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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라지만 량강도의 공기는 차가웠다. 쌓인 눈도 채 녹지 않은 상태였다. 조선해방군 최고사령관실로 향하는 길에 총참모장은 조금 몸을 떨었다.
부관이 나와서 경례를 하고 총참모장의 권총을 받아 갔다. 몸수색을 하지는 않았다. 총참모장은 몸수색 없이 최고사령관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최고사령관님께서 지금 통화 중이십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부관이 말했다. 총참모장은 지하 벙커의 복도에서 서서 기다렸다. 개인 무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때면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총참모장은 부관이 만약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눌 경우 반격할 방법을 거의 무의식중에 궁리했다.
최고사령관 집무실이 있는 벙커는 이 근처에서 가장 공들여 만든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미관상으로는 낙제점이었다. 인테리어라 할 만한 물건은 거의 없었고, 벽은 무미건조한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러나 토굴이나 다름없었던 조선인민군 시절의 숙소보다는 훨씬 나았다. 게다가 물자가 없어서, 자재가 없어서 이렇게 지은 것이 아니다. 최고사령관 집무실이 있는 벙커도 일반 병사 벙커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꾸미지 않은 것이다.
조선인민군 시절과는 아무것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병사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리지 않았고, 전력 공급이 끊길 경우를 대비해 식수용 우물을 파지 않아도 됐으며, 무기는 모두 작동되는 물건들이었고, 차량에는 기름이 가득했다. 외부에는 숨겼지만 조선해방군은 사실 돈이 아주 많았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벙커 내부를 최고급 대리석으로 시공할 수도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국원들을 모두 갈아치울 수도 있었다. 남조선의 대통령을 암살할 수도 있었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을 뿐이었다.
그들은 벙커를 꾸미거나 남조선의 대통령을 죽이는 대신 무기와 차량을 사들였다. 그들이 보유한 무기 중에는 휴대형 지대공 유도미사일도 수십 기가 있었다. 러시아의 암시장에서 구입한 제품으로, 평화유지군이 헬기로 자신들을 공격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총참모장이 보기에 이 벙커를 만들 무렵 자신들이 한 실수가 하나 있다면, 작명이었다. 북한 주민들에게 '해방'이라는 단어는 어감이 썩 좋지 않았다. 그 단어는 '남조선해방군'이라 불리는 미군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런 이름은 대단한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괜찮은 근로조건과 높은 보수, 계약금을 준다는 소문에 북한 전역에서 입대 자원자들이 몰렸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옛 조선인민군 병사들, '장마당 경제'에 적응하지 못한 농촌 지역 남성들, 도피 중이던 범죄자들이 다양하게 들어왔다. 조선해방군은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훈련시켰다. 훈련의 질과 강도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봐도 우수했다.
그들은 레이더와 도청 방지 시설을 갖추고, 소규모 발전소를 지었다. 량강도 일대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의료 봉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판 세력이나 위험 분자로 분류되면 민간인조차도 잔인하게 처형하고 그 사실을 공개했다.
개마고원 일대는 사실상 조선해방군의 자치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조선해방군의 노력, 통일과도정부의 무능함, 그리고 혹독한 자연환경이라는 삼박자 덕분이었다. 개마고원 일대는 평균 해발고도가 1,300미터나 되는, 세계적인 혹한 지역이다. 1950년, 미군 해병 제1사단이 전멸 위기를 맞은 곳이 이곳이었다. 조선시대 내내 함경도가 반역의 땅이었던 이유는 중앙정부가 이 지역을 제대로 장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마고원은 다시 반역의 땅이 되었다.
그 모든 일의 기획자이자 책임자가 눈앞의 방 안에 있었다.
"들어오라."
최고사령관이 복도에 붙은 인터폰 스피커를 통해 말했다. 총참모장과 부관은 최고사령관실로 들어갔다.
*
최고사령관실 내부는 복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사람이 쓰기엔 다소 큰 듯한 콘크리트 방이었고, 조명이 조금 어두웠다. 그러나 이곳에는 눈길을 끄는 인테리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책상 아래 깔린 호랑이 가죽이었다. 털과 문양이 멋진 호피였다. 가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진짜'도 아니었다. 백두산호랑이도, 사냥으로 잡힌 동물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던 벵골호랑이의 가죽이 암시장을 여러 단계로 거쳐 이곳까지 흘러든 것이었다.
또 다른 인테리어는 책상 뒤에 놓인 거대한 유리 수조였다. 크기는 어른 두 명이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에 물 대신 연탄재 같은 물질로 채워져 있었다. 조금 자세히 본다면 그 사이로 드러난 두개골이나 갈비뼈, 척추 같은 형체로 그것이 사람의 유골임을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은 진짜였다. 조선해방군은 비판 세력이나 위험 분자들을 서슴없이 처형했고, 그 시신을 화장했다. 유리 수조 속 유골들은 그 잔해였다. 몇몇은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 특히 배신자는 예외가 없었다. 조선해방군은 '적과 내통하는 자, 밀고자는 반드시 산 채로 태워 죽인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최고사령관이 유독 잔인한 성격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런 악명을 떨치는 게 그들의 사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 유골들을 모아 유리 수조에 넣어 자신의 방에 두는 것도 일종의 마케팅이었다.
"용건은?"
최고사령관이 짧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총참모장의 경례를 받았지만 답례를 하지는 않았다.
"눈호랑이 작전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총참모장이 대답했다.
"진전이 있나?"
"있습니다."
총참모장이 대답을 하고 부관을 잠시 쳐다봤다.
"나가 있으라."
최고사령관이 턱짓으로 부관에게 지시했다. 부관은 경례를 하고 방을 나갔다. 총참모장의 권총을 가진 채였다.
