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사진을 찍은 다음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하지만 네가 알고 싶은 건 다 말해 줄 수 있어. 왼쪽에 있는 남자아이는 쇼키야. 오른쪽에 있는 남자아이는 주머니에 비스킷을 넣은 채 학교에 오던 덩컨이야. 도저히 이해가 안 가기는 하지만, 지금은 결혼까지 했어. 왼쪽에 있는 여자애는 미미 툴란이고 오른쪽에 있는 여자애는 나야.
이 사진을 찍었을 때 나는 미미가 수업이 끝난 뒤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할지 궁금해하던 참이었어. 미미네 엄마는 우리가 화장품을 가지고 놀게 해 주시거든. 내가 아무리 어른스럽고 조심스러워도 우리 엄마는 절대 그러지 않는데.
‘아, 세상에!’ 하는 생각도 했지. 쇼키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거든! 딱 한 번, 크리스마스 바로 전에 교실 활동을 할 때, 나는 갖은 수를 다 써서 쇼키가 내 짝이 되게끔 만들었어. 마지막에 잠깐이나마 몸이 서로 닿으면서 끝나는 거였어. 일종의 신뢰 게임 같은 거라고나 할까. 결국 쇼키를 신뢰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뿐이지만. 이 사진을 찍을 무렵 쇼키는 나란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지 무려 2백 하고도 37일째였어.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지.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이토록 분명하게 기억하냐고? 6학년 첫 두 학기 동안 나는 생각이라고는 딱 두 가지밖에 하지 않았으니까.
1. 미미, 나중에 너희 집에 들러도 돼?2. 쇼키, 제발 나 좀 알아봐 줘.
그러니까 이 사진은 6학년 여름 학기에 찍었어. 모두들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기에 대해서는 뭐든지 다 기억하지? 운동회. 졸업여행. 졸업 사진. 어떤 학교에 갈지 끝도 없이 얘기하고 혹시 다른 학교에 진학하더라도 계속 친구로 남자고 약속하지. 마지막 날 오후에는 다들 다른 애의 셔츠에 자기 이름을 적어. 그러는 동안 내내, 너희도 날마다 문이 조금씩 열리고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었을 거야. 그리고 마침내 그 문을 지나서 밖으로 나가는 날, 그 문이 등 뒤에서 영원히 닫히지만 시끄럽게 웃고 떠드느라 그 소리조차 듣지 못하지.
이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도 말해 줄 수 있어. 여름 학기 두 번째 주였어. 아침 쉬는 시간에 미미가 철책 사이로 학교 운동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두 아이를 발견했어. 하나는 크고 다른 하나는 작았는데, 큰 애는 작은 애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지. 둘 다 똑같은 외투를 입고 작은 애는 털모자까지 썼더라. 그야말로 미친 외투였어. 목욕 가운처럼 기다란데 속에는 북슬북슬한 털까지 달려 있었거든. 하지만 어떤 외투를 입었더라도 그날은 미친 것처럼 보였을 거야. 햇볕이 쨍쨍했거든. 주차장의 아스팔트가 스멀스멀 녹고 있었지. 다른 애들은 다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어.
미미가 다가가서 물었어.
“너희, 뭘 보는 거야?”
그러자 큰 애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쉿’ 소리를 내더니 말했어.
“선생님께 주목해야지.”
그 애가 스펜드러브 선생님을 가리키는 바로 그 순간, 선생님이 이제 그만 교실에 들어가자고 호루라기를 불렀어.
그 애는 마치 선생님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지.
애들이 모두 줄지어 설 때 그 두 아이가 내 바로 뒤로 왔어. 가까이서 보니까 작은 애는 모자를 눈 바로 위까지 푹 눌러쓰고 있었어. 어찌나 불편해 보이는지 내가 다시 잘 씌워주고 싶더라니까. 하지만 큰 애가 손가락으로 내 턱을 밀어 내 고개를 휙 돌리면서 말했어.
“내 동생 보지 마.”
정말이지 한 대 때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만 같았지. 하지만 내가 미처 어떻게 하기도 전에 선생님이 우리를 교실로 들여보냈어. 두 남자애는 곧장 뒤로 가더니 글쎄, 작은 애가 내 자리에 턱 앉아 버리는 거야. 나는 그 애가 눈치를 채게끔 그 앞에 선 채 똑바로 내려다봤어. 하지만 천만에.
스펜드러브 선생님이 말했어.
“여러분, 새로운 친구에게 인사하세요. 다들 사이좋게 지내요. 이 애 이름은 칭기즈예요.”
모두들 안녕이라고 인사했어. 나만 빼고.
나는 선생님한테 물었지.
“선생님, 얘는요? 얘 이름은 뭐예요?”
그때까지 선생님은 작은 애가 거기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어.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말했어.
“아, 칭기즈, 네 동생은 우리 반에 있는 게 아니야. 복도를 죽 따라가면 호일 선생님 교실이 있는데, 거기 가야 해.”
칭기즈가 대꾸했어.
“아뇨, 내 동생은 우리 반에 있어요. 보세요, 여기 내 옆에 있잖아요.”
스펜드러브 선생님만 빼고 다들 깔깔 웃었어.
“미안하다. 네 동생은 호일 선생님 반 학생이란 뜻이야.”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우리한테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어. 우리가 그 애를 보고 웃는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해서 당황한 거야. 하지만 나는 그 애 바로 옆에 있었잖아. 단순히 실수를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눈에 빤히 보였어. 그 애는 그냥 한번 찔러본 거야.
“줄리, 칭기즈 동생을 호일 선생님 반에 데려다주겠니?”
나도 그러고 싶었어. 무엇보다 내 자리를 되찾고 싶었거든.
