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국세청 불신의 역사
: 부마항쟁
구영식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국세청이 국민들로부터 불신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안원구
1966년 국세청 개청 이전에는 재무부 내에 현재 국세청의 기능을 하는 사세국司稅局이라는 부서가 있었다. 그때부터 국세청은 수탈행정기관으로 인식되어 왔다. 옛날에는 국세청을 수탈행정기관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조장助長행정기관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재정조달을 위한 세금을 징수하는 기관이다 보니 빼앗는다는 의미의 수탈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지금의 지방자치단체처럼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조장행정기관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내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항상 수입에 비해 많은 세금을 징수해 간다고 느끼기 때문에 국세청에 대한 인식이 나쁠 수밖에 없다. 국세청이 어떤 시스템으로 세금을 매기는지, 세금 징수 외에 국세청이 어떤 일을 하는지 등은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에 국세청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영식
그동안 국세청이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안원구
어느 정권이든 원활한 재정 수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가를 경영할 수 없고, 정권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정상적인 세금 징수와 별개로 정권 유지를 위해서, 또는 집권세력의 사적인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세무조사권을 남용하기 때문에 국세청이 특정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정치적 의미’가 개입되면 ‘표적 세무조사’라는 비판을 받게 되어 있다. 사실 국세청은 세무조사권을 제외하면 정권유지 도구로 이용될 기능은 별로 없다.
구영식
세무조사 과정에 ‘정치적 의미’가 반영된다는 측면에서 국세청을 정권 유지 수단이라고 한다.
안원구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정권 유지와 국가 경영을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할 때 문제가 생긴다. 세금이 없으면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사회기간망 구축과 국민복지 등 국민들의 삶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무조사를 하는 건 국민들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지향점이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강도 높게 세무조사를 했다면 그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세무조사라고 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잣대로 세무조사를 해야 하는데 정치적 탄압이나 재갈을 물리는 용도로 이용된다면 그것은 정권 유지의 도구이다. 군사정권 이후로는 이명박 정권에서 이러한 세무조사가 가장 많았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초기에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확보’ 수치를 부풀려 발표한 것 때문에 오히려 무리한 세무조사가 이루어진 경우다.
구영식
정권 유지가 국가 경영과 같다고 하는데, 국세청은 정권 유지와 국가 경영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
안원구
굳이 구분하자면 국세청 리더들(고위 간부들)은 정권에 더 비중을 둔다고 할 수 있고, 그 밑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국세청 직원은 정권과 무관하게 국가 경영을 위해 일한다. 국가 차원이 아니라 정권 차원에서 일하는 건 자신의 입신양명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대다수 국세청 직원은 정권 유지와 무관하다.
구영식
정권은 ‘왜’ 국세청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나?
안원구
쉽게 말하면 국세청은 ‘잘 드는 칼’, ‘날이 선 칼’과 같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 또는 부자들은 사회지도층으로서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들이다. 정권을 잡은 이들은 이러한 역학관계를 이용하려 한다. 가진 것이 많은 사회지도층들은 인신구속보다 재산보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정권 차원에서 국세청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경제경찰이라고 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주로 재벌 등의 대기업들에게 해당되는 기관이고, 국세청은 가진 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국세청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기관이다 보니 국세청을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어서 다양하게 이용하려고 한다. 정권에 따라 국세청장 등 고위직 인사를 수단으로 국세청을 장악하기도 했다.
구영식
정권 등은 ‘어떤 방식’으로 국세청을 활용하나?
안원구
정권이 국세청을 이용한 사례들은 많지만 몇 가지만 예로 들겠다. 김대중 정부처럼 정권의 국가 정책에 대해 틈만 나면 태클을 거는 보수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언론사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벌이기도 하고 세무조사라는 수단을 통해서 유보금을 투자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또 이명박 정부 초기의 대표적인 국세청 악용사례인 태광실업 세무조사처럼 정적 제거 수단으로 국세청의 세무조사권이 악용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비선 측근의 사익을 채워주기 위해 세무조사권으로 중소기업을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정권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통해 언론이나 재벌을 길들이기도 하고,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기업이나 재력가들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실시해 정치인들을 압박하기도 한다. 기업을 통제하거나 정치인들을 길들이기 위해 표적 세무조사를 하는 경우는 늘 있어왔다.
