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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박하고 무無문화적인
한국의 사회문화
더 열악해져만 가는 언어문화를 중심으로
한국의 사회문화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한국인들의 언어문화를 들춰보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인의 언어문화를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여러 종류의 표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사람들의 말이 갈수록 품격이 사라져간다는 것으로 서술을 시작하자.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문향文香 혹은 어향語香이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글은 접어두고 요즘 한국인이 하는 말들은 도무지 품격이 없다. 말이 비루하기 짝이 없고 향기가 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원인은 간단하다. 그들이 영위하는 생활에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정확히 말한다면 좋은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꽤 오랫동안 품위 있고 격이 높은 문화를 접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품위 있는 행동거지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전 국민의 무無교양화 현상이 벌어졌다. 조금 무리하게 표현하면, 한국인들 가운데에는 교양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금전의 소유 여부나 지위의 고하 여부와 아무 관계가 없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이나 돈이 많은 사람, 권력이 많은 사람 등 이른바 이 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오피니언 리더들도 교양이 턱없이 부족하다. 내 눈에는 전부 날탕으로만 보인다.
가장 많이 배웠다는 교수들도 문화맹자들
내가 그래도 제일 잘 아는 사회는 교수 사회인데 이들 역시 전부 날탕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부’라고 하면 교수들이 반발할 수 있으니 한발 양보해서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데 노파심으로 말하지만 교수들만 그런 것이 아니니 교수들은 내 말을 고깝게 듣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논의를 시작하면서 교수 사회에 대해 먼저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속한 사회부터 비판을 해야 다른 사회도 비판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사회는 괜찮은데 교수 사회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니 공연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교수라면 어떻든 이 사회에서 가장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자신들에게 걸맞은 문화가 없다. 많이 배운 그들과 같이 있으면 문화의 향기가 나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취하는 태도나 하는 행동거지가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내가 대학 다니던 1970년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그때는 그래도 한국에 전통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학자들도 달랐다. 교수님 중에서도 속말로 ‘폼 나는’ 분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무엇보다도 그분들의 얼굴에는 교양은 물론이고 오랜 연륜의 정돈된 맛이 있었다. 누가 보아도 덕을 갖춘 지식인의 얼굴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분들은 어디에 있어도 티가 났다. 그에 비해 지금 교수들 모습을 보면 얼굴에 지성이 보이지 않는다. 얼굴들이 다 고만고만하다. 교수들 가운데에서 좋은 얼굴을 찾기가 아주 힘들다.
돈은 잘 못 벌지만 사람 되는 공부를 한다는 인문대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강의실이나 학술대회 같은 데에서나 ‘폼’을 잡지 그들의 일상생활을 보면 시정 사람들과 그다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자기 분야에 조금 해박할 뿐이고 다른 분야로 오면 길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느냐’고 발끈할 교수들이 꽤 있을 게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교수들만 그렇다는 건 아니니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좋겠다. 전 사회가 천박한데 교수 사회만 그렇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도 그 교수 중의 한 사람이라 내 자신 역시 다른 교수들처럼 교양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건 겸손이 아니라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교양이 없는 사람들이 같이 모이면 갈등이 심해진다. 그래서 교수 사회에도 온갖 갈등이 생겨난다. 나는 그 갈등을 줄이고자 가능한 한 다른 교수들과 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
교수라고 다를 것 없다!
노파심으로 말하는데 혹시나 교수들은 일반인들과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연말이 되면 교수들이 사자성어로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어 2015년 연말에 나온 한국사회에 대한 사자성어인 ‘혼용무도昏庸無道, 어리석은 군주가 세상을 어지럽히다’ 같은 것이 그것이다. 나는 이것을 볼 때마다 교수들이 무슨 자격으로 사회를 평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흡사 자기들은 혼탁한 사회와는 다른 존재들처럼, 혼자만 독야청청하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엉망으로 돌아가기는 교수 사회도 마찬가지인데 누가 누구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외려 그 비판의 눈을 교수 사회 안으로 돌려 거기에 있는 문제들을 고쳐보라고 말하고 싶다.
