반들반들한, 짙은 빨간색의 큼지막한 꽃을 터뜨리죠. 그러다 산산이 땅으로 떨어져요.
뿔뿔이 흩어지기 전 어느 한 순간에는 그 꽃들도 첫날 키니어 나리 댁 앞마당에 피어 있던 작약과 똑같아요. 나리 댁 앞마당에 핀 작약은 하얀색이기도 했지만요. 낸시가 꽃을 자르고 있었어요. 아랫단에 삼단 주름이 달린, 분홍색 장미 봉오리 무늬의 옅은 색 드레스를 입고 밀짚 보닛으로 얼굴을 가리고. 꽃을 담을 납작한 바구니도 들고 있었어요. 허리를 숙일 때에는 숙녀처럼 등을 꼿꼿하게 폈고요. 낸시는 우리가 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고개를 돌렸고, 놀란 것처럼 목에 손을 갖다 댔어요.
저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떨어뜨린 채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 걸었어요. 우리는 높다란 돌담으로 둘러싸인 사각형 뜰 안으로 둘씩 짝을 지어 조용히 걸어 들어갔어요. 저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아서 깍지를 꼈죠. 손을 보면 살이 터 있고 관절일 빨개요. 그렇지 않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길을 자박자박 밟을 때마다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신발 아부리가 치맛자락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해요. 이렇게 잘 맞는 신발은 처음이에요.
지금은 1851년. 저는 다음번 생일이면 스물네 살이 돼요. 열여섯 살 때부터 여기 갇혀 있었죠. 저는 모범수이고 전혀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고 교도소장 부인이 말하는 걸 언뜻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엿듣는 걸 잘해요. 착하고 얌전하게 굴면 결국에는 풀려날지 모르죠. 하지만 착하고 얌전하게 구는 것은 다리 밖으로 떨어져 그 끝에 매달려 있는 것만큼 힘든 일이에요. 겉보기에는 꼼짝 않고 그저 매달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력을 다하고 있는 거잖아요.
저는 작약을 곁눈질해요. 이상한 일이거든요. 지금은 4월이고, 작약은 4월에 꽃을 피우지 않아요. 그런데 제 바로 앞쪽 길가에 세 송이가 더 자라고 있지 뭐예요.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한 송이를 건드려 봐요.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나는데, 알고 보니 조화예요.
잠시 후, 머리카락은 앞으로 쏟아지고 눈 위로 피가 흐르는 낸시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게 저 앞에서 보여요. 그녀가 목에 두른 파란 니겔라 꽃무늬의 하얀색 면 손수건은 제 것이에요. 낸시는 고개를 들고 살려 달라며 제 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어요. 예전에는 낸시의 귀에 달린 조그만 금귀걸이를 부러워했지만, 지금은 낸시가 가져도 좋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모든 게 다를 테니, 이번에는 제가 달려가 도움을 청할 테니, 제가 낸시를 안아 올려 제 치마로 피를 닦아 줄 테니, 제 페티코트를 찢어 붕대를 만들어 주고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요. 키니어 나리가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집 앞길에서 말을 타고 나면 맥더모트가 말을 데리고 갈 테고, 나리가 응접실로 들어오면 제가 커피를 끓일 테고, 낸시가 평소 하던 대로 쟁반에 커피를 들고 가면 나리가 정말 맛있다고 할 테고, 밤이 되면 개똥벌레들이 과수원에 모습을 드러낼 테고, 등불이 비치는 가운데 음악이 흐르겠죠. 제이미 월시. 피리 부는 소년.
저는 낸시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곳에 거의 도착해요. 하지만 대열을 흐트러뜨리거나 달리지 않고 계속 짝을 지어 걸어가죠. 잠시 후 낸시가 입으로만 웃는데 두 눈은 피와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아요. 이윽고 낸시가 여러 색 파편으로 흩어지고 빨간 천으로 만들어진 꽃잎들이 자갈 너머로 날아가요.
그러다 갑자기 어두워지는 바람에 저는 손으로 눈을 가리는데 촛불을 든 남자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막고 서 있어요. 지하실 벽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서 다시는 빠져나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이야기를 하다가 그 부분에 이르렀을 때 조던 박사님께 내가 했던 말이다.
2부
가시밭길
화요일 12시 10분경, 키니어 경을 살해한 제임스 맥더모트가 이 도시의 신축 구치소에서 최고형을 당했다. 이 사악한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을 목격하겠다는 일념으로 처형의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남녀노소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이 끔찍한 광경을 함께하기 위해 진흙탕과 비를 뚫고 각지에서 모여든 여자들이 어떤 분위기를 풍겼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감히 장담하건대 아주 우아하거나 고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엾은 범인은 체포된 이래 늘 그랬던 것처럼 그 무시무시한 순간에도 태연하고 대담했다.
─ 〈토론토 미러〉(1843년 11월 23일)
─ 『처벌 규정집』(킹스턴 교도소, 1843)
2
리치먼드힐에서 일어난
토머스 키니어 씨와 그의 가정부 낸시 몽고메리의 피살 사건
그리고 그레이스 마크스와 제임스 맥더모트의 재판
그리고 1843년 11월 21일 토론토의 신축 구치소에서 거행된
제임스 맥더모트의 교수형.
그레이스 마크스, 그녀는 하녀,
나이는 열여섯 살,
맥더모트는 마구간지기,
두 사람은 토머스 키니어 씨의 저택에서 일했지.
토머스 키니어는 부잣집 나리,
그는 여유롭게 살았고,
낸시 몽고메리라 불리던,
가정부를 사랑했지.
오, 내 사랑 낸시, 슬퍼하지 말지어다,
내가 이제 시내로 가,
토론토의 은행에서,
너에게 줄 돈을 찾아올 테니.
오, 낸시는 좋은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야,
오, 낸시는 여왕 마마가 아니야,
그런데도 새틴과 비단으로,
가장 잘 차려입고 다니지.
오, 낸시는 좋은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야,
그런데도 나를 노예처럼 대하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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