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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고 공격할 순 없다
"링 위에 오르는 사람은 두 개 잃고 세 개를 얻으면 남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면한 현안을 뒤로 미루거나 회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제1부속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대통령의 판단이 필요한 문제를 보고하면 가급적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주었다. 시간을 지나치게 오래 끌어 아랫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최대한 많은 자료를 판단의 근거로 삼되,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언론으로부터 비판받을 일이 생겼을 때에도 곧바로 공개했다. 일부러 시기를 조절하지 않았다. 부당한 공격에 대해서는 즉시 대응했다. 그렇게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편법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가졌다. 현안이 생기면 참모를 앞세우기보다 자신이 직접 연대에 섰다. 대변인의 말이 신문 2면의 하단기사라면 비서실장의 언급은 1면 하단에 위치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설명하면 1면 톱이 된다. 그는 그런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총대 메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논쟁의 한가운데로 끼어들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모름지기 대통령은 점잖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세간의 선입관이 한몫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조차도 기꺼이 감내했다.
난처한 현안이 생겼을 때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춘추관에 나가 해명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럴 때면 일부 참모들이 '입장만 발표하고 기자와의 일문일답은 없는 것으로 하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런 입장에 섰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대통령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리에 맞지 않다는 뜻이었다.
최고의 전략은 '정면 돌파'다
2007년 5월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 선출 문제로 정국이 어수선하던 시절, 그가 '청와대브리핑'에 한 편의 글을 기고했다. 다음은 그 가운데 일부이다.
"정치는 잔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한 분석과 수읽기, 거기서 나오는 잔꾀는 한계가 있습니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그런 것에 기대는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보고 대단한 전략가라고 말합니다. 무슨 치밀한 분석과 수읽기를 가지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정치인 노무현은 그렇게 정치해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정치는 양심의 명령에 따라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도이고,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캐릭터가 진하게 묻어나오는 글이다. 그렇게 그는 언제나 편법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정면 돌파하는 정치를 해왔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들에게 '전략'으로 비쳐졌을 뿐이다. 그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지 않았던 다양한 언급들을 소개한다. 먼저 2003년 12월 17일, 일련의 정치 개혁 입법을 촉구하며 국회에 보낸 서한의 한 대목이다.
"또한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지역구를 줄이는 것보다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상황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면 많은 농어촌 지역에서 2~4개의 자치행정구역이 하나의 선거구로 통폐합되어 지역 대표성이 무너지게 됩니다. 의원 개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회의 대표성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갈수록 소외되어 가는 농어촌의 지역 대표성이 크게 약화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국민의 비판과 불신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의원 정수는 우리나라 인구수와 비교할 때 많은 수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 숫자가 아니라 국회의 질입니다. 국회의원 200여 명의 소모적 정치공방에 발목 잡힌 국회보다, 국회의원 100여 명이 늘어나더라도 그 국회가 더 생산적일 수 있다면 그 비용은 기꺼이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이해를 구하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지역구도 정치를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제안이다. 의원 정수의 증원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언급 자체가 역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그의 말대로 '국민의 비판과 불신이 적지 않'은 만큼 웬만한 정치인이라면 하기 어려운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소신껏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단순한 일회성 주장이 아니다. 그다음 날인 18일, 충북지역 언론인과의 만남에서의 이야기다.
"우리 국민들이 결단해서 학계에서든 시민사회에서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 있게 말해야 됩니다. '국민들이 반대한다. 정서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말 안 하면 영원히 이대로 가는 것입니다. 용기 있게 말해서 적어도 3백 몇십 석, 350석 정도 국회의석이 되더라도 정치구조를 기본적으로 고쳐야 됩니다. 350명 국회의원이 결코 많지 않습니다. 16개 상임위원회가 있는데 입법 활동을 할 때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감당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지역구에서 의원들의 시간을 덜 빼앗아 의원활동의 부담을 많이 줄여주고 모금도 좀 적극적으로 해서 활동할 수 있게 뒷받침을 해준 다음에 국회에서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것이 개혁의 요체이지, 그냥 국민들 기분이 좋지 않다고 자꾸 국회를 깎아내리고 줄이는 이런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확고한 소신의 힘
주장의 옳고 그름이나 그 객관적 타당성을 떠나서 그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원칙과 소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확인되는 포인트가 하나 있다. 말하기의 기본은 역시 분명한 소신이라는 사실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한데 들을수록 입장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사람을 가끔 접한다. 소신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장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말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나을 수도 있다.
