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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후 두 시가 되면 우리는 한 명도 빠짐없이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 경기를 해야 한다. 정해진 포지션이 없음에도 나는 매번 골키퍼를 맡는데, 이유는 단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게 싫어서다. 다행히 나 말고는 아무도 골키퍼를 하고 싶지 않아 해 쓸데없는 다툼을 벌일 필요도 없다.
날은 점점 더워진다. 운동장 맨 끝, 골대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수십 개의 근육 진 다리들이 일으키는 먼지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때때로 내가 하늘을 나는 새 같은 것이 되어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모래바람이 이는 운동장은 사막처럼 비현실적이고, 내가 속한 팀은 늘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다. 수비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열 명 모두가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 공격에만 가담한다. 시작할 때는 제법 수비수 역할을 할 것처럼 내 시야를 가리고 섰던 녀석들도 슬슬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아주 그리운 눈빛을 하고서 맞은편에서 이는 모래 바람 속으로 뛰어들어 버리는 것이다. 마치 그 모래바람만 넘으면 자신들이 밖에 두고 온 것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처럼. 그때가 되면 나는 중앙선 너머 이쪽 편에 남겨진 유일한 저쪽 선수이다.
운이 좋아서인지 내가 속한 팀 전력은 항상 강하다. 공이 오지 않아서 경기 내내 멀뚱히 서 있어야 하는 건 진짜 골키퍼에게는 좋은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같은 가짜 골키퍼는 경기의 대부분을 ‘한마음 청소년 센터’라고 쓰인 단체 유니폼과 전혀 무관한 사람인 것처럼 골대 양쪽 기둥만 왔다 갔다 하며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선부터 상대편 골대 근처까지는 작전을 가장한 갖가지 욕이 터져 나온다. 하품 소리도 크게 못 내게 하는 시설에서 욕 같은 게 허용될 리 없다. 그래서 다들 마음껏 욕하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축구 시간을 이용해 공차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들을 주고받는 것이다. 당연히 몸싸움도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그러나 심판을 맡은 오 선생님은 패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가급적 경기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자기의 교육방침으로 내세운 것 같다.
축구 시간은 정말 대단하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다들 하기 싫다고 투덜거리다가도 막상 공을 보면 떼돈을 발견한 사람들처럼 달려든다. 태양은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을 천천히 넘기고 있다. 모래바람은 태양빛을 받아 신기루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만 빼고 모두들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전에 이 운동장은 들풀로 무성한 벌판이었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허리까지 올라오는 풀들이 암호를 담은 신호처럼 흔들리던 시절, 그다지 강압적이지도 않은 이 시설에서 굳이 탈출을 감행한 원생들이 몇 명 있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실종이나 증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이곳은 감호 시설이기 때문에 탈출이라는 명명은 별다른 태클도 받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경비가 지키는 정문을 제외하곤 나갈 데가 따로 없는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오랜 시간 토론을 벌이다가, 문득 창밖에서 불길한 손짓을 보내는 들풀을 보았다. 감춰진 내면이 없게끔 모든 것이 겉면으로만 이루어진 이 시설에서, 불확실하고 애매하고 의심스러운 곳은 그 들풀이 점령한 벌판이 유일했다. 선생님들은 총동원령을 내려 모든 원생들을 벌판으로 집합시켰고, 백여 명이 풀을 뽑아내고 다닌 결과 빽빽하게 들어찬 들풀 사이에서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구멍 한 개를 찾아냈다.
그다음 이야기는 상상하는 그대로다. 선생님들은 당장 굴 속으로 들어가 반대편 구멍으로 나왔고, 탈출한 원생들은 시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금방 체포되었다. 막상 나왔지만 먹을 것도 할 일도 잘 곳도 없자 이쯤 하고 그냥 돌아가는 게 어떠냐는 말들이 나오던 때였다고 한다. 구멍은 이미 모두 흙으로 메워졌기 때문에 원생들은 선생님들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정문을 통해 돌아와야 했다.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다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선생님들이 원생들을 동원하여 풀을 뽑고 돌을 골라내고, 움푹 파인 땅을 다진 결과, 쓸모없던 땅이 지금의 운동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그 땅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지금도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 앞에 돌멩이 열 개씩 골라 버리라고 시키는 것을 보면, 빠져나갈 구멍 같은 건 어디에도 없으니 애초에 마음을 접으라는 시설 방침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 동이나 되는 건물 역시 원생들이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지은 거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건 어느 모로 보나 멍청한 누군가가 운동장의 전설을 베껴 만들어 낸 얄팍한 거짓말이다. 죄수에게 자기가 갇힐 감옥을 손수 지으라고 할 만큼 창의적이지도 무지막지하지도 정직하지도 않다, 이곳은. 이곳은 운동과 상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잠깐의 유예 장소일 뿐이다.
