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시대의 필요가 생각을 정한다
: 게오르기오스 씨
1982년 나는 그리스의 고고학 발굴 현장으로 떠났다. 가슴이 벅찼다. 땅은 영국에서도 수없이 팠지만 해외원정 발굴은 처음이었다. 나는 낡아빠진 랜드로버 지프차로 버밍엄에서 그리스 테살로니키까지 달렸고, 거기서 더 오래된 버스로 갈아타고 발굴 작업이 기다리는 농촌 마을 아시로스에 도착했다. 나는 여장을 풀자마자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는 온종일 선사시대 토기 조각을 세고, 무게를 달고, 목록을 만들었고, 해가 넘어가면 재활용 자재로 지은 발굴단 숙소의 먼지 날리는 앞마당에서 우조(아니스 열매로 담근 그리스 전통 술─옮긴이)를 한두 잔씩 들이키며 피로를 달랬다.
어느 날 저녁, 한 노인이 숙소 앞 흙길을 지나갔다. 그는 당나귀에 걸터앉아 작대기로 당나귀 엉덩짝을 두들기며 갔는데, 옆에는 한 노파가 무거운 자루를 짊어지고 걸었다. 두 사람이 지나갈 때 동료 학생 중 하나가 서툰 그리스어로 인사를 건넸다.
노인이 나귀를 멈췄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우리의 대변인과 몇 마디 나눈 후, 부인과 당나귀와 함께 다시 터벅터벅 가던 길을 갔다.
“게오르기오스 씨야.” 대변인 겸 통역이 설명했다.
“뭐라고 물어봤어?” 우리 중 한 명이 물었다.
“안녕하시냐고. 그리고 부인은 왜 당나귀를 타지 않았냐고.”
순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랬더니 뭐래?”
“부인은 당나귀가 없대.”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맛본 만고불멸의 인류학적 경험, 다른 말로 문화충격이었다. 버밍엄에서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는 무거운 보따리를 지고 걸어가는데 혼자만 당나귀를 타고 갔다가는 당장 이기적이라는 (또는 더한) 욕을 먹는다. 하지만 이곳 아시로스에서는 이런 행동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그 이유마저 너무 자명해서 게오르기오스 씨에게 묻는 우리가 오히려 바보 같았다.
그때로부터 33년이 흘렀다. 이 책은 그때 아시로스에서 경험한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서, 내가 2012년 10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두 차례에 걸쳐 행한 ‘인간 가치관 태너 강연’Tanner Lectures in Human Values을 기반으로 한다. 태너 강연의 연사로 초청받는 것은 학자로서 일생일대의 영광이다. 나로서는 뜻밖의 초청이었기에 더욱 기뻤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예상외의 연사였다. 게오르기오스 씨를 만난 때부터 30년 동안 나는 도덕철학 방면으로는 단 한 줄의 글도 쓴 적이 없었다. 초청이 왔을 때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따져 보면 프린스턴의 인간가치관센터Center for Human Values야말로 내가 아시로스의 사건을 장황하게 풀어 놓을 최적의 장소였다. 게오르기오스 씨가 왜 그런 행동을 했고 나는 왜 거기에 놀랐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곧 과거 2만 년을 조망하는 인간 가치관의 문화적 진화cultural evolution 총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설명에는 도덕철학 쪽보다는 나 같은 역사학과 고고학 쪽 인사가 맞춤이었다. 인간 가치관의 문화적 진화론이라면 도덕철학자들의 구미에도 맞을 듯했다.
내 이론의 옳고 그름은 독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전문가의 조언이 있으면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1장부터 5장에서는 내 이론을 전개하고, 6장부터 9장에서는 태너 강연의 논평자 네 사람이 각자 한 장씩 맡아 비평하는 식으로 책을 꾸렸다. 중책을 맡은 네 사람의 논평자는 고전학자 리처드 시퍼드, 역사학자 조너선 D. 스펜스, 철학자 크리스틴 M. 코스가드, 문학가 마거릿 애트우드다. 마지막 10장에서는 내가 다시 펜을 들어 논평에 답한다.
: 나의 이론
최근 40~50년 동안 내가 아시로스 마을에서 겪은 문화충격과 유사한 (또는 더욱 강렬한) 문화충격을 다룬 책이 수백 권, 논문이 수천 편 발표됐다. 하지만 내가 지금 거기에 더하려는 책은 그 책들과 조금 다르다. 지난 2만 년의 인류사는 크게 세 가지 인간 가치 체계로 요약된다고 본다. 세 가지 가치 체계는 얼마간 겹쳐 존재했지만 연이어 발생했다. 각각의 가치 체계는 특정 사회 체제에 연동하고, 각각의 사회 체제는 특정 에너지 획득 방식에 연동한다. 우리가 주위 환경에서 에너지를 획득하는 방식은 세월에 따라 변했다. 에너지 획득 방식의 차이야말로 게오르기오스 씨가 왜 그렇게 행동했고, 나는 왜 그의 행동에 놀랐는지에 대한 궁극적 이유가 된다.