하지만 내가 작은 애에게 다가가자 큰 애가 내 얼굴 바로 앞에 손을 올리더니 말했어.
“아니야!”
스펜드러브 선생님이 물었어.
“뭐라고?”
“얘는 나랑 같이 있어야 해요. 내가 보살펴야 하거든요. 난 내 동생을 지켜야 해요. 나는 얘랑 같이 있어야 해요.”
“아니, 그러면 안 돼, 칭기즈. 일단 호일 선생님 반에 가면 선생님이 네 동생을 지켜 주실 거야. 또 네 동생은 굳이 지킬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그 애는 선생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 그냥 가방에서 색연필이랑 종이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스펜드러브 선생님은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서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찾았어. 그러다가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작은 애한테 직접 말을 걸었어.
“너는 다른 교실에 가야 해. 쿠브…….”
그리고 그 믿을 수 없는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해 보려고 했지. 하지만 선생님이 세 번째 음절에도 다다르기 전에 칭기즈가 쳐다보더니 다시 “아니요.”라고 말했어.
그냥 “아니요.”라고.
선생님한테 아니라고 말대꾸한 게 벌써 두 번째야. 처음 한 번은 실수일 수도 있어. 하지만 연거푸 그렇게 나온다면 이제 게임이 시작되는 거야. 분명해. 우리는 힘겨루기 게임을 지켜보게 되었지.
선생님이 먼저 공격에 나섰어. 선생님은 다시 한 번 물었어.
“뭐라고?”
그 애가 대답했어.
“네르구이라고 부르세요. 그게 더 쉬우니까요.”
아니, 선생님한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다니, 게다가 선생님이 동생의 원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거라고 딱 일러 주면서. 분명 건방지기 짝이 없는 일이었어.
선생님이 맞받아쳤어.
“글쎄, 여긴 그렇게 적혀 있지 않은데.”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 긴 이름을 다시 발음하려고 했어.
칭기즈가 벌떡 일어섰어.
선생님이 그 애의 눈을 바라보았지.
칭기즈가 말했어.
“부탁이에요.”
부탁이라는 말은 괜찮았어. 그 말은 일종의 양보야. 분명 선생님은 칭기즈의 그 말로 점수를 한 점 얻은 셈이지.
선생님이 느릿느릿 노트북 컴퓨터를 닫더니 말했어.
“좋아. 오늘만 우리 교실에 있는 거야, 네르구이.”
“고맙습니다.”
칭기즈는 이렇게 인사하고 제자리에 앉았어. 언뜻 보기엔 선생님이 이긴 것 같았지. 결국 모든 일이 그 애 마음대로 됐다는 것만 빼면. 그 애 동생은 비공식적인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애 옆에 앉아 있잖아. 선생님도 아마 그걸 알아차렸나 봐. 그래서 좀 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선생님이 말했어.
“자, 네르구이, 네가 모자를 벗으면 이제 수업을 시작할 수 있어.”
네르구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어. 칭기즈도 그랬어. 둘 다 ‘대체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어.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면서.
선생님이 다시 한 번 말했지.
“네르구이, 모자를 벗어야 할 것 같구나.”
칭기즈가 대신 대답했어.
“아니요.”
모두 스펜드러브 선생님을 봤어.
“교실에서 모자를 쓰고 있을 순 없어, 칭기즈.”
이제 다들 눈길을 칭기즈에게 돌렸지.
마치 팽팽한 테니스 경기를 보는 것 같았어.
“내 동생 모자를 벗기면 위험해져요.”
“모자를 벗기는데 네 동생이 위험해지긴 왜 위험해져? 네 동생 머리는 목에 딱 붙어 있지 않기라도 하니?”
선생님 말에 다들 깔깔대고 웃었어. 그런 농담을 하다니, 선생님이 근사해 보였지.
“얘가 아니라 선생님이 위험해져요.”
스펜드러브 선생님이 눈살을 찌푸렸어. 아니, 얘가 지금 선생님을 협박하는 거야?
칭기즈가 말을 이었어.
“모자를 벗기면, 얘가 정신이 나가서 죄다 죽일지도 몰라요.”
얘는 분명 선생님을 협박하는 거야. 우리 모두를 협박하는 거야. 자기 동생을 가지고.
“칭기즈…….”
“매를 길들일 때 어떻게 하세요?”
“모르겠구나.”
선생님은 우리를 둘러봤어. 하지만 그런 걸 누가 알겠어? 또 그런 걸 왜 알아야 하겠어?
칭기즈가 말했어.
“당연히 매의 눈을 씌우개로 가려요. 매가 날아올라서 뭔가 죽이길 원하면 그때 씌우개를 벗긴다고요. 내 동생은 매예요. 씌우개를 덮어 두면 얌전히 있어요. 하지만 씌우개를 벗기면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몰라요.”
6학년. 우리는 6년이나 학교에 다녔어.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내가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은 다 배웠다고 생각했어. 나는 정육면체의 부피를 구할 줄 알아. ‘해바라기’를 누가 그렸는지도 알지. 세인트루시아의 역사를 너한테 이야기해줄 수도 있어. 튜더 왕조도 알고 대칭선이 뭔지도 알고 하루에 과일 5단위를 먹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아. 하지만 그동안 매 길들이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어. 그런 주제를 언급하는 것도 들어 본 적이 없었어. 사람한테 매를 길들이는 기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
바로 그 순간, 나의 무식함이 마치 한 쌍의 날개처럼 등 뒤로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어. 내가 알지 못하던 것들이 하나하나 다 그 날개를 이루는 깃털이었지. 그 깃털이 하늘에 끌어 올려져서 끊임없이 퍼덕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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