운동장은 셀 수도 없이 많은 검은 폐타이어로 둘러싸여 있다. 몸이 뜯기도록 달린 보상으로 이제는 흙벽에 처박혀 영원히 달리지 않아도 되는 타이어들. 모두 다 죽은 것들이지만 바람에 섞여 불어오는 고무 냄새에는 수백 개의 타이어가 달리면서 내는 바퀴 소리가 희미하게 살아 있다. 타이어가 달리기 시작하면 온통 흙뿐인 이곳은 시커먼 콘크리트 국도가 되기도 하고, 미끄러운 빗길이 되기도 하고, 산속 위험한 자갈길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바퀴는 도통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쓸데없이 제자리에서 돌고만 있다. 하지만 의미 없는 회전을 하고 있는 것이 어디 이 타이어들뿐인가.
바퀴 소리가 들리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근육 진 다리가 골대에 거의 다다라서야 눈앞에 몰아닥친 모래바람에 눈을 질끈 감으며 어정쩡한 자세로 공 막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공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편에서 한꺼번에 몰려온 녀석들이 목에 칼 긋는 시늉을 하며 그깟 똥볼 하나 못 막느냐고 내게 소리를 질러 댄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저 애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문제는 공이 아니란걸.
나 혼자 막기에는 구멍이 너무 컸다.
두 시간의 축구 경기가 끝나고 나면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녹초가 된다. 경기 내내 괴롭힘을 당한 상대편 골키퍼는 혼이 나간 표정이다. 다리 근육이 떨려 똑바로 걷지 못하는 녀석도 있다. 나는 경기 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컨디션이지만 괜히 쓸데없는 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에 어깨를 번갈아 두드리는 것으로 나 역시 많이 지쳤다는 시늉을 한다. 20분으로 정해진 짧은 샤워 시간 동안 힘이 풀린 손에서 미끄러져 나온 작은 비누들이 어지럽게 바닥을 굴러다닌다.
오후 다섯 시 정도가 되면 시설 복도에는 수채화 화가들이 좋아할 만한 풍경이 펼쳐진다. 미처 머리 물기를 다 말리지 못한 원생들이 갑작스런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머리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고, 창 너머 하늘에는 오렌지색 노을이 번진다. 이 두 장면을 함께 보고 있으면 단체로 약을 투여받은 환자들이 어떻게 오후를 보내는지 설명하는 병원 팸플릿을 읽는 것 같다. 선생님들은 원생들이 힘 빠진 원숭이가 되어 작은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순간에야말로 원생들을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원생들은 선생님들에게 그런 만족감을 주고 싶지 않을 테지만, 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녹초가 된 모습을 보여 선생님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만든다.
축구 경기를 하고 나면 저녁을 먹기 전에 특별 간식이 나온다. 작은 초콜릿 조각이 겉에 다닥다닥 붙은 손바닥만한 쿠키에 흰 우유가 나오는데, 우유는 시중에서 파는 보통의 것이지만 쿠키는 상표명이나 제조 일자가 없는 정체불명의 투명한 비닐봉지에 들어 있다. 소문 만들기를 좋아하는 원생들은 그것을 ‘마약 쿠키’라고 부른다. 중독될 정도로 맛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진짜로 쿠키 속에 신경안정제류의 마약을 넣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간식을 나눠 주는 선생님이 그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지, 어느 날 이 쿠키는 수녀회 수녀님들이 특별히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애기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해명에도 한번 퍼진 소문은 쉽게 사그라질 줄 몰랐다. 오히려 머리카락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여자들이 단체로 모여 있는 수녀회와 신경안정제라는 괴상한 조합이 쿠키에 대한 소문을 풍선처럼 더 부풀릴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한 원생이 쿠키를 먹고 나면 잠시 동안 머리가 띵하다는 증언을 한다. 그러면 옆에 앉은 다른 원생 역시 며칠 전에 그런 경험을 했다면서 자기는 머리만 아팠던 게 아니라 몇 분 동안 손발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떠들어댄다. 그쯤 되면 모두들 시시한 증상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말도 안 되는 증언에 힘을 실어 주느라 바쁘다. 이런 정신병자 같은 소리를 되는 대로 지껄이는 이유는 첫째, 이런 음모마저 없다면 이곳이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고 둘째, 밖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반항할 명분을 찾아야 해서이고 셋째, 재활을 가장한 감호 시설과 초콜릿이 잔뜩 박힌 쿠키는 서로 너무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주는 모든 달콤한 것들은 한 번쯤 의심을 해 봐야 한다고, 이곳 원생들은 지금껏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몇몇 원생들은 소문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선생님이 안 보는 틈을 타 쿠키를 발로 으깨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영웅이 된다. 하지만 나는 비닐 바닥에 남은 초콜릿 부스러기까지 입속에 털어 넣는다. 쿠키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단맛이 나는 음식이다. 시설이 우리들에게 신경안정제 같은 걸 먹인다는 소문을 만들 거였으면 맛있는 쿠키가 아니라 두 시간의 축구 경기에 넣었다고 하는 게 훨씬 더 그럴듯했을 것이다. 그건 얼마쯤 사실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아무도 축구 시간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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