구영식
투명한 금융거래, 공정한 세무, 공정거래 등이 기업의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을 정권 쪽에서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원구
국세청만 활용한다기보다는 국세청은 그런 기능을 하는 여러 기관 중 하나다.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도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부처이기 때문에 정권 유지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 등 공정거래위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도 꽤 많다.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의 감독, 자본시장 감독, 회계감독 등을 통해서 정권 유지에 이용할 수 있다. 그에 비해 국세청이 가진 수단은 세무조사 정도다. 그러나 세무조사권은 모든 납세자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다 보니 매우 효율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구영식
기업이나 일반인들이 가장 두려워할 기관이 어디인가?
안원구
대기업이나 재벌 등에는 공정거래위가 가장 두려운 기관일 것이다. 금산분리,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이 공정거래위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소기업들은 금감원 쪽이 상당히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은 금융권의 자금지원이나 융통이 대기업에 비해 어렵기 때문에 돈줄이 막히면 회사의 존폐가 갈린다. 한편, 일감 몰아주기, 내부거래, 금융기관, 금감원의 회계감독 등은 국세청의 업무와 연관되므로 국세청의 영향력은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가 갖고 있는 기능에도 걸쳐 있다. 더구나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모두 납세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국세청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구영식
세금정책은 어느 기관에서 관장하나?
안원구
기획재정부 산하에 세제실이 있다. 그곳에서 세법을 만들고, 세율을 조정하고, 세제, 세금 등과 관련된 제도와 정책을 법제화한다. 국세청은 그렇게 만들어진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국세청은 그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경중과 우선순위 등을 판단해 운용함으로써 국가 정책목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구영식
세금정책과 정권 유지 간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안원구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부가가치세다. 1979년에 일어난 부마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1977년 세수증대가 한계에 달하자 박정희 정권에서는 조세저항이 적고 비교적 세수확보가 용이한 제도로써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 그러자 불만이 팽배한 국민들이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함께 서부산세무서에 불을 지르면서 부마항쟁이 촉발되었다. 역사적으로도 세금정책으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이 계속 쌓이면 이것은 정권을 무너뜨리는 파괴력으로 작용한다.
구영식
부가가치세가 부마항쟁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얘기인가?
안원구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도 세금을 부당하게 많이 물리거나 잘못된 조세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되면 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세계 3대 혁명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대혁명, 영국 청교도 혁명, 미국 독립전쟁의 공통점이 모두 과도한 세금에서 비롯된 혁명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부마항쟁은 겉으로는 유신정권에 의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박탈사건에서 촉발된 유신반대 시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 배경에는 부가가치세 시행이 있었다. 부가가치세를 시행하자 세금정책에 국민들의 불만이 쌓였고 유신반대 시위를 계기로 그 불만들이 터져 나온 것이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유신체제로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한 후 세수증대가 한계에 봉착하자 세제선진화라는 명분으로 영업세, 물품세, 직물류세織物類稅, 전기세, 가스세, 석유류세, 통행세, 전화세(이상 국세)와 유흥음식세(지방세) 등 9개 세목을 하나로 묶어서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신정권은 부가가치세 시행을 밀어붙였다. 가뜩이나 공공요금 인상으로 물가가 두 자릿수로 뛰었는데 상인들이 10% 세율만킄 가격을 올리는 통에 물가가 전반적으로 크게 올랐고, 부동산은 더욱 요동쳤다. 결국 국민들의 경제와 세금정책에 대한 불만이 때마침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조응하면서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구영식
실제로 1979년 부마항쟁 때 시민과 학생들이 거리에서 유신 철폐와 함께 외친 주요 구호 중 하나가 ‘부가세 폐지’였다. 부마항쟁의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안원구
위정자들은 일반 시민들과 상인들이 합세한 시위대가 서부산세무서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부마항쟁의 서막이 열리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의 촛불집회도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이어져온 불경기로 인한 국민들의 절망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결국 대통령을 탄핵했고,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킨 것이라고 진단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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