2004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이른바 '식사정치'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정치인들을 자주 청와대 관저에 초대하여 저녁식사를 함께하자 비판적인 여론이 제기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본 질문에 답변 드리기 전에 '식사정치'부터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은 것 아닙니까?"
반문에 이어서 그는 미국의 제7대 잭슨 대통령 시절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미국이 독립하고 제6대 대통령 때까지는 제한된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세금을 많이 내는 일부 유력자들만 선거권을 가지고 일반 국민들은 참정권이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를 했지만 소위 '귀족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 그런 제한된 민주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7대 잭슨 대통령이 역시 저와 비슷하게 학력이 낮고 독학으로 변호사를 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인데, 그분이 대통령이 되고난 뒤의 별명이 '커먼맨Common Man'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보통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 이전의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분이 대통령이 되고난 뒤에 새로 생긴 버릇이 식당에서 각료들과 국정을 논의했다고 해서 '키친캐비닛Kitchen Cabinet'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야유였지만 지금은 미국의 대중민주주의 발전사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분이 대통령을 하는 동안에 미국의 일반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정치참여를 하게 되는, 보통선거권이 확대된 그런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우선 '식사정치'라는 표현이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이어서 미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들면서 그것이 오히려 바람직한 모습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식사정치', 나아가 '대중민주주의'에 대한 평소의 소신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답변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 대목에서 '식사정치'의 부정적 뉘앙스를 반박하지 못한 채 '바쁜 대통령의 일정상 불가피했다'라거나 '앞으로 자제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했다면 어땠을까? 일부의 사람들은 이해를 표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대통령이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했다'는 이미지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확고한 소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면 돌파가 중요하다.
말과 글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수단이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진정한 '말하기'의 세계가 아니다. 노 대통령처럼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전개하는 것이 말 잘하는 사람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94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출판사 편집장이었는데, 그로부터 2년 전 14대 총선에서 낙선한 정치인 노무현의 자서전을 출간하기 위해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삼일에 한 번씩 대여섯 차례에 걸쳐 그를 만나고 구술을 받았다. 그래서 초고를 정리하면 그가 집중적으로 수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이 그의 첫 자서전인 『여보, 나 좀 도와줘』였다. 당시 그가 구술한 내용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얼마 전 대구 보선에서 당선된 한 의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겠다고 선언한 일이 있다. 나는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아차, 저 사람 실수하는구나' 싶었다. 나도 처음 당선되었을 때에는 자가용 없이 버티어 보려고 마음먹었다가 여의도 안에서 택시 잡느라 30분이 넘게 이리 뛰고 저리 뛰기를 몇 번 해보고 나서야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던 일이 있었다. 그랬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나는 그 선언을 지켜보면서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만 했을 뿐 그분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한참 선배 되는 어떤 의원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자전거 출근을 하는 쇼를 벌리는 것을 보고는 마음으로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초선의원이야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궁리를 냈다 하더라도 알 만한 선배라면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말려야지 그를 이용해서 쇼를 하다니…."
나 또한 그의 생각에 충분히 동의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그는 엄연한 현실 정치인이었다. 동료와 선배 정치인을 비판하는 구술은 부담이었다. 책으로 활자화되면 독자들이 금방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이 구술을 할 즈음에는 '자전거 출근'이 실현 가능성을 떠나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칭찬을 듣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굳이 책에 넣어야 하는지가 나와 출판사의 의문이었다. 나는 삭제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은 채 끝내 이 대목을 책에 담았다. 욕을 먹더라도 지적할 것은 분명히 지적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렇듯 말하기의 기본은 문제의 핵심이나 본질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다. 이것이 두 번째 포인트다.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상대방의 질문은 외면하면 안 된다. 때로는 곤란한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면 노 대통령처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소신에 찬 발언이 단기적으로는 작은 논란과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보면 결코 나쁘지 않다. 어느 날 문득 '소신이 뚜렷하고 생각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평가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두렵고 힘들더라도 문제의 본질에 마주서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순간의 인기를 위해 본질을 외면하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마주하는 사안마다 그렇게 정면 돌파를 도모했다. 그런 한편에서는 긴 호흡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의 발전을 추구했다. 현안은 대부분 정면 돌파였지만, 역사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직선이 아닌 우회도 기꺼이 포용했다. 공존하며 함께 가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그가 서명할 때 즐겨 사용했던 '강물처럼'이라는 문구에 담겨 있는 철학이기도 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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