여기서 한 가지 급히 알릴 사항이 있다. 가치관 또는 가치 체계, 또는 문화는 워낙 형체와 경계가 흐릿한 덩어리라서 책 반 권 분량으로 이론을 하나 전개하려면 가치 체계라는 광범한 영역에서 특정 부분집합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치 체계 비교영역을 평등, (정치적·경제적·성별) 위계, 폭력에 대한 태도에 국한한다. 이 세 가지를 택한 이유는 한편으로 내가 관심이 많은 주제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관의 다른 부분집합을 비교영역으로 삼아도 결과는 비슷한 패턴을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아니라면 비평가들에게는 내 이론을 반증할 쉽고 빠른 방법이 생기는 셈이다. 가치관의 다른 부분집합들을 비교해서 다른 패턴을 발견하면 되니 말이다.
2~4장에서는 지구상에 연이어 발생한 세 가지 포괄적 인간 가치 체계를 차례로 소개한다. 나는 셋 중 가장 먼저 발생한 가치 체계를 ‘수렵채집 가치관’으로 부른다. 이 가치관은 야생식물을 채취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것을 주요 생산수단으로 삼은 사회와 결부된 가치관이다. 수렵채집인은 위계가 없지는 않지만 위계보다 평등을 중시하고, 폭력에 상당히 너그럽다. 두 번째 가치 체계는 ‘농경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은 주로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길러서 생활하는 사회와 결부된다. 농경민은 평등보다 위계를 중시하고, 폭력에 덜 관대하다. 세 번째 가치 체계는 ‘화석연료 가치관’이다. 이는 석탄, 천연가스, 석유의 형태로 화석화된 죽은 식물의 에너지를 추출해서 살아 있는 동식물의 에너지를 증강하는 사회와 결부되는 가치관이다. 화석연료 이용자는 아직 불평등하지만 위계보다 평등을 중시하고,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 분류 틀은 1982년 게오르기오스 씨의 발언이 내게 황당하게 다가온 이유(그의 가치관은 대체로 농경 단계에 속하고, 나의 가치관은 화석연료 단계에 속하기 때문에)를 설명하는 한편, 인간 가치관 연구에 크게 두 가지 함의를 던진다. 에너지 획득 방식이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내 이론이 옳다면, 그것은 첫째, 절대보편의 완벽한 인간 가치 체계를 주장하는 도덕철학 이론은 모두 시간 낭비라는 뜻이고, 둘째 우리가(‘우리’가 누구든) 오늘날 금과 옥조로 받드는 가치관도 머지않은 미래에 골동품이나 폐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 머지않은 미래가 오면(동시에 내 이론이 옳다면) 우리는 지금의 가치관을 버리고 제4단계가치관, 포스트-화석연료 가치관으로 옮겨 가게 된다. 5장에서는 미래의 가치관은 어떤 양상을 띨지에 대해 예측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 설명이냐 이해냐
나의 문화충격 연구는 경험을 이해하는 방법보다 설명하는 방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최근의 다른 연구들과 구별된다. 이해냐 설명이냐의 구분은 약 100년 전, 사회학의 아버지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사회적 행위를 고찰하는 방법으로서 이해verstehen와 설명erklären을 대조한 학자가 베버가 처음은 아니었다. 최초자의 영광은 독일 철학자 겸 역사가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Johann Gustav Droysen에게 돌아간다. 1850년대에 드로이젠은 역사학자가 종사하는 지적 활동과 자연과학자가 종사하는 지적 활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역사학자는 소재subject matter를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이고, 자연과학자는 설명하려 애쓰는 사람이다(이때 이해는 과거 행위자의 주관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고, 설명은 행위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베버는 드로이젠의 공식을 대대적으로 구체화했고, 나아가 사회학은 역사학과 과학과는 판연히 다른 제3의 목표를 가진다고 말했다. 제3의 목표는 설명과 이해를 통합하는 것이다. 베버는 이렇게 주장했다. “외적행위action와 내적 동기motives가 모두 올바르게 파악되고, 동시에 둘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파악되어야 구체적 행위 진로의 올바른 원인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 의미의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현시적 과정이든 주관적 과정이든 아무리 발생 양상이 균일하고 발생빈도가 수치적으로 일정해도 그것은 하나의 불가해한 통계적 확률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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