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 지금?
─ 응.
소파에서 주춤대다 “그래” 하고 일어났다. 아내가 뭔가 먼저 ‘하자’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베란다로 가 수납장서 벽지를 꺼냈다. 얼마 전 동네 대형마트에서 산 ‘셀프 도배용 벽지’였다. 한 롤에 이만 몇천원. 폭은 내 어깨너비만한데 길이가 10미터를 넘어 손안에 전해지는 무게가 제법 묵직했다. 도배지를 든 채 설명서를 읽다 왠지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곁눈질로 거실 불빛을 봤다. 그러곤 설명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 정말 지금 할 거지?
지난달 어머니가 잠시 집에 다녀갔다. 두 사람 다 경황이 없을 테니 당분간 살림을 맡아주겠다는 명분이었다. 짐을 푼 첫날부터 어머니는 집안 곳곳을 의욕적으로 쓸고 닦았다. 우편물을 정리하고, 먼지 낀 선풍기를 분해해 일일이 날개를 닦고, 시든 고무나무에 물을 줬다. 돼지고기와 메추리 알을 섞어 간장에 조리고, 멸치와 꽈리고추를 볶아 집안에 매운 내를 풍기고, 김을 굽고, 깻잎을 재우고, 냉동실을 정리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무기력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이 드신 양반의 악의 없는 참견과 잔소리도 묵묵 감내하는 듯했다. 아니 감내했다기보다 의식하지 못했다 할까. 안 했다 할까. 적당한 말을 몰라, 그냥, 그냥 그게 말이니 싶어 저쪽에서 열심히 구사하는 몸짓을 아내는 수신하지 못했다. 그러기엔 좀 아팠다.
어머니가 우리집에 오고 열흘쯤 지나서였다. 한밤중 부엌에서 “펑!” 소리가 나 뛰어가 보니 어머니가 검붉은 액체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우연히 테러범 옆에 있다 살점과 핏물을 세례 받은 양 얼빠진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한 손에는 원통형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얼마 전 집 앞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복분자액이었다. 도로 돌려보낼 생각에 손도 안 대고 방치해둔 걸, 갑자기 뚜껑을 연 바람에 내용물이 폭발하듯 솟구친 모양이었다. 검붉은 액체는 어머니의 흰 내의뿐 아니라 식탁과 장판, 밥통과 전기 주전자 위로 어지럽게 튀었다. 특히 식탁과 마주한 벽 상태가 심각했는데, 산뜻한 올리브색 벽지 가득 검붉은 얼룩이 낭자한 게 마치 누군가 이웃을 모욕하기 위해 일부러 갈겨놓은 낙서 같았다.
─ 아이고, 이거 다 아까워서 어쩐다니.
어머니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 아니, 나는 그냥 목이 말라서…… 니들이 통 안 먹길래……
나는 서둘러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 괜찮아, 엄마? 어디 안 다쳤어?
어머니는 “내가 늙어서 주책이다” “이 사람들도 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걸 팔아야지, 이러면 어쩐다니” “병에 가스가 찼나보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곤 곧장 욕실로 가지 않고 키친타월을 둘둘 풀어 바닥부터 닦았다. 평소 같으면 걸레를 빨아 쓰면 되지 뭐하러 종이를 낭비하느냐 나무랐을 터였다.
─ 놔둬, 엄마, 내가 할게.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며 슬쩍 아내를 봤다. ‘그렇지, 여보? 우리가 하면 되지?’ 넌지시 동의를 구한 거였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 옆에서 꼼짝 않던 아내가 몹시 나직하고 상스러운 투로 뜻밖의 말을 했다.
─ 아이 씨……
어머니가 바닥을 훔치다 말고 고개 들어 아내를 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벽면에선 여전히 검붉고 끈끈한 액체가 세로로 긴 자국을 남기며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어색해진 분위기 따위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 이게 뭐야.
─ 미진아.
그만하라는 뜻으로 지그시 아내의 팔뚝을 잡았다. 그러자 아내는 화를 내는 건지 이해를 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서글픈 비명을 질렀다.
