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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왜 ‘가디언’이 못 되나
우울한 유럽 ‘신문 기행’
세계 각국 신문 수집이 취미여서 지난 여름 영국, 프랑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도 현지신문들을 꽤 사 모으고 언론사도 방문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 지형, 나아가 아직도 열망과 실망, 시민혁명과 보수반동이 반복되는 민주주의 상황과 대비돼 여행 기분을 잡치기도 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진보언론이 어떻게 주류 매체가 돼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을까? 한국의 진보신문은 어쩌다 무기력증에 빠져 ‘헬조선’의 방관자가 됐을까?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지만 운동장을 기울게 만든 한쪽 당사자가 바로 진보신문 종사자들 아닌가? 우울한 의문은 여행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스페인 〈엘파이스〉는 모두가 진보 또는 중도좌파 신문이면서 자국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신문들이다. 반면 한국의 진보언론은 신뢰도는 대체로 높지만 영향력에서는 한참 순위가 밀린다. 신뢰도는 언론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다. 그러나 신뢰도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당위적 지표인 데 반해 영향력은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뜻할 뿐 아니라 광고유치에 힘이 되는 언론사의 생존 조건이기도 하다.
영국 언론을 소개하는 우리나라 책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더타임스〉는 영국을 지배하는 이들이 읽고, 〈가디언〉은 영국을 지배하고자 하는 이들이 읽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을 소유하는 이들이 읽고,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영국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읽는다.” 틀린 말이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지금 영국을 지배하는 이들이 주로 읽는 신문은 〈가디언〉이다.
마침 영국에 도착한 6월 23일 브렉시트 관련 국민투표가 있었는데, 장기간 논란 과정에서 〈더타임스〉와 〈더선〉 등 루퍼트 머독 신문들은 선정적 보도로 더욱 평가절하된 반면 〈가디언〉은 브렉시트의 원인과 영향을 제대로 분석한 기사와 논평으로 판매부수가 한때 7만 부나 늘었고 인터넷판 접속 건수도 최고기록을 세웠다.
프랑스 〈르몽드〉는 우파 드골 장군의 요청으로 창간된 이래 사회당 미테랑 정권 탄생에 기여하는 등 좌우를 아우르며 영향력 1위 자리를 지켜왔다. 〈르몽드〉는 콜롱바니 회장이 말한 ‘두 개의 적’과 아직까지는 꿋꿋이 싸우고 있다. 그가 말한 언론의 두 주적은 ‘돈’과 ‘시간’이다. ‘돈’은 재정적 독립 없이는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점에서 언론의 적이고, ‘시간’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속보성이 강요되면서 권위 있는 논평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적이다.
스페인 〈엘파이스〉는 프랑코 총통 사후 창간돼 1981년 군부 쿠데타에 맞서면서 스페인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됐다. 쿠데타의 밤이 지나자 대담무쌍하게 특별판을 제작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위에 나설 것을 시민들에게 촉구했다. 이 신문은 분리주의를 지지하지 않지만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카탈로니아 지방의 언어로도 인터넷판을 발간하는 등 비주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스페인 어디서나 가판대에 가장 많이 쌓여 있는 주류 신문이어서 부러웠다.
발행부수의 미신에 빠진 한국 신문
이들 신문도 종이신문 발행부수는 계속 줄고 있지만 영어권·불어권·스페인어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놀라운 사실은 세계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이들 신문의 발행부수가 〈한겨레〉나 〈경향신문〉과 비슷한 20만 부 안팎이라는 점이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의 다른 권위지들도 종이신문은 50만 부 안팎이다. 부수를 늘리기 위해 모든 독자에 영합하는 게 아니라 목표 독자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질적 수준을 유지한다.
신문은 이제 광고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는데도 이들 신문에 대기업 광고와 단체들의 의견광고 등이 많이 실리는 것은 여론을 형성하는 의제설정 기능, 곧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공영방송처럼 의제설정에 강한 방송도 있지만 대부분 나라에서는 신문이 어젠다를 던지면 방송이 그것을 확산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종편채널들이 저마다 ‘신문이야기 돌직구 쇼’ 같은 프로그램을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위지보다 의제설정 기능이 약한 황색지에는 광고다운 광고가 많이 붙지 않는다. 발행부수 1백만 부를 넘는 〈더선〉이나 〈USA투데이〉 같은 신문에 오히려 허접한 광고가 많이 실리는 이유는 이들이 대개 의제설정보다는 선정적 보도로 독자를 유혹하는 황색지인 탓이다.
사실 한국 신문은 발행부수의 신화, 아니 미신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문의 질은 둘째 치고 부수 많은 신문이 ‘일등신문’을 자처한다. 부수 많은 한국 신문들은 편집과 의제 설정 등에서 독자를 사로잡는 장기도 있지만, 정-경-언 유착과 값비싼 경품제공 등 불공정행위가 부수 확장에 크게 기여한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발행부수가 영향력으로 곧장 평가되는 것은 왜곡된 한국 신문시장의 한 단면이다.
각종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들은 신뢰도에서 아주 낮은 평가를 받은 언론사가 영향력은 가장 큰 모순을 보여준다. 2016년 8월 〈시사인〉 조사에 따르면 ‘가장 불신하는 매체’ 1위는 〈조선일보〉였다. 2016년 8월 〈기자협회보〉가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조선일보〉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 1위(30%)를 차지했다.
두 조사에서 〈한겨레〉는 신문 중에서 신뢰도 1위였지만, 영향력이 〈조선일보〉는 물론이고 KBS, JTBC, SBS와 〈연합뉴스〉에도 뒤진 6위(2.3%)였다. 〈한겨레〉는 기자 대상 조사에서는 9년 연속 신뢰도 1위에 올랐고 이런 사실을 기사나 광고로 선전한다. 그런데도 영향력이 왜 떨어지는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신문 생존의 제1조건은 영향력
물론 매체의 영향력은 신뢰도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 이래 최고의 신뢰도와 보수언론에 맞서는 의제설정자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조사에 따라서는 신뢰도에서도 종종 1위 자리를 다른 매체에 내주는 등 자칫 군웅의 하나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낳고 있다.
미디어미래연구소가 2015년 12월 한국언론학회 회원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뢰성에서 〈한겨레〉는 JTBC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공정성에서는 YTN-JTBC-SBS-KBS-연합뉴스TV 같은 방송은 물론 〈경향신문〉(4위)에도 밀려 7위로 추락했다. 보수성향 언론학자가 많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한겨레〉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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