총참모장은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뒤 보고를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들이 신사업 아이템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기업인들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가장 정확한 관찰이었다.
조선해방군은 자신들이 '평화유지군이 강제로 해체한 조선인민군의 후신'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잔당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의 동기도 밖으로 알려진 것처럼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남조선을 향한 증오심 같은 게 아니었다. 조선해방군은 군벌이면서 재벌이었다. 그들은 '량강도 기업'이라고 부르는 개마고원 일대의 마약 공장들을 절반 가까이 소유했다.
마약 사업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 김정일이 지시한 게 시작이었다. 외화는 벌어야 했는데 밖으로 내다 팔 게 그것뿐이었다. 아편은 '백도라지 사업', 필로폰은 '빙두 사업'이라고 불렀다. 김정일 정권은 그 마약들이 민간에 퍼지는 게 두려웠고, 주된 수출 시장이 중국이었기 때문에 마약 공장들을 량강도와 함경도에 많이 세웠다. 함흥화학공업대학 교수들이 함흥의 나남제약과 청진의 청라제약으로 파견되어 마약 제조법을 개발하고 공정을 감독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이 국경지대 마약 밀반입 단속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그때부터 마약 공장 임직원들은 북한 사람들에게 마약을 팔기 시작했다. 함흥화공대 교수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기 공장을 따로 차렸다. 이것이 '량강도 기업'이다. 빙두는 그렇게 북쪽 국경지대에서 남쪽으로 내려갔고, 얼마 되지 않아 대유행이 되었다. 나중에는 단속하는 자들이 필로폰에 중독되어 있을 정도였다.
김씨 왕조가 무너지고 평화유지군이 북한에 들어왔을 때, 조선인민군 일부가 무기 반납을 거부하고 소모적인 저항을 벌였다. 최고사령관도 그들 중 하나였다. 육군 대좌(대령)였던 그에게는 남들보다 뛰어난 통찰이 있었다. 그 순간 북한에서 가장 값진 자원은 량강도 기업들이고, 그 마약 공장들이 자신의 부대 근처에 있다는 것. 그 공장들을 운영하는 데에는 무력이 필수적이라는 것.
최고사령관은 군사를 이끌고 량강도 기업들을 접수했고, 유통조직을 재편했다. 수익은 연구 개발과 무장 강화에 재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조선해방군'이라는 신생 대기업이 생겨났다. 그는 최고경영자였고, 총참모장은 사내 벤처를 이끄는 유능한 팀장이었다.
그들에게 눈호랑이 작전은 태양전지라든가 무인자동차 같은 차세대 원천기술이었다. 위험하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막대한 이윤이 보장되는.
그리고 총참모장은 지금 그 사업 파트너로 한 인물을 제안하는 중이었다. 그자의 이름은 최태룡이라고 했다.
"최태룡 말고도 다른 후보가 하나 더 있다고 하지 않았나? 백…… 뭐라든가."
최고사령관이 물었다.
"'백상구입니다. 일명 '백고구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태룡과 백상구는 서로 경쟁 관계입니다."
총참모장이 대답했다.
"둘 중에 지금 우리와 거래를 하는 자는?"
"직접 거래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둘 다 저희와 간접적으로는 엮여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판매조직은 평안도에서부터는 직접 물건을 팔지 않고 지역조직들에게 판매를 맡기는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감시가 심해지기 때문에 판매 단계도 복잡해집니다. 특히 공단 개발이 활발한 개성 주변에는 평화유지군도 많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최태룡과 백상구는 장풍군에서 빙두를 파는 자들입니다. 그 동네에서는 백상구가 기존 강자이고, 최태룡이 갑자기 치고 올라온 신흥 조직이라고 합니다."
"최태룡은 어떤 자인가."
최고사령관이 물었다.
"야심이 많고 똑똑한 인물입니다. 똑똑하니까 황금 알을 낳는 거위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배신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잘 압니다."
총참모장이 대답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눈호랑이 작전을 펼치는 건 불가능한가."
"몇 가지 방안을 검토해봤지만, 장풍군 현지에서 도와줄 세력이 필요합니다. 장풍군에는 남조선군 외에도 말레이시아 부대가 머물고 있습니다. 인민보안부도 그놈들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평화유지군을 포섭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것 역시 장풍군에서 누군가 다리를 놔주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결국은 최태룡이나 백상구를 통해서 평화유지군과 접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경우에는 최태룡이든 백상구든 우리가 진짜로 노리는 게 뭔지 궁금해할 겁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끼워주고 이익을 나누는 게 낫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백상구보다는 최태룡이 더 적임자입니다."
총참모장이 대답했다.
"어느 한쪽을 끼워주면서 다른 한쪽을 그냥 놔둘 수는 없다. 작전이 시가 아니라면작될 때쯤에는 주변이 깨끗이 정리되어야 해. 그치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금방 눈치를 채겠지. 상대 조직이 갑자기 커지는 모습도 훤히 보일 테고."
"백상구 조직을 미리 정리할 생각입니다. 그 둘이 어차피 아숙이니 최태룡을 저희가 조금 도와주면 될 겁니다."
"최태룡이 눈호랑이를 독점 소유하겠다고 나서거나 인질로 삼을 경우 대책은 뭔가."
최고사령관이 물었다.
"최악의 경우 눈호랑이를 포기하면 됩니다. 눈호랑이를 폭파시키고, 최태룡도 함께 제거하는 겁니다."
최고사령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몇 분 후에 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실행하라. 최태룡에게는 조선해방군을 배신하면 어떤 결과가 올지 분명히 일러두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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