─ 다 엉망이 돼버렸잖아.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건 작년 봄이다. 분양면적 이십사 평, 실면적 십칠 평에 지은 지 이십 년 된 아파트였다. 요즘 같은 때 빚내서 집 사는 건 다들 미친 짓이라 했지만 경매로 싸게 나온 물건이어서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많은 경우 매매가와 전세 보증금 차가 크지 않았고, 조건 맞는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웠을뿐더러 이사라면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이 집을 사기로 했다.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였다. 몇십 년간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를 떠올리면 마음이 자주 무거워졌다. 그래도 남의 주머니가 아닌 내 공간에 붓는 돈이라 생각하면 억울함이 덜했다. 누군가 그 아파트 역시 당신 집이 아닌 커다란 남의 주머니일 따름이라 일러준다 해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앞으로 영우가 어린이집을 옮겨다니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했다. 자긴 그게 제일 좋다고. 근처에 편의시설이 많은데다 서울보다 공기가 맑은 것도 마음에 든다 했다.
─ 영우도 여기 좋아.
혼자 블록 놀이를 하거나 그림책을 보다 곧잘 어른들 대화에 끼어들던 영우가 그날도 말참견을 했다.
─ 왜? 영우는 여기가 왜 좋은데?
그즈음 한창 놀랍고 엉뚱한 말을 쏟아내던 영우에게 아내가 기대 어린 투로 물었다. 부모로서 뭔가 해줬다 싶은지 답도 듣기 전에 뿌듯한 표정이었다. 영우는 여느 때처럼 입에 맑은 침을 문 채 선홍색 혀를 놀려 천진하게 대꾸했다.
─ 응. 부릉부릉이 엄청 많아. 엄청 멋있어.
베란다 밖 8차선 도로에 길게 늘어선 출퇴근 차량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했다. 명의만 내 것일 뿐 여전히 내 집이 아닌데도 그랬다. 이십여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를 내린 기분. 씨앗에서 갓 돋은 뿌리 한 올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안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퇴근 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이상한 자부와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딘가 어렵게 도착한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한숨처럼 피로인 양 몰려왔다. 그 피로 속에는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는 피로, 피곤이 뭔지 아는 피곤도 겹쳐 있었다. 그래도 나쁜 생각은 되도록 안 하려 했다. 세상 모든 가장이 겪는 불안 중 그나마 나은 불안을 택한 거라 믿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건 얼마간 사실었다. 적어도 내겐 뭔가 선택할 자유라도 있었으니까. 아파트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집에 와 티브이를 켰는데,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신문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발 디딜 면이 점점 줄어드는 공간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이 오래 버텨야 하는 게임이었다. 참가자들은 서로의 몸에 엉긴 채 용을 쓰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몇몇은 결국 상대의 무게를 못 이겨 신문지 밖으로 넘어지며 탈락했다. 그땐 그냥 티브이 앞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낄낄댔는데, 요즘은 내가 그 게임 참가자가 된 기분이었다. ‘반의반’ 또 ‘반의반의반’ 크기로 접힌 종이 위에 외발로 선 채 가족을 안고 부들부들 떠는. 그렇지만 결국 살았다고 카메라를 보며 웃는. 대학 동기들은 내게 벌써 집 장만을 했냐며 부러움 섞인 축하를 건넸다. 그때마다 나는 “그래봤자 하우스 푸어”라고 겸연쩍게 변명했다. 한 녀석은 “나는 그냥 푸어인데 그래도 너는 하우스 푸어니 얼마나 좋냐”고 받아쳤다. 입주 후 양가 부모님과 친구들, 직장 동료를 초대해 몇 차례 집들이를 했다. 가까운 이들과 떠들썩하게 음식을 나누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럴 땐 우리가 채무자란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파트 매매 계약서와 은행 대출 서류에 쓴 내 이름이 가명처럼 여겨졌다. 새벽에 요의를 느껴 화장실에 갈 때면 욕실 문 앞에서 불 꺼진 거실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러곤 있어야 할 것은 모두 제자리에 있는지, 지켜야 할 것은 또 그대로 있는지 확인한 뒤 자리를 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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