교수 사회에 만연한 문제점들은 사회의 그것과 똑같다. 자기 혹은 자기 집단의 이득을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싸우는 게 그것이다. 그런데 그 싸우는 양상이 유치하다. 작은 것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다 적이 되어 말도 안 하고 사니 말이다. 예를 들어 안식년을 누가 먼저 가는가를 가지고 갈등을 벌이다 결국 서로 삐치는 게 그것이다. 서로 양보를 조금씩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그래서 앞에서 교수들이 일반인과 다를 게 하나 없다고 한 것인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교수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자기 분야에 대해서만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땄지 인성을 닦거나 교육 이론 등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초중고 교사 후보들을 교육시키는 교육대학에서는 인성론이나 교육론을 가르쳐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교육시키는 법을 가르치지만 자기분야만 전공한 교수들은 그런 것들을 배워본 적이 없다. 그저 자기 분야만 파다가 박사가 된 것이다. 그러니 기본 인성이나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수준에 못 미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교수들이 인성에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점은 앞으로도 문제가 될 터인데 이는 범국가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대학(원)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신경을 조금 더 써서 인성 교육 등에 더 힘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대학 사회에서 20여 년을 있으면서 주위에서 교수같지 않은 사람을 하도 많이 보아서 하는 소리이다. 학생들에 대해 이른바 ‘갑질’ 하는 교수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돈(월급)은 학생으로부터 받으면서 그 학생들을 향해 갑질을 하니 어불성설도 이만한 게 없다. 교수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다소 길었는데 사실은 이 주제만 가지고도 단행본을 쓸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게 장황하게 갈 수는 없으니 그에 대한 설명은 예서 접자. 다른 직업에도 똑같은 것이 적용되니 다른 분야로 옮겨가서 한국인들의 무문화적인 모습을 더 살펴보자.
정치인, 외교관 같은 관리들도 문화가 없기는 마찬가지
그 다음 대상은 정치가인데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행동거지에서 도무지 교양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얼굴 생김새도 그렇고 말하는 투도 영 상스럽기 짝이 없다. 요즘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보면 도무지 제대로 생긴 사람이 없다. 이전에 1960년대나 1970년대 있었던 국회의원들을 보면 개중에는 그래도 좋은 얼굴들이 있었다. 성향이 어떻든 얼굴에 연륜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얼굴들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국회의원 자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그것은 아주 막중한 자리라 아무나 거기까지 올라가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인지라 검증된 사람만이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가운데에는 장바닥에 보내도 그곳 사람들이 전혀 눈치 못 챌 그런 사람들이 많다. 장바닥이란 우리가 사는 보통의 장을 말한다. 그 바닥에서는 자기가 살기 바쁘지 남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게 장바닥이다(물론 장바닥에도 나름의 도덕이 있지만). 그런데 국회의원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많은 돈과 수많은 특권을 주는 것이다. 그런 자리에 장바닥 인생이 올라가면 안 된다.
조선조에는 국회의원 같은 직업이 없었지만 이전에는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면 엄청나게 공부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 공부하는 게 우리가 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국영수를 비롯해 과학이나 사회 과목 같은 것을 배우지만 그들은 유교 경전과 그 집주, 그리고 많은 역사서나 문학작품을 원문으로 줄줄 외워야 했다. 그들이 읽는 책은 『논어』나 『맹자』처럼 주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해 다룬 책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언행이 일치는 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정치인이나 관리들은 이런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지금 한국의 교육 체제 안에서 이런 내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과과정에서 인간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교육만 받았으니 아무리 국회의원인들 고위 공무원인들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는 도무지 교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다 날탕이다. 그들 역시 높은 문화를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외교관들도 마찬가지이다. 외교관은 한 나라를 대표하기 때문에 품격 있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고 상식도 깊이가 있어야 하며 여러 면에서 출중해야 한다. 외교관들은 그런 것을 갖춘 특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해당 국가에서 여러 가지 특혜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교관은 주재국의 법을 어겨도 체포나 구금, 재판 등을 당하지 않는다. 외교관 신체에 대한 불가침 정책이다. 이것 외에도 외교관들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심지어 불법주차를 해도 딱지를 뗄 수 없다!). 이렇기 때문에 외교관들은 그에 걸맞은 인품이나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까닭으로 생각되는데 어느 나라든 외교관은 정부 관리 중에 최고 멋쟁이들만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도무지 그런 멋이 없다. 정부의 다른 부서 관리들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다른 나라 외교관에게서 보이는 세련됨이나 교양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외무고시에 합격하고 행정 업무만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고시 공부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성이나 교양 그리고 덕을 닦게 하는 과목이 없으니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사람은 고전 같은 책을 보아야 인간이 되는 것인데 이 정부 관리 되는 시험에는 그런 것이 다 사라졌다. 사법고시든지 행정고시든지 외무고시든지 고시에는 이런 과목이 없다.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을 뽑는 시험에 도무지 인간에 관한 것이 없다. 인간을 위해 살려면 어떤 덕목을 쌓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는 과목이 없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그저 기술적인 지식에 대해서만 배우고 그것에 대해 시험을 볼 뿐이다. 그런 까닭에 판사가 되든 검사가 되든 아니면 행정 공무원이 되든 이들의 인성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다.
그들은 그저 자기 해당분야에서만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을 뿐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판사든 대법원 판사든 그 얼굴들을 보면,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앉을 만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막 이야기하면 이른바 ‘노가다’들과 그리 달리 보이지 않는다. 아니 더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일반인보다 못한 이들은 얼굴이 벌겋고 들떠 있다. 개기름이 흘러 번들번들한다. 정돈된 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교수나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런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실명을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막연한 추측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보고 겪은 바대로 쓰는 것이다.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 중에는 고교 동창처럼 가까운 친구들도 있어 그 속내를 어느 정도는 알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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